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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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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CEEB> 대가야 반파국 시조
이진아시
파일:이진아시왕 표준영정.jpg
칭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성씨 김(金)
이진아시(伊珍阿豉)
내진주지(內珍朱智)
뇌질주일(惱窒朱日)
신장 9척(2m 43cm)[1]
생몰년도 42년이전(?) ~ ?
재위기간 42년(?) ~ ?

1. 개요2. 이름
2.1. 탄생 설화2.2. 대중매체

1. 개요

42년 반파국(대가야)을 건국한 시조. 다만 그 외의 역사 기록은 거의 전무한 수준인데, 애초에 가야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 자체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위의 그림은 2016년 대한민국 정부가 지정한 표준영정이다. 당연하지만 저 위의 영정 그림도 상상화다.

2. 이름

삼국사기에서는 대가야국의 시조를 이진아시라고 하고, 그를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즉 이진아시는 고대에 흔히 그랬던 것처럼 향찰식 표기일 가능성이 높다. '뇌질주일(惱窒朱日)'이라는 이름으로도 써 있는데, 위의 내진주지와 음이 통한다고 볼 수 있고, 한편 이 기록에서 금관국수로왕은 '뇌질청예'라고 쓰고 있다. 뇌질이 성씨격인지 뭔지 알긴 어렵지만 이름에 같은 글자들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진아시왕과 김수로왕은 분명히 어떤 공통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역으로 금관국 중심적인 설화인 구지봉 구지가 설화에서도 어쨌든 김해 금관가야와 고령 대가야는 같은 날 알에서 태어난 형제라고 돼 있으므로, 설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원래 형제였다는 부분은 겹친다.

일본 신화 이름인 이자나기와 이름이 비슷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실제로 고대 한국어와 고대 일본어를 모두 연구하는 알렉산더 보빈은 '이자나기'를 끝의 '기'가 일본어이고 앞의 '이자나'는 한국어로 '*yencana(*연자나. '얹-'과 '나-'의 고대형의 결합)의 결합으로 보았다. 한편으로는 '이자나기'처럼 '이진아시' 역시 한국어적 요소와 일본어적 요소가 혼합돼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아시' 부분이 그러한데, '아'가 소리를 나타내고 '주(朱: 붉다)'가 뜻을 나타내어, 일본어 'aka(빨강)'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뒤의 '시'는 한국어적 요소로 지도자를 가리키는 존칭의 '-기'로 본다. 여기서 고대 한국어에 ㄱ, ㅋ, ㄲ, ㅎ의 변별이 없었고 그 대신 [x] 발음이었다는 학설을 빌리면 '-기' 혹은 '-시'는 '-*xi'로 표기할 수 있고, 이때 자음 /x/가 /i/ 모음 앞에서 구개음화해 '시'에 가깝게 소리가 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2] 참고로 '일(日)'은 가차(훈가자)로 '해'의 당시 한반도 남부 방언이 역시 '*xi'로 존칭 접미사와 동음이의어였거나[3] 비슷한 발음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또 저 말이 만약 '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불을 켜다 할 때의 '켜다'라는 말은 과거에 ㆅㅕ다라고 표기되었으며 ㅎ은 고대에는 ㄱ 등과 구별되지 않았고, 힘-심의 관계도 그렇고, 희다가 '싀다', '시다'와 같은 발음으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을 보았을 때 ㄱ 또는 ㅅ으로 발음되기 쉬우며 더욱이 불은 희게 보일 수도, 붉게 보일 수도 있으므로[4] 이 豉자가 고대 한국어의 ㆅㅕ다의 어근 ㆅㅕ-를 나타내는 글자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름이 누리의 붉은 햇님[5]으로 해석된다며, 이를 밝은 누리라는 뜻의 혁거세 거서간과 연관짓기도 한다.

2.1. 탄생 설화

대가야의 건국 설화이기도 한 이진아시의 탄생 설화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한가지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지봉 탄생설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정견모주가 등장하는 탄생 설화다.
本大伽倻國【詳見金海府山川下】 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 內珍朱智】 至道設智王 凡十六世五百二十年 【按崔致遠 釋利貞傳云, 伽倻山神, 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謌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 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則惱窒朱日, 爲伊珍阿豉王之別稱, 靑裔, 爲首露王之別稱, 然與駕洛國왕古記六卵之說, 俱荒誕不可信, 又釋順應傳, 大伽倻國月光太子, 乃正見之十世孫, 父曰異腦王, 求婚于新羅, 迎夷粲比枝輩之女, 而生太子, 則異腦王, 乃惱窒朱日之八世孫也, 然亦不可考.】
본래 대가야국(大加倻國)【김해부(金海府) 산천(山川) 하(下)에 자세하다】.은 시조 이진아시(伊珍阿豉) 왕【한편으로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 한다.】부터 도설지왕에 이르기 까지 범(凡) 16세(世) 520년【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이르길,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곧 천신 이비가(夷毗訶)에게 감응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으니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그러나 가락국고기의 육란의 설과 더불어 황탄하여 믿을 수 없다. 또 석순응전(釋順應傳)에는 대가야국 월광태자(月光太子)는 곧 정견모주의 십세손으로 부는 이뇌왕이라 하는데 신라에 구혼하여 이찬 비지배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았는데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팔세손이다. 그러나 참고할 것은 못된다.】을 지냈다. 신라 진흥왕이 이를 멸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29 고령현(高靈縣) 건치연혁(建置沿革)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자세한 내용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중략) 이런 줄도 모르고 정견은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물 속을 보기도 하고 산새들이 우짓고 있는 숲 속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가 햇빛이 유난히 밝은 것을 느꼇다. 정견은 그 순간 너무나 눈부시게 빛나는 햇빝을 의식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눈부신 햇빛을 보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해를 가렸으나 햇빛은 여전히 정견의 마음 속까지 환히 비치는 듯 하더니 순간 이비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정견은 아주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견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해가 서산으로 와전히 기울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정견은 하늘 나라의 남신인 이비가의 아이를 잉태하였다. 정견은 아이를 위하여 자기 몸을 소중히 하였다. (중략) 정견은 오랜 산고 끝에 쌍둥이를 낳았다. 정견은 큰아이의 이름을 뇌질주일, 작은 아이의 이름을 뇌질청예라 하였다.(후략)
출처 : "한국인의 신화". 한상수 저. 문음사. 2003年**

뇌질주일은 아버지인 이비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수로왕은 어머니인 정견모주와 닮았다고.

이 설화를 보면 알겠지만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육가야형제설화〉, 즉 김수로왕 탄생 설화에선 김수로가 형이지만 대가야 탄생설화에선 이진아시가 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진아시에 대한 신성성이 극히 강조된 것으로, 신화 내용으로 보아 정견모주로 나타나는 토착 세력과 이비가로 나타나는 이주 세력의 결합에 의해 대가야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개 건국 신화는 특정 계급의 우월성 또는 신성성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즉 신화를 통해 지배 계급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또한 이를 의례를 통하여 재현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왕권의 원천과 현실의 정치 사회적 관계를 수긍하게 하였다.

이러한 탄생설화 때문에 대가야의 모태인 가야산은 우두산(牛頭山)이라 불렸고 산신제 때는 소를 제물로 바쳤다.

이진아시가 맨처음 도착해서 나라를 세운 곳이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 마을로 추정하는 이유도 위의 설화 때문이다. "알터"라는 이름은 주변 산기슭에 꿩이 집단으로 서식해 알이 꿩알이 많아 알터가 되었다는 설화도 있지만 이진아시 설화에서 이진아시의 알이 멈춘 장소도 바로 이곳이어서 "알터"가 되었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키는 형인 수로왕과 같은 알 6개에 태어난 가야 왕들과 같이 9척[6]이었다.#

하지만 대가야의 기록이 부실한 만큼 더이상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2. 대중매체

파일:external/img.imbc.com/129181218355880238.jpg
2010년 MBC 드라마 <김수로>에서 등장. 배우는 고주원

천군 이비가와 정견모주 사이에서 태어나서 수로와는 이부형제가 되며 수로의 이부동생이다. 자신이 천군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성장해가나 점차 수로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나중에 수로가 어머니인 정견모주의 친아들임이 밝혀지고 나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기에 창천곡으로 자기를 따르는 천군단 100여명을 이끌고 떠나서 따로 살림을 차린다. 이는 금관가야와 대가야라는 형태에서의 분화 기준을 보여주기 위한 드라마적 형태로 보인다. 수로보다는 조금 딸려도 충분히 왕의 자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1] 삼국시대에 대한 기록에서 9척이라 나온다. 다른 각주에도 서술하지만 현재의 척은 일본이 개항 이후 피트를 척으로 번역한 것이 넘어온 것이다. 고대사의 1척은 거의 전한의 1척인 22.5cm를 기준으로 한 것.[2] 실제로 현대 한국어의 ㅎ 소리는 '힘' 등의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전설모음 /i/ 앞에서 구개음화해 '심'과 유사하게 바뀌는 일이 잦다.[3] 혹은 아예 해를 뜻하는 같은 말에서 비롯된 다의어였을 수도 있다. 한국어족이 해를 숭상해 왔기 때문이다. 해씨 고구려설이 이와 연관이 있다.[4] 한국어의 '붉다'가 '밝다'와 같은 어원을 지닌 게 그 증거이다.[5] 단, 태양을 붉은색과 연관짓는 것은 일본어적 요소이다. 한국어족에서는 예로부터 태양을 흰색과 연관지었다. 당장 '희-'의 어원부터가 '해'와 같다.[6] 한나라 때의 척은 22.5cm. 계산을 하면 203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