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ies (START)Договор о сокращении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наступательных вооружений (СНВ)
전략 핵무기의 감축을 위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협정으로서 소련 붕괴 이후에는 소련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러시아 연방에 의해 지속되어 왔다. 1991년 7월 31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간의 서명을 시작으로 2010년의 NEW START까지 총 3회의 협정이 있었으며 과거 상호간에 맺었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 ОСВ)[1]의 문제점을 개선함과 함께 핵무기의 "제한"을 넘어서 근본적인 "감축"을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배경
용어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SALT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는 핵탄두의 운반수단 (ICBM, SLBM, 전략폭격기 등)을 제한하는 것에 취지를 뒀을 뿐 핵탄두의 숫자를 줄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과거에 폐기한 미사일의 탄두만 쓱 끄집어내서 새로운 미사일에 옮겨 싣거나 탄도탄의 숫자는 줄였는데 MIRV를 왕창 늘리는 등 양국의 잔머리는 계속 세련되게 발전했고 설사 감축했다고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실사를 할 방법이 묘연했기 때문에 불신과 증오 역시 늘어만 갔다. 그러나 이 꼴로 가다가 상호확증파괴로 이어질 거라는 것은 쌍방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양국의 모든 핵탄두는 5,000기, ICBM에 적재되는 탄두는 2,500기로 줄이자는 내용과 함께 ICBM은 850기로 낮추자는 핵전력 감축안을 제안했다. 여기에 헤비급 ICBM은 110기만 허용하고 총 투사중량(Throw Weight) 역시 과감하게 축소시키자고 주장했는데 이 헤비급 ICBM은 당시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던 SS-18 Satan이었으며 오직 이 녀석의 머릿수를 줄이기 위해 끄집어낸 정치적인 멘트라고 봐도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만일 소련이 폭격기로 핵투발을 하려고 했다면 북극권이나 태평양을 거쳐야 했는데 전자는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방공 레이더에, 후자는 하와이의 방공 레이더가 감시하던 영역이었다. 그래서 소련은 간단히 쏘면 끝인 ICBM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Satan 탄도 미사일이었다. 반대로 NATO 등 우방국 영공에 도착해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면 러시아의 주요 도시가 사정권에 드는 미국은 폭격기를 중심으로 개발하였다.아니나 다를까 소련은 미국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던 전략폭격기는 꺼내지도 않은 채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SS-18만 콕 찍어서 말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속내를 모조리 파악한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아닌 내용인 데다 당시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는 지병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주변의 참모들 역시 강경한 인물들 위주라 뭔가 발전적인 과정으로 진입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미국에 대한 비난과 함께 그동안 해 왔던 방향을 그대로 유지했고 레이건 대통령 역시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는 발언으로 정중히 답례했다. 그러다가 1983년 9월 1일에 터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상호간의 적개심에 기름을 그냥 확 부어버렸고 미국도 이제는 그냥 다 무시한 채 SDI 계획을 시작하는 한편 1986년에는 SS-18의 대항마로서 피스키퍼 ICBM을 개발해 배치시키는 것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러나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사후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전의 리더들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고 그 무렵부터 양국의 장관이 만나 당시 가장 심각한 이슈였던 퍼싱 II와 SS-20 Saber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소하게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가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사이의 회담은 서로의 속내와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는 좋은 기회로 작용했으며 심지어 상호간의 전략핵무기를 무려 50%로 감축하자는 등 상당히 진보된 내용도 오갔다. 결국 소련이 주장한 SDI 폐기 요구를 레이건 대통령이 거절하는 바람에 회담은 최종적으로 결렬되긴 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협상카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추후 있을 회담의 대응책도 세울 수 있어서 실패했음에도 성공한 회담이라 평가받고 있다. 또한 군비경쟁 때문에 소련이 알아서 자빠질 것이라 판단한 레이건의 예측도 이 회담으로서 증명됐다.
1987년 12월 8일에 맺어진 INF (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 협정은 유럽에 배치된 IRBM을 철수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의 현황을 실사/검증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동식 탄도탄의 머릿수와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내용 등의 합의도 이루어진다.
3. START I / СНВ-I (1991.7.31)
한편 미국에서도 1989년 1월에 레이건의 뒤를 이어 조지 H.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H. W. 부시는 하원의원 시절 리처드 닉슨의 데탕트를 적극 지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국제정세에 대해 전임자보다 훨씬 온건하고 현실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졌으며 마침내 1991년 7월 31일 양국의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만나 첫번째 감축협정 (START I)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양국은 ICBM과 SLBM, 전략폭격기 등의 핵투사 수단과 핵탄두의 상한선을 각각 1,600기와 6,000기로 감축하는 것은 물론 서로의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교환하고 협정 이행에 따른 상호검증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합의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에 남겨진 핵무기로 인해 약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놓였으나 러시아를 포함한 네 나라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모여 핵무기는 러시아가 다시 책임지고 주워가는 한편 나머지 3개국은 NPT에 가입해서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담긴 리스본 의정서 (Lisbon Protocol)을 채택했다.[2]미국은 이 협정을 통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 핵무기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발표했다.
날짜 | 1990.9.1 | 2009.7.1 | ||
국가 | 미국 | 소련 | 미국 | 러시아 |
ICBM | 1,000 | 1,398 | 550 | 465 |
SLBM | 672 | 940 | 432 | 268 |
전략폭격기 | 574 | 162 | 206 | 76 |
핵탄두 | 10,563 | 10,271 | 5,916 | 3,897 |
총 투사중량 (Mt) | 2,361.3 | 6,626.3 | 1,857.3 | 2,297.0 |
4. START II / СНВ-II (1993.1.3)
한편 1992년 무렵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소련이 붕괴된 상황이라 조금 더 다이어트를 해도 되겠다는 전향적인 의견을 내비쳤고 러시아 역시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흔쾌히 동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퇴임을 불과 17일 남겨둔 1993년 1월 3일 보리스 옐친과 두번째 감축협정을 맺게 됐는데 가장 큰 골자는 2003년까지 2단계에 걸쳐 ICBM의 그 고약한 MIRV를 아예 없애 버리자는 것으로서 START I의 알맹이는 당연히 승계함과 함께 러시아가 부담할 해체비용을 미국이 지원해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코소보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 것과 동유럽 국가들을 NATO에 끌어들이는 문제, 빌 클린턴 행정부가 시도한 NMD (National Missile Defense) 등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다가 2002년 6월 1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MD의 구축을 위해 ABMT (Anti Ballistic Missile Treaty)[3]를 탈퇴하면서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날 바로 START II의 무효를 선언했다. START 협정은 과거 있었던 모든 조약의 유지를 전제로 깔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반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부시는 MD를 추진하기 위해 영 좋지 않은 방법을 썼다.그런데 정확히 20일 전인 2002년 5월 24일 부시와 푸틴 두 사람 간에 SORT(Strategic Offensive Reductions Treaty)라는 협정을 맺은 사항이 있는데 START II는 열받은 푸틴에 의해 폐기됐고 SORT가 그 역할을 이어받는 것으로 대충 퉁쳤다. 2012년 12월 31일까지 핵탄두의 숫자를 6,000기에서 1,700~2,200기 가량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아버지가 체결한 START I과는 달리 탄두의 제한을 운반수단과 연계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감축했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빠져있고 퇴역시킨 탄두를 반드시 폐기해야 할 필요가 없는 점 등 대단히 헛점이 많았다. 또한 감축을 마감하는 시기가 협정의 효력이 종료되는 날짜라서 강제성이 없는 등 이런저런 문제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휴지조각은 아니어서 미국은 LGM-118A 피스키퍼를 퇴역시키고 미니트맨 III의 MIRV를 3개로 제한하는 등의 자진납세를 해서 분위기를 바꿔 보고자 노력했다.
5. START III (취소)
1997년 3월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만나 2007년 12월 31일까지 핵탄두를 2,000~2,500기 가량으로 감축하는 안에 상호 공감을 표시하고 협정 직전까지 가긴 했다. 그러나 수단과 세르비아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들이 러시아의 미움을 산데다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를 NATO에 가입시키는 문제[4] 등으로 이런저런 간격이 생기는 바람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구상으로만 끝났다.6. New START / СНВ-III (2010.4.8)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ussian Federation on Measures for the Further Reduction and Limitation of Starategic Offensive Arms
Договор между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Соединёнными Штатами Америки о мерах по дальнейшему сокращенню и ограничению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наступательных вооружений
Договор между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ей и Соединёнными Штатами Америки о мерах по дальнейшему сокращенню и ограничению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наступательных вооружений
START I의 효력이 만료되는 시기인 2009년이 되자 새로운 수단이 필요해졌고 SORT 역시 2012년에 종료되는 데다 많은 보완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양국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2009년 4월 1일 런던에서 있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사이의 회담을 시작으로 총 9번의 만남을 거쳐 2010년 3월 26일 매우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마침내 동년 4월 8일 프라하에서 양국의 대통령은 과거의 감축협정을 모두 승계하는 New START 협정에 서명했으며 2021년 2월 5일까지[5] 모든 운반수단과 핵탄두를 각각 700기와 1,550기로 축소시키는 내용을 았다. 또 상대방을 검증하는 새로운 방법과 규정도 설정됐으며 양국 모두 2011년 초반에 의회의 비준을 가볍게 통과하는 등 과정도 대단히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2018년 2월 5일 러시아 외무부는 현재까지 핵탄두를 총 1,444기로 줄이는데 성공했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같은 날 기준으로 미국의 핵탄두는 총 1,350기로 감축이 완료되었다.
한편 2017년 1월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New START는 오바마 행정부의 협정 가운데 가장 나쁜 사례"라는 발언과 함께 협정을 개정할 의지도 내비쳤다. 그런데 트럼프는 표면적으로 "나는 누구보다도 핵무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와 관련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대폭 강화,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여 지금까지의 협정을 통해 나름대로 잘 이행한 결과를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러왔다.[6] 그리고 러시아는 이 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수중으로 전략핵공격을 가하는 신형무기 포세이돈을 개발하여 미국에 엿을 먹였다.
한때 중국을 초대하자는 미국의 제안이 있었지만 러시아가 거부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종료하겠다는 엄포를 내놓다가 얼마 안 나가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연장하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미러관계가 악화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7.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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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조인된 1차 조약 (SALT I / ОСВ-I), 1979년 6월 비엔나에서 조인된 2차 조약(SALT II / ОСВ-II)[2] 일단 이게 잘 합의는 됐고 러시아의 안전 보장과 서방의 경제지원도 얻어낼 수 있었으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 위기를 촉발시켜 우크라이나의 뒷통수를 치는 등 진상을 떨기 시작했다.[3] 1972년 리처드 닉슨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사이에 맺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협정"으로서 당시에는 지금의 MD처럼 최첨단 기술을 업고 요격하는 것이 아니라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적 탄도탄의 코스로 날려다가 핵의 위력으로 공중에서 파괴시키는 무식한 방법을 썼다. 당연히 기술 수준이 안 되니까 이런 용자짓을 고안한 것이고 게다가 이쯤 되면 거의 이판사판인 상황이라 핵 2개가 터지면서 자국민의 머리 위로 방사능과 낙진이 떨어지는 문제는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요격 미사일을 뚫기 위해 더 많은 ICBM을 생산해서 양으로 깔아뭉개려는 악순환이 계속되자 협정을 맺었지만 성실하게 잘 준수되지는 못했다. 한편 레이건 대통령이 SDI를 발표하자 소련이 ABMT 위반이라고 문제를 삼았지만 "이건 레이저로 잡는 거라 위반이 아니올시다"라며 일갈하기도 했다.[4] 물론 옐친 대통령은 과거 이 나라들이 소련의 위성국이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판단하고 NATO 가입을 동의하게 된다.[5] 양국의 합의에 따라 2026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6] 그러나 이 조약들은 모두 미국과 러시아와의 협정이지 중국은 여기서 빠져있기에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2010년대부터 급속도로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은 INF와도 상관이 없을 뿐더러 MIRV 같은 제한도 일체 없다. 따라서 미국, 러시아, 중국 3국간의 새로운 출구전략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