리토리오급 전함 | ||||
리토리오 | 비토리오 베네토 | 로마 | 임페로 |
1. 개요
비토리오 베네토(Vittrio Veneto)는 리토리오급 전함의 2번함이다. 함명인 비토리오 베네토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끝을 장식한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는 의미로 붙여졌다.RN Vittorio Veneto(사진은 동급함인 로마)
2. 제원
표준배수량 : 43,624t만재배수량 : 45,752t
전장 : 237.8m
선폭 : 32.9m
흘수 : 10.5m
기관 : Yarrow식 보일러 8기, 4축 추진, 140,000 hp
속력 : 30 kt
항속거리 : 연료 4000t 적재, 20kt 기준 3920 해리
장갑 :
측면장갑 350㎜
탄약고 장갑갑판 162mm
기관부 장갑갑판 110mm
추진부 장갑갑판 105mm
사령탑 전면 250㎜
주포탑 전면 380㎜
부포탑 전면 280㎜
바베트 100㎜
무장 :
50구경 15인치 3연장 주포 3기 9문
55구경 6인치 3연장 부포 4기 12문
53구경 90㎜ 대공고사단장포 12문
54구경 37㎜ 2연장 기관포 20문
65구경 20㎜ 2연장 기관포 30문
승조원 : 1,830명(기함 지정시 80명 추가 승함)[1]
함재기 : 수상기 3대
3. 함생
독일의 포켓전함과 지중해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탈리아 왕립 해군을 경계한 프랑스가 됭케르크급 전함에 이어 리슐리외급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탈리아 왕국이 건조를 계획한 4척의 동급전함 중 2번함.[2] 1934년 트리에스테[3]에서 기공되어 1937년 7월 25일 진수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취역한 것은 1940년, 이미 이탈리아가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 뒤의 일이었다.전체적으로 공-방-주의 균형이 잘 잡힌 전함으로 평가되긴 했지만, 별 활약은 하지는 못했다. 특출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피해를 많이 입긴 했어도 1943년 9월 9일까지 56차례의 임무에 투입되었서도[4] 격침되지는 않았으니 그 점만은 평가받을 만 하다.
비토리오 베네토가 가장 유명한건 특유의 관통력이다. 시간 등 여러 문제로 16인치포 사용을 포기하고 15인치를 사용하긴 했으나 고속으로 초질량탄을 발사하는 방법으로 16인치에 맞먹는 펀치력을 가지고 있었고, 현측 관통력은 18인치급에 근접하는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했다. 심지어 근거리에서는 떡장갑으로 유명한 그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을 숭숭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단점 역시 뚜렷한 함선이었는데, 어디까지나 지중해를 전역으로 상정하고 개발된 전함인 탓에 기동성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항속능력이 거지같았다. 이유는 연료탑재량이 타국의 전함들보다 적기 때문인데, 최대 항속범위는 고작 4천해리였다. 일본 제국 해군의 함대형 구축함도 5천해리는 나오는 그 시절에 말이다. 다만, 당시 유럽 전선은 태평양 전선과 달리 상당히 짧은 항속거리를 가진 병기가 많았다. 일단 태평양 자체가 엄청 넓고, 비토리오 베네토의 활동영역은 좁은 지중해란 것만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유럽전선에서 명성을 떨친 스핏파이어와 Bf109는 태평양전선에서는 숏다리라서 전혀 쓸모가 없다.
그외 스펙에 있어서도 상당히 이탈리아적인 뻥튀기가 들어갔다는 평가도 있다. 당장 15인치 3연장 주포만 해도 근거리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보여줬다지만 중량탄을 고속으로 쏴 대는 탓에 포신에 가해지는 부담이 엄청나게 커서 포신의 수명이 매우 짧은데다가 이로 인해 명중률이 매우 떨어졌다고 한다. 전함이 주포를 사격할 때 사용하는 일제사격법은 포탄을 확률적으로 명중탄이 나올 수 있다고 요구하는 범위내에 착탄시키는 것인데, 비토리오 베네토의 주포는 SHS에 버금가는 대중량탄을 초고속으로 발사하기 때문에 장거리에서는 탄착범위가 터무니 없이 벌어진다. 탄착범위가 무려 2만 3천~3만 미터의 사거리에서 1000 미터. 덤으로 포신수명은 100발이다. 사실 지나치게 넓은 착탄범위는 발사기구의 개선이나 사격방법의 개량 등으로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가령 프랑스 해군의 됭케르크가 베네토와 비슷한 사거리에서 착탄범위 1000미터를 올리긴 했지만, 비슷한 구조를 가진 리슐리외에 이르면 지연발사장치를 사용하는 등의 사격법 개선으로 종전후 200~300미터의 통상적인 착탄범위로 돌아왔다. 야마토도 3만미터에서 착탄범위가 1천 미터라는 괴악한 기록을 내고는 있었다. 물론 이쪽도 전쟁 후반엔 500미터급으로 개량했다.
1940년 11월 27일의 테우라다곶 해전에 참가하였으나[5] 적함을 격침시키기는 커녕 명중탄 하나 못 냈다. 전투 자체도 양쪽이 54분간 포화를 교환하고 서로 이탈하는 걸로 끝났다.
1941년 3월 28일 마타판곶 해전(크레타 섬 근처)에 참가하였으나,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영국 폭격기의 공격에 의해 큰 손상을 받는다.
4. 최후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한 뒤에는 연합군과 함께 몇차례 형식적 합동작전을 가진 뒤, 종전 후에는 전쟁배상금 차원으로 영국에 넘겨진다. 그리고 1948년, 이탈리아로 반환되어 스크랩 처리된다.동급함으로 리토리오, 로마[6], 임페로를 비롯, 그 외에도 두 척의 전함이 더 계획되었지만 해군 최대급 전함으로 이름값을 제대로 한 것은 비토리오 베네토와 리토리오 뿐, 나머지는 건조되기도 전에 작살나거나 제대로 움직여보지도 못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고평가되었기 때문에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해군을 강화하기 위해 이 전함을 모델로 전함을 건조할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고[7], 건조되던 중 모두 취소되었던 소련의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도 이 전함을 모델로 16인치 포를 장착하는 형태의 설계안을 이탈리아 안살도 사에서 받아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8]
한편 비토리오 배네토의 스크랩 당시 탈거한 90mm 대공포는 유고슬라비아에 매각되어 크로아티아 지례 섬의 해안포로 재활용되었고,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당시 크로아티아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1] 기함 임무를 위해 승함하는 인원은 해당 함정 소속이 아닌 함대 직할이므로 승조원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2] 전 세계에서 오직 일본만이 독자적인 기준을 내세워 비토리오 베네토를 1번함으로 간주한다. 그 외의 국가는 모두 리토리오를 1번함으로 간주한다. 자세한 내용은 리토리오급 전함 항목 참조.[3] 현재의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도시다. 당시에는 도시 전체가 이탈리아 영토였다.[4] 실제 적과 마주친 것은 11차례, 타란토 공습처럼 교전을 벌이지 않은 것도 포함하여.[5] 케이프 테우라다 전투는 이탈리아가 부르는 거고, 영국에서는 케이프 스파르티벤토(Battle of Cape Spartivento) 해전이라 부른다.[6] 대전중반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했을때 이탈리아 함대는 영국령 몰타로 가서 항복했다. 그러나 로마는 그 와중에 독일 공군의 Fritz X 폭격을 받아 침몰했다.[7] 유럽 정세 변화로 취소됐다.[8]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계획이 취소되어 실제로 건조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