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서(蜀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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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瓊
(? ~ 2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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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며 자는 백유(伯瑜)로 익주 촉군 성도현 사람이다.2. 정사 삼국지
어려서부터 임안에게 학문을 배워 그의 학술을 연구했으며, 유장에게 초빙되어 종사가 되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의조종사에 임명되었으며, 유선이 즉위하자 간의대부가 되었다가 좌중랑장, 대홍려, 태상 등을 역임했다.사람됨이 조용하고 과묵해 말이 적었으며, 문을 닫고 자신의 지조를 지키면서 세상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장완, 비의 등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학업에 있어서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만 천문을 관찰하거나 이론을 세운 적은 없었으며, 초주가 그의 생각에 대해 묻자 천문을 분명하게 하는 일이 어려우면서 자신이 관찰한 것을 믿으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한 후에 길흉을 점치고 누설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기에 두 번 다시 천상을 관측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초주가 주징군(周徵君)[1]은 당도고[2]란 위나라를 가리킨다고 하는 도참에 대해 이것이 무슨뜻이냐고 묻자 이를 풀이해 주었는데, "위(魏)란 궁궐 문의 명칭이며, 도로에 닿아 있고 높소. 성인(예언서의 작자)은 위나라와 궁궐 문의 명칭인 위(魏)가 같은 글자인데 근거하여 유사한 것을 취해 말했을 뿐이오."라고 말했고 또 의문나는 점이 있느냐 질문했는데 초주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자 두경이 "옛날에는 관직을 명명할 때 '조(曹)'자를 써서 말하지 못했는데, 한대 이래로 관직명에 '조(曹)'자를 전부 말하게 되어 관리를 '속조(屬曹)'라고 했고, 관졸을 '시조(侍曹)'라고 했소. 이것은 아마 하늘의 뜻일 것이오."라고 후한이 망하기 전의 당도고 참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익주뿐만 아니라 후한 전역에 알려졌던 이 오래된 참언에 대해서 두경이 초주에게만 설명한 것은 이미 이루어진 참언이기도 하거니와 초주가 오래전 도참설을 연구하며 학문적으로 질문하니 대답해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대 촉한의 이념이 한실의 부흥이었으므로 공개적으로 촉한에서 말하기에는 꺼려지는 참언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과묵한 두경이 평소에 함부로 입밖에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촉한이 건국된 후 촉한내에서는 당도고 참언이 유행했다거나 성행하진 않았다. 아니면 익주에서 존중받지 못했던 초주가 이 오래전 도참을 이용해 촉이 망한다는 자신의 참위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두경의 이름을 빌렸을 수도 있다. 평소에 두경이 이론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250년에 80여 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한시장구 10여만 자를 저술했지만 자식들에게 전수하지 않아 참위학을 배워 전승한 자는 없었다.
3. 삼국지연의
제갈량이 병을 핑계로 자신의 집에 오게 해서 황제가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때 병풍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타난 문관 중의 한 사람으로 이 때는 벼슬이 의조였으며, 이후 제갈량의 제4차 북벌 때 참전해서 위연, 장억, 진식과 함께 2만을 이끌고 기곡으로 나아갔다. 이 때 등지가 기곡으로 움직이면 위군의 매복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위연과 진식이 듣지 않으면서 진식이 먼저 나아갔는데, 위군의 매복으로 위험해지자 위연이 진식을 구하러 갔고 이어서 두경은 장억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구원했다.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4 일러스트 |
특이하게도 삼국지 4, 삼국지 DS 2에 등장하고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14에서 오랜만에 복귀했다.
발번역으로 유명한 삼국지 DS 2 정발판의 경우 두예라고 오역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일러스트는 100만인의 삼국지의 두경 일러스트를 재활용했으며 능력치는 통솔 50, 무력 38, 지력 63, 정치 58, 매력 60이다. 개성은 문화, 점술,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병참개혁 Lv 2, 진형은 장사, 전법은 저지, 매성, 친애무장은 하종,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167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4.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이름만 언급된다.
[1] 징군은 초빙된 선비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징군은 주군의 아버지 주서를 뜻한다.[2] 후한 말 당시 유행했던 민요의 가사로 한나라를 대신할 자는 길이 높은 자다.(代漢者, 當途高)라는 구절이 있는데, 당도고는 정정당당하게 대로를 가며 크고 훤칠한 모습을 말한다. 원술이 이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서 황제 즉위의 명분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