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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7 00:28:55

오하구로

흑치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www.kjclub.com/f0006957_4c6cdeceb2864.jpg
언어별 명칭
한국어 오하구로 (독음)
한국 한자음 치흑(齒黑)
일본어 お歯黒 (한자 및 히라가나)

1. 개요2. 하는 방법3. 한국의 기록4. 미디어에서5. 여담6. 전근대 일본의 외모 풍습 목록7.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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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과거 일본의 화장법. 고대 일본에서는 귀족 출신 남성, 여성들이 했고, 중세부터 메이지 유신 전후까지 유행했던 일본 여성들의 풍습으로, 헤이안 시대 당나라에서 건너온 풍습으로 공주가 결혼식을 올릴 때의 화장법이었다고 한다.

특히 중세 이후 신분이 높은 화족이나 그에 버금가는 귀족 계급을 가진 여성들이 많이 하던 풍습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당시의 미적 감각에 의하면 새까맣게 물들인 치아가 아름다워서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여성의 화장법은 얼굴에 새하얗게 분칠을 하고, 검고 굵게 그린 가짜 눈썹과 붉은 입술로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래도 새햐얀 얼굴에 비해 치과위생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이가 상대적으로 누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예 검게 칠해버린 것. 치열이 고르지 않은 사람의 경우 치열이 잘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검은 이는 영구적으로 색이 유지되는 건 아니고 물에 잘 녹지 않는 성분을 이에 칠한 것에 불과했다. 식사나 일상 생활을 하다보면 수시로 칠이 벗겨지기 때문에 다시금 칠을 해줘야 했다.

특이한 경우지만 근대의 남자가 행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신종교 오모토의 성사(聖師)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郞 1871-1948)는 남자인데도 오하구로를 했다고 한다. 동시기 여자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오하구로를 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니사부로의 모습을 보고 "도대체 뭐하시는 분인가요?"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일본인들 기준에도 남자가 이를 검게 물들인 모습은 꽤나 희한했던 듯하다.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모토 교단은 오니사부로가 육신으로는 남자이나 영적으로는 여자였다고 설명한다.

메이지 천황의 정실 쇼켄 황후는 일본 궁중에서 최초로 드레스 등 서양식 의복을 입은 여인인데, 서양식 옷을 입으면서 동시에 오하구로를 그만두었다. 황후가 먼저 본을 보였으니 그 아래 공주, 후궁, 황족&귀족 여인들, 시녀들도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2. 하는 방법

오하구로에 쓰이는 염료'카네(鉄漿)'라고 한다. 이 카네의 주성분은 아세트산에 녹인 '카네미즈(鉄漿水)'[1]라고 하는 용액이며, 일상적으로는 식초, 청주, 물엿, 녹차를 섞은 거에다 못을 넣고 카네미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탄닌산을 다량 함유한 분말을 섞은 게 '카네'이다. 이렇게 하면 카네미즈의 성분이 탄닌산과 결합되어 색이 검어지고 물에 녹지 않는 성분으로 변한다. 카네는 다른 이름으로 후시코로도 불리는데, 오하구로 이외에도 착색용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금속 이온 자체에 살균 효과가 있으며 간단히 생각해봐도 물에 녹지 않는 성분으로 이 전체를 코팅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치 예방의 효과가 의외로 뛰어났다고 한다.

좀 더 간단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카네 분말과 황산철, 껍질 가루를 혼합하여 만든 염료를 칠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부작용 없이 안전했기 때문에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 방법은 주로 승려를 통해 전수되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현대의 극소수의 여류 전통예술가들도 화장을 할 때 오하구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에는 검은 색소가 들어간 치과용 왁스를 이에 칠하는 방식으로 오하구로를 하고 있다. 오리지널에 비해 내구성이나 충치 예방 효과 등은 훨씬 약하지만, 간단하게 칠하고 간단하게 벗길 수 있기도 하거니와 현대에는 워낙 좋은 치약이 많아서 굳이 오하구로로 충치를 예방할 필요 자체가 없으니 현대에 알맞게 변형된 것이다. 그나마도 여류 예술가 절대다수는 평생 할 일이 없고, 현재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오하구로를 하는 사람은 아래에 나와있다시피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다.

3. 한국의 기록

백제흑치상지 등 흑치(黑齒)씨가 있었다는 것에서 이 풍습을 연상하는 경우가 있지만, 노중국 등의 학자는 흑치를 지명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기록 중 해행총재9권-『동사일기(1711)』및『해사일기(1764년)』이 두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창녀와 미혼녀를 제외하고는 치아에다 까맣게 칠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규수 여인들이 이빨을 검게 칠했다는 것이다.『해행총재7권-해사일기(1764)』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이유는 그 남편을 위해서 마음을 맹세하는 것이다."

4. 미디어에서

5. 여담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처음 일본에 연주 여행을 갔을 때 갓 결혼한 아내와 같이 전통 다도를 체험하는데 시중을 드는 일본 여성들이 입을 벌리니 이가 전부 새까맣게 썩어 있었다며 기겁을 한 경험을 자서전에 썼다. 그 이후로 거기 대해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누가 제대로 말도 안 해 줘서 평생 그렇게 알고 살다 간 모양이다.(...)

6. 전근대 일본의 외모 풍습 목록

7. 같이보기


[1] 아세트산철(II)을 주 성분으로 하는 카네미즈는 다갈색을 띠며 악취가 난다.[2] 오이란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도 오이란들이 타유 행세를 하기도 했으나, 타유는 교토 시마바라의 최고급 게이샤(예술가)로서 황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 직업으로, 차림새는 비슷하지만 매춘부인 오이란과는 전혀 다른 직업이다. 타유는 황궁에 출입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나마 관직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드러내기 위해 옷의 목깃 왼쪽을 접어 안에 받쳐입은 붉은 관복이 삼각형으로 드러나게 하고 다녔다. 오이란은 이런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옛날 일본 여성의 사진을 보고 오이란인지 타유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목깃을 보면 된다. 현대에는 사극이나 심지어는 가부키에서도 오이란이 타유처럼 목깃을 접어 붉은색을 드러내는 차림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전근대 일본에서 진짜로 이런 짓을 했다가는 '매춘부 주제에 감히 관직을 사칭한 죄'로 당장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3] 여담으로 영상의 키쿠가와 타유(菊川太夫)는 2018년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일반인이 되었다. 지도해주던 전직 타유 타카사고 타유(高砂太夫 1941-2019)에게 괴롭힘을 당한 데다 가짜 타유라는 헛소문까지 돌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소문이 있다. 교토대를 졸업한 수재이기에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타유 일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기도 했고.[4] 이것도 비주얼상 문제 때문인지 안 지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5] 첫사랑의 지독한 증상 때문에 요괴 골목에서 목이 필요 이상으로 구불거리게 된 로쿠로쿠비에게 인간과 요괴가 사랑에 빠지는건 자긴 반대한다며 나쁜 말은 안할테니 그냥 잊어버리라고 충고하자 로쿠로쿠비는 당연히 반발하고 네코무스메도 "갑자기 잊으라고 해봤자..."라며 말끝을 흐리자 "잘 생각해봐. 인간의 수명은 아무리 길어봤자 100년을 못넘겨. 아무리 그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도 반드시 먼저 떠나보내게 돼. 홀로 남겨져 몇백년동안 슬퍼하며 지내다니...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는게 낫지."라는 설득력 넘치는 설득을 하지만 로쿠로쿠비도 지지않고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니 거짓말이야! 난 그 사람을 만나서 변했어. 세상이 더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구. 설령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이 감정을 잊고 싶진 않아!"라며 반박하고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