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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26:57

조전혁/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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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창 시절3. 교수 시절4. 칼럼니스트 활동5. 자유주의교육연합 상임대표 활동6. 국회의원 활동
6.1. 학교별 수능 점수 공개6.2. 교원단체 소속 교사 명단 불법 공개 사건
7. 국회의원 이후8. 서울혁신공정교육위원회 위원장 활동9. 2022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10. 2024년 서울특별시교육감 보궐선거

1. 개요

조전혁의 생애를 다루는 문서.

2. 학창 시절

1960년 7월 14일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근이 잦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출생 후 돌 지나서 경상남도 마산시로 이사하였으며, 이후 3살 때부터 부산직할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초등학교 및 중학교를 졸업하였다.[1] 이후 동아고등학교(27회)에 진학했다가 가야고등학교로 전학해 졸업하였다. 1980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해 1984년 졸업했다. 1984년 2월 11일 육군독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53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하면서 주로 해안초소 경비병으로 근무하였고[2], 1984년 7월 20일 이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1986년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1989년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 12월 23일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1991년 12월 22일 수리경제학 및 이론경제학 전공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교수 시절

이후 귀국하여 1993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임했고, 2013년 9월 잠시 명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3]

교수 재직 시절 학생들의 전체주의적이고 반(反)시장적, 반(反)기업적인 정서에 의문을 품고 원인을 연구하였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초중고 교육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기반이 전교조라고 보아 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4. 칼럼니스트 활동

한국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와 전교조의 실체를 알리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교직에서 학생 500-700명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큰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조선일보 칼럼 기고를 시작,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첫 칼럼으로 2004년 8월 조선일보에 이념교육에 몰두하는 전교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저주의 굿판을 멈추어라'[4]를 기고하였다. 이 글은 상당한 화제가 되었고, 한편의 추가 기고 이후 바로 아침논단 필진이 되었다. 조선일보 역사상 두 편의 기고로 ‘아침논단’ 필진이 된 사람은 조전혁 뿐이었다고 한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정치 굿판,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는 강성노조 굿판, 장소 불문하고 자리를 까는 사이비 시민단체 굿판, 그리고 이념교육에 몰두하는 전교조 굿판에서 ‘선무당’들이 춤추고 있다. 굿판이 한 차례 씩 벌어질 때마다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기업과 돈이 나라를 떠나고,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선무당들이 확대재생산 구조(?)를 갖추어 놓고 있다는 데 있다. 교육사회주의에 점령된 중등교육은 선무당 사관생도를 양산하고 있다. 열성생도들은 강성노조나 사이비 시민단체에서 ‘내공(內功)’을 쌓은 뒤 ‘정치 엘리트 무당’을 지망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수십년간 애써 가꾸어 왔던 시장경제 시스템은 점점 황폐화되어 간다.

시장원리를 모르는 선무당들이 민생과 평등을 내세울수록, 민생의 곤란과 불평등이라는 시장의 복수가 벌어진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왜 실패로 증명된 포퓰리즘 실험, 사회주의 복습의 굿을 이제 와서 벌이려 하는가? 저주의 굿판을 당장 멈춰라….”'
2004년 8월 조선일보 "저주의 굿판을 멈추어라" 발췌 전문

5. 자유주의교육연합 상임대표 활동

조선일보 칼럼 기고 이후 뜻이 맞는 사람들과 자유주의교육연합 (이하 ‘자교연’) 이라는 교육운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자교연은 창립 선언문에서 교육의 총체적 위기에 대해 ‘교육의 국가독점과 배급’을 원인으로 규정하고 ‘자유주의가 21세기 글로벌 지식기반사회의 비전’이라고 주장했다.

자교연에서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추진하였다.

이후로도 자유주의적 이념에 토대를 두고 고교평준화 등 교육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으며 이 과정에서 전교조와 대립을 이어갔다

6. 국회의원 활동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 이원복 대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인천광역시 남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리하여 무소속 이원복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보건법, 교육공무원법 개정법률안을 비롯하여, 초중등학생의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특별법안,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등 다양한 교육관련 법안을 발의하였다.

제18대 국회의원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로 16억원 가량의 손해배상까지 하며 전교조에 강하게 맞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6.1. 학교별 수능 점수 공개

2009년 국회의원 당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상대로 수능성적 원자료를 CD형태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입수된 자료는 2009년 10월 조선일보를 통해 학교별 수능성적 결과 공개로 이어졌다. 이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학교간 격차를 정확히 알 수 있어야 이에 대한 지원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1면과 3, 4면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5년간 대입 수험생들의 수능 표준점수를 고교별로 분류해 국회 교과위 소속 위원들에게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언어 영역, 수리 영역, 외국어 영역 평균 합산 상위 30개교, 각 영역별 1등급자 비율 상위 100위교, 각 영역별 표준점수 평균 상위 100개교의 명단을 공개했다. 당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반응과 함께 큰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 되었지만, “학교별 격차가 크기 때문에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고 여론이 확산되어야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6.2. 교원단체 소속 교사 명단 불법 공개 사건

2008년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정보공시제의 공시항목에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교사수’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자, 그는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에 따라 수집된 전교조 가입교사 명단을 제출할 것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요구하게 된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전교조 명단을 국회의원에게 제출하는 것이 적법한지 여부를 법제처에 질의하고, 법제처는 “교원의 교원단체, 노동조합 가입자료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였다. 이에 조전혁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명단을 입수하고 명단 공개를 예고하였다.

이에 반발한 전교조는 법원에 공개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조 전 의원을 고발하였고, 법원에서는 명단 공개 금지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공개금지 결정이 있었지만 그는 2010년 4월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국 초·중등학교와 유치원 교사의 교원단체와 교원노조 가입 현황을 공개하였다. 여기에는 전교조를 비롯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등 5개 교원단체 및 노조 소속 교원 22만2479명의 실명이 포함되었다. 그동안은 학교별 가입자 수만 공개돼 왔지만, 개개인의 실명은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었다. 그는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 권리가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교사들이 교원단체에 가입한 내용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명단을 공개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이 국회의원의 정당한 활동이며 ‘교원들의 노조 가입 실명 자료는 수집이 금지된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제처의 이전 법령해석에도 기반하였음을 피력하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교조는 헌법에 따른 합법적 노동 단체이므로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며 비밀결사 조직도 아니라면 명단을 공개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아이들에게 소속을 공개하지 못하는 전교조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느냐며 따져 물었다. 당시 김영숙 서울시 교육감 예비후보 또한 “교육현장에 적합한 능력을 가졌다면 정정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전교조의 명단 비공개를 비판하였으며 우리 교육현장에는 열정과 능력을 가진 정정당당한 교사들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전교조 명단 공개는 교사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단결권 등과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교조는 법원의 공개금지 가처분 명령을 어기고 인터넷 상에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 의원에 대응하여 법원에 재차 명단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이에 법원(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 51부 양재영 수석부장판사) 명단 공개에 대해 하루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전교조에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또다른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김효재, 정태근, 김용태 등 30여명의 동료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부지법 판사의 감정 섞이고 편향된 판결에 대한 항의 의사표시와 학부모들이 자녀를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는지 궁금해하고 이를 알 권리가 있다는 조전혁의 의견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명단공개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명단 공개 직후 홈페이지가 다운될 만큼 많은 학부모와 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5]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전교조 교사의 명단 공개에 찬성 의견이 더 우세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명단 공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46.4%로 반대(33.6%) 보다 12.8%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 별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부모 세대인 30대(55.4%〉36.4%)가 명단 공개에 찬성 의견을 가장 많이 나타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배호근)는 2013년 9월 1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 등 정치인과 동아닷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조합원들에게 모두 16억4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피고에는 조전혁을 비롯해 2차로 명단을 공개한 김용태·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김효재·박준선·장제원·정태근·진수희·차명진 전 의원, 박광진경기도의원 등 정치인과 교사 명단을 보도한 동아닷컴이 포함됐다. 재판부는 조 전 의원에게는 교사 4584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4억5840만원, 이를 보도한 동아닷컴은 같은 수의 조합원에게 1인당 8만원씩 3억6672만원, 김용태 의원 등은 함께 8193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8억193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조 전 의원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재항고를 거듭했지만 2011년 대법원은 명단 공개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 이후 조전혁 의원은 국가에 납부하는 벌금도 아니고 한 해 백억원이 넘는 조합비를 쓰고 있는 귀족 노조에 바칠 이유는 없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돈전투”에서 일단 졌다고 언급하며 명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전교조와의 분쟁으로 압박을 받은 일선학교의 많은 교원, 학부모에게 본인의 싸움은 일종의 대리만족이었을 것인데 더 못 버텨드려 죄송하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조 전의원의 아내는 ‘국민의 알 권리도 무섭지만 마누라의 살 권리가 더 무섭다’ 며 명단을 내리자고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조전혁은 지금도 학생과 학부모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전교조 명단공개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사의 노동권도, 교사의 수업권도 학생 학부모가 가진 ‘시원적(始原的)’인 권리인 교육권에서 파생한 권리이며 교사는 학부모가 국가에 위임한 교육의 내용 안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집단의 신념을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무단으로 주입시켜 왔고 폐쇄된 교실이란 공간 내에서 미성년자인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한 이념을 전파하는 행위는 학대나 다름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그가 한 일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고 언급하였다.[6]

7. 국회의원 이후

2012년에 열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3년에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와중에 전문성 논란과 함께 '낙하산'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2014년에도 한국전력공사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당시 새로 선임된 3명의 사외이사는 모두 전력 혹은 에너지 분야의 경력이 전무한데다, 새누리당 쪽과 코드를 같이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이재정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인천광역시 남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후보에 패배했다.

친이계 정치인답게,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전직 국회의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

8. 서울혁신공정교육위원회 위원장 활동

2021년 6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출범시킨 서울혁신공정교육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오세훈 시장이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시대를 맞아 “미래교육 대전환 대비” 일환으로 교육계.산업계 등 각 분야 전문가 15인으로 구성해 출범시킨 위원회이다. 조전혁 위원장은 발대식에서 서울시가 세계 최고의 평생학습사회로 가는 초석을 다지는 것이 위원회 목표임을 밝히며 '조국 같은 아빠 없어도 차별 받지 않는 서울을 만들겠다' 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서울혁신공정교육위원회에서는 ▲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혁신 교육 ▲교육 양극화와 사각지대 개선을 위한 공정과 다양성 교육 ▲직업과 연계한 창의인재 육성을 위한 평생직업교육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세계적 교육산업 허브도시 조성, 캠퍼스 없는 혁신대학 등 혁신 교육모델 도입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학습 격차와 학교 밖 청소년 등 교육 지원 사각지대 해서, 고령화 및 4차 산업혁명 등 사회 변화에 따른 대응력을 높이는 평생교육 기반사업, AI 등 첨단 산업 인재 양성방안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었다

또한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학교 밖 청소년 및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강의 교육지원 플랫폼인 서울런(Seoullearn) 사업을 추진하였다.

9. 2022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

"학교를 학교답게” 라는 슬로건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의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22년, 수도권교육감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교추협) 에 의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중도·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박선영, 조영달, 이주호 등 보수 후보의 불복과 난립으로 난항을 겪었다.
“서울 교육감 선거는 서울 교육의 미래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이념과 진영에 사로잡혀 갈라치기 교육에만 열중했던 이 후안무치한 좌파 교육 권력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정의는 없는 것입니다. 조희연 서울 교육이 무능과 위선으로 대한민국을 결단 내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서울 교육이 대한민국 정상화를 앞당기고 좌파 기득권 교육 권력 교체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제가 그 선봉이 되겠습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미래와 교육에 대해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그 꿈을 서울 시민과 이루고 싶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출마 선언문 발췌>

서울시학부모연합, 전국학부모단체연합, 전국학생수호연합,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학교바로세우기 전국연합, 차세대 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 성차별교육폐지시민연대 40개 단체, 복음수호학생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도권 퇴임교장협의회, 나쁜인권조례폐지네트워크, 학습권수호학부모연합, 비정규직노동조합연대회의, 윤사모 중앙회 및 서울지역 대표단, 전국17개 시.도 악법대응본부, 다음세대사랑 학부모연합, 아이미래, 서울지역 전직 중등학교 교장 학교바로세우기 모임, 전직 서울시의회 의원단, (사)여성문제연구회/(사)대한조산협회/(사)한국여성문화생활회/(사)에너지와여성 등에서 지지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희연 후보에게 약 15% 차이로 밀리며 패배해 2위로 낙선했다.[7]

사실 조전혁이 낙선하다 못해 참패한 원인은 보수의 분열이 크기는 하나, 그걸 감안해도 하마터면 3위로 밀려날 뻔했다는 것은 단순히 보수 분열의 탓 만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즉, 조전혁의 선거 전략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호불호가 갈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직 프리미엄이 있는데다가 슬로건부터 "한걸음 더 서울교육"을 내세우는 등 포지티브한 전략을 사용하고 비전을 강조한 조희연과는 달리 조전혁은 무슨무슨 일을 하겠다는 식의 비전이 아닌 슬로건부터가 "전교조 교육 OUT!"이었고, "조전혁이냐 vs 전교조냐"라고 적힌 현수막을 여기저기 달면서 강성보수 외 중도·진보 성향 시민들의 눈살을 잔뜩 찌푸리게 했다.[8][9]

조전혁 “한국 교육, 다양성·자율성 떨어져… 학생·학부모 선택권 넓혀야”

낙선 이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육부장관 직을 제의받기도 했다고 한다.

10. 2024년 서울특별시교육감 보궐선거


[1] 이 때문에 광주는 태생지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그의 고향은 부산으로 봐야 한다. 실제 말투도 전라도 사투리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주로 쓴다.[2]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물[3]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공보물[4] 김지하 시인이 1991년 5월 5일에 같은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를 연상케 한다.[5] 당시 몇 분 만에 서버가 다운되어, 다시 게임업체의 대형 서버로 바꿨다고 한다. 대략 1000만명이 열람하였다고 한다.[6] 다만 유일하게 후회하는 부분은 가처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명단 공개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7] 개표 내내 박선영한테도 밀려 3위를 하다가 막판에 극적으로 역전하여 2위를 한 것이다. 즉, 아찔했으면 3위로 밀려날 뻔했다.[8] 이러한 슬로건들이 그냥 전교조만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조희연까지 겨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만일 조희연까지 겨냥한 것이라면 주소 제대로 잘못 짚은 꼴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희연전교조 출신이 아니기 때문. 여기에 후술할 막말 논란까지 터뜨리면서 안 그래도 전교조를 겨냥한 비난만 가득한 조전혁에 반감과 불만이 상당했던 시민들에게 되레 반감만 더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고, 보수층들 사이에서도 그나마 낫다고 판단한 박선영으로 지지율이 옮겨간 것.[9] 자신도 이러한 점을 인지한 것인지 다음 선거에서는 메인 슬로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10] 이후 선거 캠프에선 패배 승복 선언을 했으나 일부 극단적인 음모론자들이 부정선거라며 승복하지 말라고 크게 분노했고, 다른 지지자들이 조용히 하라며 제지하는 일이 있었는데, 극우로 유명한 주옥순이 급히 말리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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