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 터너 Nat Turner | |
좌측 인물 | |
출생 | 1800년 10월 2일 |
미국 버지니아주 사우스햄프턴 카운티 | |
사망 | 1831년 11월 11일 (향년 31세) |
미국 버지니아주 코틀런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8/172cm, 68~72kg[1]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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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흑인 노예 반란 지도자.2. 생애
당시 미국 흑인들처럼 노예였으며, 냇은 애칭이고 성은 주인인 새뮤얼 터너의 성을 물려받았다. 터너의 변호사를 맡은 타머스 러핀 그레이가 남긴 기록 '냇 터너의 고백록(The Confessions of Nat Turner)'에 따르면, 터너는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1831년 8월 21일, 터너는 자신을 따르는 노예 75명과 함께 버지니아주 사우스햄프턴에서 반란을 일으켜 백인 55~65명을 죽였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백인 민병대에게 진압 당한 뒤[2], 도피를 시도했으나 붙잡혀 코틀런드[3]에서 처형 당했다.
이는 1822년에 덴마크 베이시[4]가 일으켰던 반란 이후 또 한 번 백인 농장주 계급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3. 사후
- 반란 이후 버지니아내 사회 분위기는 극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버지니아는 여느 국경주(border state)와 다를바없이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제 찬성론자로 나뉘어져 있었다.[5] 하지만 폐지론자들이 제안한 흑인 노예에 대한 점진적 해방안은 냇 터너의 반란 이후 고조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다. 다만 당시 민주당 소속의 대지주 가문이 장악한 버지니아 주에서 굳이 냇 터너의 반란이 아니었더라도 노예제 폐지는 불가능했을거라는 얘기도 있다.
- 소설 "뿌리"에서 터너의 반란이 언급된다.
- 그레이가 터너의 구술을 정리한 책 "냇 터너의 고백록(The Confessions of Nat Turner)"을 바탕으로, 1967년에 윌리엄 스타이런이 같은 제목의 전기소설을 썼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 역사편에서 터너의 반란을 언급한다.
- 영화 <국가의 탄생>(2016)이 터너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