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증녀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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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44><colcolor=#fff> 주증녀 朱曾女 | |
출생 | 1926년 2월 11일 |
함경남도 영흥군 (現 금야군) | |
사망 | 1980년 9월 18일 (향년 54세) |
서울특별시 강남구 반포동[1] 서울성모병원 | |
학력 | 함남공립고등여학교 (졸업) |
데뷔 | 1949년 영화 《조국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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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경남도 영흥군 출신의 여배우. 최은희, 조미령과 더불어 해방 직후 최초의 스타급 연예인이다.[2]2. 활동
처음에는 극단 출신의 여배우였으나[3] 1949년 영화 조국의 어머니로 데뷔하고 1950년 여인애사와 흥부와 놀부로 스타덤에 올랐다.[4] 그러나 6.25 전쟁으로 꽃다운 젊은 시절을 다 까먹고 정전 이후 얼마 안되어 30대를 맞이하게 되어 1960년대 영화의 전성기 시절에 주로 어머니역을 맡았다.1957년에 여배우 인기 순위에서 조미령에 뒤이은 2위를 차지했다.[5] 예쁜 외모를 가지고도 꽃다운 나이에 터진 6.25 전쟁 때문에 아가씨 역을 잘 맡지는 못했고, 주로 어머니역을 맡았다. 1958년 작 별아 내 가슴에, 1960년 작의 하녀, 1965년 작의 갯마을에서 어머니 역으로 출연하였다.
고작 30대 초반에 어머니 역할만을 맡게 된다는 사실에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데, 당시에는 여성의 결혼 연령이 거의 20대 극초반이었고 빠르면 10대 후반도 있었다. 25살이 넘으면 노처녀 취급을 받았고 20대 후반에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시절이다. 배우 층도 매우 얕았는데, 특히 여배우는 결혼하면 대부분 은퇴해버렸기 때문에 젊은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하는 일이 노인이 나이에 맞게 노역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다만 동년배 여배우인 최은희와 문정숙은 소녀~청년 여성 역할을 많이 맡기도 했다.[6]
1980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반포동[7] 서울성모병원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향년 54세.
[1] 1988년 1월 1일 서초구에 이관되었다.[2] 최은희의 경우 해방 직후 1950년대는 물론이고 1960년대에도 엄청난 흥행 능력을 보여준 장기형 스타이다. 반면 김지미, 엄앵란의 경우 1950년대 중후반에 데뷔해 해방 직후의 스타라고 보기는 힘들다. 최은희, 김지미, 엄앵란 다음 세대가 윤정희, 문희, 남정임으로 구성된 1세대 트로이카.[3] 유치진이 쓴 무영탑으로 데뷔했다.[4] 1950년에 영화가 5편 상영되었는데 그 중에서 2편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1975년 경향신문에서 해방 이후 연도별 최고 인기 배우를 선정했는데 주증녀는 1950년을 대표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참고로 이 기사에서 1947년을 대표하는 연예인은 최은희, 1965년을 대표하는 연예인은 신성일, 1966년을 대표하는 연예인은 윤정희, 1973년을 대표하는 연예인은 최불암 등 왕년의 연예인이 수록된 것을 보면 꽤나 공신력 있는 평가라 볼 수 있다. 문희가 없는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5] 3위는 최은희[6] 심지어 로맨스 빠빠에서는 동갑내기 최은희가 그녀의 딸로 나오기도 했다.[7] 1988년 1월 1일 서초구에 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