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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6:31:47

키가미 요시지

키가미 요시지
[ruby(木上, ruby=きがみ)][ruby(益治, ruby=よしじ)] | Yoshiji Kigami
파일:키가미요시지.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필명 미요시 이치로([ruby(三好, ruby=みよし)][ruby(一郎, ruby=いちろう)])
타다 후미오([ruby(多田, ruby=ただ)][ruby(文男, ruby=ふみお)])
출생 1957년 12월 28일
오사카부
사망 2019년 7월 18일 (향년 61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모모야마마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연출가, 애니메이터
활동 기간 1979년 ~ 2019년

1. 개요2. 경력3. 특징4. 인맥5. 작품
5.1. 감독5.2. 참여작
6. 작화 샘플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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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당 영상 5분 30초경 등장

일본애니메이터. 연출. 애니메이션 감독.

2. 경력

오사카부 출신, 어린 시절 디즈니,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애니메이터를 지망했다. 도쿄도내의 모 디자인전문학교 졸업 후 1979년 신에이 동화에 입사. 당시 신에이 동화에서 작화감독을 하던 애니메이터 혼다 토시유키(本多敏行)는 그가 가져온 포트폴리오를 본 순간 정확한 데셍과 레이아웃 개념이 잡혀있어 천재라고 생각했으며 얘는 무조건 뽑아야 한다고 회사에 타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괴물군에서 자신의 원화의 동화를 그리게 시켰는데 혼다의 원화를 따라 그리지 않고 멋대로 수정하거나[1], 예정에 없던 새로운 동화를 넣어 아예 새로운 움직임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이 그린 것 보다 뛰어나서 뭐라 혼낼 수가 없었다고. 그때 혼다는 키가미는 경력이 많은 자신보다 훨씬 잘 그리고 더 가르칠 게 없는 천재라는 걸 실감하고 동화는 몇 번만 시키고 원화로 바로 올려주었다고 한다. 혼다는 1982년 후쿠토미 히로시와 함께 '애니멀 가게' 라는 작화 하청 전문 회사를 만들어 독립하는데 이때 키가미도 설득해서 영입했다. #

키가미 요시지는 여러 회사의 일을 계속 했으며 이때 도라에몽 구 극장판 시리즈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서 명장면을 다수 담당하였다. 정돈된 레이아웃, 부드러운 움직임, 자유롭게 돌아가는 회전 작화까지 그의 실력은 애니메이터 사이에선 천재라 불리웠다.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라이벌로 생각했으나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도 인정한 실력파.

이후 1991년에 교토 애니메이션으로 이적했으며 이때부터 연출가로 전향했다. 쿄애니에선 후배의 육성에도 힘썼으며 성격 자체는 겸손하고 유순한 편이나 일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교토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제작사로 창업하기 이전인 1990년대 말부터 왕래하며 기술을 전수해 현재 교토 애니메이션의 작화기술은 대부분 키가미 요시지가 전수한 것이라고.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교토 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자로, 그의 명성은 타 제작사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특히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시리즈의 액션 씬, Free!의 수영 씬, 울려라! 유포니엄의 연주 씬 등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고난도의 에피소드에서 주로 활약하며 사람들에게 쿄애니 퀄리티를 각인시켰다. 스태프롤에 크레딧하지 않고 일부 장면 콘티나 원화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어도 오히려 끝없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에 희생되어 세상을 떠났다.

3. 특징

파일:교애니회전1.gif
파일:교애니회전2.gif
파일:교애니회전3.gif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카메라 앵글이 회전하는 연출은 대부분 키가미 요시지가 연출 및 감수를 담당하였다. 회전 작화는 작화 기술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에 들어가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술이다. 3D로 오해할 수 있으나 배경 외엔 2D 손작화다. 돌릴 때 그림의 선이 단 하나도 틀어지지 않고 일정하게 이어져야 저런 화면이 나온다. 심지어 옛날 3D 배경이 없던 시절부터 캐릭터와 함께 배경까지 회전시키는 엄청난 기술을 보여줬다. 더 대단한 건 이게 오랜 시간 연습해서 나온 것이 아니고 데뷔 초기작인 괴물 군 때부터 돌렸다는 것이다. 천부적인 감각이었던 것이다.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연출과 작화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으나 각본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말을 듣지 못했다.[2] 쿄애니에선 첫 감독작인 MUNTO 이후 단편작만 감독을 맡았다.

연출, 콘티를 할 때는 미요시 이치로 (三好一郎), 원화나 작화감독을 할 때는 타다 후미오 (多田文男) 같은 가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 말로는 절대 자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티가 확 나서 아무도 믿지 않는다. 키가미 요시지가 콘티, 연출을 담당한 에피소드는 작화 쇼 에피소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기 어려운 물체가 잔뜩 나오거나, 그리기 어려운 액션, 부드러운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프로레슬링의 광팬으로 간혹 이야기의 흐름과 전혀 관계없는데 프로레슬링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괴물군에서는 작가에게 허락도 안 받고 프로레슬링 장면을 넣었는데 굉장히 잘 그려서 원작자가 오히려 좋아했다고. 풀메탈 패닉 후못후 7화에서도 프로레슬링이 나오며 일상에서는 사슴에게 백드롭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의 특유의 회전 연출도 프로레슬링의 영향이 크다.

4. 인맥

스승은 혼다 토시유키(本多敏行). 키가미와 똑같이 프로레슬링과 술을 좋아해서 키가미와 매우 친했다고 한다. 혼다도 회전 작화의 달인이다. 혼다는 반쯤 은퇴 상태였지만 2024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키가미를 위해 키가미가 수십년 전에 그린 유일한 그림책 '작은 잼과 고블린 옵'(小さなジャムとゴブリンのオップ)을 직접 애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젊은 시절엔 후쿠토미 히로시 감독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감독은 회전과 배경동화 연출을 즐겨 썼는데 키가미 요시지는 이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신입이 입사하면 일단 키가미에게 뭔가 배우는 게 기본이라 제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키가미가 살아있을 때 교토 애니메이션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제자라 봐도 될 것이다. 엄격하지만 인격자라 많은 제자들이 그를 스승이라 부른다.

5. 작품

5.1. 감독

5.2. 참여작

6. 작화 샘플

극도로 정확하게 그려서 CG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작화와 회전에 주목.
작화 모음
초인 로크(1984)
감독 후쿠토미 히로시 / 레이아웃 작화 키가미 요시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9 OP
콘티, 연출, 작화 키가미 요시지
이 영상은 3D CG가 아니다.
[nicovideo(sm5849957)]
MUNTO 하늘을 올려다본 소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세계 OP
콘티, 연출 키가미 요시지 / 작화감독 아라타니 토모에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연 OP
콘티, 연출 이시하라 타츠야 / 작화감독 이케다 카즈미
원화 키가미 요시지, 호리구치 유키코
52초부터 키가미 작화
파일:external/pds21.egloos.com/c0014355_554995666f847.gif
울려라! 유포니엄 5화 中
파일:유포니엄 12화.gif
울려라! 유포니엄 12화 中
바이올렛 에버가든 CM 영상1
콘티, 연출 이시다테 타이치 / 작화감독 타카세 아키코
원화 키가미 요시지, 카도와키 미쿠

7. 기타

교토 애니메이션을 퇴사한 이후 오만해진 야마모토 유타카에게 거의 유일하게 애정어린 연락을 유지하며 스승님으로 불렸던 인물인데[7], 그런 요시지조차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었다고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제자의 오만함에 질렸는지 '이런 걸 하려고 애니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간접적인 일침을 날린 일화가 있다[8].

그러나 야마칸은 스승의 사후 스승의 이름을 반오타쿠 운동에 팔아먹는 배은망덕한 배신행위로 보답한다. 스승이 죽기 전엔 이용하지 않다가 죽은 지 한 달밖에 안 지나 이용한 것으로 보아 겉으로 고개를 숙여놓고 빈틈이 보이면 배신할 수도 있는 불순한 의도가 명백해진다. 스승 본인이 바란 적이 있는지 의문인 반오타쿠 운동을 제자인 야마칸이 관심법으로 추측만 하여 잇겠다는 것은 스승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술을 매우 좋아해서 말술을 마셔댔으며 타카하시 료스케는 "저놈은 (술을 저렇게 마시니) 죽을 때 곱게 가지 못할 것 같다." 라고 농담을 했었다고 한다. 키가미의 스승 혼다 토시유키는 키가미가 죽은 뒤 "좀 다르지만 그 말대로 되어버렸다." 라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1] 당연하지만 원래는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다.[2] 전반적으로 내용이 재미없다는 평이 많다. 스토리텔러로써는 재능이 없었던 듯.[3] 교토 애니메이션 제3회 감사제용 단편작. 쿄애니 제1스튜디오를 모티브로 한 듯한 한 애니메이션 회사에 사는 햄스터 바쟈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4] 이후 바쟈는 쿄애니의 마스코트 격 캐릭터로 종종 사용되고 있는데, 이 또한 과거 쿄애니에서 기르던 고양이 쿠로이(黒井)에서 모티브를 딴 것일지도.[5] 교토 애니메이션 제4회 감사제용 단편작.[6] 당시 감독인 후쿠토미 히로시와 같은 회사에 있었다.[7] 러키스타 후임 감독 타케모토 야스히로와도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8] 야마모토 유타카 본인이 직접 밝힌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