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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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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80><colcolor=#fff> 제7대 서울대학교 이사장
권오현
權五鉉 | Kwon Oh-hyun
파일:삼성전자_권오현_회장.jpg
출생 1952년 10월 15일 ([age(1952-10-15)]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안동 권씨
현직 삼성전자 상임고문
SNU홀딩스 이사회 의장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이사장
재임기간 제7대 서울대학교 이사장
2023년 1월 25일 ~ 현직
학력 대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 / 학사)
한국과학기술원 (전기공학 / 석사)
스탠퍼드 대학교 (전기공학 / Ph.D.)

1. 개요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이후 평가2.2. 주요 경력
3. 수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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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삼성전자 상임고문, SNU홀딩스 이사회 의장,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이사장이다.

지금의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은퇴 후에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까지 맡은 바 있으며 2021년 서울대가 새롭게 설립한 사업지주회사 SNU홀딩스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2022년 5월 9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초대 민관합동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알려졌다.

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이후 평가

1997년 당시 발령받은 시스템 LSI 본부는 적자 부서였다. 그리고 발령 전에는 박사 출신 연구원으로 개발을 진행했으나 발령 후에는 경영을 맡아야만 했다. 2010년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부사장이 자살을 택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권오현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 큰 조직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20년 삼성전자에 근무한 반도체맨에 의하면, 초기에는 꽤나 어려운 임원으로 통했다고 한다.# 특히 세세한 것에 집착하고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 집중했었는데, 점차 높은 직급에 올라가자 매니지먼트에 한계를 느끼고 팀 단위로 자율성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하위 설계팀의 권한이 강했고, 덕분에 이 시기에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보여주는 등 큰 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오래 일하는 것보다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쉬는 '스마트워크'를 강조한다. 평소 직원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위해 일찍 퇴근해서 가정적인 가장이 되라”며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도 일주일에 두 번은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의 본질을 파악하면 이야기는 굉장히 단순해진다는 신념 때문에 번잡한 보고를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전무급 임원이 장황한 보고를 하자 다음부터는 간단히 하라면서 따끔하게 지적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는 신념을 지녀 토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한 것을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용장보다 덕장 또는 지장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끈기와 집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형식이나 의전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해외출장 때 불필요한 인원을 데리고 다니는 일도 없고 공항에 마중 나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둘 정도라고 한다. 반도체사업부를 이끌 당시 분기에 한 번씩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편하게 대화하는 막걸리 소통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비유법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성전자 임원들 사이에서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소한 것도 끝까지 잘못된 점과 책임 소재를 규명한다.

삼성 CEO 중에서 회의가 길어지면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흡연을 자기관리 실패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아주 싫어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병철[1]이건희, 그리고 그의 선배이자 동시대 최고의 글로벌 CEO으로 평가 받는[2] 윤종용은 애연가였다.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당시 기흥 반도체 사업장의 직무실 책상 뒤 벽에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써서 선물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사자성어를 걸어놓았다. 격물치지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는 의미다.

2017년 10월, 퇴임 이후 후임자가 오면서, 권오현 시대의 자율적인 조직 문화는 크게 바뀌게 된다.

2.2. 주요 경력

3. 수상

4. 기타

베스트셀러인 '초격차'의 저자이기도 하며, 중 고등학교 시절 입학 시험에서 낙방을 해서[4] 시련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직장 생활 중 학교 후배를 8년이나 상사로 받아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고 회고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후배가 임형규 아니면 황창규일 거라고 했다. 직속상관은 임형규, 그 위의 상관이 황창규였다.[5]
후배와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에 솔직히 기분도 나빴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제 부하들에게 먼저 밝혔습니다. 그때 제 부하들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닥치더라도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함께 일하자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정작 본인에게 그런 일이 닥치니까 그만두시겠다는 겁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뭡니까?”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부하 직원들에게 해왔던 말이 있었으니까요. 회사라는 조직은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다. 먼저 회사가 잘 되고, 그 다음에 부서가 잘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잘 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 있더라도 조직이나 회사가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 결국 제가 한 그 말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늘 해왔던 말을 제가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동료와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당신들 말이 맞다. 내가 늘 그렇게 말해 왔는데, 내가 그걸 어기면, 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솔직히 기분 나쁘다. 하지만 우리 함께 실력을 키우자. 함께 더욱 더 노력하자.”

이런 각오로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맡고 있던 반도체의 시스템 LSI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다행스러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후배가 저를 제치고 상사로 임명되는 상황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고, 솔직히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난관이 있었기 때문에 더 분발할 수 있었고, 사업적인 측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은 8년이나 이어졌습니다 - <초격차, 권오현> 중에서

2020년 상반기 삼성전자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무려 92억 9,000만원의 퇴직금을 수령했으며 이후 급여 등을 포함해 총 172억원을 수령했다. #


[1] 심지어 폐암으로 사망했다.[2]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선정 2013년 최고의 성과를 낸 CEO 순위에서 3위에 랭크되었다. 참고로 1위와 2위는 스티브 잡스와 제프 베조스.[3] 신종균 사장보다 4년 먼저 수상했다.[4] 당시는 중고등학교도 시험을 쳐서 지원하는 곳으로 갔었다. 전기와 후기 모집으로 나뉘었는데 전기 모집 고등학교들은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서울사대부고 등이 있었고 전기 모집 시험에 낙방하면 후기 모집 고등학교들인 중앙고, 경동고, 중동고, 대광고, 신일고, 동성고 등에 입학했다.[5] 앞의 기사에는 임형규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잘못 나와 있다. 권오현은 전기공학과 71학번, 황창규는 전기공학과 72학번, 임형규는 전자공학과 72학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