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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8-06 12:59:03

만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같이보기

1. 개요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1]
萬積
? ~ 1198년(신종 원년) 5월 17일

고려 시대노비이자 만적의 난의 주동자. 고려진승, 스파르타쿠스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만적의 난을 일으킨 중심 인물로, 《고려사》 최충헌 열전에서 만적의 주인을 명시하지 않은 채 그저 '사노비'라고만 기록했기에 다른 곳도 아닌 최충헌 열전에 기록된 점으로 최충헌의 노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돌쇠나 마당쇠처럼 우직한 성격을 떠올리기도 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김준처럼 무장이나 가병에 가까운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2]

1198년(신종 원년) 5월, 개경 뒷산에서 미조이, 연복, 성복, 소삼, 효삼 등 노비 5명과 함께 나무를 하던 중 신분제에 불만을 품고 종들을 불러모아 천인을 없애버리며 정권을 장악하자고 거사를 논의한 뒤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서 정()이라는 글씨를 적어놓고 종이를 표지로 삼게 했다. 정자 표지를 달고 날짜를 정해 흥국사에서 출발해 격구장에 대오를 정비해 한꺼번에 북을 울려 거사를 치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인 5월 17일 흥국사에는 몇백 명만 모였기에 적은 수로는 거사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해 나흘 뒤 보제사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순정이라는 종이 주인인 율학박사 한충유에게 이를 고해바치고 말았다. 결국 만적은 100여 명과 함께 붙잡혀 강물에 던져지는 것으로 죽음을 맞았으며 순정은 포상금을 받고 평민이 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4. 같이보기



[1] 중국 진나라 시절 진승·오광의 난에서 진승이 외친 "왕,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는 구호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이 유행어처럼 민간에 퍼져 이후 한반도로도 흘러들어왔을 것이라 추측된다.[2] 둘 다 맞을 수도 있는 것이, 분명히 만적이 "나무를 하러 갔다" 난 모의를 했다고 하니 분명 일반적 중노동을 하던 노비는 맞을 것이며, 동시에 고려에는 사병이 금지되던 시기에도 십수명 단위의 가병까지 완전 금지되진 않았고 하물며 이 때는 경대승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병이 다시 정계에 등장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게 지났으므로 만적이 평시에는 집안의 중노동을 하다가 일이 터지면 갑옷과 무기를 챙겨 나가 싸우는 인물이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