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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1:27:22

자니 벤치

조니 벤치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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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e5e5e5

LF / No.15

CF / No.20

RF / No.30

SS / No.13

2B / No.8

3B / No.14

1B / No.24

C /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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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벤치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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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미국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목록으로 약 25년 전 기록이기 때문에 21세기 스타들이 없는 것을 감안하며 보아야 한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타이 콥 월터 존슨 행크 애런
6위 7위 8위 9위 10위
루 게릭 크리스티 매튜슨 테드 윌리엄스 로저스 혼스비 스탠 뮤지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조 디마지오 피트 알렉산더 호너스 와그너 사이 영 지미 폭스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자니 벤치 미키 맨틀 조시 깁슨 사첼 페이지 로베르토 클레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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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1997년 전미 미국 야구 작가 협회 36명이 뽑은 각 포지션(지명타자,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좌완투수, 우완투수, 릴리프 피쳐) 중 투표수 1위를 기록한 선수들을 선정했다.
좌완투수 우완투수 릴리프 피쳐 1루수 2루수 유격수
샌디 코팩스 월터 존슨 데니스 에커슬리 루 게릭 로저스 혼스비 호너스 와그너
3루수 지명타자 포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마이크 슈미트 폴 몰리터 자니 벤치 테드 윌리엄스 윌리 메이스 베이브 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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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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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자니 벤치
Johnny Bench
포지션 포수
득표수 1,010,403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75 1976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50><table bordercolor=#c6011f> 파일:신시내티 레즈 엠블럼.svg신시내티 레즈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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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1 No.5 No.8 No.10 No.11
<rowcolor=#ffffff> 프레드 허친슨 자니 벤치 조 모건 스파키 앤더슨 배리 라킨
<rowcolor=#ccac00> No.13 No.14 No.18 No.20 No.24
<rowcolor=#ffffff> 데이브 콘셉시온 피트 로즈 테드 클러주스키 프랭크 로빈슨 토니 페레스
<rowcolor=#ccac00> No.42
<rowcolor=#ffffff> 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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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bordercolor=#c6011f> 파일:신시내티 레즈 엠블럼.svg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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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폴 데린저 어니 롬바르디 프랭크 맥코믹 자니 밴더미어 버키 월터스
이발 굿맨 에파 릭시 유얼 블랙웰 에드 러시 로니 프레이
빌리 워버 휴이 크리츠 버블스 하그레이브 테드 클러주스키 루브 브레슬러
해리 크래프트 하이니 그로 누들스 한 거스 벨 피트 도너휴
프레드 허친슨 래리 코프 레드 루카스 월리 포스트 자니 템플
제이크 도버트 마이크 맥코믹 빌리 마이어스 돌프 루케 빌 맥케치니
샘 크로포드 조 넉스홀 워렌 자일스 짐 오툴 로이 맥밀란
고디 콜먼 짐 말로니 밥 퍼키 스모키 버제스 브룩스 로렌스
베이다 핀슨 프랭크 로빈슨 토미 헴스 클레이 캐롤 레오 카데나스
웨인 와그너 게리 놀란 잭 빌링엄 자니 벤치 조 모건
제리 린치 토니 페레즈 사이 시모어 스파키 앤더슨 데이브 콘셉시온
밥 유잉 마리오 소토 돈 굴렛 비드 맥피 조지 포스터
더미 호이 켄 그리피 시니어 밥 호섬 윌 화이트 에릭 데이비스
호세 리호 조지 라이트 해리 라이트 톰 브라우닝 리 메이
톰 시버 세사르 헤로니모 어거스트 허먼 조이 제이 배리 라킨
페드로 보본 크리스 세이보 토니 뮬란 션 케이시 댄 드리센
존 렐리 켄 그리피 주니어 데이브 파커 론 오스터 제이크 베클리
피트 로즈 애덤 던 프레드 노먼 데이브 브리스톨 마티 브레너먼
대니 그레이브스 브론슨 아로요 게이브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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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Bench%20Johnny%20Plaque%2098_NBL_0.png
자니 벤치
헌액 연도 198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6.42% (1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윌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피트 로즈
(신시내티 레즈)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6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신인왕
톰 시버
(뉴욕 메츠)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테드 사이즈모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피트 로즈
(신시내티 레즈)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레지 잭슨
(뉴욕 양키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68 ~ 197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포수 골드 글러브
랜디 헌들리
(시카고 컵스)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밥 분
(필라델피아 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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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nch Johnny CR73-555_Bat_NBLMcWilliams.jpg
<colbgcolor=#c6011f><colcolor=#ffffff> 신시내티 레즈 No. 5
자니 리 벤치
Johnny Lee Bench
생년월일 1947년 12월 7일 ([age(1947-12-07)]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
신체 185cm / 89kg
포지션 포수, 3루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5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6번, CIN)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 (1967~1983)
1. 개요2. 선수 경력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4. 자니 벤치 상5. 여담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신시내티 레즈 소속 前 야구선수. 포지션은 포수였다.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전성기인 '빅 레드 머신'을 대표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img004.lazysports.info/cincinnati_reds_sports_illustrated_cover_johnny_bench_VB7X0Q7X.sized.jpg
어린 시절부터 엄친아의 자질을 타고 났다. 고등학교에서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을 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 공부의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야구의 길을 선택해 1965년 신시내티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했다.

1967년 맛보기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이후 본격적으로 팀의 주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해 준비한 1968년의 스프링캠프에서 대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방문하게 된다. 윌리엄스는 벤치의 훈련 모습을 보고 재능을 알아보았고 "To Johnny Bench, a Hall of Famer for sure." (미래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 자니 벤치에게)라는 싸인볼을 건낸 일은 유명한 일화.[2]

1968년 골드글러브 및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신시내티의 최전성기인 "빅 레드 머신"의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두 차례 리그 MVP를 수상했다. 1970년에는 45홈런 148타점을 기록하면서 홈런+타점왕, 내셔널리그 MVP을 획득함과 동시에 팀을 월드시리즈에 올려놓았고, 1972년에는 40홈런에 125타점을 기록하면서 2번째 홈런+타점왕과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팀 역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다만, 이 때는 각각 볼티모어 오리올스[3]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지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은 좌절되었다. 이후 1974년에도 129타점으로 3번째 타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그 뒤로 조 모건. 피트 로즈, 데이브 콘셉시온, 토니 페레즈 등과 함께 맹활약하며 마침내 1975년과 1976년 신시내티의 월드시리즈 2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1976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4]를 만나 0.533 타율과 무수한 도루 저지를 기록하며 양키스를 농락해 0-4 스윕 패배의 치욕을 안겼다. 이런 월드시리즈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해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76년은 벤치가 부진한 시즌 중 하나였다. 근데 부진하다는 성적이 16홈런 74타점에 도루수마저 개인 최다이자 2년연속 두자릿수인 13개를 찍었는데 도루사가 2개뿐이라서 성공률이 무려 86%(...)[5] 게다가 타율은 비록 .234로 부진했을지언정 볼넷을 많이 얻어냈기 때문에 출루율은 무려 1할 넘게 높은 .348이었다. 장타율이 4할을 못 넘겨서 OPS는 .750을 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포수로써는 뛰어난 공격력이다. 어느 리그에서나 공격력이 뛰어난 포수는 진귀해서 수비까지 좋으면 곧바로 주전행이고 비록 수비 등에 약점을 보이는 문제가 있어도 지명타자, 1루수 등으로 포지션을 바꾸면서까지 쓰려고 하는데, 이런 성적을 찍고도 부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벤치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부상으로 인해 포수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 결국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다. 특히 무릎 부상이 심했고, 결국 말년에는 다른 포지션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포수부분에서 딴 골드글러브만 10개이자, 1968년부터 1977년까지 10년 연속 수상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이반 로드리게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벤치가 포수 자리에서 일찍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일찍부터 포수를 봤기 때문이었다. 포수라는 포지션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고 무릎, 허리 등 각종 부위에 무리가 많이 오기 때문에 타 선수보다 빨리 찾아온 고질적 부상때문에 포수를 일찍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미 어릴 때부터 포수를 맡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포수로서 성숙한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공을 일곱개나 쥘 수 있었다는 무시무시하게 큰 손이 장점. 또한, 현대야구의 포수 수비 스킬을 집대성한 선수가 자니 벤치이다. 야구 역사상 최초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포수 미트를 사용해 한 손으로 투구를 받는 포구자세를 기본기로 완성했다. 벤치 이전까지는 미트가 잘 접히지 않았기 때문에 양손으로 포구를 해야했는데,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양권의 포수들 중 양손으로 포구하는 포수들도 제법 있었다. 자니 벤치 본인은 한 손 포구자세를 처음 시도한 선수는 랜디 헌들리(시카고 컵스 출신의 명 포수이자 공갈포로 유명했던 토드 헌들리의 아버지)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단 벤치가 이것을 완성해 메이저리그에서 전파했기에 벤치의 공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덕에 도루 저지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10년 이상 주전포수로 활동했던 역대 선수들 중 통산 3위에 해당하는 43.5%의 도루저지능력을 보였다.

여기에 포수로서는 전성기 시절 최고의 타격과 타고난 어깨, 수석 졸업의 명석한 두뇌까지 합쳐지면서 일찍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 증거로 흔히 뽑는 사람만 계속 뽑는다는 수비 부분의 평가인 골드글러브에서 신인으로 수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통산 389홈런 1376타점을 기록했는데, 홈런은 은퇴 시점에서는 포수로서 기록한 것만 세었을 때 역대 1위(326개)였다. 벤치에게는 대선배였던 요기 베라 한명만의 기록으로 남아 있던 포수 300홈런을 처음으로 넘어선 선수이기도 하다[6]. 다만 그 후 칼튼 피스크(포수 시절 : 351개, 통산 376개))와 마이크 피아자(포수 시절 : 396개, 통산 427개)가 차례로 경신하면서 현재는 역대 3위. 허나 자니 벤치는 수비가 그닥이었던 피아자보다는 수비가 좋았기 때문에 피아자보다는 평가가 높고, 칼튼 피스크가 롱런했음을 감안하면 시즌당 활약은 자니 벤치가 더 높고 뛰던 시대가 투고타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역사상 최고의 포수를 자니 벤치로 치는 편이다. 공수가 모두 출중했기 때문.

자세한 정보는 김형준의 MLB '가장 완벽했던 포수' 자니 벤치.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자니 벤치 20 93 214 45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career WAR7yr-peak WARJAWS
자니 벤치 75.0 47.1 61.0
포수 HOF 입성자 평균 53.4 34.4 43.9

4. 자니 벤치 상

항목 참조.

5. 여담

6.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자니 벤치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7 CIN 26 93 14 3 1 1 7 6 0 5 19 .163 .207 .256 .462 -0.4 -0.5
1968 154 607 155 40 2 15 67 82 1 31 96 .275 .311 .433 .743 4.5 5.0
1969 148 592 156 23 1 26 83 90 6 49 86 .293 .353 .487 .840 5.3 6.2
1970 158 671 177 35 4 45 97 148 5 54 102 .293 .345 .587 .932 7.9 7.4
1971 149 613 134 19 2 27 80 61 2 49 83 .238 .299 .423 .722 4.1 4.1
1972 147 653 145 22 2 40 87 125 6 100 84 .270 .379 .541 .920 9.2 8.6
1973 152 651 141 17 3 25 83 104 4 83 83 .253 .345 .429 .774 4.9 4.7
1974 160 708 174 38 2 33 108 129 5 80 90 .280 .363 .507 .870 8.0 7.8
1975 142 606 150 39 1 28 83 110 11 65 108 .283 .359 .519 .878 6.8 6.6
1976 135 552 109 24 1 16 62 74 13 81 95 .234 .348 .394 .741 4.8 4.6
1977 142 563 136 34 2 31 67 109 2 58 95 .275 .348 .540 .889 4.9 5.0
1978 120 451 102 17 1 23 52 73 4 50 83 .260 .340 .483 .823 4.0 4.5
1979 130 538 128 19 0 22 73 80 4 67 73 .276 .364 .459 .824 5.2 5.6
1980 114 407 90 12 0 24 52 68 4 41 64 .250 .327 .483 .810 3.2 3.4
1981 52 196 55 8 0 8 14 25 0 17 21 .309 .369 .489 .858 1.4 1.2
1982 119 439 103 16 0 13 44 38 1 37 58 .258 .320 .396 .716 0.0 0.0
1983 110 334 79 15 2 12 32 54 0 24 38 .255 .308 .432 .741 0.9 1.1
MLB 통산
(17시즌)
2158 8674[8] 2048 381 24 389 1091 1376 68 891 1278 .267 .342 .476 .817 74.8 75.1

7. 관련 문서



[1] 어릴 때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포수를 봤던 탓에 무릎 건강이 크게 나빠져 1981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3루수와 1루수를 보게 된다. 경기 출장 및 소화 이닝은 3루수가 더 많긴 하나 3루 필딩율만 봐도 .929로 3루수로서는 최악이었다.[2] 참고로 테드의 예언은 당연히 현실이 되었고 이를 넘어 첫 턴에 명예롭게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역대 최고 포수 위치까지 차지했기에 테드의 예언을 능가하는 활약을 한 셈.[3] 볼티모어의 3루수였던 브룩스 로빈슨이 대활약했던 시리즈로 당시 레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로빈슨이 꿈에 나타나 그라운드의 흘린 자신의 휴지까지 1루로 잽싸게 집어던졌다.'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수비를 보여주었다.[4] 당시 요기 베라가 양키스의 코치였다.[5] 참고로 전년도인 1975년의 도루기록은 11도루 0도루사, 즉 성공률 100%였다(...)[6] 요기 베라 309홈런. 자니 벤치 이전에는 요기 베라에 비견할 포수가 236홈런을 기록한 개비 하트넷 정도 밖에 없었다.[7] 사실 벤치는 이번 경매가 있기 얼마 전에 이 경매를 주관하는 경매 소장과 저녁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는데, 이 때 소장이 슬쩍 '내놓은 물건 중에 가장 애착이 있는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이를 벤치의 친구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경매소는 애초에 그 친구가 주선한 것이었고, 처음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친구인 벤치에게 소중한 물건을 되돌려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실제 경매에서 예상가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불러 벤치가 애착을 갖는 물품을 싹쓸이하며 친구에게 소중한 추억을 다시 돌려주는 선택을 했다. 이 중에서는 예상 낙찰가보다 최대 5배 가까이 많은 돈을 지불한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지불한 총 금액이 1백만 달러를 넘는다고. 지난 1967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시작된 인연의 배려에 벤치는 눈물을 흘렸고, 벤치는 이 물품을 명예의 전당 등에 나누어 기증하기로 했다고 한다.[8] baseball-reference 기준. fangraph에는 8669타수로, MLB.com에는 8673타수로 전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