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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프랑스어 Léopold I de Lorraine |
독일어 Leopold I. von Lothringen | |
출생 | 1679년 9월 11일 |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인스브루크 | |
사망 | 1729년 3월 27일 (향년 49세) |
로렌 공국 뤼네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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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렌 공국의 공작.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총독 샤를 알렉상드르의 아버지이다.2. 생애
로렌 공작 샤를 4세(카를 4세)와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레의 맏아들로, 어머니 엘레오노레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 페르디난트 3세의 둘째딸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로렌 공국은 프랑스군에게 대부분 점령당해 부모님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망명한 상황이었다. 티롤 후백국의 인스브루크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이복 오빠인 레오폴트 1세의 이름을 받았다.1690년 부친이 사망하자 로렌 공국의 공작이 되었고, 어머니는 직접 레겐스부르크 제국의회에 나가 로렌 공국의 반환을 호소했다. 하지만 국제 여건상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빈에서 미래의 요제프 1세, 카를 6세 형제와 함께 성장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대튀르크 전쟁에 참여한 그는 1694년 테메슈바르 포위전에 참전했으며 1697년에는 제국군 라인관구 사령관까지 올랐다.
1697년 레이스베이크 조약이 체결되어 로렌 공국을 돌려받았고 1698년 8월 17일이 되어서야 낭시에 입성했다. 귀국 후 로렌 공국의 발전에 집중하며 이민 등을 장려하였다. 외교적으로는 프랑스 왕국과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루이 14세의 동생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의 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Élisabeth Charlotte d'Orléans 1696~1744)와 결혼했다. 그러나 로렌 공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동안 다시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고 이후 그는 낭시가 아닌 뤼네빌에서 머물렀다. 1721년부터는 아들 프랑수아 에티엔을 빈으로 보내 교육시켰다.
1729년 뤼네빌 성에서 사냥 도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