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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09 22:04:49

하동군/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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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읍
고전면 금남면 금성면 북천면
악양면 양보면 옥종면 적량면
진교면 청암면 화개면 횡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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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읍
1.1. 하동읍
1.1.1. 광평리(廣坪里)1.1.2. 두곡리(豆谷里)1.1.3. 목도리(牧島里)1.1.4. 비파리(琵琶里)1.1.5. 신기리(新基里)1.1.6. 읍내리(邑內里)1.1.7. 화심리(花心里)1.1.8. 흥룡리(興龍里)
2. 면
2.1. 고전면
2.1.1. 고하리(古河里)2.1.2. 대덕리(大德里)2.1.3. 명교리(銘橋里)2.1.4. 범아리(泛鵝里)2.1.5. 성천리(城川里)2.1.6. 성평리(星坪里)2.1.7. 신월리(新月里)2.1.8. 전도리(錢島里)
2.2. 금남면
2.2.1. 계천리(鷄川里)2.2.2. 노량리(露梁里)2.2.3. 대송리(大松里)2.2.4. 대치리(大峙里)2.2.5. 덕천리(德川里)2.2.6. 송문리(松門里)2.2.7. 중평리(仲坪里)2.2.8. 진정리(眞正里)
2.3. 금성면
2.3.1. 가덕리(加德里)2.3.2. 갈사리(葛四里)2.3.3. 고포리(高浦里)2.3.4. 궁항리(弓項里)
2.4. 북천면
2.4.1. 방화리(芳花里)2.4.2. 사평리(沙坪里)2.4.3. 서황리(西潢里)2.4.4. 옥정리(玉亭里)2.4.5. 직전리(稷田里)2.4.6. 화정리(花亭里)
2.5. 악양면
2.5.1. 동매리(東梅里)2.5.2. 등촌리(登村里)2.5.3. 매계리(梅溪里)2.5.4. 미점리(美店里)2.5.5. 봉대리(鳳臺里)2.5.6. 신대리(新垈里)2.5.7. 신성리(新星里)2.5.8. 신흥리(新興里)2.5.9. 입석리(立石里)2.5.10. 정동리(亭東里)2.5.11. 정서리(亭西里)2.5.12. 중대리(中大里)2.5.13. 축지리(丑只里)2.5.14. 평사리(平沙里)
2.6. 양보면
2.6.1. 감당리(甘棠里)2.6.2. 박달리(朴達里)2.6.3. 우복리(愚伏里)2.6.4. 운암리(雲岩里)2.6.5. 장암리(長岩里)2.6.6. 지례리(知禮里)2.6.7. 통정리(桶井里)
2.7. 옥종면
2.7.1. 궁항리(弓項里)2.7.2. 대곡리(大谷里)2.7.3. 두양리(斗陽里)2.7.4. 문암리(文岩里)2.7.5. 법대리(法大里)2.7.6. 병천리(秉川里)2.7.7. 북방리(北方里)2.7.8. 안계리(安溪里)2.7.9. 양구리(良邱里)2.7.10. 월횡리(月橫里)2.7.11. 위태리(葦台里)2.7.12. 정수리(正水里)2.7.13. 종화리(宗化里)2.7.14. 청룡리(靑龍里)2.7.15. 회신리(檜信里)
2.8. 적량면
2.8.1. 고절리(高節里)2.8.2. 관리(館里)2.8.3. 동리(東里)2.8.4. 동산리(東山里)2.8.5. 서리(西里)2.8.6. 우계리(牛溪里)
2.9. 진교면
2.9.1. 고룡리(古龍里)2.9.2. 고이리(古梨里)2.9.3. 관곡리(冠谷里)2.9.4. 백련리(白蓮里)2.9.5. 송원리(松院里)2.9.6. 술상리(述上里)2.9.7. 안심리(安心里)2.9.8. 양포리(良浦里)2.9.9. 월운리(月雲里)2.9.10. 진교리(辰橋里)
2.10. 청암면
2.10.1. 명호리(明湖里)2.10.2. 묵계리(默溪里)2.10.3. 상이리(上梨里)2.10.4. 중이리(中梨里)2.10.5. 평촌리(坪村里)
2.11. 화개면
2.11.1. 대성리(大成里)2.11.2. 덕은리(德隱里)2.11.3. 범왕리(凡旺里)2.11.4. 부춘리(富春里)2.11.5. 삼신리(三神里)2.11.6. 용강리(龍岡里)2.11.7. 운수리(雲樹里)2.11.8. 정금리(井琴里)2.11.9. 탑리(塔里)
2.12. 횡천면
2.12.1. 남산리(南山里)2.12.2. 애치리(艾峙里)2.12.3. 여의리(如意里)2.12.4. 월평리(月坪里)2.12.5. 전대리(田垈里)2.12.6. 학리(鶴里)2.12.7. 횡천리(橫川里)

1.

부군면 통폐합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역 중 일부는 원래 하동도호부의 직접 관할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옛 하동현(1702년 도호부 승격 이전) 관할이었던 곳은 고전면, 횡천면, 양보면, 북천면 일부(사평리, 직전리, 방화리), 진교면 일부(안심리, 고룡리, 양포리 제외) 등이다. 이들은 옛 하동군의 고현면(古縣面), 간현면(䗎峴面), 팔조면(八助面), 내횡보면(內橫甫面), 외횡보면(外橫甫面), 서량곡면(西良谷面), 북면(北面), 동면(東面)에 해당한다. 나머지 하동읍, 악양면, 화개면은 1702년 하동도호부 승격 이전에는 악양현(嶽陽縣) 소속이었고, 적량면은 진주목 서면 적량리였다.

1.1. 하동읍

읍소재지는 읍내리(邑內里)이며, 군청 역시 읍내리에 위치한다. 관할 법정리는 8개이다.[1] 인구는 9,229명.

섬진강 본류와 지류인 횡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강 유역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된 지형이 특징이다. 1703년(숙종 29년) 고전면 고하리에 있던 하동 관아가 현재의 읍내리 지역(당시 진답면 두곡리)으로 이전되었고, 이듬해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하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군청을 비롯한 주요 행정기관, 사법기관, 교육기관 등이 밀집되어 하동군의 행정, 교통, 문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경전선 하동역이 읍의 동쪽 비파리에 위치하며, 2016년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역사가 신축 이전되었다. 무궁화호와 남도해양열차(S-Train)가 정차한다. 하동버스터미널은 2019년 10월 하동역 앞으로 이전하여 기차와 버스 간 환승 편의성이 높아졌다. 구 경전선 철로 부지를 기준으로 서쪽은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밀집한 시가지이고, 동쪽은 주로 농경지로 이용되어 공간 구조가 명확히 구분된다. 이 때문에 시가지는 서쪽의 산지와 동쪽의 철도(현재는 공원화된 폐선 부지 포함) 사이에 좁고 길게 형성되어 있다. 섬진강변에 위치한 하동송림(천연기념물 제445호)은 1745년(영조 21년) 당시 하동부사 전천상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소나무 숲으로, 현재 군민들의 휴식처이자 피서지로 사랑받고 있다. 강 건너편은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으로, 섬진교를 통해 연결되며 매화마을 등에서 하동읍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최근 하동군은 '컴팩트 매력도시' 비전을 제시하며 하동읍을 중심으로 한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영국 레치워스 가든시티 등을 벤치마킹하여 군청사를 정원형으로 조성하고, 주요 도로변을 아름다운 거리로 만드는 등 도시 미관 개선과 보행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악양면에서 추진되던 '북케이션 관광스테이' 사업 대상지가 하동읍의 옛 알프스 푸드마켓과 이화 스마트복합쉼터 부지로 변경되어, 2027년까지 생활 관광 숙박시설, 섬진강 아트센터, 공유 오피스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 사업 선정으로 하동건강복합센터 건립 등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190억 원 규모)도 추진될 예정이다.

하동군 하동읍 소개

1.1.1. 광평리(廣坪里)

하동읍의 서부에 위치하며 섬진강을 따라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너른 들'이라는 의미에서 광평(廣坪)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주요 산업은 벼농사이며, 섬진강 재첩 채취가 활발하여 '재첩 잡는 마을'로도 불린다. 섬진강변에는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된 하동송림이 조성되어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군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송림 내에는 활터인 하상정(河上亭)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광양면(廣良面)의 신기동(新基洞) 일부와 팔조면(八助面)의 월은동(月隱洞) 등을 병합하여 광평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섬진(蟾津), 원광평(元廣坪), 신광평(新廣坪), 개량(介良), 월은(月隱), 내동(內洞) 등이 있다.

1.1.2. 두곡리(豆谷里)

하동읍 동남부에 위치한다. 1704년(숙종 30년) 비파리 화산에서 하동도호부 관아가 이곳으로 최종 이전되면서 하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콩[豆]을 많이 재배했던 골짜기[谷]라는 설과, 마을 뒷산 너머 '뒤골'이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두곡(豆谷)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읍내리와 함께 하동읍 시가지의 중심부를 이루며, 하동공설시장 일부와 상가,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옛 동헌 터 등이 남아있다. 자연마을로는 향교(鄕校), 하교(下校), 신흥(新興) 등이 있다.

1.1.3. 목도리(牧島里)

하동읍 남부에 위치하며 섬진강 변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섬진강 하류의 삼각주 중 하나인 섬이었으나, 제방 축조 후 육지와 연결되었다. 지명은 조선시대에 관아에서 말을 기르던 섬[島]이라는 뜻의 '목도(牧島)'에서 유래했다. 토질이 비옥하여 시설 하우스 농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딸기, 오이, 방울토마토 등이 고소득 작물로 재배된다. 1914년 팔조면(八助面)의 목도동과 진답면(陳沓面)의 장평동(長坪洞) 일부를 병합하여 목도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하저구(下猪仇), 목도(牧島), 구통(舊通), 문도(文道) 등이 있다.

1.1.4. 비파리(琵琶里)

하동읍 중앙부에 위치한다. 마을 뒷산의 형세가 비파(琵琶) 악기를 닮았다는 설, 새가 많아 비아섬(飛鵝島, 기러기가 나는 섬)이라 불리다 비파로 변했다는 설, 또는 풍수지리상 명당인 '비파형국(琵琶形局)'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1703년 고전면 고하리에서 하동 관아가 잠시 이곳 화산(花山, 일명 우치 牛峙)으로 옮겨왔다가 이듬해 두곡리로 이전했다. 섬진강의 충적 평야인 '너뱅이들'(넓은 들)에서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경전선 하동역하동버스터미널이 이곳에 있어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하동고용센터, 하동경찰서 등 여러 기관도 위치한다. 1914년 진답면(陳沓面)의 상비동(上碑洞), 하비동(下碑洞), 신촌동(新村洞) 일부와 내횡보면(內橫甫面) 신기동(新基洞) 일부를 병합하여 비파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비파(琵琶), 신촌(新村), 화산(花山) 등이 있다.

1.1.5. 신기리(新基里)

하동읍 남서부에 위치한다. 새로 터[基]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기(新基)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광양면(廣良面)의 신기동(新基洞), 두우동(斗牛洞), 장성동(長成洞) 일부를 병합하여 신기리가 되었다. 1981년에는 기존 신촌 마을 일부가 비파리로 편입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마을로, 주택가와 농경지가 혼재한다.

1.1.6. 읍내리(邑內里)

하동읍의 행정, 상업, 교육 중심지이다. 하동군청, 하동읍사무소,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하동군법원, 하동경찰서, 하동교육지원청, 하동우체국 등 주요 관공서가 밀집해 있다. 하동초등학교, 하동중학교, 하동고등학교, 하동여자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와 하동도서관, 하동문화예술회관, 하동공원, 하동공설시장 등 주요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1704년 두곡리로 이전한 하동도호부 관아의 중심지가 이곳 일대였으며, 지명도 '읍성(邑城) 안[內]'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하동읍성의 일부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섬호정(蟾湖亭)이라는 정자도 있다. 하동천년나무1단지, 송보파인빌, 대경송림타운 등 공동주택이 다수 건설되어 주거 기능도 강화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동문(東門), 서문(西門), 북문(北門)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시가지화되었다.

1.1.7. 화심리(花心里)

하동읍 동북부에 위치한다.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마치 꽃[花]의 중심[心]과 같다 하여 화심(花心)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횡천강 지류가 흐르며, 농경과 임업이 주를 이룬다. 하동공설운동장 일부와 폐교된 하동초등학교 화심분교가 있었다. 1914년 팔조면(八助面)의 화심동, 장성동(長成洞), 신기동(新基洞) 일부를 병합하여 화심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원화심(元花心), 신기(新基), 장성(長成) 등이 있다. 772번지 일대는 정동길(Jeongdong-gil)이라는 도로명 주소로 불린다.

1.1.8. 흥룡리(興龍里)

하동읍 서북부에 위치한다. '용(龍)이 일어나는[興] 마을'이라는 상서로운 뜻을 가진 지명이다. 섬진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름다운 하동송림공원(천연기념물 제445호)이 넓게 펼쳐져 있다. 솔잎한우, 하동배 등이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팔조면(八助面)의 흥룡동, 백사동(白沙洞), 신월동(新月洞) 일부를 병합하여 흥룡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원흥룡(元興龍), 신흥룡(新興龍), 백사(白沙) 등이 있다.

2.

2.1. 고전면

면소재지는 범아리(泛鵝里), 관할 법정리는 8개이다.[2] 인구는 1,958명.

면 이름 '고전(古田)'은 옛 하동현의 중심지였던 고현면(古縣面)의 '고(古)'자와 조선시대 말을 관리하고 기르던 마전면(馬田面)의 '전(田)'자를 따서 유래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두 면과 팔조면 일부를 합쳐 고전면이 되었다. 고하리(古河里)에는 1703년 하동읍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하동현의 관아와 읍성이 있었으며, 그 흔적으로 하동읍성(사적 제453호) 터가 남아 있다. 읍성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성벽 일부와 문지 등이 남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가 면의 동남부 전도리와 인접해 있어 교통 접근성이 좋다. 다만 하동IC 자체는 행정구역상 금남면 계천리에 속한다. 명교리에는 조선시대의 정자인 명교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1호)이 있다. 섬진강변과 주교천, 성천천 유역의 평야에서는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재첩, 벗굴, 단호박, 산나물 등이 특산물이다. 학교는 고전초등학교가 유일하며, 과거 전도리에 고남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고전면 소개

2.1.1. 고하리(古河里)

고전면 서부에 위치하며, '옛 하동' 즉 고현(古縣) 지역으로 하동현의 옛 중심지였다. 1703년까지 하동현 관아와 읍성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하동읍성(사적 제453호) 터가 남아있다. 읍성은 둘레 약 1,240m, 높이 약 4m 규모로 추정된다. 섬진강변에 위치하며 벼농사가 주를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고현(古縣), 주성(主城), 나팔(羅八) 등이 있다. 나팔마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2.1.2. 대덕리(大德里)

고전면 북부에 위치한다. '큰 덕(德)이 있는 마을'이라는 좋은 의미의 지명이다. 조선시대 마전면(馬田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산간 지형으로 밤, 감 등 임산물 재배와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대덕(大德), 중장(中長) 등이 있다.

2.1.3. 명교리(銘橋里)

고전면 동부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정자인 명교정(銘橋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1호)이 있다. 지명은 마을을 흐르는 개울에 놓인 다리[橋]에 새긴[銘] 글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 고현면(古縣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주교천 변 평야에서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명교(銘橋), 신평(新坪), 월진(月津) 일부 등이 있다.

2.1.4. 범아리(泛鵝里)

고전면의 면소재지이다. 면사무소, 고전초등학교, 농협, 우체국, 파출소, 보건지소 등이 위치한다. 지명은 '거위[鵝]가 떠 있는[泛] 모습'을 뜻하며, 마을 앞들의 지형이나 관련 설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에는 범사동(泛槎洞, 뗏목이 뜨는 곳)과 아동(鵝洞)이 있었는데, 1914년 이를 합쳐 범아리가 되었다. 고전 3.1독립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백석(白石), 아정(鵝亭), 율촌(栗村), 범사(泛槎), 매자(梅子) 등이 있다. 백석마을이 면소재지 중심이며, 율촌마을에는 1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매자마을에는 솔잎한우 축산단지가 있다.

2.1.5. 성천리(城川里)

고전면 남부에 위치한다. '성(城) 아래의 내[川]'라는 뜻으로, 고하리의 하동읍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 마전면(馬田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종이를 만들던 지소(紙所)가 있었다. 1919년 4월 6일 면민 1,000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밤호박, 밤, 감 등을 재배한다. 자연마을로는 지소(紙所), 남성(南星), 상성(上星) 등이 있다.

2.1.6. 성평리(星坪里)

고전면 남서부에 위치한다. '별[星]처럼 펼쳐진 들[坪]'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넓은 평야 지대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명일 수 있다. 조선시대 고현면(古縣面)에 속했다. 섬진강 변에서 벼농사와 시설 하우스 농업이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성평(星坪), 당산(堂山), 봉현(鳳峴) 등이 있다.

2.1.7. 신월리(新月里)

고전면 동남부에 위치한다. 원래 팔조면(八助面) 지역이었으나 1916년 고전면에 편입되었다. '초승달[新月]'이라는 의미로, 지형이나 마을 형성 시기와 관련될 수 있다. 국도 19호선이 통과하며 하동읍과 인접해 있다. 효자로 이름난 염종환의 효자비가 있다. 섬진강변에서는 재첩 채취가 이루어지며, 평야에서는 수박 등 시설 하우스 농업이 활발하다. 자연마을로는 사막(沙幕), 신월(新月), 시목(枾木), 노화(蘆花) 등이 있다. 사막마을은 하동읍에서 고전면으로 들어오는 첫 마을이다.

2.1.8. 전도리(錢島里)

고전면 동남부 끝에 위치하며 금남면과 접한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와 가깝다. '돈[錢] 섬[島]'이라는 뜻으로, 과거 섬이었거나 갯벌 등에서 수확이 많아 부유했던 것과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섬진강 지류인 주교천 하구에 위치하며, 벼농사와 함께 재첩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다. 옛날 배가 드나들던 선소(船所)가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신방(新方), 선소(船所), 월진(月津) 등이 있다. 과거 고남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2.2. 금남면

면소재지는 송문리(松門里), 관할 법정리는 8개이다.[3] 인구는 3,139명.

본래 남면(南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옛 곤양군 서면(西面)과 하동군 마전면(馬田面) 일부를 병합하여 남면이 설치되었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金陽面)의 중평리, 대치리, 노량리 등이 편입되면서 '금양'의 '금(金)'자와 '남면'의 '남(南)'자를 따 금남면(金南面)으로 개칭되었다. 1986년 갈사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9년 금성면으로 승격 분리되면서 갈사리, 고포리, 가덕리, 궁항리가 금성면으로 이관되었고, 금남면에 속했던 술상리(述上里)는 진교면으로 편입되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가 계천리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다. 계천리 나들목 주변은 식당, 주유소 등 편의시설이 모여 작은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 지명을 '전도'라고 부른다. 이는 바로 인접한 고전면 전도리(錢島里)와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면의 남쪽 끝 노량리(露梁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노량해협을 가로지르는 노량대교(현수교)와 남해대교(현수교)가 있어 남해군 설천면과 연결된다. 특히 남해대교 진입 부근에는 싱싱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촌이 발달해 있다.

면 북쪽으로는 해발 849m의 금오산(金鰲山)이 솟아 있으며, 산 중턱까지 연결되는 하동 케이블카(정식 명칭: 하동 플라이웨이 케이블카)가 중평리에 설치되어 남해안의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금오산 정상 부근에는 해맞이공원과 함께 스릴 넘치는 짚와이어, 스윙점프 등의 레저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금오산 자락의 대치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진정리 해안가에는 하동화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 대송리에는 대송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다. 중평리에는 조선 중기의 명장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가 있다. 하동읍보다는 바다 건너 남해군 남해읍으로 가는 버스편이 더 자주 운행되는 특징이 있다. 학교는 노량초등학교, 진정초등학교, 금남중학교, 금남고등학교가 있다. 과거 대도(大島)라는 유인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무인도이며 법정리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금남면 소개

2.2.1. 계천리(鷄川里)

금남면 서북부에 위치한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나들목 주변에 상가와 편의시설이 형성되어 '전도'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본래 곤양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사궁동(射弓洞)과 영천동(永川洞) 일부를 병합하여 계천리가 되었다. 지명 유래는 '닭 계(鷄)' 자를 쓰지만 명확하지 않으며, 계항(鷄項, 닭의 목)이라는 지형이나 냇가[川]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마을로는 사궁(射弓), 영천(永川), 계항(鷄項) 등이 있다. 사궁마을은 지형이 활 쏘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2.2.2. 노량리(露梁里)

금남면 남쪽 끝, 남해군과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露梁海戰)의 무대이며, 이를 기념하는 이충무공 유적(이락사 등)이 있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해협으로 물살이 세다. 남해대교(1973년 개통)와 노량대교(2018년 개통)가 남해군 설천면과 연결된다. 남해대교 인근에는 횟집촌이 형성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대가야 시대부터 어선의 기항지였으며, 문모라섬(남해도)으로 가는 도선장이 있었고, 일본과 교역했던 국제항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노량초등학교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노량(舊露梁), 신노량(新露梁)이 있다.

2.2.3. 대송리(大松里)

금남면 동부에 위치한다. '큰 소나무[大松]'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해안가에는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의 하동지구인 대송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며, 하동화력발전소와 연계된다.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 지역이었다. 자연마을로는 송정(松亭), 양화(陽化) 등이 있다.

2.2.4. 대치리(大峙里)

금남면 북부에 위치한다. 금오산 자락에 있으며, '큰 고개[大峙]'라는 뜻의 지명으로, 금오산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피서지로 유명한 대치계곡이 있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대치(大峙), 동산(東山) 등이 있다.

2.2.5. 덕천리(德川里)

금남면 중부에 위치한다. '덕(德)이 있는 내[川]'라는 좋은 의미의 지명이다. 본래 곤양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덕포동(德浦洞)과 삼천동(三川洞)을 병합하여 덕천리가 되었다. 덕포는 '덕이 있는 포구', 삼천은 '세 갈래 내'를 의미한다. 자연마을로는 덕포(德浦), 삼천(三川) 등이 있다. 하동군수협이 이곳에 있다.

2.2.6. 송문리(松門里)

금남면의 면소재지이다. 금남면사무소, 금남중학교, 금남고등학교, 금남우체국, 농협 등이 위치한다. 지명은 '소나무[松] 문[門]'이라는 뜻으로, 마을 입구에 소나무가 많았거나 관련 설화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본래 곤양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미법동(彌法洞), 소송동(小松洞), 수문동(水門洞)을 병합하여 송문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미법(彌法), 수문(水門), 소송(小松), 신기(新基)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샛터'라고도 불린다.

2.2.7. 중평리(仲坪里)

금남면 북동부에 위치한다. 금오산으로 올라가는 하동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으며, 금오산 정상에는 해맞이공원과 봉수대 터(경상남도 기념물 제193호)가 있다. 조선 중기의 명장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가 있다. '가운데[仲] 들[坪]'이라는 뜻으로,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상중(上仲), 하중(下仲), 작장(鵲庄, 까치마을) 등이 있다.

2.2.8. 진정리(眞正里)

금남면 동남부 해안가에 위치한다. 하동화력발전소가 이곳에 있어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화력발전소 건설과 함께 주변 해안이 매립되었다. 본래 곤양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진목동(眞木洞)과 노포동(櫓浦洞) 일부를 병합하여 진정리가 되었다. 진정초등학교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진목(眞木), 당산(堂山), 조금(助琴) 등이 있다. 조금마을은 가야금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2.3. 금성면

면소재지는 궁항리(弓項里), 관할 법정리는 4개이다.[4] 인구는 2,701명.

1989년 1월 1일 금남면 갈사출장소(1986년 설치)가 면으로 승격하여 신설되었다. 지명은 면이 접하고 있는 금성만(金城灣), 즉 갈사만(葛四灣)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만은 예로부터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포구가 발달했던 곳이다. 원래 여러 개의 섬(갈사도, 가덕도, 고포도 등)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었으나, 하동화력발전소 건설과 연계된 대규모 간척사업(금남간척사업, 갈사만 개발 등)을 통해 현재와 같은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농경지와 산업단지로 활용되고 있다.

갈사리 일대에는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하동지구의 핵심 사업인 대송산업단지(구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조성이 2009년부터 추진되었으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와 경기 불황 등으로 인해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분양 대신 임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산업단지는 하동군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현재는 지역의 큰 숙제로 남아있다.

59번 국도(산업로)가 면의 서부를 지나며 광양시 금호동(포스코 광양제철소)과 연결되어 산업 물동량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동소방서 본서가 궁항리에 위치하여 군 전체의 소방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해안가인 연막, 나팔마을 등에는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횟집과 식당들이 있다. 갈사리에는 약 200세대 규모의 해양파크빌 아파트가 있으며, 면소재지인 궁항리에는 비교적 최근에 신축된 보건지소가 군민 건강을 돌보고 있다. 학교는 갈육초등학교와 궁항초등학교가 있다.

금성면 소개

2.3.1. 가덕리(加德里)

금성면 북서부에 위치한다. 금남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본래 곤양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가인동(加印洞)의 '가(加)'자와 명덕동(明德洞)의 '덕(德)'자를 따서 가덕리가 되어 금남면에 속했다가 1989년 금성면으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가인(加印), 청룡(靑龍), 명덕(明德), 호암(虎巖) 등이 있다.

2.3.2. 갈사리(葛四里)

금성면 서부에 위치한다. 대부분 지역이 갈사만 매립을 통해 조성된 간척지이며, 이 위에 대송산업단지(구 갈사만 조선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갈사(葛四)라는 지명은 과거 섬이었을 때 칡[葛]이 많았거나, 네[四] 갈래의 물길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을 수 있다. 갈육초등학교와 해양파크빌 아파트가 있다. 1914년 하동군 마전면 지역 일부와 곤양군 서면 지역 일부를 병합하여 갈서리(葛西里)가 되었다가 후에 갈사리(葛四里)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마을로는 본동(本洞), 신촌(新村), 두문(杜門), 사동(沙洞), 연막(烟幕) 등이 있다. 연막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연막을 피워 신호를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2.3.3. 고포리(高浦里)

금성면 동부에 위치한다. '높은[高] 개펄(포구)[浦]'이라는 뜻으로,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어업과 양식업이 일부 이루어진다. 1914년 곤양군 서면의 고포동과 심포동(深浦洞)을 병합하여 고포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고포(高浦), 심포(深浦) 등이 있다.

2.3.4. 궁항리(弓項里)

금성면의 면소재지이다. 면사무소, 금성파출소, 금성우체국, 농협, 궁항초등학교, 하동소방서, 보건지소 등이 위치한다. 마을 지형이 활[弓]의 목[項] 부분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하여 유래했다. 원래 섬이었으나 간척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1914년 곤양군 서면의 궁항동과 나팔동(羅叭洞) 일부를 병합하여 궁항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궁항(弓項), 나팔(羅叭), 중촌(中村) 등이 있다. 나팔마을은 지형이 나팔처럼 생겼거나 임진왜란 때 나팔을 불었다는 설이 있다.

2.4. 북천면

면소재지는 직전리(稷田里), 관할 법정리는 6개이다.[5] 인구는 1,511명.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하동군 북면(北面)이었으며, 1914년 곤양군 초량면 일부와 진주군 대야천면 일부를 편입하여 현재의 면 영역이 형성되었다. 경전선 북천역이 면의 중심인 직전리에 위치하며, 역 주변으로는 매년 가을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만발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여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북천역은 2016년 경전선 개량 사업으로 신축 이전되었으며, 무궁화호 열차와 남도해양열차(S-Train)가 정차한다. 구 북천역사는 현재 레일바이크 탑승장 및 열차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은 다소 불편한 편이다. 하동군 농어촌버스와 농촌형 버스가 운행하지만 횟수가 적다. 면 주변으로 이명산(570m), 천황봉(576m)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농경지보다 임야 면적이 넓은 산간 지역이다. 소설가 이병주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이병주문학관이 서황리에 건립되어 있다. 2번 국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관통하며 사천시 곤명면과 경계를 이룬다. 특산물로는 쌀, 배, 밤, 고사리, 부추 등이 있으며, 과거 고령토 광산이 있었고 한우 사육 농가도 많다. 학교는 북천초등학교와 옥종중학교 북천분교(폐교 위기)가 있다.

하동군 북천면 소개

2.4.1. 방화리(芳花里)

북천면 서부에 위치한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뒷산의 생김새가 디딜방아와 같아 '방아리'라 불리다 방화(芳花)로 바뀌었다는 설, 뒷산인 구곡산 주변이 꽃잎 같아서 유래했다는 설, 과거 큰 화재 후 마을을 다시 세우며 불 화(火)를 피하고 꽃 방(芳)을 썼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전의 이씨 이문필이 개척한 후 김해 김씨, 광산 김씨, 용궁 김씨, 합천 이씨 등이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자연마을로는 방화(芳花, 상방/하방), 금촌(琴村), 가평(佳坪) 등이 있다. 금촌마을은 뒷산이 거문고 모양이라 유래했고, 가평마을은 '아름다운 들'이라는 뜻이다.

2.4.2. 사평리(沙坪里)

북천면 남서부에 위치한다. 주변 지질이 모래땅[沙]으로 이루어진 들[坪]이라 사평(沙坪)이라 불렸다고 추정된다. 마을 남서쪽 산(양보면 우복리 경계)에 가야 또는 신라 시대의 성터 흔적이 있고, 신라식 고분군도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용궁 김씨와 진양 강씨가 주요 성씨이다. 자연마을로는 사평(沙坪), 사둑골, 높은터, 신흥(新興), 배안골, 모성(牟城) 등이 있다. 모성마을은 원래 보리 모(牟)를 써서 모동(牟洞)이라 불렸으나 1983년 성(城) 자로 바꾸었다.

2.4.3. 서황리(西潢里)

북천면 북부에 위치한다. 이병주 문학관이 이곳에 있다. 지명은 '서쪽[西]의 못[潢]'이라는 뜻으로, 과거 마을 서쪽에 큰 연못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벼농사와 함께 밤, 감 등 과수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내황(內潢), 외황(外潢), 신촌(新村) 등이 있다.

2.4.4. 옥정리(玉亭里)

북천면 동부에 위치하며 사천시 곤명면과 접한다. '옥[玉]과 같은 정자[亭]' 또는 '옥같이 맑은 우물[井]' 등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 대야천면(大也川面)에 속했다. 벼농사와 시설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옥정(玉亭), 대야(大也) 등이 있다.

2.4.5. 직전리(稷田里)

북천면의 면소재지이다. 북천면사무소, 북천역, 북천초등학교, 옥종중학교 북천분교, 북천우체국, 농협 등이 위치한다.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리는 주 무대이다. 지명은 조선 인조 때 한 도사가 이곳을 지나며 땅이 기름져 곡식(특히 피[稷])이 잘 자랄 땅이라 하여 직전(稷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는 마을 뒷산의 맥이 곧게[直] 뻗어 내려온 밭[田]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직전(稷田), 이명(梨明), 계산(溪山), 신촌(新村) 등이 있다.

2.4.6. 화정리(花亭里)

북천면 북동부 끝, 사천시 곤명면과 접하는 곳에 위치한다. '꽃[花] 정자[亭]'라는 아름다운 지명으로, 마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유래했을 수 있다.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인 화정리 요지(窯址)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금, 은, 중석 등을 채굴하던 하동광산이 개발되기도 했다. 자연마을로는 상촌(上村), 하촌(下村), 신흥(新興) 등이 있다.

2.5. 악양면

면소재지는 정서리(亭西里), 관할 법정리는 14개이다.[6] 인구는 3,324명.

면의 명칭은 신라 경덕왕 16년(757) 소다사현(小多沙縣)에서 개칭된 악양현(嶽陽縣)에서 유래했으며, '악(岳)'은 '작다'는 의미의 우리말 '악/아기'에서, '양(陽)'은 '볕 드는 곳'을 의미하여 '작은 볕 잘 드는 고을' 정도로 해석된다. 1702년(숙종 28) 하동도호부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쪽과 서쪽은 지리산 줄기의 높은 산지(형제봉, 칠성봉 등)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부에는 섬진강 지류인 악양천이 흐르며 약 83만 평에 이르는 넓고 비옥한 평야(악양분지, 평사리 들판)를 형성하고 있다. 이 비옥한 들판은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배경이 되었으며, 소설 속 최참판댁이 평사리(平沙里)에 복원되어 하동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최참판댁 인근에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고소성(姑蘇城, 사적 제151호)이 있다.

악양면은 2009년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Cittaslow)로 지정되어,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자연환경 보존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특산물은 대봉감으로, 지리적 표시제 임산물 부문 제23호로 등록될 만큼 품질이 우수하다. 매년 가을 '악양 대봉감 축제'가 열린다. 또한 하동 녹차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매암차문화박물관이 있으며, 악양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점 부근의 평사리공원은 캠핑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평사리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부부송(소나무 두 그루)과 악양천 중류의 동정호(洞庭湖)도 유명하다. 동정호는 악양 소상팔경 중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의 무대이며, 생태적 가치가 높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개치마을 입구에는 악양루(岳陽樓)라는 누각이 있다.

19번 국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왕복 4차로로 확장되어 하동읍과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면소재지인 정서리에는 농협 하나로마트, 새마을금고, 보건지소 등 생활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1047번 지방도를 통해 청암면의 청학동, 삼성궁 방면으로 갈 수 있으나, 악양면과 청암면 사이의 회남재 구간은 비포장 상태이고 일부(회남재-삼성궁)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 사실상 등산로나 트레킹 코스로 이용된다. 매년 '회남재 숲길 걷기 행사'가 개최된다. 섬진강을 건너 구례군 방면으로 가려면 남쪽의 하동읍이나 북쪽의 남도대교까지 이동해야 한다. 학교는 악양초등학교와 악양중학교가 있다.

하동군 악양면 소개

2.5.1. 동매리(東梅里)

악양면 북부, 악양천 상류에 위치한다. 지명은 매계리(梅溪里)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졌거나, 매화나무와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고로쇠 수액 채취가 이루어지며, 펜션 등 숙박 시설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동매(東梅)가 있다.

2.5.2. 등촌리(登村里)

악양면 중북부, 악양천 중상류 서쪽에 위치한다. '오르는[登] 마을[村]'이라는 뜻으로, 산기슭에 위치한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벼농사와 함께 감, 매실 등 과수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등촌(登村)이 있다.

2.5.3. 매계리(梅溪里)

악양면 북부, 악양천 상류에 위치한다. '매화[梅]와 시내[溪]'라는 뜻으로, 과거 매화나무가 많았거나 매계천(악양천 상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일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계(梅溪)가 있다.

2.5.4. 미점리(美店里)

악양면 서부, 형제봉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아름다운[美] 가게[店]' 또는 '아름다운 터'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옛날 주막이나 가게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1914년 미점동과 신점동(新店洞)을 병합하여 미점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미점(美店), 신점(新店) 등이 있다.

2.5.5. 봉대리(鳳臺里)

악양면 남부, 평사리 들판 남쪽에 위치한다. 소설 토지의 주 무대 중 하나로, 용이와 월선이의 이야기가 얽힌 곳이다. 지명은 '봉황[鳳]이 노니는 대[臺]'라는 상서로운 의미를 담고 있으며, 지형이 봉황새를 닮았다는 설도 있다. 1914년 화개면 봉대동(鳳臺洞)이 악양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봉대(鳳臺), 구정(龜亭) 등이 있다. 구정마을은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2.5.6. 신대리(新垈里)

악양면 서부, 악양천 서쪽에 위치한다. '새로운[新] 터[垈]'라는 뜻으로, 비교적 나중에 형성된 마을임을 시사한다. 벼농사와 과수 재배가 이루어진다. 1914년 신대동과 성두동(星斗洞) 일부를 병합하여 신대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신대(新垈)가 있다.

2.5.7. 신성리(新星里)

악양면 서남부에 위치한다. 자연마을인 신덕(新德)마을의 '신(新)'자와 성두(星斗)마을의 '성(星)'자를 따서 신성리가 되었다. 성두마을은 마을 앞들에 고인돌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고 하여 붙은 지명으로 전해진다. 평사리 들판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1914년 신덕동, 성두동, 먹점동(墨店洞) 등을 병합하여 신성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신덕(新德), 성두(星斗), 먹점(墨店) 등이 있다.

2.5.8. 신흥리(新興里)

악양면 서부에 위치한다. '새롭게[新] 일어나는[興]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악양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흥동(上興洞)과 하흥동(下興洞)을 통합하여 신흥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상흥(上興), 하흥(下興) 등이 있다.

2.5.9. 입석리(立石里)

악양면 동남부, 평사리 동쪽에 위치한다. 마을에 '서 있는 돌[立石]', 즉 선돌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이 선돌은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평사리 들판의 일부이며, 벼농사가 주를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입석(立石), 상신(上新), 서당(書堂) 등이 있다. 서당마을은 옛날 서당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2.5.10. 정동리(亭東里)

악양면 중앙 동부에 위치한다. 면소재지인 정서리와 함께 '정자[亭]'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정되며, '정자 동쪽[東]'이라는 의미이다. 악양천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914년 상정동(上亭洞), 중정동(中亭洞), 하정동(下亭洞) 일부를 병합하여 정동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상정(上亭), 중정(中亭), 하정(下亭) 등이 있다.

2.5.11. 정서리(亭西里)

악양면의 면소재지이다. 악양면사무소, 악양초등학교, 악양중학교, 악양우체국, 농협 하나로마트, 새마을금고, 보건지소 등 주요 기관과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다. '정자 서쪽[西]'이라는 뜻이며, 정동리와 마찬가지로 옛 정자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인다. 악양천 서안에 위치하며, 악양분지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1914년 상신동(上新洞), 하신동(下新洞), 평촌동(坪村洞) 등을 병합하여 정서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상신(上新), 하신(下新), 평촌(坪村) 등이 있다.

2.5.12. 중대리(中大里)

악양면 서부, 형제봉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가운데[中] 큰[大] 마을'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산간 지역으로 임업과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중대(中大), 노전(蘆田, 갈밭) 등이 있다.

2.5.13. 축지리(丑只里)

악양면 서부, 섬진강 변에 위치한다.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방향을 나타내는 십이지신 중 '축(丑, 북동쪽)' 방향이나 동물 '소(丑)'와 관련되었을 가능성, 또는 지형적 특징(예: 축지형 丑地形)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섬진강변에는 유명한 '하동 축지리 문암송(천연기념물 제491호)'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축지(丑只), 원정(元亭) 등이 있다.

2.5.14. 평사리(平沙里)

악양면 남부, 섬진강과 악양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로, 소설 속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 복원되어 연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최참판댁 주변에는 박경리문학관, 토지세트장 등 관련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넓고 평탄한[平] 모래[沙] 땅'이라는 지명처럼, 약 83만 평에 이르는 광활한 '평사리 들판'(악양들)이 펼쳐져 있으며,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 '부부송'은 악양들의 상징적인 풍경이다. 섬진강변의 평사리공원은 캠핑장으로 인기가 높고, 악양천 중류의 동정호(洞庭湖)는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지닌 습지보호구역이다. 1914년 화개면의 평사리(平沙里), 하평리(下坪里), 강선리(江仙里) 등 7개 마을이 악양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상평(上坪), 하평(下坪), 강선(江仙), 화암(花巖), 동정(洞庭), 봉화(烽火) 등이 있다.

2.6. 양보면

면소재지는 운암리(雲岩里), 관할 법정리는 7개이다.[7] 인구는 1,600명.

군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진주시 수곡면과 접한다. 면 이름 양보(良甫)는 옛 서량곡면(西良谷面)의 '양(良)'자와 외횡보면(外橫甫面)의 '보(甫)'자를 따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만들어졌다. 일설에는 밤나무가 많아 양보(養枹, 밤나무를 기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밤, 단호박, 참다래(키위), 한우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특히 밤호박은 일본에 수출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박달리(朴達里)에는 쌍계사의 말사인 학방암(鶴芳庵)이 있다. 과거 경전선 양보역이 우복리에 있었으나, 2016년 노선 이설 및 직선화 과정에서 폐역되었다. 폐역된 역사는 지역 문화 공간 등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학교로는 한다사중학교가 운암리에 있으며, 양보초등학교는 2023년에 폐교되었다. 과거에는 우복초등학교와 박달초등학교도 있었으나 일찍이 폐교되었다. 폐교된 박달초등학교 교정의 벚나무는 봄철 숨겨진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해발 570m의 이명산과 448.3m의 정안봉이 면의 동북쪽과 서남쪽을 감싸고 있으며, 장암천과 박달천이 주교천으로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하동댐의 농업용수 혜택을 받는 지역이다.

양보면 소개

2.6.1. 감당리(甘棠里)

양보면 북부에 위치한다. '팥배나무(棠)'가 많았거나, 달콤한[甘] 팥배나무와 관련된 지명일 수 있다. 조선시대 외횡보면(外橫甫面)에 속했던 지역이다. 밤 생산량이 많다. 자연마을로는 상쌍(上雙), 신전(新田), 영계(永界), 원양(元陽) 등이 있다. 상쌍마을은 예로부터 백로 집단 서식지로 알려져 있었다.

2.6.2. 박달리(朴達里)

양보면 동부에 위치하며 진주시 수곡면과 접한다. 쌍계사 말사인 학방암(鶴芳庵)이 있다. 박달나무[朴達]가 많았거나 박달재라는 고개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폐교된 박달초등학교 교정의 오래된 벚나무가 봄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원박마을의 정자나무는 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봉곡(鳳谷), 집홀(集笏), 원박(元朴), 세곡(細谷), 반계(盤溪) 등이 있다.

2.6.3. 우복리(愚伏里)

양보면 서부에 위치한다.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어리석게[愚] 엎드린다[伏]'는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유교적 의미나, 소[牛]가 엎드린 형상의 지형[牛伏] 등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폐역된 경전선 양보역과 폐교된 우복초등학교가 있다. 이명산(理明山, 570m)이 있으며, 황토재에서 이명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비파(琵琶), 하성(下成), 서촌(西村), 동촌(東村) 등이 있다.

2.6.4. 운암리(雲岩里)

양보면의 면소재지이다. 양보면사무소, 한다사중학교(구 양보초등학교 자리), 농협, 우체국, 보건지소, 복지회관, 양보생활체육공원 등이 있다. '구름[雲]과 바위[岩]'라는 뜻으로, 주변 산세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인다. 단감 생산이 많다. 최치원 선생 영정을 모신 최운당(崔雲堂) 서당과 용궁김씨 사당 관어제(觀魚齊), 항일운동가 김홍권 추념비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운산(雲山), 수척(水尺), 지내(池內), 진암(辰岩) 등이 있다.

2.6.5. 장암리(長岩里)

양보면 서부에 위치한다. '긴[長] 바위[岩]'라는 뜻의 지명으로, 마을에 길게 뻗은 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을 수 있다. 녹차 생산이 많으며 친환경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정안봉(鼎安峰, 448m) 아래 자리 잡고 있으며, 산 정상에는 정안산성 터가 남아 있다. 2016년 개교한 거점기숙형 중학교인 한다사중학교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우성(牛城), 하장암(下長岩), 상장암(上長岩), 중하쌍 등이 있다.

2.6.6. 지례리(知禮里)

양보면 남부에 위치한다. '예절[禮]을 아는[知] 마을'이라는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는 지명일 수 있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 채소 재배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예성(禮星), 가락(佳洛), 화촌(花村), 만지(晩池) 등이 있다.

2.6.7. 통정리(桶井里)

양보면 중앙부에 위치한다. 마을에 '나무통[桶]으로 만든 우물[井]'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으며, '통새미골'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면의 명칭이 서량곡면에서 양보면으로 바뀌면서 잠시 면소재지였던 적이 있다. 과거 누에치기(잠업)가 발달했었다. 통정리 산성 터와 고인돌군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양상추, 수박 등 시설 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자연마을로는 서제(書齊), 구청(舊廳), 신정(新井) 등이 있다.

2.7. 옥종면

면소재지는 청룡리(靑龍里), 관할 법정리는 15개이다.[8] 인구는 4,014명.

하동군의 북동쪽 끝에 위치하며 진주시 수곡면, 산청군 시천면과 접한다. 원래 옥산(玉山) 동쪽의 옥동면(玉洞面, 청룡리 등 남부)과 북쪽의 가종면(加宗面, 안계리 등 북부)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1928년 통합되어 옥산의 이름을 따 옥종면(玉宗面)이 되었다. 서쪽의 궁항리, 위태리, 회신리 3개 리는 본래 청암면에 속했으나 2003년 옥종면으로 편입되었다.

역사적으로 진주목에 속했던 지역으로, 지리적으로나 생활권 측면에서 하동읍보다는 진주시에 훨씬 가깝다. 실제로 창촌교를 통해 진주시 수곡면과 직접 연결되며, 진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운행되는 반면, 하동읍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는 하루 3회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 편의나 경제 활동은 진주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하동군이 추진하는 '컴팩트 매력도시' 구상에서 진교, 하동읍과 함께 3대 거점 중 하나로 선정되어 행정복합센터 조성 등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100억 원 규모)이 '농촌협약'을 통해 추진될 예정이다.

주요 특산물은 딸기로, 인접한 진주시 수곡면과 함께 전국적인 딸기 주산지로 명성이 높다. 특히 북방리 일대에서는 매년 딸기 축제가 개최되어 많은 방문객을 유치한다. 북방리 고성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95호)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과 일본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를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정수리에는 조선 중기 학자 정온(鄭蘊)을 모신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이 있다. 두양리에는 고려의 명장 강민첨 장군을 모신 사당인 두방제(斗芳齊)와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69호)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25년 산청-하동 산불로 인해 은행나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외에도 안계리의 모함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 청계사 소장 문화재, 병천리의 공옥대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59번 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며, 과거 비포장 구간이었던 산청군 시천면과의 경계 구간이 최근 왕복 2차로로 포장 개통되어 교통 여건이 개선되었다. 면소재지인 청룡리에는 보건지소, 대형 하나로마트, 카페 등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옥종초), 중학교(옥종중), 고등학교(옥종고)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있어 자녀를 둔 귀농·귀촌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종합체육시설인 옥천관에서는 다양한 체육 활동과 문화 행사(연말 오케스트라 공연 등)가 열린다. 지역 명소로는 옥산서원 외에도 덕천강변의 덕원자연휴양림과 해발 614m의 옥산(玉山)이 있다.


옥종면 내 행정구역 [펼쳐 보기ㆍ접기]

* 마을별 문화재 및 주요 지점

* 청룡리: 옥종면사무소 소재지. 청룡리 석불좌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53호 은행나무.
* 북방리: 고성산성(동학농민운동 격전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195호), 동학농민운동위령탑 (1995년 건립). 북방리 수정당(修靜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3호). 딸기 축제 개최지.
* 정수리: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 옥산서원 소장 책판 일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53호).
* 두양리: 강민첨 장군 사당 두방제(斗芳齊). 장군 식수 전승 천년목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69호) - 2025년 산청-하동 산불로 소실 위기.
* 안계리: 겸재 하홍도(河弘度) 사당 모함재(慕涵齋,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 및 경내 무환자나무, 은행나무(수령 400년). 청계사(靑溪寺) 소장 문화재 다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3~557호).
* 병천리: 남명 조식 제자들이 학문을 닦던 공옥대(拱玉臺) 및 공옥루(拱玉樓).
* 법대리: 김사봉 처 점화 정려유허비.
* 월횡리: 경현사(景賢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1호).
* 대곡리: 대곡리 조지서 묘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8호), 대곡리 오천정씨 정려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1호).
* 위태리: 법성선원 소장 문화재 다수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8~600호, 제610호).


옥종면 소개

2.7.1. 궁항리(弓項里)

옥종면 서남부에 위치한다. 2003년 1월 1일 청암면에서 편입되었다. 금성면 궁항리와 한자는 같으나 전혀 다른 곳이다. 지형이 활[弓]의 목[項]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청암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원궁(元弓), 명호(明湖) 등이 있다.

2.7.2. 대곡리(大谷里)

옥종면 동부에 위치한다. 덕천강 지류가 흐르는 '큰 골짜기[大谷]'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학자 조지서(趙之瑞) 묘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8호), 오천 정씨(烏川鄭氏) 정려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1호) 등이 있다. 벼농사와 시설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대곡(大谷), 지화(紙花) 등이 있다.

2.7.3. 두양리(斗陽里)

옥종면 북부, 옥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려의 명장 강민첨(姜民瞻) 장군을 모신 사당 두방제(斗芳齊)와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69호)가 있다. 안타깝게도 은행나무는 2025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지명은 북두칠성[斗]의 정기를 받은 양지[陽]바른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연마을로는 두양(斗陽)이 있다.

2.7.4. 문암리(文岩里)

옥종면 중앙부에 위치한다. '글월[文] 바위[岩]'라는 뜻으로, 마을에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거나 학문, 서당과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덕천강변에 위치하며 농경지가 발달했다. 자연마을로는 문암(文岩), 반계(盤溪) 등이 있다.

2.7.5. 법대리(法大里)

옥종면 동남부에 위치한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벌[蜂]이 많아 '벌떼', '벌대'라 불리던 것이 변했다는 설, 마을 지형이 벌집 같다는 설, 불법(佛法)을 크게 일으킬 곳이라는 설 등이 있다. 김사봉(金士峰)의 처(妻) 정씨(鄭氏)의 정려 유허비가 있다. 벼농사와 딸기 재배가 활발하다. 자연마을로는 법대(法大), 주촌(周村) 등이 있다.

2.7.6. 병천리(秉川里)

옥종면 중앙 동쪽, 덕천강 서안에 위치한다. 뒷산이 병풍(屛風)처럼 둘러 있고 앞에 내[川]가 흘러 병천(屛川)이라 불리다가 후에 볏단 병(秉) 자를 쓰는 병천(秉川)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남명 조식(曺植)의 제자들이 학문을 닦던 공옥대(拱玉臺)와 공옥루(拱玉樓)가 있다. 진주 하씨(晋州 河氏) 집성촌이다. 자연마을로는 병천(秉川)이 있다.

2.7.7. 북방리(北方里)

옥종면 동북부에 위치한다. '북쪽[北方] 지방'이라는 의미이다. 고성산성(古城山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195호)이 있으며,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과 일본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를 기리는 동학농민운동위령탑(1995년 건립)이 있다. 조선 후기 학자 하달홍(河達弘)을 기리는 수정당(修靜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3호)도 있다. 옥종 딸기의 주산지로, 매년 딸기 축제가 열린다. 자연마을로는 북방(北方), 추동(秋洞) 등이 있다.

2.7.8. 안계리(安溪里)

옥종면 북부, 옥산 북쪽 계곡에 위치한다. '편안한[安] 시내[溪]'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학자 하홍도(河弘度)를 모신 모함재(慕涵齋,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가 있으며, 경내에는 수령 400년의 무환자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 청계사(靑溪寺)에는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등 다수의 불교 경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3~557호)이 소장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안계(安溪), 영당(影堂), 내곡(內谷) 등이 있다.

2.7.9. 양구리(良邱里)

옥종면 남부에 위치한다. '좋은[良] 언덕[邱]'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덕천강변에 위치하며 농경지가 발달했다. 자연마을로는 양구(良邱), 다름(多凜) 등이 있다.

2.7.10. 월횡리(月橫里)

옥종면 서북부에 위치한다. 조선 중기 학자 하수일(河受一) 등을 모신 경현사(景賢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1호)가 있다. '달[月]이 가로지르는[橫] 곳'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으로, 달 뜨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데서 유래했을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월횡(月橫), 원향(元香) 등이 있다.

2.7.11. 위태리(葦台里)

옥종면 서남부에 위치한다. 2003년 1월 1일 청암면에서 편입되었다. '갈대[葦] 언덕[台]'이라는 뜻으로, 과거 갈대가 많았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법성선원(法性禪院)에 대방광불화엄경소, 묘법연화경,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아미타후불도 등 다수의 문화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8~600호, 제610호)가 소장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위태(葦台), 돌고지 등이 있다.

2.7.12. 정수리(正水里)

옥종면 동북부에 위치하며 산청군 시천면과 접한다. 조선 중기의 충신이자 학자인 정온(鄭蘊)을 배향하는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과 관련 책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53호)이 있다. 서원 주변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지명은 '바르고[正] 맑은 물[水]'이라는 뜻이다. 덕천강 상류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정수(正水), 동곡(桐谷) 등이 있다.

2.7.13. 종화리(宗化里)

옥종면 북부에 위치한다. 옛 가종면(加宗面)의 '종(宗)'자와 종화동(宗化洞)의 '화(化)'자를 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으뜸[宗]이 되는 교화[化]'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자연마을로는 종화(宗化)가 있다.

2.7.14. 청룡리(靑龍里)

옥종면의 면소재지이다. 옥종면사무소, 옥종초등학교, 옥종중학교, 옥종고등학교, 옥종복지회관(옥천관), 농협 하나로마트, 보건지소, 119안전센터 등이 밀집해 있다. 마을을 흐르는 내가 풍수지리상 청룡(靑龍)에 해당한다 하여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룡리 석불좌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과 수령 약 500년의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253호)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청룡(靑龍), 개촌(開村), 역촌(驛村) 등이 있다.

2.7.15. 회신리(檜信里)

옥종면 서부에 위치한다. 2003년 1월 1일 청암면에서 편입되었다. 지명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전나무[檜]나 노송과 관련된 이야기, 또는 인물과 관련된 지명일 수 있다. '새롭게 돌아온다[回新]'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회신(檜信), 호접(蝴蝶, 나비마을) 등이 있다.

2.8. 적량면

면소재지는 관리(館里), 관할 법정리는 6개이다.[9] 인구는 1,851명.

군의 서부, 하동읍 북쪽에 위치한다. 본래 진주목 서면(西面) 적량리(赤良里) 또는 적량부곡(赤良部曲) 지역이었으나 1702년(숙종 28년) 하동현에 편입되었다. 1895년(고종 32) 하동군 적량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팔조면(八助面)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현재의 6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면 이름 '적량(赤良)'은 예부터 '붉은몰'이라 불렸는데, 땅이 붉고[赤] 기름지다[良]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농업 지역으로, 쌀, 보리, 콩 등 식량 작물과 고추, 마늘 등 양념 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최근에는 취나물(참취)이 하동군 내 최대 생산지로 부상하여, 공판장 물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 (단, 자연산 산취는 청암면 것이 더 유명하다.) 그 외 딸기, 밤, 매실 등도 특산물이다. 주요 하천인 주교천(구 주교천) 상류인 적량천과 우계천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상류의 우계리 방면과 동리 삼화실 방면 양쪽에 저수지(하곡소류지, 적량저수지 등)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지만, 이로 인해 계곡의 자연 유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하동 정씨(河東 鄭氏)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시조 정도정(鄭道正)의 묘단과 사당이 동리에 있다. 동산리에는 용소보(龍沼洑)라는 관개시설과 함께 주민 휴식 공간인 우치공원(牛峙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고절리에는 하동공설운동장과 하동소방서 적량119안전센터가 위치한다. 학교는 적량초등학교가 관리에 있으며, 과거 동리에 삼화초등학교(1993년 폐교), 동산리에 영신초등학교(2007년 폐교)가 있었으나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 사업 선정으로 거점(하동읍, 진교, 옥종)과 배후마을을 연계하는 서비스 전달 사업(50억 원 규모)의 수혜 지역 중 하나로 포함될 예정이다.

적량면 소개

2.8.1. 고절리(高節里)

적량면 남부에 위치한다. '높은[高] 절개[節]'라는 충절의 의미를 담은 지명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과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본래 팔조면(八助面) 지역이었다. 하동공설운동장과 적량119안전센터가 있다. 벼농사와 함께 시설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원고절(元高節), 서촌(西村), 사평(沙坪), 계항(桂項) 등이 있다.

2.8.2. 관리(館里)

적량면의 면소재지이다. 적량면사무소, 적량초등학교, 적량우체국, 농협, 보건지소, 파출소 등이 위치한다. 지명은 조선시대 역원(驛院)이나 객사(館) 등 공공 건물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벼농사를 비롯해 밤, 느타리버섯, 딸기 등을 재배한다. 마을의 정기나무(보호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 금강등(錦江嶝)이라는 언덕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남당(南塘), 내동(內洞), 상촌(上村), 외동(外洞) 등이 있다.

2.8.3. 동리(東里)

적량면 북동부에 위치한다. '동쪽[東] 마을[里]'이라는 단순한 의미이다. 하동 정씨 시조 정도정(鄭道正)의 묘단과 재실인 하곡재(河谷齋)가 있는 '새비골'(하곡 鰕谷)이 이곳에 있다. 새비골은 산의 모양이 새우등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하동 정씨의 성지로 여겨진다. 또한 고려 말기의 방형 석분인 하동 동리 방형분(경상남도 기념물 제278호)이 있다. 폐교된 삼화초등학교 부지가 남아있다. 자연마을로는 원동(元東), 명천(椧川/明川), 내삼(內三), 외삼(外三), 봉월(鳳月) 등이 있다. 명천마을은 홈통 명(椧) 자를 썼으나, 이후 밝을 명(明) 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2.8.4. 동산리(東山里)

적량면 동남부에 위치한다. '동쪽[東] 산[山]' 아래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구리[銅]를 캐던 동점(銅店)이 있었다고 한다. 적량천과 횡천강이 만나는 지점 부근에 있으며, 용소보(龍沼洑)와 우치공원(牛峙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폐교된 영신초등학교가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동산(東山), 서당(書堂), 원우(元牛), 내동(內洞) 등이 있다.

2.8.5. 서리(西里)

적량면 서부에 위치한다. '서쪽[西] 마을[里]'이라는 뜻이다. 지리산 구재봉 자락에 위치하며, 벼농사와 밭농사, 임업이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서리(西里), 남치(南峙), 봉수(鳳峀) 등이 있다.

2.8.6. 우계리(牛溪里)

적량면 북서부, 지리산 자락 깊숙이 위치한다. '소[牛]와 시내[溪]' 또는 '소가 누운 형상의 시내'와 관련된 지명일 수 있다. 적량저수지가 있다. 수령 약 300년의 이팝나무(보호수)가 유명하다. 벼농사와 함께 고로쇠 수액 채취, 산채 재배 등이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원우계(元牛溪), 신촌(新村), 기전(基田), 구향(九香) 등이 있다.

2.9. 진교면

하동군 동부 지역의 사실상 중심지 역할을 하는 면이다. 면소재지는 진교리(辰橋里), 관할 법정리는 10개이다.[10] 인구는 5,530명.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하동군 동면(東面) 지역이었으며, 1918년 진교면(辰橋面)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폐지된 옛 곤양군 금양면(金陽面)의 안심리, 고룡리, 양포리가 편입되었고, 1989년에는 금남면에 속했던 술상리(述上里)가 진교면으로 편입되어 현재의 면세(面勢)를 갖추게 되었다.

남해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이 면의 중심부(관곡리)에 위치하여 사천시, 남해군, 그리고 서부 경남 및 호남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광주광역시, 순천시, 광양시 등지에서 남해안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교통의 요지이다. 하동버스터미널과는 별개로 진교시외버스터미널이 운영되며, 서울남부터미널시외버스(시외버스 서울남부-남해) 노선이 정차하여 수도권과의 직접 연결도 가능하다.

하동읍에 버금가는 상권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풀마트, 농협 하나로마트, 다이소(장원할인마트 병설) 등 다양한 상점이 있으며, 진교공설시장에서는 5일장이 정기적으로 열려 지역 주민 및 인근 지역민들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편리성 덕분에 외지인의 유입과 다문화가정 구성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진교문화의집, 보건지소(2018년 치과 신설), 민다리체육공원(테니스장, 축구장 등) 등 공공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최근 하동군이 추진하는 '컴팩트 매력도시' 구상의 3대 거점 중 하나로, 이미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190억 원 규모)을 통해 민다리복합센터 건립, 꿈나무키움터 조성 등 문화·복지 기능 강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백련리(白蓮里)에는 고려-조선시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굽던 가마터인 도요지(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가 있으며, 영화 취화선의 촬영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면의 남동쪽에는 해발 849m의 금오산이 솟아 있으며, 정상 부근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진교(辰橋)라는 지명은 이무기가 용[辰]이 되어 승천하려다 미끄러졌다는 전설 속 '민다리'[橋]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가수 정동원이 학창 시절을 이곳 진교면(진교초, 진교중 졸업)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더했다. 학교는 진교초등학교, 진교중학교, 진교고등학교가 있다.

진교면 소개

2.9.1. 고룡리(古龍里)

진교면 서부에 위치하며 금오산 북서쪽 자락에 있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지명은 옛 곤양군 금양면 고색동(古色洞)의 '고(古)'자와 용호동(龍湖洞)의 '용(龍)'자를 따서 유래했다. 금오산 등산로 입구 중 하나이다. 자연마을로는 고색(古色), 용호(龍湖) 등이 있다.

2.9.2. 고이리(古梨里)

진교면 동부에 위치하며 사천시 곤양면과 접한다. '오래된[古] 배나무[梨]' 또는 '옛 배나무골'에서 유래한 지명일 수 있다. 벼농사와 과수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고이(古梨), 신기(新基), 평화(平和) 등이 있다.

2.9.3. 관곡리(冠谷里)

진교면 서부에 위치한다. 남해고속도로 진교IC가 이곳에 있다. '갓[冠] 골짜기[谷]'라는 뜻으로, 지형이 갓 모양과 비슷하거나, 벼슬한 인물과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곡(冠谷), 구고속(舊古屬) 등이 있다.

2.9.4. 백련리(白蓮里)

진교면 서남부에 위치한다. 고려-조선시대 분청사기, 백자, 상감백자, 철화청자 등을 굽던 도요지(백련리 도요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가 있으며,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흰[白] 연꽃[蓮]'이라는 아름다운 지명으로, 연꽃이 많았거나 불교와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백련(白蓮), 사기점(沙器店) 등이 있다. 사기점은 도요지가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다.

2.9.5. 송원리(松院里)

진교면 동부에 위치한다. '소나무[松] 언덕' 또는 '소나무가 있는 서원/역원[院]'과 관련된 지명일 수 있다. 조선 말 하동군 동면 지역으로, 역동(驛洞), 송내동(松內洞), 송외동(松外洞), 화포동(花浦洞) 등을 통합하여 송원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송내(松內), 송외(松外), 역동(驛洞), 화포(花浦) 등이 있다.

2.9.6. 술상리(述上里)

진교면 동남부 해안가, 금성면과 접하는 곳에 위치한다. 본래 금양면 소속이었으나 1933년 금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진교면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해안 포구 마을로,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이 이루어진다. 특히 전어 잡이로 유명하며, 매년 가을 술상항에서 전어 축제가 열린다. 자연마을로는 술상(述上)이 있다.

2.9.7. 안심리(安心里)

진교면 서북부에 위치하며 양보면과 접한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마음[心]을 편안하게[安] 하는 곳'이라는 길한 의미의 지명이다. 벼농사와 함께 딸기, 부추 등 시설 채소 재배가 활발하다. 자연마을로는 안심(安心), 신안(新安) 등이 있다.

2.9.8. 양포리(良浦里)

진교면 서남부 해안가에 위치한다. 1933년 폐지된 금양면에서 편입되었다. '좋은[良] 포구[浦]'라는 뜻이다. 어업과 함께 간척지에서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폐교된 양포초등학교가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양포(良浦), 중하(中河), 성평(星坪), 들포(坪浦) 등이 있다.

2.9.9. 월운리(月雲里)

진교면 중앙부, 진교 시가지 동쪽에 위치한다. '달[月]과 구름[雲]'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다웠던 데서 유래했을 수 있다. 진교천이 흐르며,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월운(月雲), 지양(芝陽) 등이 있다.

2.9.10. 진교리(辰橋里)

진교면의 면소재지이자 하동군 동부권의 중심지이다. 진교면사무소, 진교초등학교, 진교중학교, 진교고등학교, 진교시외버스터미널, 진교공설시장, 진교119안전센터, 보건지소, 문화의집, 민다리체육공원 등이 밀집해 있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 이무기가 용[辰]이 되어 승천하려다 금오산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다리[橋]라 하여 '민다리' 또는 '미끄럼다리'라 불리던 것이 진교(辰橋)가 되었다는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또는 나루터[津]가 있던 곳에 다리가 놓여 진교(津橋)라 불리다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진교리 삼층석탑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상진(上辰), 하진(下辰), 평당(平當), 교동(校洞) 등이 있다.

2.10. 청암면

면소재지는 평촌리(坪村里), 관할 법정리는 5개이다.[11] 인구는 1,324명.

하동군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면의 대부분이 해발 1,000m 내외의 높은 산(삼신봉, 영신봉 등)으로 둘러싸인 산악 지형이며, 횡천강의 최상류 지역에 해당한다. 면의 중심부에는 1983년 착공하여 1993년 완공된 하동호(청암댐)가 넓게 펼쳐져 있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묵계리(默溪里)에는 전통적인 생활방식(댕기머리, 개량한복, 서당 교육 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청학동마을(일명 도인촌)이 있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청학동 인근에는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했다는 독특한 형태의 수행처이자 관광지인 삼성궁(三聖宮)이 위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1047번 지방도가 면을 통과하며 악양면과 연결되지만, 청암면과 악양면 사이의 회남재 구간은 비포장 상태이며, 일부 구간(회남재-삼성궁)은 예전엔 차량 통행도 가능했었지만 지금은 안전을 이유로 제한되어 등산로나 트레킹 코스로 주로 이용된다. 1014번 지방도가 청암면 평촌리에서 시작되어 남쪽 횡천면으로 이어진다. 산청군 시천면과는 지리산 능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으며, 일부 등산로를 통해 연결된다.

특산물로는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고로쇠 수액, 산나물(참취, 고사리 등), 토종꿀, 산약초 등이 유명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 사업 선정으로 거점(하동읍, 진교, 옥종)과 배후마을을 연계하는 서비스 전달 사업(50억 원 규모)의 수혜 지역 중 하나로 포함될 예정이다. 학교는 묵계초등학교 청암분교(본교는 폐교)와 청암중학교가 있다. 2003년까지 현재 옥종면에 속한 궁항리, 위태리, 회신리가 청암면 관할이었으며, 당시에는 위태출장소가 있었다.

청암면 소개

2.10.1. 명호리(明湖里)

청암면 서부에 위치하며 하동호에 접해 있다. '밝은[明] 호수[湖]'라는 뜻으로, 하동호 건설 이후 지명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다. 청암댐 건설로 인해 마을 일부가 수몰되고 이주민이 발생하였다. 지리산 둘레길 코스가 지나간다. 자연마을로는 명호(明호), 사동(沙洞), 시목(枾木) 등이 있다.

2.10.2. 묵계리(默溪里)

청암면 동부, 지리산 삼신봉 남쪽 골짜기에 위치한다. '조용한[默] 시내[溪]'라는 뜻의 지명처럼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청학동마을(도인촌)과 삼성궁이 있어 하동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다. 묵계초등학교 청암분교가 있다. 고로쇠 수액, 산나물 등이 특산물이다. 자연마을로는 묵계(默溪), 학동(鶴洞, 청학동), 궁암(弓岩), 관점(觀 점), 회양(回陽) 등이 있다.

2.10.3. 상이리(上梨里)

청암면 북부에 위치하며 하동호 상류 지역이다. '위쪽[上] 배나무골[梨]'이라는 의미이다. 산간 오지 마을로, 지리산 등산로와 연결된다. 자연마을로는 원상(元上), 죽동(竹洞), 추동(秋洞) 등이 있다.

2.10.4. 중이리(中梨里)

청암면 중앙부, 하동호 북쪽에 위치한다. '가운데[中] 배나무골[梨]'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말 학자 이색(李穡)의 영정을 모셨던 금남사(錦南祠) 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자연마을로는 중이(中梨), 반월(半月), 금남(錦南), 사평(沙坪) 등이 있다.

2.10.5. 평촌리(坪村里)

청암면의 면소재지이다. 청암면사무소, 청암중학교, 청암보건지소, 청암우체국 등이 위치한다. 횡천강 상류 계곡에 비교적 평탄한[坪] 지형에 자리 잡아 '들 마을[村]'이라는 뜻의 지명이 붙었다. 경순왕의 어진을 모셨던 경천묘(敬天廟) 터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평촌(坪村), 신흥(新興), 사기(沙基), 학동(學洞) 등이 있다.

2.11. 화개면

면소재지는 탑리(塔里), 관할 법정리는 9개이다.[12] 인구는 2,801명.

하동군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지리산 남쪽 자락과 섬진강을 끼고 전라남도 구례군과 접한다. 대한민국 차(茶)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 일대에 처음 심었다고 전해진다. 면 전체가 야생 차밭으로 유명하며, 특히 바위틈에서 자라는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전통 수제 녹차는 품질이 뛰어나다. 화개면의 전통 차 농업 시스템은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매년 5월에는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가 개최되어 하동 녹차의 우수성을 알린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점인 탑리에는 화개장터가 열리는데, 가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지금도 5일장(1일, 6일)이 열리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섬진강변을 따라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4km 구간의 벚나무 가로수길은 '화개장터 십리벚꽃길'로 불리며, 봄철이면 환상적인 벚꽃 터널을 이루어 '혼례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고찰인 쌍계사(雙磎寺,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와 가야 불교 초전지(初傳地)로 알려진 칠불사(七佛寺)가 지리산 자락 깊숙이(운수리, 범왕리) 자리 잡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탑비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칠불사는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19번 국도가 섬진강을 따라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지나며, 화개 삼거리에서 1023번 지방도가 분기한다. 1023번 지방도는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 함양군 마천면으로 이어지도록 계획되었으나, 국립공원 지정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되어 현재 화개면 의신마을(칠불사 입구) 이후 구간은 사실상 등산로로만 남아 있다. 남쪽으로는 하동읍, 북쪽으로는 남도대교를 건너 구례군 간전면, 또는 19번 국도를 따라 더 북상하면 구례군 토지면과 연결된다. 지리적으로 하동읍내보다 구례읍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학교는 쌍계초등학교, 화개초등학교(왕성분교 포함), 화개중학교가 있다.

하동군 화개면 소개 페이지

2.11.1. 대성리(大成里)

화개면 최북단, 지리산 영신봉 남쪽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다. 화개천 최상류인 대성계곡, 의신계곡, 단천계곡 등이 있으며,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의신마을은 조선 중기 고승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머물렀던 곳이며,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주요 활동 무대이자 최후 격전지이기도 했다. 지리산역사관이 이곳에 있다. 고랭지 채소, 산나물, 토종꿀, 고로쇠 수액 등이 특산물이다. 단천마을은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수도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리산 등산로의 중요한 기점이다. 자연마을로는 의신(義神), 단천(丹川), 신흥(新興), 삼정(三亭), 오송(五松) 등이 있다.

2.11.2. 덕은리(德隱里)

화개면 서부, 섬진강 변에 위치한다. '덕(德)이 숨어있는[隱] 곳'이라는 의미이다. 섬진강변을 따라 벚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덕은(德隱), 사시(沙侍) 등이 있다.

2.11.3. 범왕리(凡旺里)

화개면 동북부, 지리산 남쪽 기슭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가야 불교 초전지로 알려진 칠불사(七佛寺)와 아자방(亞字房) 터가 있다. 지명은 '평범하면서도[凡] 왕성한[旺] 곳' 또는 불교와 관련된 '범(梵)' 자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신흥마을은 야생 차밭으로 유명하며, 여러 다원(茶園)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범왕(凡旺), 신흥(新興), 목압(木鴨), 장차(藏茶) 등이 있다. 장차마을은 차를 저장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2.11.4. 부춘리(富春里)

화개면 서남부, 화개장터 인근 섬진강 변에 위치한다. '봄[春] 경치가 풍요로운[富] 곳'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처럼, 봄철 벚꽃과 강변 풍경이 아름답다. 폐교된 화개초등학교 부덕분교가 있었다. 차 재배와 함께 식당, 숙박시설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부춘(富春), 내두(內頭), 외두(外頭) 등이 있다.

2.11.5. 삼신리(三神里)

화개면 중앙부, 화개천 서쪽에 위치한다. 지리산 삼신봉(三神峰)과 관련 있거나, 세 신령[三神]을 모시던 곳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십리벚꽃길의 일부 구간이다. 화개면 보건지소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삼신(三神), 석문(石門), 만덕(萬德), 원탑(元塔) 등이 있다.

2.11.6. 용강리(龍岡里)

화개면 동남부에 위치한다. '용[龍]의 언덕[岡]'이라는 뜻으로, 지형이나 전설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차밭과 감나무밭이 많다. 자연마을로는 용강(龍岡), 석문(石門) 등이 있다.

2.11.7. 운수리(雲樹里)

화개면 동부, 지리산 남록에 위치한다. 신라시대 고찰 쌍계사(雙磎寺)가 이곳에 있으며, 쌍계사 내에는 진감선사탑비(국보 제47호), 대웅전(보물 제500호), 팔상전, 청학루, 팔영루 등 수많은 문화재와 전각들이 있다. '구름[雲]과 나무[樹]'라는 지명처럼, 쌍계사 주변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쌍계사 입구에 쌍계초등학교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운수(雲樹)가 있다.

2.11.8. 정금리(井琴里)

화개면 남부, 화개천 동쪽에 위치한다. '우물[井]과 거문고[琴]'라는 뜻으로, 마을에 유명한 우물이 있었거나 거문고와 관련된 설화, 또는 지형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십리벚꽃길의 일부이며, 차밭이 많다. 자연마을로는 정금(井琴), 두지(斗止) 등이 있다.

2.11.9. 탑리(塔里)

화개면의 면소재지이다. 화개면사무소, 화개초등학교(본교), 화개중학교, 화개우체국, 농협, 화개장터가 있다. 지명 그대로 옛날에 탑(塔)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한다. 십리벚꽃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자연마을로는 탑리(塔里), 가탄(佳灘), 영호(嶺湖), 석문(石門) 등이 있다.

2.12. 횡천면

면소재지는 횡천리(橫川里), 관할 법정리는 7개이다.[13] 인구는 1,783명.

면 이름 횡천(橫川)은 '가로지르는 내'라는 뜻으로, 면의 중앙을 흐르는 횡천강(橫川江)에서 유래했다. 이 지명은 신라 문무왕 때 '횡천촌(橫川村)'이라 불렸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횡천강을 경계로 동쪽의 외횡보면(外橫甫面)과 서쪽의 내횡보면(內橫甫面)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1914년 통합 후 1917년 내횡보면이 횡천면으로 개칭되었다. 군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지리산 자락(청암면)과 연결되고 남쪽으로 섬진강과 만나는 횡천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횡천강은 청암면 묵계리에서 발원하여 면의 중앙부를 남류하다 하동읍에서 섬진강과 합류한다.

경전선 횡천역이 면소재지인 횡천리에 있으며, 2016년 노선 개량으로 신축 이전되었다. 19번 국도2번 국도가 면의 외곽을 지나며, 면 내부로는 1003번 지방도 등이 주요 교통로 역할을 한다. 횡천강 유역의 평야에서는 벼농사가 이루어지며, 산간 지역에서는 밤, 매실, 감 등을 재배한다. 횡천강에서는 은어, 참게, 다슬기 등이 잡힌다. 특히 횡천강 참게는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학교는 횡천초등학교가 있으며, 횡천중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2009년 폐교되어 현재 하동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 사업 선정으로 거점(하동읍, 진교, 옥종)과 배후마을을 연계하는 서비스 전달 사업(50억 원 규모)의 수혜 지역 중 하나로 포함될 예정이다.

횡천(橫川)이라는 지명은 일본에도 존재하며, 요코카와(よこかわ) 또는 요코가와(よこがわ)로 읽히고 지명 또는 인명(성씨)으로 사용된다.

하동군 횡천면 소개

2.12.1. 남산리(南山里)

횡천면 남부에 위치한다. '남쪽[南] 산[山]' 아래 마을이라는 뜻이다.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군과 유물 산포지 등 선사 유적이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수령 250년의 팽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횡천강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남산(南山), 원좌(元佐), 신촌(新村) 등이 있다.

2.12.2. 애치리(艾峙里)

횡천면 서북부, 지리산 구재봉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적량면과 접한다. '쑥[艾] 고개[峙]'라는 뜻으로, 과거 쑥이 많았거나 쑥과 관련된 설화가 있을 수 있다. 산간 지역으로 밤, 감 등 임산물 재배가 주를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애치(艾峙), 내애(內艾), 외애(外艾) 등이 있다.

2.12.3. 여의리(如意里)

횡천면 북부, 횡천강 서안에 위치한다. '뜻[意]대로[如] 되는 마을'이라는 길한 이름이다. 과거 횡천시장(5일, 10일장)이 이곳에 섰으며, 지리산 임산물, 농산물, 해산물 등이 거래되는 상업 중심지였다. 자연마을로는 여의(如意), 양정(兩亭), 용덕(龍德) 등이 있다.

2.12.4. 월평리(月坪里)

횡천면 북서부, 횡천강 서안에 위치한다. '달[月] 뜨는 들[坪]' 또는 '달처럼 둥근 들'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이 있다. 벼농사와 함께 시설 채소 재배가 이루어진다. 자연마료로는 월평(月坪), 사기(沙器) 등이 있다. 사기마을은 과거 사기그릇을 굽던 곳으로 추정된다.

2.12.5. 전대리(田垈里)

횡천면 북부, 횡천강 동안에 위치한다. '밭[田] 터[垈]'라는 뜻으로, 농경과 관련된 지명이다. 청동기시대 유물 산포지가 있다. 벼농사와 밭농사가 주를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전대(田垈), 중기(中基) 등이 있다.

2.12.6. 학리(鶴里)

횡천면 남부, 횡천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점 부근에 위치한다. '학(鶴)'과 관련된 상서로운 지명으로, 학이 서식했거나 학 모양의 지형과 관련된 유래가 있을 수 있다. 섬진강 변에서 재첩 채취와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학리(鶴里), 맥포(脈浦) 등이 있다.

2.12.7. 횡천리(橫川里)

횡천면의 면소재지이다. 횡천면사무소, 횡천역, 횡천초등학교, 횡천우체국, 농협, 119안전센터 등이 위치한다. 횡천강(橫川江)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661년(현종 2)부터 1679년(숙종 5)까지 약 20년간 하동군의 읍치(邑治)가 이곳 횡포(橫浦)에 있었던 적이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물 산포지, 조선시대 박이한(朴履韓)의 처 하씨(河氏) 열행비 등 문화 유적이 있다. 횡천교 인근 강변에는 참게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동동(東洞), 서동(西洞), 죽동(竹洞), 장기(場基), 횡계(橫溪) 등이 있다. 장기마을은 옛 시장 터였음을 의미한다.

橫川이란 지명은 일본에도 있다. 일본어로 요코카와나 요코가와라고 읽는다. 사람의 성으로 쓰기도 한다.

[1] 광평리·두곡리·목도리·비파리·신기리·읍내리·화심리·흥룡리[2] 고하리·대덕리·명교리·범아리·성천리·성평리·신월리·전도리[3] 계천리·노량리·대송리·대치리·덕천리·송문리·중평리·진정리[4] 가덕리·갈사리·고포리·궁항리[5] 방화리·사평리·서황리·옥정리·직전리·화정리[6] 동매리·등촌리·매계리·미점리·봉대리·신대리·신성리·신흥리·입석리·정동리·정서리·중대리·축지리·평사리[7] 감당리·박달리·우복리·운암리·장암리·지례리·통정리[8] 궁항리·대곡리·두양리·문암리·법대리·병천리·북방리·안계리·양구리·월횡리·위태리·정수리·종화리·청룡리·회신리[9] 고절리·관리·동리·동산리·서리·우계리[10] 고룡리·고이리·관곡리·백련리·송원리·술상리·안심리·양포리·월운리·진교리[11] 명호리·묵계리·상이리·중이리·평촌리[12] 대성리·덕은리·삼신리·범왕리·부춘리·용강리·운수리·정금리·탑리[13] 남산리·애치리·여의리·월평리·전대리·학리·횡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