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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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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후지모토 히로시인 만화가에 대한 내용은 후지코 F. 후지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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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히로시
藤本博史 | Hiroshi Fujimoto
생년월일 1963년 11월 8일 ([age(1963-11-08)]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사카부 센보쿠군 타다오카정
학력 텐리 고교
포지션 3루수, 1루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4위 (난카이)
소속팀 난카이-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1982~1998)
오릭스 블루웨이브(1998)
지도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타격코치 (2011~2012, 2015~20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타격코치 (2013~2014, 2017~2018)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 감독 (2019~202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감독 (20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2022~2023)

1. 개요2. 선수 시절3. 은퇴 후4. 지도자 시절5. 기타6. 감독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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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야구 선수이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前 감독. 현재는 TVQ 규슈방송의 야구 해설위원이다.

2. 선수 시절

프로 입단 전에는 텐리 고교의 4번 타자이자 3루수로 활약했으며 2학년때 출전한 여름 고시엔 본선에선 준결승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야구부 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터지면서 1년간 대외 경기 출전이 금지되는 바람에 3학년을 통으로 날리게 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럼에도 고시엔 대회 등에서의 실적을 인정받아 1981년 드래프트에서 난카이에게 4순위로 지명을 받는다.[1]

긴 2군 생활 끝에 1985년에 처음으로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부터 1군 고정 멤버로 자리잡게 되었다. 본래는 역방향 타격에도 능했던 교타자로써의 재능도 갖춘 선수였지만 카도타 히로미츠 이후 이렇다 할 슬러거를 찾지 못하면서 빈약한 타선으로 인한 만성적인 득점력 부족에 시달리던 당시 호크스의 사정상 발군의 장타력을 주목받아 교타력보다는 한 방을 노리는 거포 타자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기대만큼 장타를 많이 때려내지 못한 반면 장타 일변도의 타격을 지향한 부작용으로 컨택이 하락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1992년에 한 차례 20홈런을 기록했지만 나머지 시즌에는 15홈런 미만에 그치는 등 2할 초중반대의 타율을 보여주는 그저그런 컨택을 가진 중거리 타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대신 득점권에서의 강한 타격과 준수한 선구안으로 나름대로 존재감을 알렸고 1990년에는 역대 42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3년엔 모리와키 히로시, 와카이 모토야스 등이 3루를 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기존 포지션이었던 3루수를 내주고 1루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94년에도 마츠나가 히로미가 FA로 호크스에 이적해오면서 3루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으나 2루수를 맡아 수비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코쿠보 히로키의 대두와 함께 재차 1루수로 전향하여 타율 .264, 11홈런 58타점을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1996년부터 본격적인 성적 하락이 시작되며 주전에서 밀려났고, 1997년부터는 사실상 전력에서 배제되었다. 결국 1998년 시즌 개막 직후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으나 오릭스에서도 출전 기회를 거의 받지 못하면서[2] 이해 시즌 종료 후 조용히 은퇴하였다.

프로 통산 성적은 1103경기 715안타 105홈런 419타점 타/출/장 .235/.337/.389로, 통산 105홈런에서 알 수 있듯 나름대로의 장타력을 갖추었고 볼삼비 1:1.5의(464볼넷-697삼진) 준수한 선구안 덕분에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출루율을 보여줬으나 타격 정확성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면서 장타율이 4할에도 못 미치는 등 결과적으론 OPS 7할 초반의 그저그런 중거리 타자로 남게 되었다.

3. 은퇴 후

은퇴 이후에는 여타 야구인들처럼 해설위원 활동과 평론가 활동을 하며 지냈다. 이외에도 후쿠오카 시내에 '후지모토정' 이라는 선술집을 영업하기도 했다.[3]

4. 지도자 시절

2011년부터 소프트뱅크의 코치 생활을 시작. 위 프로필에서 알 수 있듯 1군과 2군을 두루 거쳐가며 야수들을 지도했다. 코치로서의 최대 업적은 2011년에 입단한 야나기타 유키의 타격을 2군에서 지도한 것.

2019년부터는 타격 코치직에서 3군 감독으로 이동했고 2021년엔 2군 감독으로 2군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쿠도 키미야스 1군 감독이 2021시즌을 끝으로 사임하자 구단에서는 2~3군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후지모토를 후임 1군 감독으로 승격하기로 결정했다.[4]

4.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10월 29일. 사전에 알려진대로 후지모토의 1군 감독 승격이 정식으로 발표되었고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등번호는 쿠도 키미야스 전 감독에 대한 경외심과 7년간 이뤄낸 업적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고자 하는 의미로 81번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갑자기 후지모토가 감독으로 와서 약해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라는 포부와 함께 일본시리즈 우승 시 선수 시절부터 유지해 온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도 깎겠다는 이색 공약도 밝혔다.

2022년 개막식 날 신죠 츠요시와 함께 신고식을 열었다.#

시즌 초반엔 개막 8연승으로 신인 감독 개막연승 신기록을 찍으며 1위로 부상했으나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2위로 하락했고, 이후 1위 자리를 두고 라쿠텐, 세이부, 오릭스와 4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8월까진 1위 팀과의 게임차는 크지 않았지만 교류전에서 승패마진 +0으로 재미를 못 본 것과 더불어 중요한 승부처에서 루징을 거듭하는 탓에 다른 경쟁팀들과 승차를 벌리지 못한 채 도통 부상하지 못했으나 9월에 6연승을 거두는 등 승패마진을 올리며 세이부, 라쿠텐을 우승 경쟁에서 떨어트리고 1위로 부상했고 시즌 막판에 오릭스와 우승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시즌 막판에 오릭스보다 잔여경기가 훨씬 많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교류전 종료 직후부터 오릭스와의 맞대결에서 루징을 연달아 내주는 등[5] 오릭스에게 계속해서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며 그 이점을 살리질 못했고 결국 매직넘버 1이 걸린 마지막 2경기를 모두 패하여 직접대결 열세였던 오릭스에게 동률을 허용하면서 끝내 2년 만의 우승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퍼스트에서 시즌 막판에 고춧가루를 뿌린 3위 세이부를 만나 2연승으로 복수에 성공하며 오릭스가 기다리는 파이널로 향했으나, 3차전 센가 코다이의 호투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오릭스의 두터운 투수진을 뚫지 못한 채 1승 3패로 패퇴하며 아쉽게 감독 첫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콘도 켄스케, 아리하라 코헤이 등 프론트가 분노의 영입을 시전한 2023시즌 초반에는 1위를 차지하는 등 순항했으나 점차 동력이 떨어지며 오릭스에게 1위를 빼앗기더니 7월에는 2015년 이후 12연패를 당하며 3위로 나가 떨어지며 4위 라쿠텐과 3.5게임 차로 좁혀지면서 소뱅 역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6]

결국 2년 차 시즌에는 가을야구 턱걸이 중이지만 남은 경기 라쿠텐이 3연승, 소뱅이 3연패하면 바뀌는 간당간당하고 12연패 불명예스런 대기록 덕에 소뱅팬들에게는 구단 인수 이후 최악의 감독으로 꼽히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그날 밤 바로 경질이나 다름없는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감독 해임 직후 구단 특별 어드바이저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모로 전임 감독이 일본시리즈 4연패 위업을 달성한 쿠도 키미야스였던만큼 더더욱 그 실적이 대조가 된다.

워낙 후지모토의 형편없는 지휘력에 학을 뗀 사람이 많았던 탓에, 후임 감독인 코쿠보 히로키가 좋은 성적과는 별개로 나카무라 아키라 무한기용 등의 뻘짓을 하는 모습을 보여도 차라리 쿠도 키미야스 전전임 감독을 그리워할지언정(...) 후지모토가 그립다는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코쿠보가 리그 우승에 이어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하면서 2년 내내 우승에 실패한 후지모토는 완전히 금지어가 되었다.

5. 기타

6.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2 소프트뱅크 143 76 65 .539 리그 2위 CS2 탈락
2023 143 71 69 .507 리그 3위 CS1 탈락
총계 286 147 134 .596 1CS2 1CS1 ­

7. 관련 문서



[1] 이해 난카이의 1위 지명을 받은 카네시로 노부오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4년 만에 방출되어 훗날 김신부라는 이름으로 청보 핀토스, LG 트윈스에서 뛰게 되었고, 추가로 후지모토와 함께 텐리 고교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에이스 투수 카와모토 카즈히로도 6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이쪽도 1시합 등판에 그친 채 3년 만에 방출되었다.[2] 여담으로 오릭스 입단 직후 출장한 시합에서 개인 유니폼이 준비되지 않아 급하게 1993-94시즌에 오릭스에서 뛰었던 용병 선수 타이 게이니의 유니폼을 대신 입고 뛰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3] 2010년 폐점.[4] 후지모토의 승격 이전에는 고쿠보 히로키 수석코치의 감독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2군 감독으로 내려보냈다. 고쿠보 수석 체제에서의 문제점을 구단이 인지하고 후지모토로 선회한 것으로 보여진다.[5] 교류전 이후 루징을 내주지 않은 건 9월 10~11일 원정 2연전에서 1승 1패로 동률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특히 그 다음 3연전에선 무참히 스윕패를 당하여 결국 후술할 역전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6] 오 사다하루 감독 최종연도인 2008년에 최하위를 하기는 했지만 그 해에는 감독이 암 발병과 치료로 인해 시즌 도중에 이탈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무엇보다 그가 쌓은 실적이 실적인만큼 까이지 않는다. 2010년대 유일의 B클래스 연도인 2013년은 시즌 종료 후 이대호, 데니스 사파테 등 분노의 영입이 제대로 먹히고 야나기타 유키 같은 새로운 코어가 발굴되며 다음해부터 일본시리즈를 밥먹듯 우승하는 와중에 한 번 쉬어가며 전력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