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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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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욱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구자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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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상무 야구단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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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구자욱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구자욱대구본리.jpg
<colbgcolor=#c0c0c0,#3f3f3f><colcolor=#000000> 대구 본리초등학교 재학 중 시절
파일:t5Gz3Kv.jpg
[[대구고등학교 야구부|{{{#000000 대구고}}}]] 재학 중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타율 경기 타석 타수 득점 총안타 2루타 3루타 타점 도루 희타 희비 4사구 삼진 병살 장타율 출루율 OPS
2010년 0.183 16 74 60 9 11 2 1 8 8 0 1 13 12 0 .250 .324 .574
2011년 0.444 18 77 54 22 24 3 5 21 11 1 5 17 9 0 .685 .539 1.224
통산 0.307 34 151 114 31 35 5 6 29 19 1 6 30 21 0 .456 .433 .889
▲ 2011년 8월 1일 청룡기(대구고 vs 충암고)

컨택 능력이 좋고 선구안을 갖추고 발도 빨라 1번이나 3번 타자로 활약하며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1년 제9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어렸을 때는 키가 작았고 배팅보다 공을 잘 던져 당시 감독이 투수를 해야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투수를 꿈꿨으나 1학년 때 입스가 찾아와 제대로 원하는 곳에 던지지 못해 '야구를 그만둬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실제로 한동안 야구를 관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들을 때 교실에서 보이는 야구장을 볼 때마다 다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고, 극복해내기 위해 다시 이를 악물었다. 눈에 공이 보이면 그대로 잡고 던졌고 거울이 보이기만 하면 팔 스윙 연습하는 등 투수로서의 꿈을 다시금 키워나갔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이 부상으로 타자로 출전한 선수가 없자 대타도 아니었던 구자욱에게 갑자기 다가와 "니 쳐봤제? 준비해! 준비해!"하며 공을 치라고 해서 유야무야 타석에 나섰는데, 마침 홈런성 2루타를 쳐냈다. 그 후로 "니 내야수 했었으니까 내일부터 3루수 나가봐"하는 바람에 야수로 쭉 활약하게 된다.#

원래 외야수였다는 근거없는 낭설이 떠돌았으나 "고등학교 때 외야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직접 밝혔다. 실제로 고교야구 기록을 찾아보면 구자욱이 참여한 모든 공식시합의 기록에 3루수 출장으로 나와 있다.
2012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전체 12번)에 연고 팀이라 할 수 있는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었다. 이 당시 체격은 189cm, 75kg. 키에 비해 마른 체구로 프로필상 같은 팀의 조현근보다도 더 마른 체격이었기에 어느 정도 체중을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저 체격 때문에 구자욱은 더 하위 라운드에서 뽑는다는 말이 있었으나, 당시 삼성 라이온즈 고문직을 지내고 있던 김응용이 삼성 스카우트들을 갈군 끝에 상위 라운드에서 뽑았다고 한다.

구자욱 본인 스스로도 이 당시 1군에 뛸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했다. 야구를 그만뒀던 적이 있을만큼 지명만 되는 것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3. 삼성 라이온즈

3.1. 2012 시즌

시즌 초반 2군 주전 3루수 김정혁이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며 운 좋게 김정혁의 3번 3루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0.288의 타율로 고졸 신인치곤 그럭저럭 쓸만한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중심 타선에서 25개의 도루를 했다는 것은 고무적이었지만, 고교 때 좋은 선구안을 가졌다는 평과 달리 볼넷/삼진 비율이 나빴다. 시즌 중에는 출장 경기수보다 삼진 개수가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이 당시 프로입단 만으로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지 큰 동기부여가 없었고, 입단 동기들이 한 번씩은 1군에 다녀왔지만 한 번도 1군에 등록되지 않았다.

3.2. 상무 피닉스 야구단

시즌 후, 군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한 팀의 배려로 이른 나이에 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3, 4달만에 배팅을 치는데 배팅볼에 헛스윙할만큼 감을 잃었고, 그 모습을 본 감독이 "아무것도 하지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윙만 돌려라."고 지시해 단체훈련에는 참여하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진짜 못했다고 회상하며 그 당시 감독님이 매일같이 "쟤는 도대체 누가 뽑아왔냐고" 불평했다고 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또한, 프로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예전의 자신과는 달리 매일 야구 중계를 챙겨보고 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 간절했던 다른 상무 선수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TV 중계에 나온 야구선수를 봤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고, '저게 (진짜) 프로다.'라고 깨달으며 1군 무대에서 무조건 뛰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으로 2년간의 군생활동안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했다.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0.301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경찰청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애시당초 입단 당시의 플랜이 외야수로의 전향이었고, 상무에 하주석 - 오선진이 입단하면서 내야수가 확충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에서 요청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일단 3루 연습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포지션은 삼성에 복귀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0.357의 타율로 타율 1위를 하며 남부리그 타격왕을 수상했다. 남부 리그서 조평호와 단 둘밖에 없는 OPS 9할, 3-4-5 슬래시라인 돌파에 성공. 또한 10kg 가량 몸을 불리면서 86kg까지 찌웠다.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에서는 1,3루,좌익,우익으로만 나오고 중견을 본 적은 없었다), 14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하면 모든 포지션을 나온 셈이다.

U-21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이정훈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구자욱의 재능을 상당히 좋게 평가하면서# 트레이드로 영입해 보자는 의견을 냈지만, 삼성이 일찌감치 트레이드 불가 선수로 막아버려서 영입에 실패했다. 애초에 김성근 감독도 해당 보고를 전달받자 삼성에서 절대 트레이드로 내줄 리 없다면서 포기하라고 했을 정도.

2014년 9월 전역 후 팀에 합류하면서 만 21세에 군필이 되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보통 군 입대를 최대한 미루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어린 나이에 군필이 된 것이다. 박병호, 박석민 등과 더불어 흔치 않은 케이스.

3.3. 2015 시즌

파일:구자욱1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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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6 시즌

파일:2016koo.jpg
5월 8일 라팍 SK전 연장 11회말 끝내기 안타를 치고 포효하는 구자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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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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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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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9 시즌

파일:2019koo.jpg
5월 23일 라팍 한화전 9회말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구자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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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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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21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21)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21 KBO 리그 득점왕

파일:21맛자욱.jpg
9월 22일 사직 롯데전에서 데뷔 첫 20-20을 달성하는 구자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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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비FA 다년계약

파일:구자욱계약.jpg
2022년 2월 3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5년 120억의 비FA 다년 계약에 합의하며 FA 시장까지 가지 않고 삼성에 남게 되었다. 다른 비FA 다년계약 선수들의 계약금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액이지만, 같은 해 FA를 맞아 100억을 넘긴 나성범, 박건우, 김재환 등과 비교해보면 비싼 금액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30대를 넘긴 이 셋에 비해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으로 어리다 보니 6년을 넘는 장기계약 등 더 큰 규모의 계약이 가능했을 것이라 예상되었기에 뜻밖이라는 평가가 많다.

또 이 계약으로 구자욱의 삼성에 대한 애정이 적나라하게 확인되었다. FA를 고작 1년 앞둔 데다 2022시즌 스토브리그에서 여러 선수들이 거액을 챙긴 것을 눈앞에서 본 상황에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데[1] 그걸 포기하고 삼성과 일찌감치 다년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본인도 삼성에 남고 싶은 의지가 강했던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2] 이때문에 삼성 팬들의 구자욱에 대한 민심은 그야말로 절정에 다다랐다.[3] 심지어 이후 인터뷰를 통해 FA신청 없이 다년계약만으로 계속 팀에 남고 싶다는 발언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삼성에 뼈를 묻을 기세다.

3.10. 2022 시즌

파일:개객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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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2023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23)

파일:jwkoo23.jpg
8월 19일 라팍 KIA전 3회말 데뷔 첫 만루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구자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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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2024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24)

파일:24구자욱.jpg
8월 29일 고척 키움전 11회 초 0의 균형을 깨는 결승 솔로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구자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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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대표 경력

기록하는 성적에 비해 국가대표 경력이 가장 적은 외야수 중 한 명으로 박용택, 최형우 등과 함께 반드시 언급된다. 일단 국가대표 시즌마다 대체로 부진한 것은 물론, 유일한 국가대표 출전경기였던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도 극도로 부진했으며 대체 외야수가 많기에 국가대표 선발은 거의 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구자욱은 1군 데뷔 전 일찌감치 병역을 해결했기에 병역특례 목적으로 선발될 일이 없었다.[4]

2024시즌 종료 이후 프리미어 12에 차출될 예정이었으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도루하다가 무릎 부상을 당하며 출전이 무산되었다. 류중일 감독은 이에 대해 어떻게 슬라이딩을 그렇게 하냐며 합류하기는 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라고 인터뷰를 남겼다.

4.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 APBC
파일:apbc 구자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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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사구 상세
3 12 0 0 0 0 0 0 .000 .077 .000 .077 0 4 1

시즌 후 11월 4일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을 앞두고 U-24 대표팀에 합류한 기사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삼팬들은 구자욱도 결국 삼적화되었다고 안타까워하였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 선동열호의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등번호를 원래 달던 65번이 아니라 자신이 존경하는 이승엽의 36번을 달고 출전하기로 하였다. 소속팀에선 당연히 평생 달 수 없는 번호여서 대표팀에서라도 꼭 달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락을 받으려고 미리 이승엽에게 연락을 했는데 안 달면 가만 안 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1차전에서 처음에는 잘 때린 타구가 잡히는 등 아쉬운 모습이었으나 끝내 무안타로 침묵하였다. 2차전에서도 무안타로 침묵하며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결승전마저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해 대회 12타수 무안타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당연히 함덕주, 김윤동과 함께 이번 대회를 말아먹은 역적이 되어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팀의 중심타자가 이렇게 최악의 성적을 냈으니 U-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성적도 당연히 좋을리가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일본과 만난 2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구자욱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2 삼성 1군 기록 없음
2013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4
2015 116 465 143 33 5 11 97 57 17 45 79 .349
(3위)
.417 .534 .951 147.2 3.73
2016 108 495 147 19 13
(1위)
14 105 77 10 55 68 .343 .420 .547 .967 140.9 4.10
2017 144
(1위)
647 175 39
(3위)
10
(1위)
21 108
(5위)
107 10 63 138 .310 .383 .527 .910 120.7 4.01
2018 116 529 159 26 2 20 100 84 10 43 110 .333 .392 .533 .926 123.7 3.00
2019 122 526 127 27 6 15 66 71 11 38 88 .267 .327 .444 .771 104.1 2.46
2020 118 510 137 27 2 15 70 78 19 51 91 .307 .385 .478 .863 121.2 3.20
2021 139 610 166 30 10
(1위)
22 107
(1위)
88 27
(4위)
48 98 .306 .361 .519 .881 129.8 4.75
2022 99 442 120 23 3 5 69 38 11 27 84 .293 .340 .401 .741 103.0 1.04
2023 119 515 152 37
(1위)
1 11 65 71 12 53 81 .336
(2위)
.407
(2위)
.494
(4위)
.902
(3위)
154.3
(5위)
5.26
(5위)
2024 129 568 169 39
(2위)
1 33
(5위)
92 115
(4위)
13 55 73 .343
(4위)
.417
(4위)
.627
(3위)
1.044
(2위)
162.3
(2위)
5.69
(4위)
KBO 통산
(10시즌)
1210 5307 1495 300 56 167 879 786 140 478 910 .318 .385 .512 .897 133.8 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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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외야수 매물이 꽤 많았던 2022 시즌 스토브리그와 달리 2023 시즌 스토브리그에는 한유섬이 먼저 다년 계약을 해버린 탓에 거물급 외야수가 구자욱 하나밖에 없었다. 만약 다년계약을 하지 않고 그대로 FA시장에 나왔다면 엄청난 금액이 오갔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2] 심지어 FA가 아닌 원소속팀과 다년 계약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계약금(사이닝 보너스)도 받을 수 없다. 물론 그만큼 연봉 총액이 높은 데다 첫 해 연봉이 25억으로 몰빵되어 있기 때문에 계약금에 준하게 맞춰준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보통 고액 FA의 경우 계약 총액의 40% 정도가 연봉이 아닌 일시불로 지급받는 계약금이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한 셈이다.[3] 어느 정도냐면, 구자욱의 다년계약 소식을 들은 삼성 팬들이 바로 구자욱 유니폼 사러간다는 반응이 많으며 마침 삼성도 이걸 노린 건지 그동안 나왔던 유니폼들의 할인이 들어갔다.[4] 앞서 언급된 박용택최형우도 비슷한 경우다. 박용택은 아마추어 시절 턱 부상으로 인한 병역면제자였고, 최형우는 방출된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 군 문제를 해결했기에 구자욱과 마찬가지로 병역특례 목적으로도 선발될 이유가 없었다. 다만 22세 시즌부터 1군에서 맹활약한 구자욱과 달리 박용택과 최형우의 전성기는 다소 늦게 시작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