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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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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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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트위터 추모 리본 이모지.svg 세월호 사고 일지/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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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라인2. 상세

1. 타임라인

4월 24일
3시 17분정조 시각(만조)
10시 17분정조 시각(간조)
11시 경시신 4구를 수습하였다.#
12시 53분경시신 5구를 수습하였다.#
13시 경실종자 가족들이 정부 관계자에게 수색 작업에 대해 항의했다.
14시 19분경시신 3구를 수습했다.#
16시 35분경실종자 가족들이 정부 관계자와 몸싸움을 벌였다.
16시 38분정조 시각(만조)
17시 경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실종자 가족 간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18시 45분경4층 선미 중앙객실에서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하였다. #
19시 경시신 3구를 수습했다. #
21시 50분경탈출 승무원 11명을 구속했다. #
21시 52분정조 시각(간조)

2. 상세

오전 10시 브리핑에서 자원봉사자의 구조작업참가를 제한하겠단 발표를 하였다. 이유는 봉사자들이 잠수를 해도 별로 버티질 못했거나 참가는 하지 않고 사진이나 찍는 등 구조에 도움을 준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편, 민간 잠수사 측에서도 해경과 소통에 문제가 있어 상당수가 철수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사고 사실을 신고한 학생이 24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를 의사자로 지정할 것인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당시 구출된 6세 여아의 어머니가 사망자 중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발견된 사망자 중에서 구명조끼를 서로 묶어 같이 발견된 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두 시신을 발견한 잠수사는 일단 하나를 먼저 수습하려고 했는데 되지 않아 결국 동료들을 불러 둘을 같이 수습했다고 한다.인터뷰 내용

4월 21일부터 시작된 소조기의 마지막 날로, 오후부터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하기에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해군은 24일 여명 이후 조명탄 900발을 동원한 총력전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이 소조기 동안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분노해서 정부 관계자와 몸싸움을 벌였고, 오후 5시부터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17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자세한 건 이쪽의 내용을 참고.

비상 상황이라 투입된 크랩스터가 세월호 진입은 실패했으나, 초음파 촬영에 성공해 세월호가 어떤 형태로 침몰한 상태인지 자료를 보내왔다.

논외이긴 하지만 모신문사의 사진기자가 사고당일부터 23일까지 1주일간 취재를 했는데, 본사로 복귀 후 돌연사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