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
Z (1969) | ||||
장르 | 정치 스릴러 | |||
감독 | 코스타 가브라스 | |||
각본 | 호르헤 셈프룬(Jorge Semprún) 코스타 가브라스 | |||
원작 | Z(1967) 바실리스 바실리코스(Vassilis Vassilikos) 지음 | |||
제작 | 자끄 페렝 아메드 라셰디Ahmed Rachedi | |||
출연 | 장루이 트랭티냥, 이브 몽땅, 아이린 파파스 | |||
음악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 |||
개봉일 | 1969년 2월 26일 1989년 9월 30일 | |||
상영 시간 | 12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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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스타 가브라스가 감독을 맡고 장루이 트랭티냥, 이브 몽땅 등이 출연한 프랑스, 알제리 합작 영화로 1969년 개봉했다. 개봉한 해 프랑스 내에서 400여 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그 해 흥행순위 4위를 기록했다.(출처) 칸 영화제, BAFTA, 아카데미상 등을 다수 수상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코스타 가브라스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1963년 그리스에서 일어난 백색테러 사건인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Γρηγόρης Λαμπράκης, Grigoris Lambrakis)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바실리스 바실리코스의 동명 소설 Z(1967)가 원작이다. 영화 제목 "Z"는 람브라키스 암살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사용하던 구호에서 따온 것으로, 그리스어로 "그는 살아있다"는 의미인 ζῇ(zêi)의 약자이다.영화에서 그려지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실화에 근거한 것이다. 영화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의도적으로 이름 대신 직함으로만 불린다. 마찬가지로 작중 배경인 그리스의 국명 역시 언급되지 않고, 단지 지중해 연안의 유럽 국가로만 나온다. 하지만 관객들이 혹시 픽션으로 착각할까봐 영화 도입부에서 실제 사건 및 인물과의 유사성은 의도된 것이라고 자막으로 알려준다.
코스타 가브라스는 그리스 인이지만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그리스에서 연좌제에 휘말려 10대 시절에 프랑스로 이주해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프랑스 제작진이 프랑스 배우들을 기용해서 알제리에서 촬영한 영화지만 그리스의 정치 현실을 고발하는 독특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타국의 실화를 다룬 정치 스릴러로서 이례적일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68운동의 정신과 결부되어 프랑스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2. 줄거리
영화는 정부 고위층이 모인 강의실에서 농업부 차관이 포도나무에 퍼지는 흰가루병의 방역에 대해 강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차관의 강의가 끝나고 단상에 오른 헌병대 장군은 신과 왕권[1]을 부정하며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이념적 질병"에 대해 언급하며 이들을 흰가루병처럼 해로운 전염병으로 간주하고 몰아내야 한다는 일장 연설을 한다. 좌중이 장군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며 강의가 끝난다.
장면이 바뀌면서 영화는 반핵, 반전집회를 준비하는 어느 당의 당직자들을 비춘다. 집회 날짜가 코앞인데 원래 집회가 예정되었던 극장의 주인이 갑자기 대관을 취소하는 바람에, 당직자들은 새 집회 장소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는다. 이들은 집회를 방해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배후에 있음을 짐작한다. 그 와중에 이들은 한 제보자로부터 집회의 연사인 당의 국회의원(le député, 이브 몽땅)를 살해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들은 치안 책임자인 검사장(le procureur général)을 찾아가 이 사실을 제보하고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제보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이 자리에서 당직자들은 우연히 검사장의 친구인 수사판사(le juge d'instruction, 장루이 트랭티냥)를 처음 만난다. 당직자들은 외국에서 돌아온 국회의원과 공항에서 만나 집회 장소 문제를 의논하고, 의원은 보안 책임자인 헌병 대령을 찾아가 집회를 방해하는 부당한 처사에 항의한다. 그러나 대령은 안전상의 문제가 있다는 구실을 대면서 원래 예정보다 훨씬 작은 장소를 허가해준다.
집회 당일, 갑자기 바뀐 집회 장소를 알리기 위해 지지자들이 길에서 전단지를 뿌리는 동안, 우익 깡패들이 나타나 이들을 폭행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저녁이 되고 집회가 열리자 좁은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과, 이들을 둘러싼 우익 단체들이 거리에서 대치하고, 산발적인 폭력이 이어지면서 진압경찰이 출동한다. 이 현장에 헌병대 장군과 대령도 나타나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국회의원은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반대자들을 무릅쓰고 집회장에 도착해, 자국 영토에 미국이 핵무기를 배치한 것을 비판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연설을 한다. 그 사이 집회 장소 밖에 괴한들이 나타나 당의 또다른 국회의원인 조르주 피루(Georges Pirou)를 심하게 폭행하고, 실려가던 구급차까지 따라와 끌어낸다. 그러나 이들은 원래 다른 표적이 있는 듯, "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의식을 잃은 그를 길에 버려두고 떠난다. 연설을 끝낸 국회의원이 거리로 나와 인파 사이를 걷던 도중, 갑자기 어디선가 삼륜차 한 대가 나타난다. 삼륜차가 의원 옆을 지나는 순간 차량 짐칸에 탄 괴한이 그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다. 이 때 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자끄 페렝)가 이 순간을 목격한다. 의원을 습격한 차는 그대로 도주하지만, 의원을 수행하던 이들 중 한 명이 차를 쫓아가 짐칸에 올라타고 격투를 벌인다. 이 때문에 차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결국 차를 운전하던 "야고"가 경찰에 체포된다. 한편 공격당해 쓰러진 의원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지만, 뇌 손상으로 중태에 빠진다.
검사장은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보다가 뒤늦게 사건을 전해듣고,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이던 헌병 장군과 대령을 만난다. 장군은 의원을 공격한 용의자들 중 한 명을 체포했다면서 붙잡힌 야고를 검사장에게 보여준다. 장군은 범인이 음주 운전을 한 것 같다고 말하지만, 검사장은 장군의 말을 의심한다. 특히 야고가 취한 상태도 아니고, 용의자이면서 유치장도 아닌 식당에서 태평하게 스튜를 만들어 먹고 있는 모습과, 잡힌 후 몇 시간동안 자신에게 보고가 없었던 점을 수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검사장은 사태가 악화되어 정치적인 소요로 번지기 전에 빨리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는 장관의 지시를 받고, 의심스러운 점들을 캐지 않고 덮고 넘어가기로 한다.
날이 바뀌고, 언론은 사고가 있었던 집회를 좌익과 우익 지지자들 사이의 폭력 소요로 보도하면서, 의원이 다친 것도 폭력을 야기한 집회 주최측의 책임으로 돌리는 보도를 낸다. 당직자들은 분노하면서도 살인 사건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한 편 외국에 있던 의원의 부인(아이린 파파스)이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해서 병원에서 남편의 용태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 자리에 동석한 장군과 대령, 검사장은 모두 의원이 겪은 일을 "사고"라고 표현하면서 의원의 부인에게 유감을 표하지만, 사전에 살해 기도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다.
병원에서 돌아온 장군과 대령은 회의를 소집해서 현병대 간부들을 불러 모으고, 의원의 평판을 깎아내릴만한 여자 관계의 조사, 의원 부인에 대한 동정 여론 차단, 의원 부인 및 집회를 연 당직자들에 대한 밀착 감시, 프락치를 통한 대학생들의 동향 조사 등을 지시한다. 그 때 마침 회의 자리에 검사장이 찾아와 이 사건에 배정된 수사판사를 소개하고, 장군과 대령은 자리를 옮겨 검사장과 수사판사에게 그 때까지의 조사 내용을 설명한다. 이들은 헌병대에서 조작한 증언들을 제시하면서, 친구 사이인 "야고"와 "바고"가 술에 취해 삼륜차를 몰던 중 의원을 치었고, 사고 현장에서 달아나다가 쫓아온 당직자와 격투를 벌이던 중 잡힌 것이라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한다. 장군은 두 용의자를 음주 운전과 교통사고 치상, 뺑소니, 폭행 등으로 처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한다. 검사장은 이 제안에 동의하지만, 수사판사는 증언들을 직접 검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 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의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장군은 교통사고 치상(致傷)이 치사(致死)로 죄목이 바뀐 것 뿐이라며 애써 상황을 무마하려 하지만, 이 때부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의원의 죽음이 알려지자 시위대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Z"라는 글자를 그리며 정부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다 강제로 해산된다. 한편, 집회 현장에서 의원이 공격당하는 것을 목격했던 기자는 의원의 죽음이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취재를 해나간다. 사건 조사를 시작한 수사판사는 사망한 의원의 검시 소견을 통해, 의원의 죽음이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라 머리에 가해진 둔기 타격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사판사는 장군을 불러 사건 당시에 대해 심문하면서, 장군의 답변 태도를 보고 음모에 대한 의심을 굳히게 된다.
이 때 갑자기 의원의 죽음이 살인이라는 증언을 하겠다는 제보자가 나타난다. 제보자는 트럭을 모는 야고와 평소 거래를 하던 사이였는데, 야고로부터 직접 그가 의원의 살해에 가담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보자는 증언을 하러 가던 길에 누군가의 습격을 받고 기절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다. 눈을 뜬 그에게 장군과 대령이 증언을 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사라지지만, 제보자는 뒤이어 찾아온 수사판사에게 야고에게 들은 이야기와, 장군이 찾아와 입막음 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기자가 입원한 제보자를 찾아와 인터뷰를 하는 사이, 용의자 중 한 명인 "바고"가 가짜 깁스를 하고 환자 행세를 하며 몽둥이를 들고 제보자의 병실에 나타났다가 기자에게 들킨다.
바고는 수사판사 앞에서 취조를 받으면서 병원에 있던 이유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지만, 수사판사는 바고를 공산주의자로 몰면서 도발해서, 바고와 야고 모두 한 극우 단체의 회원이라는 자백을 받아낸다. 이 사실을 알아낸 기자는 극우 단체에 접근해서 단체의 회원들을 찾아다니며 몰래 사진을 찍는다. 기자는 이들의 사진을 집회 때 괴한들에게 폭행당해 그 때까지 입원 중이던 조르주 피루 의원에게 보여주고, 극우 단체 회원들이 그를 습격한 괴한들이었음을 확인한다. 기자는 이 사실을 곧 수사판사에게 전하고 피루 의원의 증언과 사진들을 신문에 싣는다. 그런데 기사가 실린 신문이 미처 풀리기도 전에 한 극우 단체 회원이 자신을 무고했다며 피루 의원의 입원실로 찾아와 난동을 피우고, 이를 미리 예측했던 수사판사는 이 회원을 잡아 기사에 대한 정보를 얻은 출처와 배후를 심문한다. 결국 수사판사는 이들을 사주한 것이 헌병 대령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수사판사는 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때까지의 수사에 근거해 이 사건이 헌병대 고위층에 의한 사전 모의된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밝힌다. 그러나 검사장은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간과하고 야당에게 빌미를 준다는 이유로 사건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음주운전으로 축소하라고 수사판사를 협박한다. 그러나 수사판사는 오히려 조사 범위를 늘려서 극우 단체의 리더와 회원들을 일일이 심문하고, 당직자들을 통해서 처음 의원의 살인 계획을 듣고 당에 제보했던 사람의 증언까지 받아낸다. 이 증언은 야고를 사주한게 헌병대 대령이라는 것을 재확인해주지만, 증인이 과거 공산주의자였다는 전력이 문제가 되어 증언의 가치를 잃게 된다.
중요 증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살해 위협이 이어지는 와중에, 당직자 중 한 명이 새로운 단서를 내놓는다. 사건 당시, 쓰러진 의원을 어디선가 나타난 차에 급히 태우고 병원으로 가던 중,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일부러 시간을 끌거나 사고를 내서 의원을 죽이려는 듯한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병원에 도착한 직후 그 사람이 차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수사판사는 이 사람을 찾아내서 심문하고, 그가 헌병 장군의 개인 운전병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시점에서 수사판사는 그동안 고집스럽게 "사고"로 지칭하던 사건을 처음으로 "살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결국 헌병 장군과 대령의 기소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자, 검찰총장이 나서서 직접 수사판사를 만나 법무부 장관의 뜻임을 암시하면서 압력을 가한다. 검찰총장은 "장발의 불량배들, 무신론자들, 약쟁이들, 동성애자들"과 "의회민주주의"로 타락해가는 국가를 지켜줄 헌병대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없다며, 수사판사에게 사건을 셋으로 쪼개어 기소할 것을 지시한다. 첫째는 두 용의자의 상해 치사, 둘째는 헌병대의 부실 수사, 셋째는 집회를 연 당의 과실. 이 중 두 번째 건은 내부 징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면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사판사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장군과 대령을 포함해 헌병 고위 장교들을 살인죄로 기소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직자 한 명이 죽은 의원의 부인을 찾아가 선거의 승리를 예상하며 기뻐한다.
이후 장면이 갑자기 바뀌어 영화는 뉴스 스튜디오에 앉은 기자를 비추고, 기자는 그 뒤 일어난 일들을 뉴스를 보도하듯 설명한다. 재판을 맡은 판사(Le substitut)는 심장마비로 사망, 그리고 7명의 증인들은 교통사고, 익사, 가스 폭발 등 다양한 이유로 사고사, 그리고 바고와 야고는 각각 8년과 11년 형을 언도 받지만 그 절반만 복역하는 판결을 받는다. 기소된 4명의 현병대 장교에 대해서는 소가 취하되고, 견책 처분만 받는다. 그리고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내각은 사퇴하고 야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연합한다. 그러나 선거를 몇 주 앞두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고, 수사를 맡았던 수사판사는 해임된다. 살해된 국회의원이 몸담았던 당의 피루 의원과 당직자들은 차례로 사고로 위장해 살해되거나 외딴 섬으로 추방된다. 이 부분에서 죽은 희생자를 비추던 화면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 사진으로 바뀌고, 낯선 여성의 목소리로 기자까지도 정부 문서를 유출한 죄로 투옥되었음을 알린다. 이후 시가지에 전차가 세워진 사진을 배경으로 군사 정권 하에서 금지된 것들(서구 음악, 장발, 미니스커트, 사르트르, 출판의 자유, 도스토예프스키 등등)을 하나하나 나열한 후, 마지막으로 영화 제목 Z의 의미—그는 살아있다—를 알려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3. 역사적 배경
- 2차대전 중 독일군 점령 하에서 저항했던 그리스의 좌파 세력과 우파 세력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대립하면서 1944년부터 1949년까지 그리스 내전이 이어졌다. 이 내전은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그리스에서 공산주의 활동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까지도 공산당과 연루된 전력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었고, 공산주의와 무관한 사회주의 정치 활동도 공산주의로 싸잡아 매도되었다. 이러한 그리스 내의 정치 상황은 미국의 반공 전략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그리스는 서방세계에서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최중요 유럽국가 중의 하나였다. 그리스에는 나토 협약에 따라 1950년대부터 미군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리스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완전히 철수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때문에 그리스에 친 나토, 친미 정권을 유지시키는 것은 미국의 유럽 전략에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했다. 당연히 그리스 내에서 친미와 반공은 가장 첨예한 정치 이슈였고, 반미 정서를 드러내는 정치인들은 미국의 견제를 받았다.
- 영화 말미에 언급되는 군사 쿠데타는 1967년에 발발해서, 그 결과 세워진 그리스 군사정권이 1974년까지 존속했다. 1963년 일어났던 람브라키스 암살사건 이후로 꾸준히 좌파 연합이 세를 불려가면서, 정권이 좌파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군 내 극우파의 위기감이 커진 것이 쿠데타의 원인 중 하나였다. 이 정권은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표방했으며, 그리스 문명이 모든 인류 문명의 근간이고 그리스 민족이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제노포비아 및 인종차별 성향을 강하게 띄었다. 때문에 정권 초기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서구 음악을 금지하고 반공 기조의 연장 선에서 러시아 문학을 금지하는 등 광적인 문화 통제를 실시했다. 즉, 영화 말미에 자막으로 설명하는 군사 정권에서 금지된 것들의 목록은 풍자적인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하지만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이런 조치들은 차차 완화되어 금지 사항들의 상당수는 곧 다시 허용되었다.
- 영화에서 이브 몽땅이 연기한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는 작중에서 묘사된 대로 실제로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젊은 시절에는 1936 베를린 올림픽의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종목에 출전했던 운동선수였다. 게다가 2차대전 중에는 독일 점령군과 싸운 저항 투사였고, 전후 의사가 된 뒤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 봉사를 했다. 그야말로 정치적 스타의 자질을 모두 갖춘 인물인 셈. 다만, 영화에서는 그가 실은 몰래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에 대해 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는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좌파 정치인으로 활동했지만 공산주의와는 관련이 없고, 적극적으로 반핵, 반전운동을 펼치면서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평화 사상에 근거해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그리스의 미군 기지 철폐, 핵무기 철수 등을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미국의 CIA가 그의 암살에 관여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의혹은 영화에서도 지나가듯 농담처럼 가볍게 언급된다. 작중에서 병원을 찾은 의원의 부인을 위로하며 의사가 "평화 마라톤"을 언급하는데, 이것도 실제 람브라키스가 1963년 4월에 벌였던 반전 캠페인이다. 캠페인 자체는 정부에 의해 금지됐지만, 국회의원이었던 람브라키스는 면책특권을 이용해서 혼자 평화 깃발을 들고 캠페인을 완주했다. 그리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 람브라키스는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존경받고 있다.
- 영화에서 외압에 굴하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파해치는 수사판사는 실제 사건의 수사판사였던 흐리스토스 사르체타키스를 모델로 했다. 그리스는 대륙법 체계를 따라서 판사가 판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권한까지 갖고 있다. 영화에 언급된 것처럼 사르체타키스의 아버지는 헌병대 장교였고 사르체타키스 본인도 그리스 왕정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이었지만, 외압에 굴하지 않고 법관의 양심을 관철했다. 하지만 군인들을 건드린 괘씸죄로 결국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1년간 투옥된다. 군사정권 붕괴 이후 복권되었고 훗날 그리스 대통령(1985-1990)을 역임한다.
- 영화에 나오는 그리스 헌병대(Ελληνική Χωροφυλακή, Elliniki Chorofylaki)는 이후 1984년 경찰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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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86 / 100 | 점수 7.7 / 10 | 상세 내용 |
||<-2><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93208><bgcolor=#f93208> ||
신선도 94% | 관객 점수 93%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14181c><tablebordercolor=#14181c><tablebgcolor=#fff,#191919><:>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c0><bgcolor=#fc0> ||
전문가 별점 - / 5.0 | 관람객 별점 4.1 / 5.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f0558><bgcolor=#ff0558> ||
별점 3.7 / 5.0 |
코스타 가브라스의 출세작이면서, 그만의 정치 스릴러 양식이 확립된 영화로 이후 많은 정치물에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영화를 현실을 비추는 도구로 사용하는, 질로 폰테코르보의 맥을 잊는 시사성, 또 하나는 무겁고 복잡한 정치극에 영화적 재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대중성, 그리고 실제 일어나는 일을 찍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이다.
시사성이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68운동의 정신을 잘 반영한 영화로 자주 인용된다. 그리스의 극우 세력에 의해 자행된 암살 사건이 프랑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센세이션을 일으킨 데에는 국제적 연대에 대한 자각, 극우 사상에 대한 혐오, 반미 정서 등 68운동으로 고조된 좌익 이념의 정서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이후 프랑스에서 다수의 정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다. 재미있게도, 2차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활동을 그린 장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이 이 영화와 같은 해에 개봉했다가, 우익 이념의 신화화라는 좌익 평론가들의 무수한 비난을 받았는데, 동시대의 두 영화가 연출 양식부터 정치적인 지향까지 정반대를 가리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큰 상업적 성공이 보여주듯, 본작은 대중성 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갖는다. 정치적 암살과 현실 고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의외로 오락성에도 매우 충실하다. 거대한 음모를 파해치는 스릴러물의 재미와 적재적소에 배치된 블랙 유머가 큰 흡입력을 발휘한다.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모르고 보아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복잡한 음모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서 전달하는 뛰어난 각본의 묘를 보여준다. 특히 마치 정의가 구현될 듯 경쾌하게 진행되는 결말부에서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고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갑작스러운 마무리는 영화의 블랙 유머와 역사적 사실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 하다.
또한 마치 실제 상황을 찍은 듯한 이 영화 특유의 사실적 분위기는 이후 나온 영화들의 연출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1년에 개봉한 프렌치 커넥션의 감독인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 영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작인 아르고를 감독한 벤 애플렉도 "Z"의 영향을 언급했다. 그 외에도 코스타 가브라스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도 당연히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쯤되면 실화를 다룬 영화들의 교과서인 셈이다. 실화물 뿐 아니라, 존 밀리어스,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감독들도 이 영화의 영향을 언급할 정도.
5. 한국 개봉
이 영화는 한국에서 20년 동안 상영 금지되어 있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개봉되었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금단의 영화 제트(Z) 한국상륙...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상영은 상상도 못할... (조선일보 기사)", "<Z>가 한국에서 상영된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화제 (한겨레 기사)" 등 지금 보면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만큼 이 영화의 개봉을 "사건"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같은 감독의 영화 《계엄령》은 이 때도 수입이 금지되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야 심의를 통과해서 개봉할 수 있었다.더불어 1988~1989년에는 그 전까지 개봉금지되던 다른 영화들도 비로소 개봉이 되었는데, 지옥의 묵시록, 택시 드라이버, 양철북, 욜, 그리고 찰리 채플린 영화들에서부터, 당시 중공이라고 불리던 중국의 영화와 소련 영화들, 그리고 한국영화인 조긍하 감독의 '잘 돼 갑니다'(1968) 등이 개봉할 수 있었다.
6. 수상
- 제22회 칸 영화제 - 심사위원상(코스타 가브라스), 남우주연상(장루이 트랭티냥)
- 제42회 아카데미 시상식 - 외국어 영화상, 편집상
- 제2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 외국어 영화상
- 제2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 음악상
7. 이야깃거리
- 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가 영화 제목으로 "Z"를 제안했을 때, 이브 몽땅은 사람들이 조로랑 헷갈릴까봐 처음에는 이 제목에 반대했다고 한다.
-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맡은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실제 암살사건의 희생자인 람브라키스의 친우이기도 했는데, 영화 제작 당시 그리스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비밀리에 감독에게 자신의 음악을 사용해도 좋다는 서신을 전달해서 영화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 그리스에서는 당연히 상영이 금지되었었다.
- 출연한 배우들은 이 영화의 취지에 동감하여 흥행 수입이 생길 경우에만 배당금을 받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