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퓨리에서의 M4 셔먼과 티거의 전차전 |
Tank warfare/Tank Battle
기갑차량이 동원된 기갑전 중에서도 기갑차량 끼리, 특히 전차끼리 대항하는 유형의 전투를 말한다.
원래는 전차간의 전투에만 한정된 개념이었으나 시대의 발전에 따라서 전차간의 전투를 하는 와중에 대전차병이 발사한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드는 등 대전차전이 동시에 전개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져서 점차적으로 기갑전의 개념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다.
2. 역사
2.1. 제1차 세계 대전
최초의 전차전 |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가 나왔을 당시에는 전차가 참호 돌파나 보병지원을 위해 사용된만큼, 사실상 움직이는 토치카나 요새 정도의 목적으로 쓰였고, 숫자도 아주 많지는 않아서 전차끼리 붙는 전차전은 사실상 일어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전차의 개발과 생산으로 실전에 전차를 투입한 것은 물론이고 최초의 전차전 자체가 1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것은 맞으나 본격적인 전차전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하지만 최초의 전차전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전차가 전차를 상대로 싸울수도 있다는 개념을 일부 장교들의 머리 속에 심어줌으로서 전차전의 서막이 열린다.
2.2. 전간기
1920년대에는 실질적인 전차 생산은 소규모였지만 전차를 단순히 참호 돌파용 이동벙커로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기병대처럼 대규모로 모여서 전선을 돌파한 후 적진의 내부 깊숙히 들어와서 전과를 확대하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실 헨리 리델 하트나 외젠 에스티엔이었다. 그리고 전차가 야지에서 고속기동을 하기 위해서 동력부나 현가장치, 무한궤도 기술이 점점 발전해가고 있었다.1930년대에는 소련군을 필두로 해서 점차적으로 전차를 대량생산해서 전차로 구성된 전차부대를 편성하고 기동훈련을 하면서 1920년대에 만들어진 전차전 개념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하일 투하쳅스키였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열강의 각국별로 추구하는 전차의 세부적인 전술과 그에 맞춘 전차의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대전차포를 장비한 전차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보병포를 장착한 전차와 함께 운용되기 시작했다. 아직 기술적 미비로 인해 전차의 주포를 대전차포와 보병포로 이원화할 수 밖에 없어서 전차의 종류가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전차들은 스페인 내전이나 할힌골 전투같은 곳에서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문제점을 찾고 그걸 개선한 새로운 전차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2.3. 제2차 세계 대전
전차 기술이 대폭 발전하고, 육군에서 공세를 위해 많이 운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군과 적군의 전차끼리 붙는 전차전 양상의 전투가 늘어났다. 이런 과정에서 각국의 전차 운용 개념과 특화된 전차들이 대량으로 실전에 투입되면서 성공과 실패 여부가 갈린다.기본적으로 나치 독일과 소련은 성공적이었으며 영국과 미국은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우수한 수준이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부터는 여러가지 단점으로 인해 실패라고 봐야 하며 이탈리아 왕국과 일본 제국은 제대로 된 전차 전력 구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전술을 논할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며 전술도 수준이 낮았다.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서부전선의 경우에는 초반전은 전격전으로 흔히 표현되는 나치 독일의 전차 전력 집중 운영과 돌파가 먹혀들어갔고 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전차들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다가 전술도 뒤떨어져서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전략적으로는 나치 독일이 승리했다.
그 다음에 북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어느 정도 문제점을 개선한 영국의 전차 전력이 이탈리아 왕립 육군의 전차 전력을 압도했으나 아직까지는 나치 독일의 전차 전력을 능가하지 못해서 숫자에서 압도적일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으며 횃불 작전으로 유럽의 전쟁에 참가한 미국의 경우에는 중형전차인 M4 셔먼은 잘 뽑아내서 전선에 대량배치하였으나 쓸만한 중전차가 없어서 나치 독일의 정예 중전차 전력에게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서유럽 전선이 열리면서 영국과 미국의 전차 전력이 합동으로 나치 독일의 전차 전력과 대규모로 맞붙은 결과 숫자에서 압도적이고 공군이나 포병 등의 지원전력이 많은 서방 연합군이 전략적으로는 우세했으나 전술적으로는 방어적인 위치에서 매복이나 소규모 기동을 하는 나치 독일군의 기갑전력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중전차인 M26 퍼싱은 동력기관 쪽 문제가 심각한데다가 아직 미국 수뇌부의 전차전과 대전차전에 대한 생각이 미비한 탓에 전쟁 말기에나 1선에 등장할 수 있었으므로 결국 적의 창날을 박살낼 아군의 창끝이 없는 상태로 전쟁이 진행된 결과 전략에서는 우세하고 전술에서도 나치 독일의 전투단 개념을 도입해서 동등해졌으나 중전차 전력 문제로 인해 실제 전투에서는 손해가 많은 채로 마무리된다.
독소전쟁으로 벌어진 동부전선의 경우에는 초기에는 대숙청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미 보유한 전차 전력도 제대로 유지보수하지 못한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갈려나가는 초반전을 보냈으나 그래도 T-34-76과 KV-1을 개발 완료 및 대량 생산에 성공하여 1선에도 일부 배치했으므로 나치 독일군은 전략적인 우세와 전술적인 작전능력 우월로 소수의 소련군 신형전차를 전차 부대로 포위하고 8,8cm FlaK같은 대구경 화기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초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무기대여법으로 각종 지원과 기술 도입을 통해 전차와 같은 무기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나치 독일군이 일방적으로 우월한 상태에서 전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으며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지게 된다.
전술적 사이즈에서 본다면 주로 대규모 포병사격을 한바탕 벌인 뒤, 하늘에서 전투기들끼리 붙는 동안 공격기와 급강하폭격기 세력이 전차들 머리 위로 출몰하여 한바탕 퍼붓고, 전차는 그걸 전부 닥돌만으로 뚫고 서로의 사정권까지 접근하여 교전하거나, 장사정 전차포를 활용해 원거리에서부터 일방적으로 잡아내는 양상이고, 전선 단위에서 본다면 전차부대로만 편성된 순수 전차 여/사단을 다수 편성하여 적의 약점부위로 기동해 치는 방법이나, 적의 공세가 있는 곳으로 전차를 보내 매복해 분쇄한 뒤 다시 다른 공세가 오는 곳으로 이동해 또 매복하기를 계속 반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 주력과 정면 격돌해 한판 붙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소련군은 막대한 희생을 통해서 나치 독일군에 버금가는 작전술과 전술을 습득했으며 전차 전력도 IS-2 중전차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등 향상이 이루어져서 개별적인 나치 독일군과의 전차전은 불리하기도 했고 국지적으로 나치 독일군의 정예 중전차 전력이 승리하기도 했으나 전략적으로는 나머지 전선에서 압도적으로 소련군이 승리하는 바람에 나치 독일이 소련군의 전선돌파를 막지 못하고 일부 전력은 고립당해서 간신히 몸만 살아서 빠져나오는 것을 반복한 끝에 베를린 공방전에서 소련군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중일전쟁 방면은 국민혁명군이 가난하고 대전차 능력이 매우 부족하여 이미 보유한 일본군 전차 전력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만 했고 태평양 전쟁 초기에도 동남아시아 방면 식민지까지 제대로 된 전차 전력을 배치할 정도로 여유가 없고 그나마 투입된 전차도 잘 해봐야 12.7mm 중기관총을 장비하여 간신히 경전차 취급을 할만한 Mk.6 경전차 수준이라서 남방작전에서 일본 제국이 대승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M3 37mm 대전차포 계열 주포를 장착한 스튜어트 전차도 정면에서 상대하기가 매우 어렵고 큰 손해가 날 정도로 전차의 성능이 빈약했다는 문제가 컸다. 해당 문제는 일본 제국의 해상 물자 하역 시스템이 빈약해서 15t 이상의 전차를 자유롭게 수송선에 적재하고 항구에 하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과 할힌골 전투 이후에도 제대로 된 전차를 만들기보다는 전간기에 만든 개념인 소구경 대전차포를 단 경전차가 전차전을 담당하고 중형전차는 보병포나 달아서 보병전차로 써먹는다는 것을 유지하는 바람에 개전 초기부터 미국의 전차에게 밀리기 시작하더니 75mm 주포를 장착한 M4 셔먼이 전선에 등장하면서부터는 말 그대로 추풍낙엽이 되버렸다.
물론 일본에서도 주포를 1식 기동 47mm 속사포 계열의 대전차포로 업그레이드한 치하 改를 개발하고 투입했으나 1선에 대량투입된 전차는 이게 끝이었고 이 정도로는 M4 셔먼을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치헤 이후의 전차들은 모두 결호작전에 대비해서 일본 본토에만 있다가 그대로 패전을 맞이했으며 전차의 전술면에서도 대규모 기갑부대를 만들지도 못했고 운용도 훌륭하지 못했으며 소수의 전차 전력을 분산배치하다가 결국 미국에게 각개격파당하면서 오히려 대전차총검술이나 자돌폭뢰같이 보병들이 사실상 자폭하는 대전차전 전술이 미군 전차에게 더 위험해질 정도였다.
이탈리아 왕국의 경우에는 간신히 전차의 주력은 M13/40을 만들어서 일본군보다는 나았으나 그게 유럽전선에서 먹힐 수준이 전혀 아니었으며 국력이 미약하고 전쟁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인지라 P26/40같은 전차를 제대로 생산하지도 못했다. 전차의 전술 면에서도 영국군보다 떨어져서 종합적으로는 일본 제국과 꼴찌를 다투는 지경까지 밀린다.
2.4. 냉전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추축국이 무너지면서 전차전의 전술과 교리와 기술은 서방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쪽의 소련으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며 각 진영별로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합동군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각 기구에 속한 국가의 군대를 유기적으로 통합해서 지휘하는 체제가 만들어진다.전차전 측면에서는 서방 연합군은 돌격해오는 소련군을 원거리에서부터 저격을 통해 숫자를 줄인 후 전차전을 통해서 돌격의 예봉을 꺾어버리는 체제를 만들게 되었으며 소련군은 소련군의 종심돌파이론을 체계적으로 다듬어서 빠른 시간내에 방어선을 돌파하여 서유럽을 정복완료하려는 공격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냉전 시기라서 초강대국끼리의 전면전은 끝까지 벌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3세계나 변방 지역에서의 전차전이 활발하였다. 이 기간의 전차전은 한국전쟁에서의 전의 전투 중 벌어진 소규모 전차전에서부터[1] 골란고원에서의 대규모 전차전 등 다양한 전차전이 벌어졌으나, 대부분의 경우 2차대전때의 그것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냉전 시기부터 대전차전이 전차전과 같이 전개되는 바람에 순수한 전차전은 제4차 중동전쟁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이미 2차대전 중반 이후부터 바주카와 판처파우스트등의 대전차병기가 등장하여 보병이 전차 1 - 2대 정도는 근거리에서 잡을 수 있는 수단이 만들어지더니 전후에는 대전차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2차대전 방식의 전차 집중식 단독돌격이 먹히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4차 중동전쟁 이후에는 보병을 반드시 동행하면서 전투를 진행해야 하며 대전차 로켓을 비롯한 각종 대전차화기를 휴대한 보병을 전차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진행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2.5. 현대전
걸프 전쟁에서는 미군의 M1A1 에이브람스와 이라크군의 T-72A가 맞붙었는데, 미군의 공중 우세 및 확연한 전력 차로 이라크군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해당 승리는 사막 지형에서 보병이 은엄폐할 곳이 부족하고 장시간 매복이 곤란한 상태에서 사정거리가 우월하고 명중률이 높은 미군이 이라크군을 압도한 전투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진 사례다.이라크 전쟁 및 아프간 침공은 상대가 비정규군이거나 전력이 부족하여 국지전의 연속이었기에 전차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미군 전차가 시가전에서 매복에 피해를 입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였고 이는 TUSK 키트나 능동방호장치 같이 전차가 비정규전 대응 능력도 기르도록 변화하게 되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에서는 다시 전차가 맞붙게 되었는데 드론과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들이 대량 사용되면서 기존의 예상과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규모의 전면전에서는 전차들의 절대적 성능보다는 지원 화력의 질과, 전차와 그들 간의 유기적인 작전수행이 전차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대본부 혹은 그 이상급에서 운용하거나 각 분/소대급 제대에 뿌려져 있을 드론운용병들이 조금이라도 뒤에서 드론을 날려 공중에서의 지속 감시정찰(Overwatch) 및 1차 공대지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을 실시하거나, 지원하고 있는 박격포를 포함한 모든 포병과 인근 아군 항공기 혹은 비행장에 즉시 화력지원 좌표를 제공하며, 보병은 장갑차를 타고와 장갑차와 함께 도보로 기동하면서 사거리로 접근하고 있거나, 매복하다 발각된 적 대전차조와 공병 폭약으로 전차를 부수려는 전투공병조를 쓸어버려야 하며, 전차는 이들 보병과 장갑차가 대전차조와 전투공병조, 기관총, 저격수, 전차, 장갑차에게 노출되었을 시, 드론 운용병들에게 요청하거나 혹은 해당 대원들이 자진하여 제공함으로서 얻은 정찰정보를 취합하여 적의 위치를 빨리 알아내면서, 긴급히 방패 역할을 함과 동시에, 반격을 위한 창과 칼[2]의 역할도 병행하여야 승리를 거머쥘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전쟁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3. 전술
과거에는 기동전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차를 대량으로 집결시켜서 전선을 돌파하거나 아군 전선을 돌파한 적 전차 전력을 상대하거나 하는 식의 다양한 전차전 전술이 존재했으나 현대에는 대전차화기의 발달로 인해 보병을 반드시 수반해야 하며 대전차전이 동시에 벌어지는 관계로 인해 전차전만의 독자적인 전술은 사실상 없다.특히 6호 전차 티거같은 중전차가 보여줬던 전술인 적 포탄을 튕겨내면서 적절한 앵글링을 통해 적진의 한복판을 쓸어버리는 식의 전술은 완전히 사라졌다. 워낙 날개안정분리철갑탄 같은 고위력 포탄이 많아서 유효사정거리 안에서 이런 포탄을 맞으면 전면장갑이 뚫릴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걸프 전쟁 당시의 전차전에서도 M1 에이브람스는 T-72의 유효사정거리 밖에서 정확한 명중탄을 날리는 방식으로 전투했고 가급적 전면장갑만 적에게 노출하는 방식으로 전투하였다.
다만 과거로부터 이어진 전차전 전술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은엄폐와 매복이다. 사실 과거에 전차전이 대규모로 벌어질 때도 은엄폐를 한 후 매복한 상태에서 기습적인 일격을 날린 쪽이 대부분 승리했다. 여기까지라면 대전차포의 전술과 같으나 전차의 경우에는 그 후에는 매복한 곳에서 튀어나와서 기동하면서 전과를 확대하고 다른 적을 다시 찾은 후에 지형을 이용하여 은엄폐와 매복을 실시해서 적에게 다시 타격을 주는 식으로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되며 이건 현대에도 먹히는 전술이다. 그래서 헐 다운 같은 공격방식은 여러가지 비판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살아남았다.
4. 미디어
- 월드 오브 탱크는 전차전을 다룬 게임이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보병이 전차보다 속도가 느리고 전차나 차량에게 묵사발이 된다는 특징 때문에 사실상 중반부터는 전차전이 강요되며 전차가 전차를 깔아뭉겔수 있는 초중전차 등장한다.
- 워 썬더 역시 지상전의 경우 전차와 전차 간의 전차전이 주된 형태이다. 다만 월드 오브 탱크와는 달리 항공기를 활용한 근접항공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플레이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훨씬 많다.
5. 관련 문서
[1] 미군 M24 채피들이 북한측 T-34-85 부대를 발견하고 기습해 선두차를 돈좌시켰지만, 잠시 당황했으나 바로 정신차린 북한군의 신속한 반격에 되려 채피 2대를 일거에 손실하며 패배했다. 이후 전의 전투 내내 일방적으로 채피를 더 잃었다. 반면 북한군 역시 해당 전투 첫날부터 미군이 빤히 쳐다보는 전의면 시가지 내에 대놓고 진입했다가 바로 걸린데다 방공망 구축도 부실하여 결국 미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대대적인 공습과 지원포격을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최소한 5량의 전차와 2백 량의 차량을 손실했다.[2] 기병창과 기병도를 생각하면 얼추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