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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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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선언3.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광주 합동연설회 연설4.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부산 합동연설회 연설5.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구 합동연설회 연설6.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전 합동연설회 연설7. 국민의힘 당대표 수락 연설8. 국민의힘 탈당·신당 창당 선언9. 개혁신당 당대표 수락 연설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선언11. 제416회 국회 방송4법 무제한토론12.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13. 삼일절 상하이 연설

1. 개요

이준석의 연설을 정리한 문서이다.

2.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선언

'당대표가 되고 싶습니다' 선언

3.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광주 합동연설회 연설

'저는 85년생입니다' 연설

[ 연설 전문 펼치기 · 접기 ]
>저는 1985년생입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당원동지 여러분
오늘 호남의 한복판에서 첫 연설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며칠 참 계파 운운하는 낡은 정치의 관성 속에서 네거티브가 횡행하다 보니
전당대회가 혼탁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근데 예비경선의 결과를 보고 나니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다시 한번 미래와 비전으로 당원들께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서 발언해 주신 홍문표 의원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청년과 호남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연설이었고, 제가 혹시 당 대표에 당선된다면 꼭 홍문표 의원님의 좋은 정책들 흡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1985년생입니다. 83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태어난 제가 역사적으로 첫 정당 대표에 선출된다면 그 의미는 정말 각별합니다. 저에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오롯이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 속에서 가장 처절하고 상징적이었던 시민들의 저항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는 80년 광주에 대한 개인적인, 그리고 시대적인 죄책감을 뒤로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첫 세대라고 자부합니다. 41년 전 당시 광주의 그 어느누구도 그날이 닥치기 전까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비장하고도 구슬픈 투쟁의 선봉에 본인들이 서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항상 가장 불행하게도 가장 평범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의 투쟁을 강요하고 그들의 희생을 딛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최근 젊은 세대는 오만과 위선에 가득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해자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촛불로 거리를 메웠던 세대는 그들은 배신한 문재인 정부와 이제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보궐선거에서의 투표로 젊은 세대는 그 투쟁에 분연히 앞장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지금 올곧은 민주주의 길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장 절대적인 가치로 놓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눈을 감는다는 것은 가장 절대적인 가치이어야 하는 그것을 언제든지 다른 것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그런 타협할 수 있는 무언가로 전락시킨다는 의미입니다.

2019년 8월 홍콩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시기, 저는 시위 현장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홍콩의 조던 펭 구이홍과 함께 도시 곳곳에 쳐진 바리케이드를 넘나들며 홍콩인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대한민국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홍콩의 현장은 정말 치열했습니다. 곤봉과 방패를 들고 다가오는 진압경찰 앞에 한국의 정치인임을 밝히고 페이스북을 켜서 그들의 폭력적인 행위를 전 세계에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제 용기의 상당한 부분은 80년 광주의 아픔을 배웠기 때문에 다신 그런 일이 어디서든 반복되지 않아어야 된다는 그런 각인된 저항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홍콩을 외면했습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중국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은 중국의 내정문제라는 언급을 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우리 정부는 그에 대해서 강하게 반론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작 사람이 죽어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홍콩 문제에 미온적인 것을 보면서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우리의 자존심을 버리고 지키고자 했던 국익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국익입니까? 아니면 홍콩과의 약속을 저버린 중국의 국익입니까?

정치는 소인배처럼 변화무쌍한 유불리를 쫓는 과정이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반복적인 고독한 결단의 과정입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해야 하는 논리 못지 않게 하지 말아야 되는 비겁한 사정이 존재하고 그래서 철학이 없는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국격을 떨어트립니다.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반복적으로 탄압에 맞서서 그 세를 불려왔고 절대적인 도덕적 우월함 속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맞서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 성명을 냈고 홍콩시민을 감사를 표하며 화답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자리에 계신 조경태 의원님께서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홍콩시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조경태 의원님을 존경하는 용기 있는 민주주의자로 추억합니다.

우리 당원들은 앞으로 모두 국내외, 홍콩, 미얀마, 북한을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의 파괴자들에 맞서는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호남에서 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호남 당원들이 우리 당원들의 0.8%밖에 되지 않는다는 부끄러운 데이터가 공개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도 비겁함 때문입니다. 강경보수층들이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그들이 주장하는 음모론과 지역비하, 지역차별에 맞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운천 의원님 그리고 성일종 의원님

너무나도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두 분의 노력은 이제 우리 당의 확고한 노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배님들의 노력 위에 저는 호남의 젊은 세대와 소통해서 바꿔나가겠습니다. 다른 후보들이 더 나아가서 할당제와 같은 방식에 의한 배려를 이야기합니다. 여의도에 들락거리는 일부, 엘리트 인사들이 누릴 수 있는 할당제보다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선거에서 석패율제 도입을 할 것을 우리 당의 공식적인 선거제도 개편안으로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권력에 기대어 받는 비례대표보다는, 치열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낸 득표율 속에서 우리의 서진정책은 응어리진 호남과 제주의 민심을 녹여낼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호남과 제주를 빼놓지 않겠습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제가 걷고 있는 새로운 보수의 길이 여러분의 지지로 더욱더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부산 합동연설회 연설

'젊은 세대 눈높이' 연설

5.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구 합동연설회 연설

'탄핵의 강을 건너자' 연설

[ 연설 전문 펼치기 · 접기 ]
>탄핵의 강을 건너자

존경하는 대구·경북의 당원 동지와 시민 여러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4년 제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제가 공부하고 있던 미국의 보스턴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날 존 케리 대선후보의 바람잡이 연설자로 나선 한 깡마른 흑인 상원의원이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라는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관대한 미국 사회에서는 성공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야기하며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사회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얼룩져 있던 그때, 그는 미국 사회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애국, 나머지를 매국으로 보던 시각을 확 바꾸자며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도 애국자요, 반대하는 사람도 애국자다”

그리고 “백인의 미국과 흑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 라는 말로 통합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미국은 전율했습니다. 제 친구들의 아이팟 1번 트랙은 오바마의 연설이었습니다. 그 통합의 메시지를 낸 신출내기 흑인 상원의원은 그로부터 4년 뒤 46세의 나이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오바마가 외친 통합의 시발점은 관대함입니다. 그리고 통합의 완성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많은 당권주자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두 글자를 계속 외친다고 통합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통합의 전제조건은 간단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선한 사람이고, 애국자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저를 영입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저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손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박근혜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 국정농단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을 비판하고,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진 형사재판에서 “공동지갑론”, “경제적 공동체론” 이라는 것이 적용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삼형제나 이명박 대통령 형의 건과 달리 대통령에게까지 형사적 책임이 이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원 판결까지 치열하게 법리를 다툰 사안이기에, 그 판단을 존중합니다. 오직 그 더욱 엄격해진 법리가 문재인 정부와 그 뒤를 따르는 인사들에도 적용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구·경북의 시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 이런 이준석의 생각과 공존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버락 오바마는 본인의 생소한 이름이 미국에서 성공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밝혔던 것처럼, 제가 믿는대로 탄핵에 대한 제 복잡한 입장이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제가 탄핵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 드는 이유는,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준석의 이런 생각을 대구 경북이 품어주실 수 있다면, 우리 사이에서는 다시는 배신과 복수라는 무서운 단어가 통용되지 않을 것이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당당히 맞섰던 검사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며 더 큰 덩어리에 합류하여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당 대표로 직을 수행하는 동안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면론 등을 꺼낼 생각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차피 사면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실 분이고 저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공격의 빌미를 줄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저의 사사로운 고마움은 다른 방식으로 갚겠습니다. 저 이준석, 당 대표직을 맡겨주신다면 성실하고 겸손하게 직을 수행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이준석을 영입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평가를 두루 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탄핵에 대한 각자의 다른 생각과 공존하실 수 있다면, 우리 당의 대선 경선에 참여할 많은 주자의 다양한 생각을 인정해주시고, 그들을 과거 속에 묶어두지 말아 주십시오. 대구 경북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돌풍의 진원지임을 세상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공존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부탁합니다.

6.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전 합동연설회 연설

'진짜 공정한 세상' 연설

7. 국민의힘 당대표 수락 연설

'바뀌어 승리할 것입니다' 연설

[ 연설 전문 펼치기 · 접기 ]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우선 훌륭한 선배님들과 함께 이 전당대회를 치르게 되어서 행복했고 영광이었습니다.
나경원, 조경태, 주호영, 홍문표 후보님께 모두 감사 올립니다.

“여러분은” 저를 당 대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에 힘을 주어 읽었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와 함께 이 역사에 발을 들여놓으셨고,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나가는 역사 속에 여러분의 지분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존입니다.
다른 후보가 용광로론을 이야기 하셨습니다만 용광로는
여러 가지 원료물질을 매우 뜨거운 온도로 녹여내
균일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멜팅팟이라고 합니다.
용광로 이론은 미국과 같은 다원화 사회에서 한단계 더 발전시켜
최근에는 샐러드 볼 이론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샐러드 볼에 담긴 각종 채소처럼
고유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샐러드 볼입니다.

비빔밥을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상태는 때로는 10가지가 넘는 고명이 각각의 먹는 느낌과 맛,
색채를 유지하면서 밥 위에 얹혀있을 때입니다.
상추 잎은 아삭한 먹는 느낌을 유지해야 하며 나물은 각각 다르게 조미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올리는 달걀은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올려놓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준다면
그것은 우중충한 빛일 것이고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우리가 비빔밥의 고명들을 갈아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테레오타이핑,
즉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고정관념 속에 하나의 표상을 만들고 그것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정치는 사라져야 합니다.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개인의 개성을 꺾어버리는 폭력인 것처럼,
누군가에게 청년다움, 중진다움, 때로는 당 대표다움을 강요하면서
우리 사회의 달걀과 시금치, 고사리와 같은 소중한 개성들을 갈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원동지들께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지상과제는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저는 다양한 대선주자 및
그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 것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대선주자가 당의 후보가 되고,
문재인 정부를 꺾는 총사령관이 되기를 바라신다면
다른 주자를 낮추는 것으로 그것을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낮게 가면 더 높게 가고,
상대가 높다면 더 높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저에 대한 무수한 마타도어와 원색적인 비난, 가짜뉴스가 난무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저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누구도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정선거론을 믿었던 사람에게도, 터무니없는 이준석의 화교 설을 믿었던 사람에게도, 인
사는 공정할 것이고, 모든 사람은 우리의 새로운 역사에 초대될 것입니다.

2021년 6월 11일을 분수령으로 삼읍시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 사이에서 상호 간의 논리적인 비판이나 진심 어린 지적이 아닌,
불필요한 욕설과 음모론, 프레임 씌우기 등의 구태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맞서 주십시오.
저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앞으로는 우리는 수권세력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해져야 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대선후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욕부터 하고 시작하는 야만은 사라져야 합니다.

2021년과 2022년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수에 의한 독재,
견제받지 않는 위선이라는 야만으로 변질시킨 사람들을 심판한 해로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의 저항은 최루탄의 연기만큼이나 매운
갈라치기와 독주로 국민에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을 딛고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순수함과 강력함을 확인시켜줄 것입니다.
심판을 위해서는 변화하고 자강해서
우리가 더욱더 매력적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추진할 변화는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의 구체적인 설계와 토론배틀,
연설대전을 통한 대변인단의 공개경쟁선발입니다.
대한민국의 5급 공개채용을 통해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연줄을 쌓으려고 하고 줄을 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합니다.
우리 당은 정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6월 중으로 토론배틀을 통해 2명의 대변인과 2명의 상근부대변인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승자는 누구일지 저도 모릅니다.
어쩌면 피선거권도 없는 20대 대학생이 국회 기자회견장에 서서
우리 당의 메시지를 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사방송에서 우리 당의 입장과 정책을 설명하는 역할을 뛰어난 능력이 있으나
경력단절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여성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발되어 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선발될지 모르는 이 불확실성은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확신을 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우리의 방식이
캠프 출신의 코드가 맞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에게만 기회가 열리는
현 집권세력의 방식보다 공정하다는 그 확신이 우리를 대선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또한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은 당원들 상호 간에 지식과 지혜를 나누며
훈련된 당원들이 공직후보자 선거에 나갔을 때
우리 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당원은 저에게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그 변화에 앞장서고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컴퓨터를 접하기 쉬운 나이대의 젊은 당원이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것은 저에게 큰 감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년층의 당원이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면,
그것은 선거 때 명함에 쓰여있는 어떤 이력과 경력보다도
유권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올 수 있는 평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해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은 바뀔 겁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국민의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빼놓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8. 국민의힘 탈당·신당 창당 선언

상계동 마포참숯갈비 선언

[ 선언 전문 펼치기 · 접기 ]
>앞으로 저만의 NeXTSTEP 을 걷겠습니다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정치를 시작한 지 12년째 되는 오늘을 그날로 정해놓고, 지난 몇 달간 많이 고민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함께한 세월, 가볍지 않았던 영광의 순간들과 분루의 기억들은 교대로 제 팔을 양쪽으로 잡아끌었습니다.

저를 대표로 선출해 주셨고 각자의 위치에서 대선과 지선 승리에 앞장서 주신 당원들께 그동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사했습니다. 지난 대선과 지선의 연승은 당원들의 도움과 사랑 없이는 이뤄낼 수 없었습니다.

탄핵의 상처를 겪은 당원들에게 어떻게든 승리의 기쁨을 안겨야 하는 당위적 목표 속에서 때로는 대선 후보를 강하게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당내의 시대착오적 관성과 강하게 맞서야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좋았던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불편하셨던 당원이 계신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호사가들은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의 현 상황이 그토록 안 좋다면 지금은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보라고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3년 전의 저라면 아마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와신상담, 과하지욕등의 고사성어를 되뇌며 “당을 위해 헌신”과 같은 여의도 방언을 입 밖으로 내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는 자세로 때로는 영달을 누리고 때로는 고생을 겪으며 만수산 드렁칡과 같이 얽혀 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몇 달 전 책임 있는 사람으로부터 “총괄 선거대책위원장” 등 의 자리도 제안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제 선택은 제 개인에 대한 처우, 저에게 가해진 아픈 기억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봤습니다.

비상상태에 놓인 것은 당이 아니고 대한민국입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대한민국이 변화가 없는 정치판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는 탄핵을 겪으며 비선은 있고 비전은 없는 대한민국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누군가가 모든 유무형의 권력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모습, 그 사람 앞에서 법과 상식 마저 무력화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입니다.

저는 잠시 보수정당에 찾아왔던 찰나와도 같은 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스스로를 다시한번 반성합니다. 그들의 권력욕을 상식선에서 대했고 진압하지 못했던 오류를 반성합니다. 모든 것이 제 부족한 탓입니다.

저는 오늘 국민의힘을 탈당합니다.
동시에 국민의힘에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포기합니다.
과거의 영광과 유산에 미련을 둔 사람은 선명한 미래를 그릴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이제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미래여야 합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서도 상대를 악으로 상정하고 청산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시민들을 이끌려고 합니다.

하지만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라고 했습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해도 계속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극한 대립, 칼잡이의 아집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까?

정치는 대중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노력입니다. 이제 시민 여러분께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검투사의 검술을 즐기러 콜로세움으로 가는 발길을 멈춰 주십시오. 시민 여러분께서 수고롭지만, 아고라에 오셔서 공동체의 위기를 논의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들에게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우리 이제 다 같이 자세를 고쳐 앉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영논리에 휩싸여 우리 팀에 발생한 문제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는 모습에 정작 미래를 고민해야 할 젊은 세대는 정치를 내로남불의 장으로 보며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이상을 가르치면서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을 강제하는 이중적인 대한민국으로 남아있어야 합니까? 참되어라 바르거라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살면 딜레탕트(dilettante)가 되어 조소를 받고, 교과서로는 민중 항거인 4.19와 5.18을 가르치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무너지는 현실을 놓고 투표장에서는 차악을 선택한다는 미명하에 진영논리로 일관합니다. 배운 대로 살지 못한다면 배워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과거 정치군인들은 북한의 위협을 항상 강조 했습니다. 그리고 비상 선포를 통해 많은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놀랍게도 소위 직업군인인 그들은 실제로 쿠데타를 위해 전방사단까지 동원하는 등 국가 안보를 최우선에 두고 일을 처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당대표가 모두 군인이 시대를 겪어내고 이겨냈던 우리가 왜 다시 한번 검찰과 경찰이 주도하는 정치적 결사체 때문에 중요한 시대적 과제들을 제쳐놓고 극한 대립을 강요받아야 합니까?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 자녀의 미래, 손자·손녀의 미래가 단순히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황당한 검투사 간의 랠리를 이어가는 것입니까? 그 랠리를 여러분이 즐겨주니까 어느 정치세력도 미래와 대안을 놓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생산적인 경쟁을 하지 도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위기입니다. 절망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대한민국이 정체된 사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거부할 수 없는 도전들이 쌓여갑니다.

제가 하는 신당에서는 이 위기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당당하게 표 떨어지는 이야기하겠습니다. 해열제와 진통제를 남발하여 이제는 주삿바늘을 꽂을 혈관도 남아있지 않은 대한민국의 중차대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다루겠습니다. 누군가가 또다시 콜로세움에서 상대를 빌런으로 만드는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저는 일백 번 고쳐죽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고 아고라로 들어와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도록 강제하겠습니다.

몇 가지 생각나는 시급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반도체 웨이퍼와 포토마스크를 흔들며, 다른 한쪽에서는 의대 정원을 세배 가까이 늘리는 것을 검토한다면, 최상위급 이공계 인재들은 연구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의대생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액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밟으면서 고장 나는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어야 합니까?

지방 대학을 중심으로 등록 인원의 절반이 이름만 올려놓은 가짜 대학생인 학교가 늘어가고 있는데 시민의 세금을 대학 등록금 지원에 무조건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 교육개혁입니까? 사학재단과 교원들의 표만 두렵고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저출산의 여파로 전방을 지킬 병사가 부족하다면 적극적인 감군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의 모습일 것입니다. 감군 계획이 문재인 정부에서 나왔던 이야기라고 해서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집입니다. 상대에 대한 극한 부정에서 나온 대안이 120kg이 넘는 고도비만자까지 군복을 입혀서 휴전선에 세워놓자는 생각이라면 그것이 무책임한 정치의 민낯입니다.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하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미적분과 기하마저 수능시험 범위에서 제한다고 한다면 학생들은 줄어든 평가범위 속에서 소위 “매력적인 오답”을 통해 변별력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까? 벡터와 미적분을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고 평가받지 못한 학생들은 해외의 이공계 인재들과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누군가가 국민연금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또 결론은 뻔하게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향으로 날 것이라고 다들 예측합니다. 이것이 해열제이지 어떻게 근본적인 연금 개혁일 수 있겠습니까? 적립식 국민연금이 저출산과 맞닥뜨려 한계에 도달했고, 지금 이대로 가면 지금 연금을 납부하는 세대는 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부과식으로의 전환을 조금씩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왜 시작하지 못합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위에 열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권력을 가진 그들은 앞으로 길어야 10년 이상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임기 중에만, 내 정치 인생 중에만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그들의 정치가 어떻게 미래지향적 정치일 수가 있습니까?

무책임한 현재의 위정자들과 다르게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주장과 선택에 대해서 30년 뒤에도 살아서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누가 내는 대안과 제안이 더 진실하고 절박하겠습니까? 프랑스의 마크롱이 표 떨어질 각오로 연금 개혁에 몸을 던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마크롱은 본인의 삶 언젠가 연금 고갈의 파고를 그대로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진실하게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논리와 이성은 사라지고 선악을 가르는 무부의 칼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써버리는 야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절대 나대지 말고 큰 덩어리에 의지하라는 이야기를 할 겁니다. 오직 제가 믿는 것은 용기와 올바름의 힘입니다. 저는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그 칼날을 두려워하거나 순치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가 상계동에서 제 뜻을 밝히는 것은 정치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정치를 하는 이유를 다시 새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고향 상계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평균적인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20만의 상계동이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곳이기에 지금 듣고 계신 시민 누구나 높은 확률로 상계동에 지인이 있으실 겁니다.

노력하는 사람들의 도시, 가진 것이 많기보다 꿈꾸는 미래가 많은 사람들의 도시입니다.

서울시민이지만 가장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하는, 좋은 학군을 찾아서 구축아파트에 사는 것을 감내하는 그 일상에는 지금의 불편함을 다소 감내하는 사람들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희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가 언제, 어디에서 정치하더라도 상계동 사람들의 바람대로, 내가 먹고 즐길 것을 아껴가며 댄 아이의 교육비가 가치 있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4호선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의 20분간의 부대낌 속에서 졸고 있는 가장의 고단함을 새기겠습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무원 임대아파트와 군인아파트를 끼고 있는 상계동에서 살면서 100만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리는 미래 속에서 누구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사로서의 소명 의식 외의 다른 것을 강요받지 않고,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 국가와 국민 외에 충성해야 할 대상을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아픈 사연과 박정훈 대령의 고난 서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데, 정치권은 이미 이슈로 이슈를 덮는 방식으로 해법 없이 잊혀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추진하는 신당은 일련의 아픔들과 부당함을 절대 잊고 지나가지 않겠습니다.

몇 개의 의석을 만들어낼지 확실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말에 신빙성이 없고, 실행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면, 더 많은 의석을 만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평생 사게 될 주식 중에 가장 큰 수익률을 담보하는 주식은 바로 이 신당에 투자하는 지지와 성원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손녀에게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을 상속세 없는 유산으로 남겨 주십시오.

이준석이 정당을 끌어 나갈 돈이 있느냐, 사람이 있느냐 설왕설래 합니다. 3천만 원으로 전당대회를 승리하는 방식이 정치개혁의 실증적 사례였던 것처럼, 나눠줄 돈과 동원할 조직 없이 당을 만들어 성공한다면, 정치의 문화가 확 바뀔 것입니다.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모두를 미래의 정치로 초대하겠습니다. 참여하실 때 십시일반의 밥 한 숟가락씩만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인 돼지저금통을 기억하는 우리가 20년이 지나 많은 것이 더 발달한 지금, 왜 그 방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거대 정당을 이끌어 본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얼마 전에 방영된 JTBC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에서 새우가 고래를 이기는 방법을 진도준이 이야기 합니다.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서로 물어뜯기 밖에 못하는 고래 두 마리가 싸우는 동안 담담하게 많은 시민들의 희망을 머금고 미래를 그리면서 여러분이 모아주시는 십시일반의 밥 많이 먹고 크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모두가 움츠린 눈 덮인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막아보려고 해도 민주화는 필연이었습니다.

상대 정치세력을 악의 상징, 빌런으로 만들어 콜로세움에 세우는 검투사 정치는 월륜(月輪), 즉 보름달과 같아지게 되어 있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생산적인 정치는 월신(月新), 초승달과 같이 차오릅니다. 자연의 섭리가 무서운 것은 이것이 거부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점에 있습니다.

눈은 항상 녹습니다.
그래서 봄은 항상 옵니다.
보름달은 항상 지고,
초승달은 항상 차오릅니다.

내년 4월,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닌 상계동의 꿈, 보편적인 민주 시민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이 여러분을 대표할 수 있도록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정진하겠습니다. 희망의 언어로 미래를 키울 때, 다시는 투표용지가 킬러문항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내 나라를 위해 행복한 선택이 가능한 그날을 오늘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습니다.

앞으로 저만의 NeXTSTEP 을 걷겠습니다. 변화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두고 이 길을 즐겁게 걷겠습니다. 훗날 오늘의 제 약속이 “상계동 마포참숯갈비 선언”이라고 위키 한 자락에 기록될 수 있도록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
감사합니다.

9. 개혁신당 당대표 수락 연설

'개혁은 관성과의 다툼' 연설

[ 연설 전문 펼치기 · 접기 ]
>개혁은 바뀌지 않으려는 慣性과의 다툼입니다

빠르게 이제 우리는 육상경기에서 달려야 하는데 그들은 지금 경기장에 망건에 갓 쓰고 도포 입고 짚신 신고 나타났습니다. 그 상태로 육상경기장에 나타난 그들은 이 경기가 바로 개혁경쟁의 달리기임을 모르고 나타난 것입니다. 이래서는 경기가 되겠습니까? 그들의 룰이 아니라, 우리 개혁신당이 설정하는 개혁경쟁의 룰로써 이번 총선을 치러야 되겠습니다.
동지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 당을 이끌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창당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3명의 창당 준비위원장, 이기인, 허은아, 천하람 세 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세 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개혁신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27일 탈당을 선언했으니, 24일 정도 걸렸습니다. 연말연시가 끼어있었던 걸 감안하면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해냈습니다. 사실 車體 크기는 작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정당을 이끈다는 그 무게에 대한 고민은 이미 다 했습니다. 충분히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키를 건네받는 이 차는 이전에 제가 몰아보던 車와는 아주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파워핸들이 없어서 방향을 바꾸려면 좀 더 큰 완력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수동변속기가 있을지도 모르고, 조금의 꿀렁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여러분이 명령해 주신대로 이 키를 받아 들겠습니다. 이 차에 5만5천명의 자발적인 당원들이, 누구의 동원 없이도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창의적인 활동으로 이 車의 엔진이 되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 車에 탑승해주신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을 태우고 이 차를, 30년 뒤의 미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개혁의 고속도로 위에 한번 태워보려고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대장장이가 강한 철을 얻고자 할 때, 빨갛게 달군 쇠를 액체 속에 담가서 냉각시키는 과정을 담금질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달군 쇠를 기름에 담가서 담금질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물 담금질을 해왔습니다. 물은 기름보다 냉각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할수록 아주 단단한 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속에 달궈진 철을 넣었을 때, 쨍 소리가 나면서 균열이 생기거나 휘어버리면 그 칼은 쓸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제가 정치에서 걸어온 길속에 때로는 담금질을 피해갈 수도, 깨어지거나 휘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름의 적당한 온도 속에서 담가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대한민국의 ‘기회의 사다리’에 항상 감사해왔고, 다음에 누군가가 타고 올라갈 그 사다리를 유지하고 밑에서 잡고 있기 위해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상계동에서 가장 어렵고도 세게 담금질 되는 도전을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담가진 저에게 더 강한 담금질이 필요하다고 하신다면, 저는 언제든지 불 속으로 뛰어들고 더 忍苦한 다음에 물 속에 담가지는 과정을 반복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선은 지금까지 벼려온 그 칼로 과감하게 이번 총선에서 개혁신당을 사회 개혁의 길로 이끌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저희가 快刀亂麻의 자세로 개혁의 병목지점을 뚫어내지 못하면 저는 또 도전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기다릴 수 있어도, 대한민국은 위기의 순간에서 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이 오렌지 옷을 입은 것입니다.

‘탈당하지 못할 것이다’, ‘지지율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당원을 모으지 못할 것이다’, ‘돈이 없어 창당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왔지만 안타깝게도 본 게임은 이제 시작입니다.

개혁은 바뀌지 않으려는 관성과의 다툼입니다. 그래서 그 관성을 이겨내지 못했던 앞선 많은 개혁의 旗手들이 차례로 쓰러져 갔습니다. 우리가 제시하는 개혁을 통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잃는 사람들은 맹렬하게 개혁에 반대할 것입니다. 반대로 개혁을 통해 혜택을 보는 분들은 정작 본인들이 누리게 될 변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그 길에 동참하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고 교통바우처와 할인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와 반대 관점에서 대한노인회장의 ‘천안에 지하철 타고 가서 소주 한잔 하고 돌아오는 그 행복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그 부탁, ‘누리던 것을 왜 빼앗아 가느냐’는 慣性의 측면에서 저는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해간다고 해서 그런 주장에 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어느 할머니는, 場에 나가 나물 팔아 하루 5만원씩 벌면서 오며가며 버스비로 왕복 3천 원씩 부담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30년을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시고 오늘도 집을 나설지 모릅니다. 남보다 고단한 삶을 사시면서도 과거 못 먹고 못 살던 50년 전의 삶을 생각하며 ‘살기 좋아졌다’고 순박하게 웃으시며 살아가십니다. 저는 지방을 돌 때마다 그런 아픈 광경을 목격하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할머니가 제 할머니가 아니라도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분이 받는 불공정한 처우에 대해 해법을 찾아내는 그런 정치를 하고 싶고 그래서 창당을 합니다.

대도시권, 驛勢圈에 거주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혜택이 없었지만 개혁신당의 교통바우처와 할인정책으로 어쩌면 더 저렴하게 편하게 이동하게 되실 800만 명에 달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다가오는 총선에서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추진하는 적극적인 개혁으로 지금까지 그분들이, 강요되었고 받아들였던 체념의 慣性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선거 결과와 별도로 책정되는 우리의 성과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고민하고 있구나’, 이 마음들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 상상만으로 대한민국이 조금은 덜 삭막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1조2천억 원의 예산이 수반될 교통바우처 정책으로 교통복지의 불균형 문제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타래로 얽혀있는 연금개혁, 국방개혁과 같은 중요한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遙遠할 것입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월 1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월 수십만 원의 연금을 깎고 그 대신 어떻게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할 것이냐’라는 難題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시험장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문제는 이미 출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본인들이 정치하는 동안에는 이 문제가 터지기를 바라지 않는 자세로 일관해 온 그런 정치인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치권에서 펜을 들어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용기를 내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힘주어 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치, 사회, 문화 개혁의 기회는 잘 정립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4년마다, 또는 5년마다 한번씩 서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음 총선이 되었을 때 44세가 되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 비율은 30%에 다다랐을 것입니다. 이번 총선을 지나가게 되면 저희는 때를 놓치는 것입니다. 더 늦출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류호정 의원이 오셨습니다. 오실 줄 알고 있었고 오시면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류호정 의원과 새로운 선택에서 최근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를 꺼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창당실무가 바빠 정확히 어떤 취지에서 어떤 내용을 발표했는지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성징병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평가하고 싶은 것은 류호정 의원께서 여성징병제에 대한 물꼬를 트셨기 때문에 저는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병역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방침을 곧 국민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제가 탈당선언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이 문제 또한 곪을 대로 곪았기 때문에 최근 우리가 접했던 참담한 뉴스가 있습니다. 120kg의 고도비만 체중을 가진 사람을 굳이 징집해서 휴전선의 철책선 앞에 세워놓아야 한다는 것이, 만약 보수정당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대통령의 兵役정책이라면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누군가 지적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판을 깔아놓으니까 발표할 때 세부적으로 무엇을 얘기할까 슬슬 불안하시죠? 여러분은 지금 조마조마 하시지만, 저는 마음이 쿵쾅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이제 무엇이 과연 발표될까에 대한, 오늘 이후 상대 정당의 두려움과 궁금함은 바로 그들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兩大 정당으로서 가졌던 비겁함에 대한 대가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힘을 모아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뜻을 모으기 전까지, 이번 선거를 이재명과 윤석열의, 서로를 惡黨으로 하는 ‘빌런 대결’로 하면 된다는 그런 안일함 속에서 준비해오던 그들에게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들이 진정으로 정치에서 다루기를 기대했던 論題들이 무엇인지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의 단계에 내몰린 지금, 시급한 개혁과제 앞에 서서 매번 혐오니, 갈라치기니, 싹수론이니 덧붙이면서 인신공격으로 그것을 막아보려 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맞설 시간이 왔습니다. 빠르게 이제 우리는 육상경기에서 달려야 하는데 그들은 지금 경기장에 망건에 갓 쓰고 도포 입고 짚신 신고 나타났습니다. 그 상태로 육상경기장에 나타난 그들은 이 경기가 바로 개혁경쟁의 달리기임을 모르고 나타난 것입니다. 이래서는 경기가 되겠습니까? 그들의 룰이 아니라, 우리 개혁신당이 설정하는 개혁경쟁의 룰로써 이번 총선을 치러야 되겠습니다.

연금개혁을 하다가 시위대에 둘러싸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헤르츠 개혁을 주도하다가 17년 동안 정권을 잃었던 슈뢰더 총리의 기억이 저에게는 참 용기 있는 지도자들로 기억되고 우리는 저것보다 더 낳은 개혁을 해야겠다는 그런 다짐으로 다가왔을 때, 대한민국의 兩大 정당은 ‘우리도 섣불리 개혁하다가 정권을 잃으면 안 되겠다’는 대중 영합주의로 자리하게 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치열하게 유럽병과 맞서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정치를 바꿔나갈 때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 것이지, 언제까지 보신주의 속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투표용지마저도 漢字로 이름 쓰라고 강요하는, 도포 입고 갓 쓰는 전통보다 더한 전통 속에 사로잡혀있는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단언코 선언합니다. 우리가 개혁의 길을 先導하고 앞장서 나갈 때, 대한민국이 과거 동아시아에서 빛나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 된 것처럼 전 세계에서 개혁의 선진국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길을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더 많은 논쟁이 자리하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내가 태극기를 머리에 붙이고 시위에 나간다고 해서 ‘내가 애국자요’ 하는 우월감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 과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30년 전에 독재에 싸웠던 그 훈장 하나만 가지고 정치를 가벼운 善惡의 구도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개혁을 해낼 수 없습니다. 오직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서 우리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에 개혁신당의 시작을 축하해주기 위해 오신 내외빈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우리 개혁신당은 각자의 위치에서 용기 있게 싸우고 있는, 그래서 아무리 검사의 칼이 얼마나 담금질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칼만으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용기 있게 나섰다, 이게 바로 개혁신당입니다.

개혁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끝까지 개혁을 외치겠습니다. 우리가 윤석열 대통령보다, 이재명 대표보다 뭘 잘하느냐고 묻는다면 개혁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는 교육 개혁은 단순히 私敎育 격차를 때려잡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노동개혁은, 단순히 어떻게 맛깔나게 노조를 때려잡느냐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더 고용이 촉진되는 그런 개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개혁은 어렵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것이고, 저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정치를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 12년쯤 걸리니까 집권여당 대표 할 수 있겠더라구요. 한 30년쯤 진정성을 갖고 우리 모두가 어디에 몰두하면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보다 나은 미래, 개혁신당!

한국의 희망과 함께, 새로운 선택과 함께, 미래대연합과 함께, 새로운 미래와 함께, 그리고 여기에 계신 우리 모두와 대한민국과 함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이번 총선을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선언

동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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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물러가서 해가 뜨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동탄 주민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입니다.​

저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곳 동탄2신도시가 있는 지역구, 경기 화성(을)에 출마합니다.​

개혁신당을 창당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은 제가 가장 쓰임새가 있는 정치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이제 40대의 초입에 선 제가 현실과 욕망에 순치되지 않고 더 진취적으로 고민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치인은 끝없이 스스로의 껍질을 찢고 탈피해 나가지 않으면 자신의 외골격에 갇혀 성장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동탄의 스피커가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치권의 한 복판에서 화성과 동탄의 이야기가 치열하게 다루어진 적이 있습니까? 동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서 누군가가 동탄을 외치고 있어야 합니다.​

중앙정치의 선두에서 광주 복합쇼핑몰을 외치던 열정과, 욕먹더라도 할말은 하겠다고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하고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자는 용기를, 이제 동탄의 발전을 위해 원 없이 쓰고자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아파트가 올라가고, 급격히 인구가 늘어났지만 아직 기반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동탄을 위해, 이준석이 고민하고 외치겠습니다.

교육이 최우선입니다. 화성이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꾸준한 민원,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준석도 팔 걷어 붙이고 돕겠습니다.​

동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갑니다. 그 아이들이 진학이나 진로 탐색에 어려움을 겪으며 꿈의 크기가 제약받지 않도록, 동탄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충분한 교과외 활동과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모든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동탄에 녹여내겠습니다.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탄을 교육특화지구로 지정하여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교육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이미 개혁신당은 <수학교육 국가책임제>를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전국 단위 수학 성취도 평가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학 과목부터 '개별화 수업'을 실시하는 방법입니다.​

수학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과 학교에 수학 교사를 집중적으로 배치해서 수학 수업에 한해 학생 대 교사 수를 5:1까지 낮춰 수학 성취도를 끌어 올리겠습니다.​

더 이상 공교육 부실의 결과를 사교육 시장이 떠안으며 부모님들의 등골이 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비극적 연쇄 사슬을 국가가 끊어줘야 합니다. 반드시 여기 동탄에서부터 시범사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에서 미래 과학 인재가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경기 남부에 과학고를 설립하겠습니다.​

인구 250만의 경상북도에 과학고 2개가 있습니다. 비슷한 비율이라면 1,400만 인구에 근접해 가는 경기도에는 10개 정도의 과학고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 수원에 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 의정부에 경기북과학고 하나가 있어 경기 남부의 자라나는 이공계 학생들이 충분한 영재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경기도의 정치인들이 이념에 휩싸여 아이들의 미래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교통도 중요합니다. 경부고속도로와 수서고속철, GTX로 이어지는 서울과의 종축 간선 교통망은 이제 완성되어 갑니다. 이제 모세혈관과 같이 동탄역 근방으로 뻗어가는 지선 교통망이 필요합니다. 자전거의 축과 바큇살에 빗대어 허브-스포크 모델이라고 합니다. 동탄역을 트램과 복합환승센터를 통해 버스 교통이 연계되는 경기 남부 교통망의 중심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제 아이디어만으로 부족하다면 동탄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온 다른 후보들의 공약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당은 다르지만 서철모 후보가 이야기했던 동탄발 SRT 추진계획은 매우 신선한 제안입니다. 수서에서 꽉 차서 내려오는 SRT, 표 구하기 어렵다면 동탄발 SRT를 통해 경기 남부권의 수요를 흡수해 낼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동탄 시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에게 선거의 모든 지표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치렀던 선거들보다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갖가지 여론조사에서 낮게는 3%까지 나오는 우리 개혁신당의 지지율은 저의 책임이기도 하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극복해야 할 허들입니다.

화성(을) 선거구의 평균 연령이 34.5세라는 것은 긍정적이면서도, 두려움을 주는 지표입니다. 같은 당의 동지로 옆 선거구에서 같이 뛰게 된 이원욱 의원님이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받아 든 65%라는 기록적인 득표율도, 역으로 제가 설득해 내야 할 지역 민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방증하는 지표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제가 기대는 것은 동탄의 젊은 세대에 대한 믿음과 확신 때문입니다. 야당 대표와 대통령이 서로를 악마화하고 감옥에 보내려고 하는 저 무의미한 경쟁에 함께하기 보다는, 30년 뒤에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세대의 고민을 선거의 중심에 올려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이곳 동탄에 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에 처음 정치를 시작하고, 화려해 보일 수도 있는 저의 학벌이나 정치 입문 과정을 보고, 제가 아주 유복한 집안의, 강남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2016년 노원구 상계동에서 정치를 시작하자, 고향이 상계동인 것이 의외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경한 신혼부부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며 살아가던 상계신도시. 4호선 종점에 아이들 교육하기 좋고 깨끗한 아파트 단지를 찾아 모여든 그들 가운데에서 자라온 제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남부에 모인 젊은 신혼부부와 미래세대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작게는 동탄의 미래를, 크게는 경기 남부의 미래를 그려 나가야 합니다.

제가 동탄에서 하게 될 절박한 호소들은 때로는 반 발짝 앞선 경고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기우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소란스럽게 때로는 과민한 태도로 동탄과 대한민국 위기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동탄 2신도시가 수도권 지역의 여느 신도시와 같이 지금과 같은 신축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에서 시작해서 기반인프라 미구축에 따른 실망, 추후 아파트 노후화에 따른 인구 이탈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교통망이 잘 구축되고 학군이 잘 형성된 기회의 도시가 되도록 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탄 시민 여러분,

저는 정치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정치에 길이 남을 영속적 변화를 만들겠다는 야심과 허영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적당히 한 시절 감투를 쓰고 호의호식할 생각이었다면 이 길에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경기 남부, 여기 동탄 시민들께서 이번 총선에서 특별한 선택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동탄을 비롯한 경기 남부 지역은 지금까지 보수정당이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어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고, 민주당의 텃밭이 되어 내려오면서 지역 정가에서 경쟁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동탄이 경쟁 속에 다시 뛰도록 개혁신당에게 힘을 주십시오. 경쟁 속에서 완전 새로운 동탄의 청사진이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미래를 예측하여 대비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좋은 정치이지만, 동탄에서는 우리 한번 미래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정치를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어둠이 물러가서 해가 뜨는 것이 아닙니다,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겨울이 물러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오기 때문에 겨울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3월에 3당 혁명으로 한국 정치의 새 봄이 옵니다. 개혁신당을 성공시켜 주시면 대한민국 미래가 달라집니다,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아이들 미래가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 변화를 뒤쫓는 사람, 변화가 두려운 사람,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변화를 이끄는 사람의 몫입니다.

동탄에서 변화를 찍어주십시오, 그러면 변화가 옵니다.

오늘 출마선언을 기점으로 동탄의 구석구석에서 유권자 한 분 한 분 찾아뵙겠습니다. 제 진실된 마음을 정중히 전해 올리겠습니다.

​동탄을 꼭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 교육 중심, 보육 중심 도시로 만들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 제416회 국회 방송4법 무제한토론

‘방송4법 무제한토론’

12.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홍대 선언

[ 선언 전문 펼치기 · 접기 ]
>세대교체, 이제는 우리!

안녕하십니까, 이준석입니다.

항상 가장 엄혹한 시기의 해빙은 금지된 무언가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한 첫 외침은 1919년 3월 1일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였습니다. 그 뒤로 27년간 선열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누군가가 가장 첫머리에서 그 말을 밖으로 외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기미년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렸던 33인은 그 뒤로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지도층이었지만 자손들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지 못했고, 다만 대한민국의 역사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겼을 뿐입니다.

오늘 저 이준석은 각오하고 크게 외치려고 합니다.

“세대교체, 이제는 우리!”

제가 정치를 해온 지도 벌써 14년째입니다. 그동안 정치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꼈고,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상의 거친 파도에 풍화돼 순치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권력과 타협하고, 편리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육신이 고달플지언정 국민과 함께하는 올바른 정치를 위해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길을 선택해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최근 여러 가지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3년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위험성과 한계성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겪었던 고난과 저에게 새겨진 정치적 생채기가 쉽게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서슬 퍼런 집권 초기에 권력기관을 꽉 잡고 있던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때로는 큰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회피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저와의 갈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살아온 세월이 길고 무리가 크다는 이유로, 옳고 그름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굴복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가 틀렸고, 제가 했던 지적이 적확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저는 오히려 더 가열차게 맞서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서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 되고자 합니다. 차가운 바닷속에는 범고래와 같은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반드시 건너야 할 바다라면, 저는 주저 없이 먼저 그 바다에 뛰어들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최근 ‘지성과 반지성’이 대결하는 구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반지성과의 전면전을 벌여 나가야 합니다.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저는 페이스북을 둘러보았습니다. 하버드 대학 시절 동문수학하던 저의 친구들이 각자의 나라와 위치에서 AI 기술 발전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펼치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들은 AI가 어떻게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인지,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인간이 AI 시대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돌려 한국에서 소비되는 게시글들을 보면, 이미 오래전에 거짓으로 판명난 부정선거 음모론과 같은 허위 정보들로 넘쳐났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성의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것이 아니라, 부정선거 같은 반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음모론에 경도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달 착륙 조작설, 지구 평평설, 프리메이슨, 9.11 테러 자작설 등 황당한 주장들이 전 세계적으로 소비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는 이러한 음모론을 걸러내고 정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천안함 폭침과 광우병 파동이라는 반지성을 집단지성의 힘으로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과 천안함 폭침에 대한 논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입니까? 일부 음모론자들이 정치적 이득을 보았을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광우병 논란으로 중대한 통상 교섭의 위기를 겪었고, 천안함 폭침 음모론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분열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적의 공격으로 희생된 장병들의 유가족들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입니까? 이제는 이러한 퇴행을 멈추고,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합니다.

생산적이고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들이 정치의 공간에서 다뤄졌으면 합니다. 과거에는 보편적 복지와 맞춤형 복지를 두고 정치세력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논쟁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담론입니다. 이런 논쟁이 바로 국가 발전을 위한 건강한 논쟁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정치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심지어 중국의 전기차가 소매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렌트카 회사들을 인수하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한 시장 경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전면적으로 짚어보는 국가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정작 이 중대한 경제적 위협과 외교적 도전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터무니없는 음모론과 반지성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거 부정 음모론을 퍼뜨리며 "중국이 개입했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일삼는 사람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실재하는 위협이 아니라 망상을 좇아 다니는 것이 오히려 중국을 가장 이롭게 하는 행동 아닙니까?

저는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더 이상 기존의 ‘보수 대 진보’라는 낡은 이분법에서 해석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법치를 외치던 사람들이 정작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무시하고, 판사를 위협하며, 거리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모습이 보수의 가치와 부합합니까? 보수라면 법과 질서를 지키고, 사법체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법치의 가치를 강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법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반헌법적이라고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리더를 보호하기 위해 재판을 지연시키고 헌법 제84조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악용해 형사적 책임을 회피하려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헌법상 특권을 이용해 범죄의 처벌을 면하려는 것이야말로 반헌법적 행위 아닙니까?

이처럼 보수도 진보도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자기모순에 빠진 현실을 우리는 두 눈으로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낡은 정치의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위기만이 아닙니다. 정치가 과거의 사건에만 매몰돼 미래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더욱 큰 위기입니다. 멀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서부터, 가깝게는 조국 전 장관 수사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왜 이런 주제가 정치를 뒤덮어야 합니까?

수사와 재판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조용히 냉정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는 국회와 거리에서 정치적 도구로 남용됩니다. 불법 계엄이 나라를 뒤흔든 상황에서도 여당과 제1야당 모두 과거에만 집착하며 갈등과 증오의 덩어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건을 키워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과거의 논쟁을 소모적인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정치권의 구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정치가 수사기관을 정치에 끌어들이고, 한편으로는 수사기관이 정치에 깊게 개입하는 현재의 양태, 꼭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듯 정적을 악마화 하는 국내용 검투사 정치만 횡행하다보니 국제무대에서는 방구석 여포처럼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제회의 자리에서 국가원수가 졸고 있는 모습, 옆에 서있는 정상에게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하고 나무토막 처럼 서있는 모습, 이것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모습이어야 합니까? 수천억 원의 혈세를 들여 전용기를 타고 나가면서, 정작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외교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외교적으로도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달라져야 합니다. 젊어서 부터 해외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의 문화를 우리 문화만큼이나 쉽게 소비한 세대가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국제 무대에서 타국의 정상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프리미어 리그에 대한 대화로 말문을 틔울 수 있다면, 어릴 때 같이 해봤을 법한 e스포츠 게임을 바탕으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K-POP과 문화 컨텐츠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외교의 지평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작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지점을 반드시 뚫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대한민국에서 연공서열이 젊은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는 수단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젊은 세대가 연공서열의 장벽에 막혀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정치에 뛰어들어 당당하게 경쟁하고 실력을 보여줘도, "너는 아직 젊으니까 기다려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제가 선택한 길은 전당대회에 도전해 수십 년간 정치를 해온 선배들을 따돌리고 제 역할을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려라, 너는 젊지 않냐, 더 배워야 한다.” 이런 가스라이팅이 대한민국을 정체시켜 온 것입니다.

우리는 올림픽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내보냅니다. 간혹 협회에서 실력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비리가 발생하면 국민들은 분노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에게,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는 아이돌 그룹에게 연공서열을 강조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당대표를 지내고 선거에서 승리해도 "어리다"라는 이유로 억누르려 하고, "싸가지 없다 프레임"에 가두려는 모습이야말로 기득권적인 행태의 전형적인 모습 아닙니까?

이러한 연공서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젊은 세대의 창의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작금 대한민국의 위기, 군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별단 엘리트들이 군 형법 44조, "상관의 명령이 명백한 위법일 경우 따를 의무가 없다"는 조항 하나 판단하지 못해 국회를 침탈하고 군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 아닙니까? 더 이상 형식과 권위에 매달려 국익을 저해하는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금지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 해야 합니다. 즉 네거티브 규제를 사회의 기조로 삼아야 합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처음 태동했을 때, 대한민국은 분명 그 분야에서 선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단순한 암호화폐 거래를 넘어선 다양한 파생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법인 명의 계좌를 허용하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해 산업이 뒤쳐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없습니다. 산업과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법과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창업과 혁신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셋째, 교육에 대한 대대적 투자로 가진 꿈의 크기가 부모의 재산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제약받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교육에 올인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출발선이 불공평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금을 걷어 가진 자의 것을 덜 가진 자에게 나누어 경제를 지속하고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말은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자기 돈도 아닌 것을 국민들에게 25만 원씩 나눠주겠다고 했을 때, 과거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았던 이유는 그 일시적인 행복이 지속 가능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십년간 우리는 학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가는 것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물론 시대에 맞게 공부해야 할 영역과 과목이 변하고 방식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지표는 꾸준한 학력 저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학은 중등교육에서 빠진 부분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느라 분주하고, 서열화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평가는 절대평가화 되어 학생들은 일부 과목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공적영역에서의 교육에 대한 투자와 교육목표치를 확실하게 끌어 올리겠습니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격언처럼, 대한민국이 몰두해야 할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미래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합니다. 출신 배경과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정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입바른 소리하면서 살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도 당대표가 될 수 있고, 막강한 권력과 맞서서도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큰 덩어리에 속하지 않고 새로움에 기대어 승부하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이 생각이 살아있으면 대한민국은 항상 역동적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우격다짐으로 방탄하면서 정치하는 모습이나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고 계엄을 해버리는 정치를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추천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입바르게 살면 빛을 보는 세상을 미래로 보여줘야 되는거 아닙니까?

36세 당대표 당선의 기적과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던 동탄의 기적 위에 우리가 쌓고 싶은 다음 기적은 세대 교체의 기적입니다. 이미 더이상 새로운 고기를 얹을 수 없을 정도로 다 타버린 고기 불판을 새로운 불판으로 바꿔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존 F. 케네디는 43세에 미국의 지도자가 되어 사람을 달에 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43세의 토니 블레어는 영국에 ‘제3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46세의 빌 클린턴은 전쟁에서 승리한 현직 대통령을 꺾고 IT를 중심으로 미국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46세의 버락 오바마는 흑인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과감한 세대교체와 함께 일어납니다. 이들을 부러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과감하게 세대 전환과 구도 전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저들이 한 것을 왜 우리는 못하겠습니까?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하는 경쟁은 이제 무의미해졌습니다. 좌파적 사상과 우파적 사상이 철학적으로 맞닥뜨린 상황도 아닙니다.

진보세력은 한미일 협력을 비판해오다가 갑자기 조기대선을 앞두고 오락가락 하는 모습에서 외교의 가장 큰 가치인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이미 상실했고, 보수세력은 광우병 괴담을 비판하면서 이성을 강조해오던 모습을 잃고 부정선거에 올인하는 반지성의 정치에 들어섰습니다.

더 이상 낡은 틀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철 지난 노래를 엇박자로 부르는 이 두 세력을 과거로 남겨두고,우리는 미래의 노래를 부르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은 1980년생입니다. 선진국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 세대가 이제 대한민국을 선진국에 걸맞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합시다. 그것은 정치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극단적 세력간의 대립은 이 체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5년, 대한민국의 한 정치체계의 종말을 다시 확인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불판을 까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방탄과 부정선거, 사법 불복을 노래하는 "정치질"과 결별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의 삶을 노래하는 "정치"를 선보이겠습니다.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 갑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갑시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그리고 단호하게 갑시다.

감사합니다.

13. 삼일절 상하이 연설

삼일절 상하이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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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한민국이 시작한 상하이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석입니다.

저는 오늘 3.1절을 맞아 이곳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최근 탄핵 정국 가운데 혼란스러운 몇 주를 보내며, 이 국면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같은 해 4월 11일, 이곳 상하이에서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지상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은 이념과 출신을 뛰어넘어 큰 연대를 이루었습니다. 당시 임시의정원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반공 자유주의자인 이승만과 좌파 사회주의자인 여운형이 공존하며 독립을 위해 힘을 합쳤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원에서 주요 직위를 맡았던 용기 있는 인물들은 몇 살이었을까요?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이승만 박사는 마흔셋, 김규식 선생은 서른여덟이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마흔이었습니다. 그들의 젊은 패기가 대한민국의 씨앗이 되었고, 그들의 헌신적인 도전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었습니다.

그들은 이념이 달랐어도 적대하지 않았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오직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정신이 1945년 광복으로,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일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임시정부 소재지를 수도 없이 옮겨가며, 1천7백 킬로미터 떨어진 충칭까지 대장정의 길을 걸었어도 결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좌도 우도 아닌,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있었을 따름입니다.

우남 이승만 박사의 국제무대에서의 외교력, 윤봉길 의사에게 수류탄을 쥐어주며 격려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결단력, 그리고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설파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개혁 정신이 하나로 결합했기 때문에 우리는 독립을 이루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승만이 여운형을 배척하고, 여운형이 안창호를 배제했다면, 또 안창호가 좌파 이동휘를 경원시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정치 일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두 번째 탄핵으로 밀려오는 파도 앞에 작게는 보수진영, 넓게는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우리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시작, 선열들이 다짐했던 ‘초심’입니다. 계엄과 탄핵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칼리굴라와 네로의 폭정을 거쳐 오현제의 중흥기를 열었던 로마처럼, 우리는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중흥기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3.1절을 맞아 보수와 진보를 상징하는 단체들이 각자 세력를 과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동원전을 펼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시작을 되새기고 미래의 지향점을 찾아야 할 이때에, 아직도 과거에 파묻혀 샅바싸움만 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더이상 대한민국을 이끌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에 성공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스물넷 청년 한 명이 “백만 대군도 이루지 못한” 새로운 역사의 서막을 열었던 것입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집을 나섰으니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겠다.

스물두 살 나이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면서 윤봉길 의사는 이러한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1946년 5월 15일,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해방된 조국에 자랑스럽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살아서는 돌아가지 않겠다.”

다시는 낡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

이러한 결연한 의지를 이곳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돌아봅니다.

우리는 중국보다 앞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적 성장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잠깐 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거치고는 있지만,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대한민국이 시작한’ 이곳에서 돌아봅니다.

대한민국이 시작한 이곳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으뜸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첨단 과학기술 패권전쟁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지키고 경제영토를 넓힐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 자녀 세대의 운명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를 갖고 역할을 다투어야 한 것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세월이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왔던 정치적 좌표였다면, 이번 탄핵 심판을 끝으로, 창의와 도전, 혁신과 경쟁이 꿈틀거리는 활력있는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에서는 중국보다 월등하게 빠른 성취를 이루었던 역사와는 달리,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 있어서는 비교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민주주의가 자유와 창의의 촉진제로 진화하지 못하고 숨 막히는 관료 주도 규제사회로 열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갈아엎어야 할 규제의 장애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앞서가던 메모리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최근 정체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 원인의 주범으로 주52시간 근로 제도가 지목받고 있습니다. 흡사 근로시간만 연장되면 메모리 반도체 기술경쟁에 있어 과거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묘사하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것이 전부일까요?

어떤 기업이 주52시간 근로시간 때문에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면, 그래서 노동을 늘리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해법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제조업 중심 대한민국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주5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그가 해외 여느 엔지니어 못지않은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회사가 성공하더라도 나이와 호봉이 아니라 오롯이 능력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인재가 기대소득의 격차때문에 ‘의치한’ 의대-치대-한의대 진학만을 고민하게 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의와 혁신을 제약하는 규제를 풀지 못하고, 극심한 관료국가, 통제국가, 규제국가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첨단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다 잃고, 그러한 악몽을 떨치기 위해, 연구와 비지니스에 있어 전면적인 ‘기준국가제’를 시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어떤 생명공학자가 일본에서는 할 수 있는 연구를 대한민국에서는 하지 못해서 연구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커다란 손실입니다.

새로운 IT 서비스를 기획하는 누군가가 규제기관의 문턱을 드나들다가 지쳐서 쓰러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미래의 먹거리입니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숫자나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과도한 규제로써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고, 연구와 개발에 매진했을 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의 원리에 우리보다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의 선봉에 선 연구자들과 기업가들이 ‘의치한’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으뜸국가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의 좌표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은 1대99의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많이 버는 극소수가 나머지 대다수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인식으로 ‘싸워서 빼앗자’는 쟁취의 구호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나 통계로 드러나는 현실은 다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는 1대99의 착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더욱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열정을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소득의 절반가량을 소득세와 4대보험 등으로 잃어버릴 것이라 예상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이기적인 사람, 영악한 사람이라고만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되어가는 중입니다.

또 어떻습니까. 가족을 위해 모아놓은 재산을 물려줄 때 절반 이상을 상속세로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란 나라에 대한 애정과는 별도로, 최대한으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소비되고 투자되어야 할 재산을 다른나라에게 빼앗기는, 국제적 자본이전의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황금알을 꺼내려다 아예 닭을 죽이는 잘못은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시장경제가 공산주의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개인이 오늘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고, 가족과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공의 욕구, 보존의 욕구라는 인간의 본질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저출산의 시대를 맞아, 수많은 가치 중에서도 ‘효율’이라는 가치에 다시 한번 눈을 떠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개개인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개개인의 창의력이 무제한으로 발현되는, 활력과 도약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프로그래머로 일한 지도 적잖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저 역시 특정한 분야 하나를 깊게 파헤쳐 들어가는 것에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버즈워드에 낚여 허송세월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투입되는 일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수준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여의도 정치권의 어느 누구보다 잘해낼 능력이 있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저는 그 80년을 절반으로 꺾은 1985년에 태어났고, 올해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 가운데 절반인 40년이 산업화의 시대였고, 나머지 절반인 40년이 민주화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40년은 도약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압도적 새로움”을 통해 과학기술 선도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곳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의 첫 청사진을 그려냈던 선열들의 용기와 도전정신, 좌우를 뛰어넘은 목표 의식을 되새깁시다.

새로운 대한민국, 자손만대 이어질 자유의 기초를 회복하는 과제가 다시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분투하며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그 길을 선도하는 퍼스트펭귄으로서의 역할을 항상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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