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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페이 더너웨이 Faye Dunaway | |
본명 | 도로시 페이 더너웨이 Dorothy Faye Dunaway |
출생 | 1941년 1월 14일 ([age(1941-01-14)]세) |
미국 플로리다주 배스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0cm |
직업 | 배우 |
학력 | 플로리다 대학교 석사 |
활동 기간 | 1962년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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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년대의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여배우 중 한 명 이었으며 대표작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작은 거인>, <차이나타운>,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네트워크>가 있다.
2. 활동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 로버트 쇼 주연으로 영화화 되기도 한 희곡 "A Man for All Seasons"의 브로드웨이 초연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1961년부터 63년까지 공연했다.1967년 앤서니 퀸 주연의 <해프닝>의 단역으로 출연하여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같은 해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보니 파커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많은 영화팬들을 열광시켰으며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에 후보 지명 되었다.
1968년에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상대역인 스티븐 맥퀸과 같이 호흡을 맞추었으며 평은 별로 안 좋았으나 [1] 흥행은 성공했다.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데에는 <삼총사> 와 후속작인 <사총사>에서 밀레디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74년에는 <타워링>에 출연하며 스티븐 맥퀸과 두 번째로 같이 출연하게 되었다. 같은 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에서 잭 니컬슨과 같이 호흡을 맞췄다. 영화도 명작으로 평가 받았고 흥행도 성공했으나 촬영 당시 폴란스키와의 불화로 인해 더욱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에 <콘돌의 3일>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호흡을 맞췄다. 이듬해 시드니 루멧 감독의 걸작 <네트워크>에서 다이애나 역으로 열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작은 거인>도 대표작 중 하나다.
1981년에는 <친애하는 어머니>에서 전설적인 여배우 조운 크로퍼드를 연기했다. 개봉 당시 작품과 연기 평 모두 매우 좋지 못했고 이 영화로 골든 라즈베리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전성기가 끝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흥행은 성공하였으며 특히 옷걸이로 자식들을 학대하는 장면은 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는 주로 독립영화나 TV시리즈에 출연하였다.
3. 주요 출연작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
-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1968)
- 삼총사 (1973)
-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
-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
- 네트워크 (1976)
- 챔프 (1979)
- 아리조나 드림(Arizona Dream) (1993)[2]
- 잔 다르크 (1999)
- 더 야드 (2000)
- Changing Hearts (2002)
- 예수는 역사다 (2017)
4. 여담
- 완벽주의자라서 주변 동료들과 충돌이 많았던 편인데, <차이나타운> 촬영 당시 로만 폴란스키와의 불화는 꽤 유명할 정도. <친애하는 어머니> 제작진이나 베티 데이비스도 극혐하는 반응을 내놓았는데, 시드니 루멧이나 일리어 커잰처럼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옹호해주는 사람도 많다.
- 워렌 비티와 함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번복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작품상 시상자로 나섰던 둘에게 스태프의 실수로 잘못된 발표지가 전해졌는데 ('여우주연상 수상자: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고 적힌 발표지가 폐기되지 않고 전달되었다), 베이티는 이걸 읽고 혼란스러워하다가 더너웨이에게 보여줬고, 더너웨이는 영화 이름만 보고 착각해 "수상자는 라라랜드"라고 잘못 발표해버렸다. 정작 잘못된 이름을 발표한 것은 더너웨이였는데 "베이티가 이름을 잘못 읽었다"라고 알려지는 바람에 베이티에게 비난이 집중되기도 했다. 물론 근본적으론 두 사람보다 스태프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