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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09 13:38:30

가락동(부산)

죽동동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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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대저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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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의 행정동
가락동
駕洛洞 | Garak-dong
<colbgcolor=#382e87><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강서구
행정표준코드 3360030
관할 법정동 죽림동, 식만동, 죽동동, 봉림동
하위 행정구역 17통 48반
면적 18.95㎢
인구 1,965명[1]
인구밀도 103.69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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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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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가락대로 1476 (죽림동 716-3)
가락동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지명 유래3. 역사
3.1. 가락나라3.2. 삼국시대3.3. 고려3.4. 중세3.5. 근대3.6. 대한민국
4. 행정 구역
4.1. 관할 법정동
4.1.1. 죽림동
4.1.1.1. 지명 유래와 역사4.1.1.2. 여담
4.1.2. 식만동
4.1.2.1. 개요 및 상세4.1.2.2. 지명 유래와 역사
4.1.3. 죽동동4.1.4. 봉림동
5. 주요 시설
5.1. 기관5.2. 교육
5.2.1. 초등학교5.2.2. 고등학교
6. 대중교통
6.1. 버스6.2. 철도

1. 개요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행정동.

옛 김해군 가락면이었으며, 가락이란 지명은 김해에 있었던 고대 나라 금관국(금관가야)의 이칭인 가락나라에서 따온 것이다. 1989년 부산직할시 강서구에 편입돼 가락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동 면적이 매우 넓은데, 부산광역시에서 가락동보다 면적이 작은 기초자치단체는 중구, 동구, 서구, 영도구, 연제구, 동래구, 수영구로 무려 7개나 된다.

2. 지명 유래

가락동(駕洛洞)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서부산 일대를 무대로 번영했던 고대 국가인 가락국(駕洛國), 즉 금관가야의 역사적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지학계 및 국어학계의 학술적 고증에 따르면, 가락의 모태가 된 진짜 순우리말 고유어 이름은 가라 또는 가라말이다. 고대 한국어에서 가라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비옥한 하천 하구의 유기물이 퇴적되어 형성된 검은 색상의 토양을 뜻하는 색상설(검다)이고, 둘째는 상류 중심 세력에서 바라본 남쪽의 방위를 뜻하는 방위설(남방)이다. 실제로 가락동 일대는 낙동강 상류에서 밀려 내려온 비옥하고 검은 미사토 흙이 길게 쌓여 평야를 형성했던 곳이자, 고대 진한 국가들의 남쪽에 위치한 비옥한 땅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관적으로 가라라 불렀다.

이후 관가에서 이 고유어 발음을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고대 금관가야의 권위와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멍에 가 자와 물이름 락 자를 쓰는 가락(駕洛)이라는 지명으로 고착되었다. 일각에서는 한자 락 자를 단순한 물 이름으로 해석하여 갈대가 우거진 강가라는 뜻으로 오인하기도 하나, 이는 문헌적 근거가 약한 자의적 해석이다. 가락국의 한문 표기는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의 비인 허황옥의 출신지로 전해지는 인도 아유타국의 아요디아 고어 발음을 한자로 음차하거나, 중국 고대 왕조의 성스러운 도읍지였던 낙양의 명칭을 차용하여 국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행정적 미화 지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명칭이 조선 시대 김해부 관할의 가락면으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3. 역사

3.1. 가락나라

고대 삼한 시대 변한의 세력을 바탕으로 낙동강 삼각주 하구 전역을 무대로 번영했던 금관가야(가락나라)의 핵심 영토였다. 당시 가락동 일대는 고유말로 가라 또는 가라말로 불렸으며, 낙동강 상류에서 실려 내려온 검고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원시 농경이 발달했던 곳이다. 풍수지리적으로는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허황옥 왕비 세력이 낙동강 하구를 통해 입향하며 해상 무역을 전담하던 주요 관문이자 배후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3.2. 삼국시대

532년 가락나라(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주며 항복함에 따라 신라의 영토로 공식 편입되었다. 신라 조정은 가야의 옛 도읍지 일대에 금관경(소경)을 설치하여 지방 행정의 중추로 삼았고, 가락동 일대 역시 사방이 강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 지형을 바탕으로 신라 수군과 국방의 후방 물류 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삼국통일 시기를 거쳐 경덕왕 연간의 대대적인 한화 정책에 따라 지명들이 한자 표기 체제로 일차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3.3. 고려

고려 시대에 이르러 성종 연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남도 관할의 김해부(金海府)에 귀속되었다. 이 시기 가락동 주변은 서낙동강과 평강천의 물길이 복잡하게 갈라지며 대사리, 죽림리, 식만리 등 거대한 하중도(모래톱 섬)들의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천 하구의 수려한 어업 자원과 비옥한 삼각주 평야를 바탕으로 김해부의 주요 군량미 공급원 역할을 수행했으며, 낙동강 나루터를 중심으로 관가와 주민들의 물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3.4. 중세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김해부 관할의 주동면과 덕도면 일대에 나누어 속해 있었다. 조선 후기 공식 관찬 문헌인 동래부지(1740)와 김해부읍지(1832) 기록을 보면, 당시 가락동의 모태가 된 제도마을은 사방이 거센 강물로 둘러싸여 배를 타고 건너야만 진입할 수 있었던 고유어 이름인 건너섬으로 불렸다. 또한 홍수 때마다 상류에서 밀려온 모래가 쌓여 형성된 큰 모래개 들판(대사마얼) 등 정겨운 순우리말 자연 부락들이 대거 형성되어 벼농사와 미나리 재배를 주업으로 삼아 조용히 역사를 이어왔다.

3.5. 근대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인 1914년 총독부의 대대적인 부군면 통폐합 및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주변의 대사리, 죽림리, 식만리, 봉림동 등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금관가야의 옛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뜻을 살려 김해군 가락면(駕洛靣)으로 공식 명칭이 확정되었다. 1930년대에는 일제에 의해 낙동강 대제방(둑) 축조 공사가 대대적으로 단행되었는데, 이 공사로 인해 과거 물길에 가로막혀 있던 거대한 하중도들이 안팎으로 완전히 갈라지며 육지화되는 지형적 대전환을 맞이했다.

3.6. 대한민국

해방 이후 전형적인 서부산의 농촌 지역이자 김해평야의 화훼 및 미나리 재배 거점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8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8872호에 의거한 부산직할시 구역 확장 정책에 따라 김해군 가락면 관할 구역(대사리, 죽림리, 식만리, 봉림리)이 부산시 북구로 편입되면서 최초로 부산 관할의 법정동인 가락동이 탄생했다. 이후 1989년 강서구가 자치구로 분리 신설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남해고속도로 가락IC와 가락대로를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구축되었으며, 인근 지사과학단지 및 에코델타시티 개발과 연계되어 서부산권의 첨단 산업과 물류를 받치는 중추적인 배후 거점 도시로 지속해서 도약하고 있다.

4. 행정 구역

4.1. 관할 법정동

4.1.1. 죽림동

강서구의 법정동
죽림동
대밭골
竹林洞 | Jungnim-dong
<colbgcolor=#382e87><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강서구
행정표준코드 2644010500
관할 행정동 가락동
면적 2.00㎢
4.1.1.1. 지명 유래와 역사
죽림동(竹林洞)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과거 이 지역에 대나무 숲이 울창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김해부읍지(1832)와 영남읍지 같은 조선 시대 문헌을 보면 본래 김해부 가락면에 속해 있었으며, 낙동강 삼각주 서쪽에 있던 하중섬(모래톱 섬) 형태의 평야 지대였다.

한자 이름이 쓰이기 전부터 주민들이 부르던 순우리말 이름은 대밭골 또는 대숲말이었다. 과거 낙동강 하류 삼각주 서쪽이었던 이 일대는 홍수를 막기 위해 강가 주변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랐다. 주민들이 이 대나무로 바구니를 짜거나 낚싯대를 만들어 생계를 이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대숲말이라 불렀고, 조선 후기 관가에서 이를 행정 문서에 기록하면서 대나무 죽 자와 수풀 림 자를 쓰는 죽림이 되었다.

낙동강 서쪽 지류와 평강천 사이의 평야 지대인 만큼 농경과 관련된 옛 자연 부락 이름들이 전해진다. 중심 부락인 대장마을은 대나무의 크기와는 관련이 없고, 진짜 순우리말 이름은 대장간 마당 또는 철점마을이었다. 조선 시대에 낙동강 삼각주 들판을 개간하기 위해 농기구를 만들고 고치던 대장간이 이 동네에 많이 모여 있어서 대장간 마당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바뀌면서 대장마을이 되었다. 또한 평강천 물줄기가 구불구불 흐르는 길목에 있어서 주민들이 가물하라 부르던 자연 부락도 있었으나,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낙동강 대제방 공사로 주변이 개간되면서 사라졌다.

조선 시대 내내 김해부 관할의 농업 지대였으며,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주변 마을들을 합쳐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가 되었다. 이후 1978년 2월 15일 부산직할시 구역 확장 정책에 따라 김해군 가락면 죽림리가 부산시 북구로 편입되면서 최초로 법정동인 죽림동이 되었다. 1989년 강서구가 신설되면서 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관할 법정동이 되었다.

과거에는 대나무와 갈대밭이 우거진 농촌이었으나, 현대 들어 서부산 개발과 함께 주거 및 산업 배후지로 바뀌고 있다. 동네 동쪽으로 평강천이 흐르고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 가락대로와 가까워 물류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현재는 평야를 중심으로 가락 쌀이나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농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근 에코델타시티나 지사과학단지 개발과 연계되어 배후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4.1.1.2. 여담
배우 송강호의 고향으로 와전되기도 하나 사실이 아니다. 송강호는 과거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서 태어나 자란 것은 맞지만, 상세 법정동은 죽림동이 아니라 옆 동네인 대사리(현 강서구 대사동) 출신이다. 그의 본가와 유년 시절 터전은 모두 대사리 일대이며, 과거 가락면 산하 행정 구역을 혼동해 생긴 오기다.

4.1.2. 식만동

강서구의 법정동
식만동
식만골
食滿洞[2] | Singman-dong
<colbgcolor=#382e87><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강서구
행정표준코드 2644010400
관할 행정동 가락동
면적 2.54㎢
4.1.2.1. 개요 및 상세
부산광역시 강서구 최북단 끝자락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있어 사실상 부산 시민들도 이런 동네가 있는지 잘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강서구 지역의 부산 편입 과정에서 경계를 명확하게 조정하지 않은 탓에, 경상남도 김해시 활천 46통 지역의 몇몇 주택들은 식만동 구역까지 주택 부지가 밀고 나와 있는 독특한 토지 구조를 보인다.

이 때문에 김해대로 2576번길 선상은 지리적으로 식만동 경계를 넘어와도 행정 구역상 김해시 어방동 주소를 그대로 사용하는 복잡한 경계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서 북쪽 위쪽으로 넘어가면 경상남도 김해시 불암동과 부산김해경전철 불암역이 바로 나온다.

대중교통이나 시가지 연계 측면에서는 부산 중심가보다 김해 동부 권역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편이다. 다만 최근에는 평강천과 서낙동강 수변을 배경으로 여러 대형 찻집과 문화 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유동 인구와 인지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4.1.2.2. 지명 유래와 역사
식만동이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존재했던 대표적인 자연 부락인 식만마을에서 유래했다. 김해부읍지(1832) 등의 조선 시대 문헌을 보면 본래 김해부 가락면에 속했던 지역이며, 낙동강 삼각주 서쪽 평강천 서편에 위치한 유서 깊은 하중섬 지대였다.

한자 이름이 쓰이기 전부터 전해오던 고유 순우리말 이름은 식만마을 또는 식만이었다. 지명학적 고증과 언어학적 분석에 따르면, 식만이라는 명칭은 순우리말 고어인 식과 만의 어휘적 뜻이 한자로 결합한 전형적인 지형 미화 지명이다.

어원 분석을 살펴보면 고유어에서 식은 물가나 벌판에 넓게 형성된 평평한 땅을 뜻하는 직 또는 실(골짜기나 벌판)에서 음이 변형된 형태다. 뒤에 붙은 만은 물길이 굽이쳐 들어와 잔잔하게 고이는 포구나 강가의 아늑한 구석 자리를 일컫는 순우리말 마지 혹은 만의 고유어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즉, 한자 이름이 쓰이기 전 주민들이 부르던 진짜 순우리말 뜻은 낙동강 물길이 아늑하게 감싸 흐르는 평평하고 넓은 벌판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후 조선 후기 관가에서 이 고유어 발음을 행정 문서에 수록하면서 음이 같은 한자를 빌려 적게 되었다. 이때 단순히 소리만 따온 것이 아니라, 낙동강이 실어 나른 비옥한 퇴적 토양 덕분에 농사가 유독 잘되어 가뭄이나 흉년이 들어도 먹을거리가 풍족하고 가득한 동네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였다. 이에 따라 먹을 식 자와 가득할 만 자를 쓰는 식만(食滿)이라는 한자 지명으로 미화되어 행정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평강천 물길을 끼고 있는 평야 지대인 만큼 전통 농경 및 지형과 관련된 옛 자연 부락 이름들이 함께 전해진다. 중심 부락인 식만마을은 평강천 서편 벌판에 형성된 전통적인 집성촌이며 가락 쌀과 대파 등 시설 원예 농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또한 과거 식만동과 인근 지역을 잇는 길목에 오리나무가 우거진 정자가 있었다 하여 주민들이 순우리말로 오리정이라 부르던 오리정마얼도 존재했는데, 옛날 나그네들과 농민들이 쉬어가던 교통의 길목이었다.

조선 시대 내내 김해부 관할의 농업 지대였으며,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주변 부락들을 통합해 김해군 가락면 식만리가 되었다. 이미지 제방 공사 이후 지형이 정비되었으며, 1978년 2월 15일 부산직할시 구역 확장 정책에 따라 김해군 가락면 식만리가 부산시 북구로 편입되면서 최초로 법정동인 식만동이 탄생했다.

1989년 강서구가 신설되면서 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관할 법정동이 되었다. 드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대파, 땅감, 가락 쌀 등을 재배하는 전통 농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부산권 핵심 신도시인 에코델타시티 및 대형 교통 기반시설 확장 계획 등 주변 대규모 개발 사업의 배후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4.1.3. 죽동동

강서구의 법정동
죽동동
竹洞洞 | Jukdong-dong
<colbgcolor=#382e87><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강서구
행정표준코드 2644010700
관할 행정동 가락동
면적 4.49㎢

4.1.4. 봉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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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의 법정동
봉림동
鳳林洞 | Bongnim-dong
<colbgcolor=#382e87><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강서구
행정표준코드 2644010800
관할 행정동 가락동
면적 9.92㎢

5. 주요 시설

5.1. 기관

5.2. 교육

5.2.1. 초등학교


====# 중학교 #====

5.2.2. 고등학교

6. 대중교통

6.1.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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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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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버스 강서2|강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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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버스 강서6-1|강서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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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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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버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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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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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락동은 부산 시내버스는 아예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과거에는 48번[5]이 세산삼거리까지 들어왔으나 2007년에 준공영제가 시행되면서 폐선되었다. 이후 김해시 시내버스인 4번과 6번만 들어왔었으나 배차간격이 각각 1시간 정도로 좋지 않아 사실상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버스 노선이 없었다.

2023년 강서공영차고지가 개장됨에 따라 부산시는 122번을 신설하여 김해~명지 간 노선으로 운행하게 되었는데 해당 노선이 가락동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죽동, 쇠내, 송산, 봉림 쪽만 지나가며 식만동 쪽은 여전히 부산 시내버스가 경유하지 않아 하술된 강서7-2번 또는 김해 4번을 이용해야 한다. 같은 시기에 출근시간 전용 노선인 55-1번이 개통하여 출근시간에 한해 가락동의 교통을 보조해주고 있었다. 이후 122번의 배차간격이 20~30분대 정도로 줄어들어 이용은 편해졌으나, 아쉽게도 봉림지역은 다니지 않게 되었다.

강서2번의 경우 강동동을 경유하는 노선인지라 사실상 강서7-2번이 가락동을 관할하는 유일한 부산광역시 마을버스 노선으로, 가락동 주민들의 유일무이한 교통편이었다. 이후 강서6번의 개통으로 경유 노선이 늘어났다.

이후 2024년 6월 10일, 강서구 다람쥐버스(소외지역 교통모델)가 개통하였는데 가락동 내부를 거쳐가는 6-1번과 7-1번이 개통되어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배차간격 또한 평일·토요일 기준 45분 주말·공휴일 기준 65분 정도로 강서7-2번에 비해 월등히 짧아서 이용이 훨씬 편리하다.

예전에 비해서 교통편이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6.2. 철도

가락동 내부에 철도노선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부전-마산 복선전철 부경경마공원역의 역명이 가칭 가락역으로 알려졌으나, 가락동이 아닌 녹산동에 위치하여 지명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부경경마공원역으로 확정되었다.

[1] 2026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食은 물가나 벌판에 넓게 형성된 평평한 땅을 뜻하는 직 또는 실(골짜기나 벌판)에서 음이 변형된 형태다. 뒤에 붙은 滿은 물길이 굽이쳐 들어와 잔잔하게 고이는 포구나 강가의 아늑한 구석 자리를 일컫는 순우리말 표현에서 비롯되었다.[3] 1923년 개교한 유서깊은 학교로, 가락동의 인구수 감소로 인해 2027년 에코델타시티 내 에코6초 부지로 이전 개교할 예정이다.[4] 농촌지역인 가락동의 인구 감소로 2022년에 낙동중학교와 통폐합되어 폐교되었으며, 2025년 3월 1일 강동동 에코델타시티 내에서 재개교하였다.[5] 당시 삼신교통과 삼화PTS에서 운행하였던 인가대수 단 2대, 배차간격이 2시간인 대표적인 막장 노선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