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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Cherokee체로키어: ᎠᏂᏴᏫᏯ(Aniyvwiya)[1]
오늘날 미국에 남아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 중 가장 큰 민족이다. 인구수 총 32만 명. 미국 중남부 지역(특히 오클라호마주) 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언어로는 체로키어를 사용한다.
체로키의 정확한 어원은 모두 부정당해 현재 불명이다.
2. 역사
2.1. 중세
테네시 동부지역과 노스캐롤라이나/사우스캐롤라이나 서부지역[2]에서 살았다. 원래 오대호 주변에 살았으나 델라웨어족과 이로쿼이족에게 패한 후 남쪽으로 이주했다. 1650년에는 약 22,500명의 인구가 애팔래치아 산맥의 10만 ㎢에 이르는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붉은(전쟁)도시와 흰(평화)도시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추장도 전쟁추장, 평화추장으로 따로 뽑았다.2.2. 근대
18세기에는 영국과의 교류와 교역, 군사 협력으로 번성했지만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영국 편을 들고 캐발리면서 새로 들어선 독립 미국 정부에게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는 앤드루 잭슨(후에 대통령이 됨) 장군과 협력하여 크리크 족과 호스슈벤드 전투 등에 참전하는 등 백인에 우호적이고 그들의 문물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당시 원주민 부족들 가운데 플로리다의 세미놀 족과 함께 가장 서구인들 눈에 '문명화'된 부족이었으며 기술문물의 도입과 발전된 농경기술(플랜테이션 목화 농장), 삼권분립 된 정부체계, 그리고 고유의 문자 체계(세쿼야)등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심지어 신문(1828년 "체로키 피닉스")과 흑인 노예제도도 갖추고 있었다.[3] 무려 100명 이상의 노예를 갖춘 집안도 있었다.
2.2.1. 수난
그러나 그런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183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체로키족은 사법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미시시피 강 동쪽으로 확장하려는 조지아 주에 부정적인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의해서 파괴 작업이 강행되었다.[4] 결국 오클라호마 주로의 강제 이주 과정(1838년 가을~ 1839년 봄의 "눈물의 길")에서 모든 근거지를 잃고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극소수로 체로키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던 백인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 작사자로 유명한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 있는데 미 의회에 잭슨에 대한 탄핵안까지 청원하며 잭슨을 비난하고 강제 이주를 막으려고 했으나 끝내 막지 못했다. 조국에 대하여 실망한 페인은 미국을 떠나 살아 생전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시체나마 나중에라도 조국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겨 30년 넘게 지나서야 시신은 미국으로 돌아왔다.남북 전쟁 뒤인 1866년 미국 중앙정부와 체로키족이 맺은 협약에 따라 체로키의 흑인 노예가 해방됐다. 해방 흑인 외에 당시 체로키족과 결혼해서 살던 자유 흑인도 있었다. 모두 합해 대략 1천 명쯤 됐다고 한다. 이들은 이후 대부분 준자치정부인 체로키민국(Cherokee Nation)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2.3. 현대
오늘날에도 체로키 자치정부(인구 25만~29만 명, 실 국민 17.5만 명 추정)가 존재하며, 미 연방 정부도 체로키 정부의 주권, 자치권을 존중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정부가 있는 만큼 제도나 체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미국의 원주민 부족들 중에서 가장 잘 살고 있다.한편 오클라호마 주의 동부지역에 사는 체로키족의 후손("동부 체로키족")은 약 47,000 명이며 그 중 순수 혈통은 약 13,000 ~ 15,000명이다. 1838년 이주 시기에 산악지대로 도망갔던 수백 명의 체로키족은 노스캐롤라이나 서부지역에 살고 있는 3,000 명의 체로키족의 핵심이 되었다.
2011년 체로키 부족정부는 주민투표에서 76%의 찬성으로 흑인들의 부족원 자격을 박탈했는데 2010년 체로키 부족연방재판소가 흑인들의 부족원 자격을 인정한 것을 다수의 힘으로 뒤집었다.[5] 2011년 1월 체로키 부족의 법원은 2007년 constitutional amendment는 1866년의 자유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약과 충돌한다고 하여 무효임을 선언했다.
3. 체로키 혈통 유명인
참고로 예시로 든 이들은 모두 백인 외모를 가진 혼혈이다.이중 그나마 조니 뎁이 가장 체로키 얼굴에 가깝다. 정확히는 그냥 하프나 쿼터의 개념이 아니라 고조 할아버지가 체로키족이었다던가, 여기저기 별의별 혈통이 다 섞인 다국적 혼혈. 즉,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1] 체로키어 v는 비모음 /ə̃/ 발음을 나타내므로 발음은 '아니영위야'에 가깝다. 영어 이름인 Cherokee는 체로키어로 체로키어를 뜻하는 ᏣᎳᎩ (Tsalagi)에서 나왔다.[2] 스모키 마운틴 지역에 해당한다.[3] 체로키족이 플랜테이션과 흑인 노예제를 행한 이유는 체로키족의 '문명화'가 버지니아주를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4]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체로키족이 거주하던 곳과 근접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산간지역 스카치 아이리시 개척민 집안 출신인데 체로키족을 쫓아내고 개척지를 확대하길 원하던 당시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의 스카치 아이리시 이주민 집단과 같은 감성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러한 짓을 저질렀다.[5] 세미놀족도 2000년 투표로 흑인을 구성원에서 내쫓았다. 카지노 운영권을 회수하겠다는 연방정부의 압력에 따라 세미놀족은 자신들의 결정을 결국 취소했다.[6] 다만 이후에는 코만치족의 일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