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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00:39:27

이자춘

환조(조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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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녀 : 익조 ~ 연산군 · 중종 ~ 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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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천호소 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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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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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추존 국왕
이자춘 | 李子春
파일:환조.jpg
정릉 전경 초상화
출생 1315년 1월 20일
동북면 오동(알동)천호소
(現 함경북도 경흥군)
사망 1360년 6월 3일 (향년 45세)
동북면 함흥부 귀주동 이자춘 사저
(現 함경남도 영흥군)
능묘 정릉(定陵)
재임기간 요동천호소 천호 | 다루가치
1343년 ~ 13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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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자춘(子春)
부모 부왕 도조
모후 경순왕후
형제자매 5남 3녀 중 2남
배우자 정실 의혜왕후
후궁 정빈 김씨
자녀 4남 2녀
몽골식 이름 울루스부카(吾魯思不花)
전호 계성전(啓聖殿)
묘호 환조(桓祖)
시호 환왕(桓王) → 연무성환대왕(淵武聖桓大王) }}}}}}}}}

1. 개요2. 생애3. 가계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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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왕조의 추존 국왕으로 초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이자 제2대 정종 이방과와 제3대 태종 이방원의 친할아버지였다.

몽골식 이름은 울루스부카(吾魯思不花)[1]이다. 추존왕 도조 이춘과 추존왕후인 경순왕후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이며 사실상 대한민국(남한) 내 절대 다수 전주 이씨의 족보상 조상이다.[2]

2. 생애

1315년에 태어난 이자춘은 형 이자흥이 일찍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이자 조카인 이천계[3]가 너무 어려 천호(밍간)를 이어받지 못하자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돌려주기로 하고, 일단 천호직을 임시적으로 물려받았다. 이후에 이자춘은 원나라의 다루가치직도 자연스럽게 세습받았지만 이천계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에게 천호직과 다루가치직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천계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곡필로 보이는데 이자춘이 죽자 이천계가 자신이 적장자임을 내세워 이성계를 죽이고 벼슬과 재산을 찾으려다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천계는 이자춘과 이성계보다도 일찍 고려에 투항해서 관직을 얻었지만 함부로 노비를 죽여 살인 혐의로 죽었다.

원래 자신의 외손자에게 천호 자리를 잇게 하려던 제2대 쌍성총관 조양기[4][5]는 이자춘이 몹시 거슬리게 되었고, 이에 쌍성총관부 일대에 있었던 백성들을 대상으로 호구 조사를 실시해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자춘이 이 지역 고려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원나라가 안으로는 제위 계승 문제로 내분이 일어났고, 밖으로는 한족의 홍건적이 일어나 대내외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 그때 고려에서는 제31대 공민왕이 즉위해 원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으로 고려의 자주권을 찾고, 잃은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일단 동북쪽의 쌍성총관부를 탈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제2대 총관 조양기의 손자이자 제4대 쌍성총관이었던 조소생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이자춘은 1355년 수도 개경으로 가서 몰래 공민왕을 만나 고려에 투항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힘을 얻은 공민왕은 행주 기씨 일족을 제거하고(병신정변), 유인우에게 군대를 주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도록 했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미리 사람을 보내 소부윤의 관직을 내리고, 자신의 어대를 증표로 주면서 내응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결국 공민왕의 요청에 이자춘은 내응했고 유인우의 고려 군대는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함경남도 일대는 조휘와 탁청의 반란 이후 99년만에 고려의 손으로 들어왔고, 이자춘은 쌍성총관부 회복의 공으로 태중대부(太中大夫) 사복경(司僕卿)으로 올라 개경으로 이사했다.

그 뒤로도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천우위 상장군 등을 지내다가 1360년 영록대부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삭방[6]도만호 겸 병마사까지 승진했지만 1361년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는데 함흥 동쪽 귀주동에 있는 '정릉'(定陵)에 묻혔고, 그의 부인 의혜왕후 최씨도 정릉과 같은 산에 묻혔는데 능호는 '화릉'(和陵)이다. 조선시대 지도와 구한말 흑백사진에 담긴 《정릉과 화릉》 모습
이자춘이 죽자 개경 사람들은 "이제 동북면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이원계, 이성계[7], 이화 등의 아들들과 이지란[8]이 있었다. 훗날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환왕'(桓王)으로 추존되었으며 손자인 태종이 1411년 '환조'(桓祖)로 재추존하면서 시호를 '연무성환대왕'(淵武聖桓大王)으로 바꿨다.

3. 가계

4. 대중매체



[1] 중세 몽골어로 '울루스'는 나라, '부카'는 를 뜻한다.[2] 목조 이안사의 선대에서 갈라진 시중공파(이단신), 평장사공파(이거), 주부공파(이영습)의 3개 소파(小派)를 제외하고, 목조와 익조 이행리, 도조 이춘 세 추존왕들의 16명 왕자들의 후손들은 월남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북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기 때문이다.[3] 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이천계'라는 인물이 이자흥의 아들인 '이교주'와 다른 인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에 따르면 이천계는 이자춘의 아들로 이성계의 배다른 형제 중 한 명(이성계의 이복형)이며, 이자춘이 형 이자흥의 아들 이교주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형의 양자로 이천계를 보냈다는 견해이다.[4] 쌍성총관부 설치의 원인이 된 조휘탁청의 반란의 중심 인물인 조휘의 아들로, 조선 중종때의 사림파 출신 개혁 관료 조광조의 가문인 한양 조씨이다. 천호 벼슬 문제로 이성계의 전주 이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총관 조양기의 차남인 조돈이 이자춘을 돕게 되고, 그 와중에 급기야 조돈의 아들인 조인벽과 이자춘의 딸인 정화공주가 혼인하면서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 집안이 되었다.[5] 총관 조양기의 딸이 도조 이춘과 혼인(이춘 입장에서는 재혼)하면서 3남 3녀를 낳았고, 조양기는 이 중 한 명에게(관례로 보면 차남인 이나해로 보인다.) 천호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6] 지금의 강원도 북부(철원, 화천, 고성, 인제, 강릉, 양구, 양양 등) 지역.[7] 20대의 애송이에 불과했지만 부친 이자춘이 사망한 해인 1361년 가별초와 함께 개경을 침공한 홍건적을 털어버리고, 1362년 고려의 변방을 집적대던 원나라 장수 잘라이르 나하추를 털어버렸다.[8] 원래 '퉁두란'이란 이름으로 불린 여진족 사람으로 이자춘을 죽이려 달려들었으나 이자춘을 비롯한 군사들에게 잡혀 투항하고, 이후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으며 '이지란'으로 개명하고 귀화했다.[9] 판도판서 조돈의 아들이며, 의정부 찬성사로 초대 쌍성총관을 지낸 조휘의 증손자이다. 아버지가 방계 후손이었기 때문에 쌍성총관의 자리는 잇지 못했다. 나중에 조선개국공신이 되었고, 그의 아들 조온도 출세했다. 쌍성총관의 직계 후손들은(제4대 쌍성총관 조소생의 후손) 제31대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 대항하다 털렸고, 이후 대가 끊겼다.[10] 후술하는 서자 이화와 달리 이원계가 이름에 돌림자를 쓰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11] 실제 이자춘은 40대 중반에 죽었는데 80이 넘은 이순재가 역을 맡은것은 고증오류다.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정통사극은 아닌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