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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춘추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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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기타4.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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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춘추시대

춘추시대 때 세워진 이민족인 백적(白狄)족의 일파인 선우부(鮮虞部)가 세운 국가. 수도는 고(顧)였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영수(靈壽)로 옮겼다. 특이하게도 오(吳)처럼 군주의 성이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姬姓)이어서 군주는 주나라 출신의 화하족계이고, 백성들은 토착민인 백적으로 구성된 국가로 추정된다. 중산과 관련이 있는 걸로 보이는 중국 선우씨의 기록으로는 상나라 기자의 후예인 자성(子姓)라고 되어 있으며 실제로 허베이성 스자좡시에서 발굴된 중산의 유적에서 상나라 계통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태행산맥 서쪽에 있었으며 진(晉)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1] 결국 태행산맥 동쪽으로 쫓겨났다.

2.2. 전국시대

기원전 414년에 중산무공이 사람을 이끌고 태행산맥을 넘어 영수(靈壽)에 정착하나 기원전 408년부터 기원전 406년까지 3년에 걸친 위(魏)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기원전 380년에 중산환공이 즉위하여 재건하고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조(趙)나라, 연(燕)나라를 공격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지만 결국 기원전 300년대부터 호복기사를 도입하며 국력을 강화한 조나라에게 연이어 패하면서 국력이 급속도록 쇠퇴하였으며, 끝내 기원전 296년에 거진 멸망해버린 중산을 괴뢰국화했던 조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3. 기타

중산이 망한 후, 중산의 왕족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에 의해서 현 산서성 태원(太原)으로 이주당하고, 진나라가 망하자 현 호남(湖南), 호북(湖北), 강서(江西)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성을 이(易)씨로 바꾼다.

중산의 궁전 유적이 발굴되어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을 때, 이민족 국가이어서 그런지 낮은 기술력으로 커다란 건물을 짓기 위해서 흙산을 쌓고 그 위에 전각을 만드는 공밀레 공법을 썼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나라가 망할때 "양고기국을 균등하게 나눠주지 않아 나라 잃는 해를 당했다.(羊羹有不均之害)"는 고사가 유명하다. 전국책에 따르면 중산왕 절차가 나라의 사대부들과 명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사람도 초대를 받아 참석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양고기 국을 나눠주다 준비했던 양고기가 부족해 마침 사마자기 앞에서 양고기 국이 떨어져 그의 몫은 없었다. 사마자기는 무시당한 것 같아 몹시 불쾌해 하였고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원한을 품은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난 뒤 초나라로 건너가 초왕에게 중산국의 약점을 알려주며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것을 부추기며 권했고 곧 소국인 중산국은 초의 공격으로 패망하였다. 절차 왕은 국외로 도주하였는데, 왕이 변장을 하고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니 평소 믿었던 신하들은 모두 흩어져 사라졌고 생각지도 못했던 병사 두 사람만이 창을 들고 뒤에서 자신을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절차왕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과인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창을 들고 나를 따라오고 있는가?'라고 묻자 그 두사람이 말하길 "저희들은 친형제인데, 옛날 저희의 아버님께서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됐을 때 임금께서 갖고 있던 식은 밥을 나눠 주시어 목숨을 건진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실때 '혹시 중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은 목숨을 걸고 그 은혜를 갚으라'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절차왕이 탄식하여 답하길 "남에게 베푸는 것은 양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어려울때 돕고, 상대에게 원한을 사게 하지 않아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게 중요하구나. 내가 한 그릇의 양고기국 때문에 나라를 잃었지만 한 그릇의 식은 밥 때문에 두 용사를 얻었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은 전국책만의 기록이고 실제로 절차왕은 다른 기록에선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한후에 제나라에 망명했다고만 기술되어 있어서, 이 이야기는 일종의 설화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남에게 상이나 무언가를 베풀때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평무사한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성 일화로 자주 언급된다.

4. 역대 군주

대수 시호 성명 재위기간
1 문공(文公) 기원전 425년 혹은 424년 ~ 기원전 415년
2 무공(武公) 굴(窟) 기원전 414년 ~ 기원전 405년경
3 환공(桓公) 항(恒) 기원전 406년경[2]
기원전 380년경 ~ 기원전 350년경[3]
4 성공(成公) 약(約) 기원전 349년경 ~ 기원전 328년
5 [4][5] 기원전 327년 ~ 기원전 310년경
6 절차[6][7] 기원전 309년경 ~ 기원전 299년
7 (尙) 기원전 298년 ~ 기원전 296년


[1] 좌전에 중항오가 선우를 공격한 기사가 있다.[2] 중산 환공의 1차 즉위. 위나라 장수 악양(樂羊)에게 멸망.[3] 중산 환공의 2차 즉위. 중산국 복국.[4] 휘의 한자가 상당히 특이한데 興(일 흥)의 윗부분과 중간에 冖(덮을 멱), 밑부분에는 昔(옛 석) 자로 구성된 한자이다. 유니코드에 없는 한자라서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중국어 위키백과에서 봐야 한다.[5] 기원전 325년에 칭왕(稱王).[6] 아버지 중산왕처럼 한자가 특이하다. 절이라는 글자는 妾+子 이고, 차라는 글자는 위아래로 해서 次+虫 자이다. 직접 착 자와 마찬가지로 중국 위키백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7] 이 왕의 대에 중산국의 거의 유일하게 잘 알려진 일화인 사마자기의 양고기국 사건이 일어나 나라가 망한다. 다음 왕 상은 조나라가 병합하기 전 잠시 세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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