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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1:31:36

카타오카 니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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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 가문의 문장 나나츠와리마루니 니인(七つ割丸に二引)

1. 개요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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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타오카 니자에몬(片岡仁左衛門)은 간사이를 연고지로 둔 가부키 명문가 카타오카 가문의 당주가 잇는 세습명이자 명적이다. 야고는 초대와 2대는 불명, 3대부터 5대가 토사야 (土佐屋), 6대가 토미마스야 (富桝屋), 7대부터 당대가 마츠시마야(松嶋屋)이다.

당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15대일 정도로 350년이라는 유래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름이 갖고 있는 입지와 명예 또한 가부키계에서 선망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이 세습명을 잇는 배우는 가문에서 특히 장래를 촉망받고 가부키 배우로서의 연기력이 수준급에 달해야만 하는 인식이 있으며 이전의 계보를 보면 실제로 그러하다.

다만 어느 가문이나 비슷하겠지만 사실 가부키에서 세습명을 이은 인물이 많다는 것은 과거에 세습명의 명적 처리를 제대로 못한 것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카타오카 니자에몬 역시 야고가 세 번에 걸쳐 나눠져 있듯, 선대 배우와의 관계가 조금 복잡한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워낙 유명하고 뼈대 있는 명적이다 보니, 니자에몬을 이은 배우가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 아끼는 방자에게 보관 명적으로 이어둔다거나, 먼저 타계한 자신의 형이나 동생에게 사후 세습명으로 추존하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명적을 추존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배우가 당시 업계에서 뛰어난 배우여야만 가능했기에 역대 니자에몬들이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남성 역의 타치야쿠, 여성 역의 온나가타, 여러 일본 무용에서 전부 최고도달점에 섰으며 여러 기네스북 기록과 일본 예술회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는 당대인 15대도 마찬가지이다.

'간사이 가부키 명문가 마츠시마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가문의 배우 대부분이 교토부, 나라현, 오사카부 출신으로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가문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간혹 습명 행사나 다른 가문의 피로 공연을 위해 도쿄를 오가기도 하지만 여러 사연이 있기에 가문의 배우들은 공연 때문에 잠깐 지내다가 공연이 끝나면 급히 간사이로 돌아가는 편이다.

이는 도쿄가 본고장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도쿄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한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초대와 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과 7대부터 당대의 니자에몬이 추존을 포함하여 실제 세습명으로 인정받은 경우이며 3대부터 6대는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동시 명적, 보관 명적으로 쓰였기에 기록상으로 표기해둔 것에 가깝다.

[1] 본명은 호리코시 하루오. 훗날 나리타야의 양자로 입적되며 11대 이치카와 단쥬로를 지낸 인물이다. 현 나리타야의 당주인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친조부.[2]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회고록과 14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문하생의 회고에 의해 밝혀졌다.[3] 사실 가부키계에서 온나가타만 일평생 연기한 배우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꽤나 되며 간혹 남성을 밝히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다. 본인 의지로 결혼을 안 한 배우는 2대 나카무라 코산자와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가 있으며 실제로 남성을 밝혀 자신의 어린 제자를 성추행한 5대 반도 타마사부로가 있다.[4] 특이 케이스에 속하는데 가부키계에서는 장남이 가부키를 그만두거나 요절하는 것이 아닌 이상, 조금이라도 일찍 배웠으며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장남에게 세습명을 물려주는 장자 직계 세습을 암묵적으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자신의 아들들 중 누가 니자에몬의 세습명을 습명받기에 적임자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