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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21:55:50

전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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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민국 대법관
전수안
田秀安 | Chun Su Ahn
파일:1702617173524_kqgb1f_2_0.jpg
출생 1952년 8월 12일 ([age(1952-08-12)]세)
경상남도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본관 담양 전씨 (潭陽 田氏)[1]
현직 사단법인 올, 젠더와 법 연구소 대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사단법인 선 고문
대한적십자사 (한적) 법률고문
재임기간 제29대 광주지방법원장
2006년 2월 13일 ~ 2006년 6월 20일
대법관 (이용훈 대법원장 제청 / 노무현 대통령 임명)
2006년 7월 11일 ~ 2012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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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596><colcolor=#fff> 가족 배우자 임상혁(林尙爀)[2], 슬하 2남
학력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약력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제8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대전고등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제29대 광주지방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2006.07. ~ 2012.07.)
서울대학교 이사
제5대 서울대학교 이사장
}}}}}}}}}

1. 개요2. 생애3. 대법관 재임 시절4. 대법관 퇴임 이후5. 여담6.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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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법관.

대한민국의 법조인, 학교법인인이다.

대법관 재임 시절에는 '독수리 5형제'[3]로 알려졌다.

2. 생애

1952년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아버지 전찬호(田儹昊)와 어머니 청주 한씨 한남이(韓南伊)[4] 사이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아주 어려서부터 법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판사가 되면 드라마 같은 데서 보던대로 마음대로 어려운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이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경기여고에서 서울법대에 원서를 낸 것은 황산성(사법연수원 2기) 변호사 이후 10년 만이었다고. 법대에서도 학생 100명 중 여학생은 본인을 포함해 2명 뿐이었다고 한다. 재학 중 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8기로 판사가 되는데, 사법연수원에서 동기 60명 가운데에서 혼자 여성이었다고 한다.

1997년부터 3년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법원 내 첫 여성법학회의 발족과 여성법 강좌의 개설에 기여하기도 했고, 조세법 관련 논문 저작을 많이 남겼다. 서울고등법원 재직 당시에는 80여명의 부장판사 중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2006년 2월 광주지방법원장 보임은 사상 두 번째 여성 법원장 인사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 재임시에는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에 엄정한 양형기준을 적용했다. 2004년 12월, 윤락업소 취업을 미끼로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도 강간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증언의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은 직업소개소 직원에게 원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했다. 2005년 8월, 연인 사이였던 제자를 폭행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면서 이 장면을 동영상 카메라에 담은 고교 교사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 취하에도 불구하고 3년 실형의 중형을 선고하는 등 등 여성과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추모 촛불집회를 사전허가 없이 열고 경찰의 직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여중생 범대위 집행위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며 유죄를 선고하는 등 법과 원칙에 충실한 단호한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3. 대법관 재임 시절

2004년 7월 김영란 대법관과 동시에 적격후보로 추천된 이후 대법관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고, 2006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으로 이용훈 코트의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시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과 기념비적인 소수의견을 많이 냈다. 전수안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이라 해도 국가가 직접 살인형을 집행할 명분은 없다는 것,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 1년6월형을 사는 사회여선 안된다는 것 등의 견해들이 다수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고 말하는 등 대법원에서 소수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커져야 함을 강조한 데 이어 사형제 폐지와 대체복무제 도입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2012년 7월 퇴임사에서까지 소수의견을 내놓았을 정도. 여성법관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빌려 "언젠가 여성 법관이 다수가 되고 남성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 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며 남성대법관 중심의 대법원 구성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4. 대법관 퇴임 이후

2012년 7월, 퇴임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이사장을 맡고, 사단법인 올 젠더와 법 연구소의 대표를 맡았다.[5] 2019년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후보자를 두둔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

2019년 2월 14일, 서울대학교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5. 여담

6. 경력


[1] 경은파 27세.[2] 나주 임씨 임병기(林炳基)의 아들이다.[3] 진보성향의 대법관인 김영란, 전수안,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을 묶어 이르는 말. 전수안 대법관은 "몇몇 판결에서의 독수리 5형제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수많은 판결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으며 김지형 대법관은 "멀쩡한 사람이 조류가 돼버렸다"며 가벼운 불평을 남기기도 했다.[4] 한인교(韓仁敎)의 딸이다.[5]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이 이사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이사를 각각 맡아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