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8:36:50

한진원

성명 한진원(韓鎭源)
생몰 ? ~ ?
출생지 서울특별시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진원은 서울 출신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출생년도 및 독립운동 가담 이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그는 1941년 4월 17일 <유주일보(柳州日報)>에 '조선인의 입장에서 본 삼민주의'를 기고했다.
단언컨대 이번 中倭戰爭의 최후승자는 당연히 중국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존’과 ‘독립’ 두 가지는 한 민족 최저한도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지금 자위를 위해, ‘생존’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위는 인류의 본능이다. 자위에는 강약의 비교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선악의 표준만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일본제국주의자와 일본 군벌은 선악은 제쳐두고 오직 강약만을 따지고 있다. 물질의 유무가 인류사회를 좌우할 수 없다. 인류의 마음은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선과 악을 통해 어둠과 광명을 분간한다.
나는 蔣 위원장의 ‘일본 민중에게 고하는 글’을 이미 세 번 읽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글의 모든 구절이 나를 무한한 감상에 잠기게 하였다. 이 글을 읽고 내가 느낀 바는 무엇인가? 이 글을 읽고 무엇보다도 삼민주의의 위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삼민주의가 실현된 뒤에야 비로소 세계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본 민중에게 고하는 글’에서 장 위원장은 특별히 우리 대한민족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였다. 장 위원장은 또한 이번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간 일본이 이번 침략전쟁을 도발한 것은 人道에 벗어난 행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이번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동시에 한국의 국권회복운동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한순간도 지운 적이 없었다. 하루속히 한국이 광복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본제국주의의 실패, 일본 군벌의 소멸, 일본 민족혁명의 폭발을 바랄 따름이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 도착한 뒤 비로소 장 위원장이 이미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한국임시정부가 美洲에 거주하는 교포들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한국광복군이 날로 장대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우리 한국인들을 기쁘게 하고 위로가 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내가 고향을 떠나온 본래 목적은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중국 항전의 승리, 한국 광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하여 예루살렘행을 중도에 포기하였다. 중국에 오기 전 고향에 있을 때부터 나는 이미 孫 總理의 학설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깊이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에 들어온 뒤 金文鎬 군(한국인으로 한국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한국광복군 동남지대의 徵募 업무 담당)이 선물한 삼민주의를 꼼꼼하게 읽고 난 후, 비로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천박하나마 삼민주의를 읽은 뒤의 감상을 간단하게 적어볼까 한다.
손 총리의 일생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적수공권으로 혁명을 영도하여 끝내 성공을 거둔 위대한 정치가였다. 영어에 능통하고 박학다식한 손 총리가 지은 삼민주의의 이론체계는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민족 · 민권 · 민생을 합하여 완성된 삼민주의 중 민족주의에서 손 총리는 중국 민족의 자유해방, 세계 피압박민족의 일률적인 해방과 평등 등 권리를 특별히 강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삼민주의의 위대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지난 반생을 허송세월하여 후회막급이다. 이제부터라도 중국 항전의 승리를 위해, 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비록 보잘 것 없는 힘이나마 보탤 결심을 가져본다.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지 15년이 되었다. 지난 15년간 나는 세계평화를 수시로 기도하였다. 지금의 생활은 매우 편안하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매일 장 위원장의 ‘일본 민중에게 고하는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출처: #

그 후 한진원은 1942년경 일본군 점령지역을 빠져나가 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에 가담했다. 하지만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한진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