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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23 10:20:57

삼십육계

36계에서 넘어옴

삼십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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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저자3. 목록
3.1. 승전계(勝戰計)3.2. 적전계(敵戰計)3.3. 공전계(攻戰計)3.4. 혼전계(混戰計)3.5. 병전계(幷戰計)3.6. 패전계(敗戰計)

1. 개요

삼십육계()는 병법에 관한 36가지 계책을 가리킨다. 계책의 예시가 되는 36가지 일화의 한자성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6가지의 상황 분류에 각각 6가지의 계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36계이다.

2. 저자

저자는 흔히 유송의 명장인 단도제(檀道濟)로 알려져 있었다. 정사인 남제서(南齊書)에 "단도제의 삼십육계 중에 달아나는 것이 최고다. (삼십육계 주위상)" 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삼십육계'라고 전해지는 책의 내용에 남북조 시대 이후의 고사들이 많이 등장하므로, 남조의 단도제가 지었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어쨌든 이 '삼십육계 주위상'이라는 표현은 이후 널리 쓰이는데, '만 가지 계책'이라는 표현처럼 여기서 '삼십육'은 '많은 계책'을 뜻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만,[1] 이 표현은 마치 '삼십육계'라는 책이 당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역대 장서 목록, 각종 총류 등을 뒤져보아도 《삼십육계》라는 책은 전혀 확인되지 않으며, 1961년에 이르기까지 《삼십육계》는 그동안 그 내용조차 알려진 적이 없는 책이었다.

베이징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숙화(叔和)라는 사람이 1961년 9월 16일 《광명일보》의 〈동풍부간〉에 이 책을 소개하면서부터 비로소 《삼십육계》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현재 시중에 출판된 수많은 《삼십육계》는 모두 여기서 유래했다. 숙화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1943년에 청두의 한 노점에서 우연히 이 책 《삼십육계》를 구입했는데, 이 책의 옆면에는 작은 글씨로 "비본병법"이라 쓰여 있었고 저자의 성명이 없었으며 뒤의 세 페이지는 찢겨 나가고 없었다고 한다.[2] 그리고 숙화가 발견한 이 책을 1980년대에 무곡(無谷)[3]이 주석서를 내어 대중적으로 유행시키면서 마침내 《삼십육계》는 중국 고전 병법서의 총화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4]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홍문지(洪門志)》라는 책이 발견된다. 1947년 7월에 발행된 주림(朱琳)의《홍문지(洪門志)》는 홍문[5]의 역사와 조직의 규칙을 적어놓은 책인데, 이 책의 '삼십육착(三十六着)'이라는 항목에서 《삼십육계》의 계책 이름 전부가 거의 똑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 즉, 《삼십육계》는 현대에 만들어진 작품인 것. 이를 지적한 학자는 '홍문지'가 소위 '깡패 정신'을 보여주는 저술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삼십육계》라는 책은 병법서가 아니라 깡패 조직의 전략·전술서인 것이라고 평하였다.[6]

또한 《삼십육계》는 장련갑(張聯甲)이 1925년에 지은 《비본병법(秘本兵法)》[7]의 요약본이라고 그의 아들 장경헌(張敬軒)이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그가 같이 주장한 《손무병법(孫武兵法)》 82편이 가짜인 것으로 드러나 주장의 신빙성을 잃었다. # 일부 학자들은 앞선 논란과는 별개로 삼십육계의 원본은 비본병법이 맞다고 주장[8]하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삼십육계》는 가짜 원문을 근거로 제시할 정도로 학문 윤리가 부재한 학자가 현대에 만들어낸 병법서의 요약본인 셈이다.[9]

3. 목록

3.1. 승전계(勝戰計)

전쟁에서 이길 때 (적을 압도하는)계략

3.2. 적전계(敵戰計)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의 세력이)비슷할 때 (묘한 계략으로 적군을 무너뜨리는)계략

3.3. 공전계(攻戰計)

전쟁에서 (자신을 알고 적을 안 다음 적을)공격할 때 (사용하는)계략

3.4. 혼전계(混戰計)

전쟁에서 (적이)혼란할 때 (사용하는)계략

3.5. 병전계(幷戰計)

전쟁에서 (적을)밀어낼 때 (사용하는)계략

3.6. 패전계(敗戰計)

전쟁에서 지고 있거나 절대 열세가 예상될 때 (사용하는)계략
[1] 즉, "단도제의 많은 계책 중에서 달아나는 것이 최고다"는 뜻이라는 것. 여기서 6은 상·하·좌·우·전·후의 6방향의 계책을 가리키고, 이를 응용한다는 의미에서 서로를 곱하면 6x6=36 가지가 된다.[2] 숙화는 1943년에 삼십육계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주장일 따름이고 근거는 없다. 확실한 것은 1961년에야 그 존재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또한 서지 정보가 정확하게 나오는 마지막 세 페이지가 공교롭게 찢겨 나갔다는 것도, 숙화가 고의로 근현대 작가의 저작을 고대 작가의 저작으로 발표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이다.[3] 본명은 요위(姚煒).[4] 此书真正流行开始于1979年,无谷(姚炜)译注的《三十六计》自1979年公开出版,此后被国人奉为经典。[5] 중국의 비밀결사 조직. 일부가 나중에 삼합회가 된다.[6] 这些内容有一个共通点,就是流氓的精神,《三十六计》无妨称之为流氓的经典,流氓的哲学,当作一种流氓精神看待,可谓得其神髓。[7] '삼십육계의 원본이 비본병법이냐 아니냐'는 논란과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현대에 저술된 비본병법 자체는 훌륭한 저작이라고 평가하긴 한다.[8] 장경헌의 주장에 따르면, 장련갑이 1920년대에 지은 《비본병법》 요약본이 1940년대 전후에 1000부 정도 인쇄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1943년에 숙화가 입수했다는 주장이다.[9] 물론 현대에 만들어진 저술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의 고사들을 참조해서 만든 내용이므로 해당 전략 자체가 아예 근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판하는 학자들은 단지 해당 고사가 그동안 있어왔던 수많은 전략들을 대표하기에 적절한 고사와 사례인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이 책이 평범한 작가에 의해 편향되게 저술되었고 과대 광고를 통해 그 명성이 과도하게 부풀려 졌다는 것이 논란의 쟁점이라고 말한다.[10] 영락대전의 설인귀정료사략(薛仁貴征遼事略)에서 나왔다. 이것만 봐도 단도제가 알려진 36계를 다 지은 건 아니라는 게 증명된다. 위의 설인귀는 우리가 아는 그 설인귀 맞다. 당태종고구려를 치러 갈 때 배를 타고 가기를 두려워하자 설인귀가 계책을 내어 당태종이 배를 탄 것 같지 않게 연출한 데에서 나온다. 더 나아가 해당 이야기는 당나라 당대의 사료에서는 나오지 않으며, 이 이야기를 수록한 영락대전은 무려 명나라 시절의 책이다.[11] 사기의 손자오기열전에서 나왔다.[12] 명나라 왕정눌의 희곡 삼축기(三祝記)의 조함(造陷)의 고사에서 나왔다.[13] 손자병법의 군쟁과 허실 편에 나온다.[14] 서유기 16회에 나온다.[15] 한비자 <설림 상>편에 나온다.[16] 노자 40장에서 나왔다.[17] 사기 고조본기에서 나왔다.[18] 당나라 승려 건강(乾康)이 쓴 투갈제기(投渴濟己)라는 시에 나온다.[19] 구당서의 이의부전에서 나왔다.[20] 악부시집의 계명(鷄鳴)편에서 나왔다.[21] 원나라 관한경의 희곡 울지공단편탈삭(尉遲公單鞭奪槊)에서 나왔다. 또봇 17기에서도 디룩이 남긴 편지 중 두 번째 편지의 핵심 내용으로 언급된다. 이동하는 적에겐 허점이 생기는 법 그것을 노리면 백전백승 이거늘...[22] 단성식의 유양잡조에서 나왔다.[23] 원나라 악백천의 잡극 <여동빈도철괴리>가 출전.[24] 관자 형세해에 취지가 처음 나왔으며, 서유기 53회에도 나온다. 또봇 17기에서도 디룩이 남긴 편지 중 첫 번째 편지의 핵심 내용으로 언급된다.적을 유인해 유리한 곳에서 싸워 이겨야 하거늘...[25] 노자 36장에서 나왔다.[26] 석도원(釋道原)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 유래라고 한다.[27] 두보(杜甫)의 시 전출색(前出塞)에서 나왔다.[28] 회남자, 동탁의 상하진서(上何進書), 위수의 위후경반이양조문의 말을 축약한 것이다.[29] 조조의 계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30] 원(元) 마치원(馬致遠)의 잡극(雜劇) 마단양삼도임풍자(馬丹陽三度任風子). 회남자 정신훈에는 '선태사해(蟬蛻蛇解)'라는 말이 나올 뿐이다.[31] 민간에서 쓰이던 말인 관문타구(關門打狗) 유래.《초로정략(草蘆征略)》에 관련 이야기가 있다.[32] 사기 범수채택열전 및 전국책에서 나왔다.[33] 춘추좌전 희공 2년조에 나온다.[34] 탁량환주(托梁換柱) 전설이 유래라고 한다.[35] 홍루몽 16회에서 나온다.[36] 설당연의(說唐演義) 62회의 ‘울지공칭풍마(尉遲恭稱瘋魔)’에서 나왔다.[37] 삼국지 촉지 제갈량전에서 나왔다.[38] 벽암록에서 나왔다.[39] 삼국지연의에서는 대표적으로 황충이 하후연을 상대로 시전한 바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격측(손님)이라 할 수 있는 황충이 슬금슬금 수비 측(하후연)의 공격을 유도하는 식으로 나타났다.[40] 육도 문벌편에 유사한 취지의 글이 나온다.[41] 제갈량의 전략이 유래라고 한다.[42] 손자병법의 용간편에 나온다.[43] 삼국지연의 46회에 나온다.[44] 원대의 잡극 금운당암정연환계에서 처음 나왔다.[45] 남제서의 왕경칙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