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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14:03:20

조셉 멀리노

<colbgcolor=#000><colcolor=#fff> 조셉 멀리노
Joseph Merlino
파일:조셉 메를리노.jpg
이름 Joseph Salvatore Merlino
조셉 살바토레 멀리노
출생 1962년 3월 13일 ([age(1962-03-13)]세)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마피아
배우자 데보라 멀리노 (1997년 ~)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Patreon 아이콘.svg |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여담4. 어록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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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필라델피아마피아 두목(Boss).

일명 날씬한 조이(Skinny Joey), 패스영크 애비뉴의 존 고티(John Gotti of Passyunk Avenue)

미국 대중들에게는 뉴욕 시존 고티 이후 가장 유명한 마피아 두목이다.

2. 생애

1962년 3월 13일 조셉 멀리노는 살바토레 '처키' 멀리노와 리타 조르다노 사이에서 태어났다. 훗날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부두목(Underboss)이 되는 그의 아버지는 '9M Bar'라는 이름의 술집을 운영했다.

1982년 8월 20일 20살의 조셉 멀리노는 일행과 함께 애틀랜틱시티 소재 레스토랑에서 2명의 남자 손님을 폭행하고 칼로 찔렀다. 약 2년 뒤 그는 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1986년 멀리노의 아버지는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Boss) 니코데모 스카르포(사진)에 의해 알코올 중독을 이유로 부두목(Underboss)에서 행동대원(Soldier)으로 강등되었는데, 약 2년 뒤 그는 2건의 공갈과 마약 유통 혐의로 징역 45년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1989년 10월 31일 할로윈 날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던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Boss) 니코데모 스카르포의 아들 니코데모 스카르포 주니어가 8발의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수사당국은 이 사건을 통해 니코데모 스카르포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다고 판단했고 변장을 한 채 스카르포 주니어에게 총격을 가한 범인으로 조셉 멀리노를 지목했지만 그는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며 사건이 발생한 날 자택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1990년 1월 조셉 멀리노는 3년 전 현금수송차에서 35만 2천 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연방교도소에서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원로인 랄프 나탈레(사진)를 만난 멀리노는 출소 후 나탈레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뒤 마이클 치안글리니, 스티븐 마존, 조지 보르게시, 가에타노 스카피디, 마틴 안젤리나 같은 동년배 폭력배들과 함께 필라델피아 패밀리를 장악할 계획을 세운다.

1990년 마피아 위원회는 니코데모 스카르포의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Boss) 지위를 박탈했다. 이후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지원을 받은 시칠리아 출신의 존 스탠파(사진)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이 된다. 하지만 조셉 멀리노를 따르는 파벌은 스탠파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1992년 1월 29일 스탠파 측 행동대장(Caporegime) 펠릭스 보치노 살해를 시작으로 양 측의 항쟁이 시작되었다.[1]

1992년 4월 조셉 멀리노가 출소하자 존 스탠파는 멀리노 파벌을 회유하기 위해 멀리노와 그의 심복인 마이클 치안글리니를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으로 입단시켰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눈속임이었는데, 1993년 8월 5일 두 사람은 스탠파의 지시를 받은 총잡이의 습격을 당해 멀리노가 중상을 입고 치안글리니가 살해되었다.
마이클 치안글리니 장례식에 참석한 조셉 멀리노를 다룬 뉴스

1993년 8월 31일 조셉 멀리노 측의 보복으로 존 스탠파와 그의 아들이 총격을 당했다. 당시 아버지는 다치지 않고 탈출했지만 아들은 턱에 총상을 입었다. 9월 17일엔 스탠파 측의 보복으로 멀리노의 친구가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훗날 스탠파 측 총잡이 필립 콜레티는 여러 차례 멀리노를 살해하기 위해 그의 자동차 아래에 폭탄을 설치했지만 항상 터지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당시 수사당국은 스탠파 측의 멀리노 살해 시도가 20번이 넘었다고 판단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조셉 멀리노 제거 계획을 논의하는 존 스탠파의 육성

1993년 11월 조셉 멀리노가 FBI에 체포되어 가석방 규정 위반 혐의로 재수감되면서 양 측의 항쟁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이듬해 존 스탠파가 살인교사, 살인공모, 노동 공갈, 갈취, 고리대금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는데, 결국 1994년 11월에 출소한 멀리노가 마피아 항쟁의 최종 승자가 되어 필라델피아 패밀리를 장악했다.
1990년대 필라델피아 패밀리 내부 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약 20년 동안 이어진 치열한 내부 항쟁과 연방정부의 조직범죄와의 전쟁 결과 필라델피아 패밀리는 30명 이상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과 추종세력(Associate)이 살해되었고 전체 정규조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20여 명이 수감 중이었으며 270명 이상이었던 추종세력 숫자는 100명 대로 줄어들었다. 특히 애틀랜틱시티 내에서의 조직 영향력이 뉴욕 마피아에 밀려 사실상 사라졌다. 이 시기 리보리오 벨로모로 대표되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의 지원을 받고 필라델피아 패밀리를 장악한 조셉 멀리노는 상술한 랄프 나탈레를 명목상 두목(Boss)으로 삼고 자신은 부두목(Underboss)이 되어 조직의 도박, 고리대금, 갈취, 장물 사업 등을 감독했다.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실권자가 된 멀리노는 저소득층과 노숙인들을 위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나눠주거나 성탄절에 파티를 개최하는 등 대외 이미지를 관리하며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즐겨 패스영크 애비뉴의 존 고티(John Gotti of Passyunk Avenue)라는 별명을 얻는 한편, 필라델피아 전역의 도박장에 큰돈을 걸어놓고도 자신이 지면 결코 돈을 지불하지 않는 안하무인적 행동을 했다. 이렇듯 젊고 혈기왕성한 멀리노와 그 심복들의 오만함과 공격성은 많은 범죄자들로 하여금 마피아 패밀리와 함께 일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조셉 멀리노의 자선행사

1995년 필라델피아의 이탈리아계 스트리트 갱단 오리건 10호 행동대(10th and Oregon crew)의 지도자 루이스 투라는 마피아의 길거리 세금(Street Tax)을 내지 않은 대가로 조셉 멀리노의 부하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고 롤렉스 시계를 강탈당했다. 이에 분노한 루이스 투라는 그의 아버지 앤서니 투라의 자택에서 부하들과 함께 멀리노 제거 계획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수사기관이 도청하고 있었는데, 결국 루이스 투라는 살인공모 혐의로 구속된 뒤 자살하고 앤서니 투라는 마피아 측의 보복으로 추정되는 총격으로 살해되었다. 당시 수사기관 관계자는 앤서니 투라 살인사건에 대해 "우리는 이것을 조직범죄의 암살, 마피아의 작업으로 생각합니다.(We consider this an organized crime assassination, a mob hit.)"라고 말했다.
앤서니 투라 살인사건 등을 다룬 뉴스

1990년대 조셉 멀리노는 필라델피아바이커 갱단인 페이건스(Pagan's Motorcycle Club)나 흑인 갱단인 주니어 블랙 마피아(Junior Black Mafia) 같은 범죄조직들 간 분쟁을 조정하고 그들과 협력했으며 특히 페이건스 두목 스티브 몬데베르긴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1999년 조셉 멀리노는 3건의 살인교사, 2건의 살인미수, 5kg 이상의 코카인 유통 공모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당시 랄프 나탈레가 미국 마피아 두목(Boss) 최초로 오메르타를 깨고 정부 측 증인이 되어 내부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노는 상술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갈취, 도박업, 장물 교부에 관한 공갈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나탈레는 멀리노의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건 물론이고 뉴저지 주 캠든 시의 시장인 밀튼 밀란과 마피아의 관계를 폭로해 현역 정치인으로 하여금 유죄판결을 받게 만들었다. 이후 멀리노는 살인교사 혐의로 재차 기소되지만 이번에도 무죄판결을 받는다.
2020년 랄프 나탈레 인터뷰

랄프 나탈레의 배신으로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두목(Boss)이 된 조셉 멀리노는 수감 중인 자신을 대신할 두목 대행(Acting Boss)으로 조셉 리감비(사진)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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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멀리노와 조셉 리감비
멀리노 아버지의 제자였던 리감비는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1997년에 약 10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였는데, 그는 지역 내 여타 범죄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피하며 조용히 사업을 전개했다. 조직을 다시 한번 전성기로 이끈 리감비의 재직 기간 동안 10여 명의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출소해 빈자리를 채웠고 2007년에는 애틀랜틱시티 카지노에서 필라델피아 패밀리가 연루된 6000만 달러 규모의 스포츠 도박 사업이 적발되기도 했다.#

2011년 3월 15일 조셉 멀리노가 약 12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을 맡아온 조셉 리감비는 훗날 상담역(Consigliere)을 자처한다. 멀리노 출소 약 2개월 뒤 리감비가 도박업, 도박기계 유통, 고리대금에 관한 공갈 혐의로 기소되지만 법적 공방 끝에 무죄판결을 받는다.
조셉 리감비 재판을 다룬 뉴스 조셉 리감비 무죄판결 인터뷰

2012년 10월 22일 수감 중이었던 조셉 멀리노의 아버지가 텍사스 주 포트워스 연방교정의료센터에서 사망했다.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멀리노가 마피아 조직원들과 교류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한 조셉 멀리노를 다룬 뉴스

출소 후 플로리다 주로 이사를 간 조셉 멀리노는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마피아 생활 청산을 주장했지만 FBI는 여전히 그를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15년 1월 4일 멀리노는 가석방 규정 위반 혐의로 재수감되어 약 4개월을 복역했다. 이후 2016년 9월 7일 펜실베이니아 주 게임 관리 위원회는 멀리노에게 관할구역 내 모든 카지노 출입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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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멀리노의 플로리다 주 자택

2016년 8월 4일 조셉 멀리노는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와 연계된 공갈, 의료보험 사기, 도박업 혐의로 기소되었다. 5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불구속 재판을 받은 멀리노는 일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2019년 10월에 출소했다.[2]
조셉 멀리노 재판을 다룬 뉴스 조셉 멀리노 유죄판결을 다룬 뉴스

2020년 연방검찰의 필라델피아 마피아 공소장에 의하면 수사당국이 마이클 랜슬로티를 거리 책임자(Street Boss), 스티븐 마존을 부두목(Underboss), 조셉 리감비를 상담역(Consigliere)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조셉 멀리노를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도널드 트럼프에게 불리하도록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그의 지지세력은 조셉 멀리노가 300만 달러를 받고 조 바이든을 위해 30만 표 이상의 불법적인 투표용지를 펜실베이니아 주로 운반함으로써 마피아가 선거 조작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멀리노의 변호인은 이를 헛소문이라며 부인했다.#[3]

2023년 조셉 멀리노와 도널드 트럼프가 골프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유출되었다.#

2023년 9월 조셉 멀리노는 현역 미국 마피아 두목(Boss)으로서는 최초이자 이례적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패트리온, 스포티파이 등에서 소셜 미디어 활동을 시작했다.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Patreon 아이콘.svg |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4][5] 멀리노 본인이 밝힌 공개활동 이유는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 중인 마이클 프란지스 같은 마피아 출신들이 모두 조직을 배신하고 파문된 밀고자(Rat)이며 본인이 직접 미국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를 폭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편, 이런 멀리노의 행보는 동료 마피아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논픽션 작가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스콧 번스타인에 따르면 뉴욕 제노비스 패밀리 두목 리보리오 벨로모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로렌조 만니노(사진)는 우려를 표하며 공개활동 중단을 요구했고# 뉴욕 보난노 패밀리 두목 마이클 맨쿠소(사진)는 부하들에게 소셜 미디어 자제령을 내렸다고 한다.#
2024년 조셉 멀리노 인터뷰

2024년 5월 24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조셉 멀리노의 식당에 연쇄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멀리노의 식당을 대상으로 10일 동안 총 두 차례의 방화가 발생하여# ATF 등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일각에선 공개활동을 이어가는 멀리노에 대한 뉴욕 마피아의 경고성 보복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셉 멀리노 식당 방화사건을 다룬 뉴스

2024년 9월 뉴욕 데일리뉴스 기자 출신의 마피아 전문가 제리 카피시에 의하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 활동을 이어가던 조셉 멀리노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주도로 파문되어 마피아로서의 모든 권리와 책임을 잃었고 멀리노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조셉 리감비의 조카인 조지 보르게시(사진)가 필라델피아 패밀리의 새로운 두목(Boss)이 되었다고 한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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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에 탑승한 조셉 멀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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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에 탑승한 조셉 멀리노

4. 어록

나한테 50만 달러를 주면 내가 직접 날 쏘지.
Give me the half million dollars and I’ll shoot myself.
필라델피아 패밀리 두목(Boss) 니코데모 스카르포가 자신의 목에 5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문에 대해 한 말.#
나쁘지 않아. 사형보다 낫다.
Ain't bad. Better than the death penalty.
2001년 재판에서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뒤 한 말.#

5. 관련 문서



[1] 보치노를 살해한 인물은 멀리노의 심복 중 하나인 스티븐 마존으로 알려져 있다.[2] 당시 멀리노와 함께 기소된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파스칼레 파레로와 유진 오노프리오는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3] 실제로 멀리노는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4] 팟캐스트 방송은 유튜브로 시작했지만 이후 패트리온으로 옮겼다.[5] 소셜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70년대에 뉴욕 콜롬보 패밀리 두목 조셉 콜롬보(사진)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미국 마피아 두목의 공개활동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