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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간의 국경선.2. 상세
1893년 아직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없었던 당시 이 지역 남쪽은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인도 제국이었고, 이 국경선은 당연히 영국에 의해 그어졌다. 이 당시 인도 제국의 외무장관 헨리 모티머 듀랜드 경(Sir Henry Mortimer Durand, 1850 ~ 1924)와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국왕 압두르 라만 칸(1840/1844~1901)이 체결한 협정을 기준으로 그은 국경선으로서 모티머 듀랜드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3. 배경: 그레이트 게임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대외적인 세력확장을 노리다가 1856년 크림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한풀 꺾이게 되고, 방향을 돌려서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거쳐서 인도양으로 나가려 시도했다. 한편 세계의 제해권을 쥐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의 대양으로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두 나라의 대립은 50년 이상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는데 이것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부른다.187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을 선포한 영국은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로 나올 낌새를 보이자 선수를 치기로 하고, 1878년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 완전정복은 실패했지만, 영국에 우호적인 칸을 세우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데,[1] 러시아가 아랑곳하지 않고 히바 칸국을 1884년 병합하고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를 공격하는 등 남하할 기미를 계속 보이자 영국과 위기가 고조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조선의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했다. 여기에 충격받은 러시아는 동북아의 방위정책을 육군 중심주의로 전환하고,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 만주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만주 지역에 경제적 이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 제국의 불안감을 자아냈으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 제국간의 충돌을 불러오게 된다.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남하와 영향력 확대를 달가워하지 않던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였고, 결국 러시아는 혼란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서 패전한다. 결국 러시아는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모두에서 남하가 저지되면서 이전과 달리 꽤 약세에 처한 입장에서 영국과 협상을 맺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영역권을 분할했다. 이것이 1907년의 영러협상으로, 이를 계기로 19세기 동안 지속된 영국-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은 일단락되었다.
4. 듀랜드 라인의 분할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 국면 중 1839년 아프가니스탄이 러시아와 협력한다는 것을 명분 삼아 이전 왕조인 두라니 왕조의 적법한 지도자를 세우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인도 제국에 완전히 병탄할 야욕을 품고 침공했으나 3년간의 전쟁 끝에 후퇴해야 했고(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한 번 더 침공하나 역시 아프간 직접 지배에는 실패하고, 친영 군주 압둘 라흐만 칸을 내세워 보호국으로 삼는 데 만족해야 했다.(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리하여 영국은 보호국 아프가니스탄과 식민지 인도 제국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고, 1893년 '듀랜드 라인' 협정을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라흐만 칸과 체결했다.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동남부 일대 지역을 인도제국 통치하에 이관하는것이 핵심이었다.영국령 인도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접하지 않도록 아프간 왕국을 완충지로 이용하기 위해 듀랜드라인의 동쪽 일부는 제국간 인위적 완충지대처럼 희한한 모양을 그리면서 와칸 회랑으로 자리잡혀 있다. 이후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약 2년간의 현장 지리 조사와 국경임을 알리는 기둥 설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인도 북서부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기존 국경선 구조가 남게되어, 듀랜드라인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되었다.
5.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으로 1893년에 영국이 설정한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은 그대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 일대에 거주하던 파슈툰족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파슈툰족 거주지역 중앙을 관통해서 국경선을 그은 것이기에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으로 전락해버렸으며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분할당해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현재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이 약 4천만 명으로, 1천 5백만 명 정도인 아프간의 파슈툰족보다 더 많다.[2] 즉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에 살고 있는 파슈툰족들은 졸지에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인이 되어 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의 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파키스탄 국민보다는 파슈툰족으로 생각하며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파슈투니스탄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물론 아프가니스탄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라서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할 때 듀랜드 라인의 무효화와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고, 1950년대 내내 영토 분쟁으로 여러 번 무력 충돌이 발생한 끝에 1961년에는 양국의 관계가 단교까지 치닫기도 하였다. 파키스탄은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 친파키스탄 정부를 세우길 원해 아프가니스탄이 전쟁에 빠지자 여러 무장세력들을 지원했고, 이렇게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세력 중 하나는 동포인 탈레반도 있었다. 파키스탄 군부에는 지금도 파슈툰족 군인들이 상당수 있어서 지금도 친아프간성향이 있는데 탈레반은 1996년 집권 이후
현재 파슈툰족이 밀집해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지대, 즉 연방 직할 부족 지역를 비롯한 카이베르파크툰크와는 국경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 파슈툰족의 정체성이 강한 북서부 파키스탄인들 한테는 바로 국경에서 맞대고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족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친근한 동포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점령중인 지역도 상당하고,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로 처음부터 두나라 중앙정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곳이다 보니, 그냥 두나라 파슈툰족들끼리 꺼리낌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탈레반이 설치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적 무법지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환경은 아프간-파키스탄 두 나라의 막장 정세를 더욱 막장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