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uby(國民服, ruby=こくみんふく)]태평양 전쟁 직전부터 종전할 때까지 일본 제국에서 남성 복제로 도입한 일종의 범국민적인 제복. 여성에게 몸뻬가 있었다면 남성에겐 이게 있었다.
2. 국민복 착용시행
국민복 착용 홍보 포스터.
1940년 11월 2일, 쇼와 덴노의 칙령 형식을 빌려 공포한 "국민복령"(쇼와 15년 칙령 제725호)에 따라 제정되었다. 이 명령은 전시의 물자 통제령 하에 있던 국민의 의복 생활을 간소·획일화하여 효율성을 도모키 위해 일본 육군성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왼쪽이 갑호(甲号), 오른쪽이 을호(乙号)다.
칙령에 언급된 국민복의 형식은 일본 육군의 군복과 유사한 다섯 단추가 달린 황록색의 인민복과 비슷한 형태의 상의와 바지, 모자, 코트, 장갑, 각반, 구두, 넥타이 등에 이르기까지 소재, 색목 등이 세세히 규정되어 있었다.
당시 중국군이 쓰던 인민복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가슴주머니 덮개가 뒤집어진 山자 모양인 인민복과 달리 주머니 덮개가 일반 직사각형 모양이다.
모자는 일본군의 약모와 동일하게 생긴 국민모를 쓰게 했다.
군국주의 국가 일본 제국답게 군복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다만 획일성과 군사성을 강조한 옷임에도 이걸 국가가 지급해 준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자비로 구매하거나 만들어 입어야 했다. 위의 짤도 "주부의 벗(主婦之友)"이라는 잡지의 표지이며 왼쪽에는 "새로이 제정된 국민복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쓰여 있다.
3. 역사
1942년 이후에는 전국의 학생과 사관생도의 공통 통학복으로서 지정되는 등 보다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1943년 6월에는 물자 절약 차원에서 "국민복제식특례"(쇼와 18년 칙령 제499호)가 공포되어 소재나 색조의 규정이 완화되어 보다 육군 군복에 가까운 을호를 중심으로 국민복이 생산되었다.제정 이후에도 한동안은 강제성이 크지 않아 일반 사복이나 교복 등을 계속 입어 왔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착용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종전 직전에는 웬만한 재벌이나 고급 관료 정도가 아니면 국민복이 아닌 옷을 입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비국민 취급 당하기 좋을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나마 위에서 언급된 예외적인 사람들도 정말 큰 행사나 덴노 알현하러 가는 자리가 아닌 이상 눈치껏 적당히 입어야 했고 보통 국민복 상의에 나비 넥타이 등 조금 화려한 장식을 추가하거나 고급 재질의 원단을 쓰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1945년 6월에는 "대동아전쟁육군군인복제특례"가 공포되어 육군은 군복의 대용으로서 국민복을 입는 것도 허용되었는데 허용이란 단어를 써서 뭔가 은혜를 베푸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상은 새로 징병되거나 피복 손실로 재지급받아야 할 육군 인원들에게 재고 소진 이후에는 그냥 계급장 등 부착물만 달랑 주고 입고 온 국민복에 알아서 박아 육군 군복으로 대용하라는 조치일 뿐이었다. 당시 육군이 착용하던 98식 육군복은 상의 주머니 모양이 좀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국민복과 거의 차이가 없는 옷이어서 이런 게 가능했다. 그나마 해군은 옷이라도 새로 꼬박꼬박 줬다.
한마디로 저 국민복을 입기 싫으면 출세하든가 해군, 경찰 등 별도의 제복이 남아 있는 곳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1945년 8월 이후부터 위의 모든 칙령 등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면서 그간 국민복에 질린 국민들이 작업복으로 마지못해 입는 정도를 빼면 착용을 거부하였고, 일선 학교에서 교복을 새로 제정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는 이유로, 국민복 교복을 여전히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역시 1950년대에 가쿠란으로 되돌아오면서 사장되었다.
4. 종류
1호(갑호), 2호, 3호, 4호(을호)의 네 종류가 있었는데 칼라가 열려 있는 형태가 갑호로 민간용이었으며 단추를 끝까지 채우도록 되어 있는 청소년 및 공무원용이 을호였다. 4계절 내내 착용이 가능하며 의례장(儀礼章; 기레이쇼)이라고 불리는 견식을 착용하면 행사용 예복이나 정장으로 대용이 가능했다.갑호 국민복을 착용한 성인 남성.
의례장을 착용한 모습.(왼쪽) 오른쪽 주머니덮개 단추와 옷을 여미는 두번째 단추에 꿰메서 고정하게 되어 있다. 전쟁 막바지엔 이 차림으로 천황을 알현할 수 있었다.
5. 유사 사례
사실 이런 군복식 제복은 일본의 국민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의 인민복이나 인도의 네루 쟈켓처럼 당시 제복 디자인은 대동소이했고# 간소하고 간편한 옷차림을 근대화 정책으로 퍼뜨리다 보니 군복과 비슷한 옷이 그대로 제복으로 정착되었다.한국에도 이런 제복이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뒤 이승만 정부 때 남성들에게 시민복이라고 검은색 국민복 형태의 복장을 권장하기도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없어졌다. 이는 미군의 HBT 전투복 상의나 대한민국 국군의 광목 전투복 상의 등 국방색 군복류에 검은 물을 들이고 맨 윗 단추를 채워 입게 한 것으로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해 주로 원조 등으로 인해 재고로 쌓인 대한민국 육군 전투복 상의로 급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왼쪽이 육군 정복을 입은 박정희, 오른쪽이 국민복 비스무레한 재건복을 입은 김종필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부를 구성했고 국가재건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하여 생활개선 운동을 이끌었는데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종필의 고안으로 재건복이 만들어졌다. 김종필 본인도 이 옷을 자주 입고 다녔다.# 김종필은 이 옷을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옷"이라고 자평했다.
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재건복은 색상과 디자인을 살짝 바꿔서 새마을복이라는 옷으로 다시 등장했다. 각 마을마다 있던 새마을 지도자들은 이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사진에 나온 밝은 색상의 옷들이 새마을복이다. 새마을복은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이 있었으며, 활동복, 사무복, 점퍼 형태 등이 있었다. 70~80년대 드라마에 나오는 공무원이나 농촌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하늘색 또는 황토색의 허름한 옷이 바로 새마을복이다. 실용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멋은 신경쓰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이 옷은 21세기에는 사실상 멸종 상태지만 아주 드물게 시골에서 작업복으로 이용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새마을복을 입고 태풍 매미 피해를 보고받는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민정수석과 고건 국무총리, 김두관 행자부장관, 기타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착용한 갈색 제복은 2005년 개편 이전의 민방위복이다.
6. 대중매체에서
일본에서는 당연히 <반딧불이의 묘>, <맨발의 겐>, <이 세상의 한 구석에> 같은 일제말기를 다룬 대중매체에서는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좀 더 다양한 복장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마히토의 아버지는 고급 국민복(갑호)에 양복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고, 영화 첫머리에서 만나는 출정 병사와 국민학교의 아이들은 조악한 을호 국민복을 패용하고 있다. 참고로 마히토의 옷은 국민복이 아닌 고급 원단의 별도의 제복이다.한국의 일제강점기 관련 매체에선 이 의상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이유는 다른 건 없고 과거 KBS 아트비전, MBC 미술센터, SBS 아트텍 같은 곳에 저 의상이 없었기 때문.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10몇 년 전만 해도 일제강점기 일본군이라고 하면 어디서 헌병이 입고 다니던 누우런 군복에 각반, 거기서 헌병용 완장(붉은색으로 쓰여진 憲兵)만 제거한 복장을 사용했다. 이후 밀정, 암살, 봉오동 전투 등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아지며 복장 고증은 조금 나아진 편이지만 이 국민복이 제대로 나온 건 과거 1991년 특집극 여명의 눈동자 정도다.
일본의 항복결정을 다룬 논픽션인 '일본의 가장 긴 하루'에서 쇼와 덴노의 종전조서 발표 녹음 당시 NHK 총재와 녹음기술자들이 국민복 차림으로 입궁해도 좋다는 전갈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다. 고쿄에 입궁하려면 별도의 제복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검은색 모닝코트와 실크 햇, 줄무늬 정장 바지, 검은색 구두 등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하는 의전규정이 있었는데 전쟁 말기의 물자 부족 및 급한 상황으로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이 덴노 알현시의 드레스 코드는 21세기에도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