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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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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결성 배경2.2. 현실은 시궁창2.3. 이후

1. 개요

2014-15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클럽 리버풀 FC의 공격수 삼인방인 리키 램버트, 마리오 발로텔리, 파비오 보리니를 줄여 부르는 말.

2. 상세

2.1. 결성 배경

2013-14시즌 리버풀 FC가 모처럼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우승 경쟁을 펼친 데에는 통칭 SSS(루이스 수아레스-대니얼 스터리지-라힘 스털링)로 불리는 공격 삼각편대의 활약이 컸다. 그 가운데서도 핵심이 바로 수아레스로, 직전 시즌 막바지에 벌인 역대급 기행으로 받을 출장 징계 탓에 33경기에만 나섰음에도 31골 12도움을 기록하는 입이 떡 벌어지는 활약을 선보였다. 오죽하면 우승은 맨체스터 시티 FC가 차지하고 야야 투레는 미드필더가 리그에서만 20골을 꽂아 넣는 미친 퍼포먼스를 선보였음에도 각종 올해의 선수는 수아레스가 싹쓸이했을 정도.

그런 수아레스가 2014년 7월 11일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바르사는 무려 65M 파운드로 추정되는 당시 기준 천문학적인 이적료[1]를 투자했고, 리버풀 역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수아레스가 이바노비치 때의 기행을 또 다시 저지르면서 징계를 받게 되자 이적을 허용한다.

주포를 내보낸 리버풀은 수아레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적극적인 보강에 나섰다. 이미 6월 2일에 리키 램버트의 영입을 확정해 둔 상황이었고, 직전 시즌 선덜랜드 AFC에서 임대 생활을 했던 파비오 보리니도 스쿼드에 남겼다. 그런 가운데 수아레스가 이탈하자 더 확실한 공격 옵션을 원했던 리버풀은 카림 벤제마에게 접촉했으나 끝내 영입에 실패했고, 다른 옵션을 구하다가 이적시장이 막바지로 향하던 8월 26일에 AC 밀란에서 마리오 발로텔리를 영입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비록 벤제마의 영입에는 실패했으나 이적시장 종료 기준으로 공격진에 대한 전망은 마냥 나쁘진 않았다. 램버트는 중위권 팀인 사우스햄튼 FC에서 2시즌 연속해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직전 2013-14시즌에는 10골-10도움까지 채우면서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승선하는 등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연계에 능한 장신 타겟맨이라는 점도 공격 옵션을 늘리는 데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됐다. 보리니는 이미 2011-12시즌 AS 로마 시절 불과 21세의 나이로 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26경기 10골을 기록하는 등 차세대 탑급 공격 유망주로 꼽혔고, 직전 시즌에는 선덜랜드에서 리그와 컵을 합쳐 10골 3도움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였다. 발로텔리는 그놈의 멘탈이 늘 문제라서 그렇지 직전 시즌 침몰하는 밀란에서 총 41경기 18골 8도움을 기록하며 재능은 여전함을 입증했고, 맨시티에서 뛴 경험이 있기에 PL 적응도 수월할 것으로 보였다. 30대 베테랑인 램버트를 제외하면 발로텔리와 보리니 모두 20대 초~중반 약관의 나이인 점도 긍정적이었다. 여기에 스터리지와 스털링도 건재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팬들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2.2. 현실은 시궁창

<rowcolor=#fff> 선수 출전 득점 도움 출전시간
리키 램버트 36 3 2 1,248'
마리오 발로텔리 28 4 0 1,513'
파비오 보리니 18 1 2 647'
합산 8 4 -

그야말로 처참했다. 램발보 트리오는 리그와 각종 컵 대회를 다 합쳐도 3명이서 고작 8골 4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리그만 따지면 램버트 25경기 2골 2도움, 발로텔리 16경기 1골, 보리니 12경기 1골 1도움으로 고작 4골 3도움 뿐이다. 참고로 이 시즌 우승팀인 첼시 FC의 수비진 전체의 공격포인트가 19골 18도움으로 램발보를 가볍게 압도하며, 백업 선수들의 기록을 다 빼고 주전 가운데 공격포인트가 가장 많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6골 7도움)의 기록을 빼더라도 존 테리-게리 케이힐-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세 명이서 11골 8도움을 기록했다. 아니, 사실 멀리 안 가고 당장 이바노비치 한 명이 기록한 13개의 공격포인트가 램발보가 기록한 12개를 넘어선다. 심지어 시즌 중에는 램발보 3명이서 888분 무득점을 기록하기까지 했을 정도라서, '램발보는 888분 동안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전설적인 수비 트리오다’ 라는 드립을 치기도 한다.

특히 발로텔리의 처참한 폼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밀란 시절부터 보여온 멘탈 개선은 잉글랜드로 넘어오고 나서도 여전했지만, 잉글랜드로 날아오는 비행기에 기행과 함께 실력도 놓고 와버린 것인지 리버풀 데뷔 후 리그 9경기 무득점으로 무한 삽질이 뭔지 보여줬다. 그나마 그 중간에 열린 UCL 루도고레츠 라즈그라드전에서 리버풀 데뷔골을 신고하고, 캐피탈 원 컵에서 스완지 시티 AFC를 상대로 득점하는 등 다른 대회에서라도 간간이 득점을 신고했으나 리그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아예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기까지 했다. 특히 리그 8라운드 QPR전에서 빈 골대 앞에서 홈런을 날리는 충격적인 실수는 이 시즌 발로텔리의 처참한 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결국 후반기 들어서는 전력 외 판정.

그나마 램버트는 발로텔리가 영입된 후 거의 백업 위주로만 나서서 경기 수 대비 출전 시간이 적었고, 나중에 리버풀이 제로톱 전술까지 쓰면서 입지가 더 줄어들었다. 보리니 역시 스터리지와 스털링의 존재만으로도 꾸준한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는 나름의 변호점이 있다. 물론 이를 감안하더라도 경기력 자체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실패에는 브렌던 로저스의 경직된 전술도 한 몫 했다. 발로텔리 영입 후 직전 시즌의 SSS에서 수아레스 자리만 발로텔리로 바꾼 전술을 그대로 썼는데, 문제는 수아레스와 달리 발로텔리는 원톱에서는 그다지 힘을 못 쓰는 유형의 선수라는 것. 나이가 든 지금이야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으나 한창 때던 당시의 발로텔리는 신체조건은 훌륭한데 그걸로 헤더를 따내는 등 포스트 플레이로 기회를 창출해주는 데에는 강점이 없었고, 오히려 개인의 발재간을 통한 솔로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원톱으로 쓰면 중앙에서 고립되고, 투톱의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세워야 강점을 온전히 발휘하는, 쓰기 까다로운 선수인데 그런 선수를 그냥 직전 시즌 원톱 전술에 그대로 갖다 썼으니... 물론 당시 리버풀 스쿼드 사정상 발로텔리에게 맞는 전술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2], 로저스의 감독으로서의 한계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공격진의 부진은 리버풀의 성적 급락으로 이어졌다. 당장 직전 시즌에도 수비는 그냥 평범하거나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임에도 SSS 트리오의 화력과 스티븐 제라드의 지원 사격을 통한 공격 축구로 성적을 낸 것인데, 그 공격이 무뎌지니 힘이 쭉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중하위권 팀들이야 어찌저찌 선수빨로 잡을 수라도 있다지만, 상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경쟁력이 없는 팀으로 전락했다. 실제로 이 시즌 리버풀의 순위는 6위로 빅6의 말석이었고, 같은 빅6팀 상대로는 당시 기준 리버풀과 비슷하게 빅6 말석 수준이던 토트넘을 상대로나 2승을 따냈지 다른 팀들을 상대로는 동률 아니면 열세였다.

2.3. 이후

결국 리버풀은 201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공격진 재편에 돌입하면서 램발보는 1년 만에 해체됐다. 램버트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로, 보리니는 선덜랜드 AFC로 완전 이적했고, 발로텔리는 임대를 통해 AC 밀란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는 크리스티안 벤테케를 큰 돈을 주고 데려온 것을 비롯해 호베르투 피르미누, 대니 잉스 등을 영입해 메웠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돌입한 시즌은 최악의 연속이었고, 결국 리버풀은 2015년 10월에 로저스를 경질하고 위르겐 클롭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클롭 체제에서 리버풀은 전력을 다듬으며 재도약의 발판을 놓았고, 이후 한동안 부진하던 피르미누의 제로톱 정착, 2016년 사디오 마네와 2017년 모하메드 살라의 영입으로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공격 트리오가 구성되며 램발보의 기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1] 이적료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일어난 현재 기준으로는 비싸긴 해도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붙이기에는 조금 미묘할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축구 역사상 역대 이적료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참고로 당시 1위가 2013년 가레스 베일, 2위가 2009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죄다 레알 마드리드 CF가 영입한 것이니, 레알 외의 팀의 영입 가운데는 최고액 기록이었다.[2] 스터리지와 보리니는 발로텔리와 비슷한 유형에 더 가까운 선수라 굳이 투톱을 세워도 시너지가 잘 안 나고, 램버트와 투톱을 세우자니 수비 밸런스 문제 때문에 스터리지와 스털링 중 한 명은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