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개발이 시작된 일본군의 프로토타입 중형전차이다. 89식 중전차의 후속으로 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치니와 가격과 생산성보다는 성능에 중점을 둔 치하가 경합을 했는데 치하가 치니를 꺾고 채용된다. 그렇다고 군에서 값싸고 대량생산 가능한 컨셉을 버린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계속되어 1939년(황기2699년)에 완성되었다. 개발년도에 맞추면 99식이어야 겠지만 개발자들은 그냥 98식이라고 불렀다.
이 전차의 상당히 혁신적인 면이 많다. 일단 포탑이 치하와 비슷한데 약간 차이는 있어서 큐폴라와 후방 기총이 없다. 후방기총은 없지만 동축기관총까지는 아니어도 포탑 왼쪽에 기관총이 장비되어있었다는 것이 꽤 확실시 되고 있다.. 일본군은 포탑을 너무 작거나 기묘하게 만들어서 기관총을 포탑 옆구리나 뒤에 장비하던가 아예 장비를 안했다. 또 무장으로 당시 일본군 최강 대전차포 98식 47mm 전차포를 장비했다. 이 포가 훗날 치하에 장비되는 1식 47mm 포의 프로토타입이다. 당시 일본 중형전차는 보병이나 지원하라고 관통력이 끔찍한 57mm 포를 달았는데 치호는 어느정도 전차전을 고려하고 만들었나보다. 그도 그럴것이 일단 일본군은 노몬한에서 소련군 전차에 신나게 얻어 터졌고 멀리 유럽 폴란드에서 일어나는 일도 들었기 때문에 전차전을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환상의 전차도 아니었던것이 일본군은 탄띠식 기관총이 아니라 20발짜리 보탄판을 사용하는 기관총을 썼다. 동축기관총을 달아도 충분한 화력을 쏟을 수 없다. 그리고 구시대적인 '썰매'가 장비되어있었다.
후방에 '썰매'를 장비한 르노 FT
참호를 넘어다닐때 빠지지 말라고 장비하는 것이었는데 이걸 다는 순간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 일단 당연히 전체 길이가 길어져서 수송이 힘들어진다. 무게도 무거워질 뿐더러 뒤쪽에 무게가 쏠려 현가장치에 무리가 가고 오히려 넓은 참호를 건널때 빠질 위험이 늘어난다.
그리고 무게 제한이 꽤 빡빡해서 장갑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가 없었다. 전차장용 전망탑도 없으니 시야도 많이 제한된다. 여러 혁신적인 요소들이 있었지만 결국 치하의 하위 호환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고 군부가 치하의 생산에 집중하면서 채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차대전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 전차들의 수준을 2차대전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기술적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