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9:04:20

동부 힙합

이스트코스트 힙합에서 넘어옴

Hip Hop
<bgcolor=#fff,#1c1d1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gray,#2d2f34><colcolor=#fff> 음악 힙합 음악 | | 비트메이킹 | DJ | 비트박스
음악적 분류 붐뱁, 트랩, 갱스타 랩, 지펑크, 크렁크, 코미디 힙합, 팝 랩, 컨셔스 힙합, 하드코어 힙합, 프로그레시브 랩, 익스페리멘탈 힙합, 랩 록, 뉴 메탈, 올드스쿨 힙합, 뉴스쿨 힙합, 얼터너티브 힙합, 트립 합, 재즈 랩, 래칫, 멈블 랩, 클라우드 랩, 이모 랩, 드릴, 레이지, 뉴재즈
지역적 분류 파일:West Coast Sign.png서부 힙합 | 파일:East Coast Sign.png동부 힙합 | 남부 힙합 | 중서부 힙합
스트릿댄스 | 비보잉 | 힙합 댄스
미술 그래피티
기타 역사 | 언더그라운드 힙합 | 디스전 | 한국 힙합 | 한국 힙합레이블 | 한국 힙합크루
}}}}}}}}} ||

동부 힙합
East Coast Hip Hop
파일:East Coast Sign.png
East Coast의 'E'를 상징하는 핸드 사인[1]
<colbgcolor=#000><colcolor=#fff> 기원 <colbgcolor=#fff,#191919>장르 힙합, 디스코, 펑크(Funk), 소울, 재즈, 컨템퍼러리 R&B
지역
[[미국|]][[틀:국기|]][[틀:국기|]] 뉴욕주 뉴욕시 브롱스
등장 시기 1970년대 초중반
파생 장르 붐뱁, 재즈 힙합, 마피오소 랩, 랩 록, 랩 메탈, 올드스쿨 힙합, 뉴스쿨 힙합, 하드코어 힙합, 얼터너티브 힙합

1. 개요2. 역사3. 주요 아티스트4. 하위 장르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East Coast Hip Hop

미국 동해안에 위치한 뉴욕의 이름을 따온 힙합.

동서부 힙합 아이콘들이 죽어 나가고 인터넷을 통한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동부 힙합과 서부 힙합을 따로 구분하는 지역만의 특수성은 점차 흐려지고 있지만, 1990년대~2000년대에는 힙합의 지역적 특성이 뚜렷한 편이었다. 동부에서는 특히 시적인 가사, 강렬하고 둔탁한 드럼이 인상적인 붐뱁, 재즈 힙합 등이, 반대로 서부에서는 느긋하고 멜로딕한 지펑크, 갱스터 랩 등이 지역을 대표하였다.

2. 역사

힙합의 시작 자체가 뉴욕의 브롱스 남부 빈민가에서였다. 힙합의 태동기 시절인 1970년대 초반, 뉴욕에서는 디스코가 클럽 등 음지를 중심으로 엄청난 광풍이 불고 있었다. 힙합도 이에 큰 영향을 받아 디스코, 펑크, 재즈 성향을 잔뜩 담은 블록파티용 댄스 음악으로 시작했다. 양 쪽에 턴테이블 두 대를 배치하고 비트를 쪼개며 연속적인 음악을 재생하는 기법인 비트 브레이킹이 동네 DJ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 브레이크에 맞춰 관객들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발전시켜 나갔다. 이후에는 마이크를 잡은 뒤 그냥 떠들던 행위를 넘어 MC들이 득세하고 비트에 맞춰 가사를 얹기 시작해 이 발전하면서 앞선 디스코, 펑크 계열 장르들과 차별되는 커다란 특징이 생긴다.

1980년을 전후해서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의 성공을 시작으로 Fantastic Five, Cold Crush Brothers, Treacherous Three, Funky Four Plus One, Afrika Bambaataa 등이 뉴욕 안에서 히트했으며 주로 기존 디스코, 펑크 샘플에 자기 과시적인 가사와 비교적 단조로운 랩을 얹어 파티와 클럽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테이프를 팔았는데 이들이 1세대 올드스쿨 래퍼들이다.[2][3]

한편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석유 파동으로 인해 미국 경제 중심지 뉴욕의 암흑기라고 봐도 무방한 최악의 시기였으며 마치 DC 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의 고담시처럼 살인과 실업이 큰 문제가 되던 시기이다. 또한 레이건 정부 들어서는 크랙 코카인과 경범죄 투옥 문제가 엄청 심해졌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Grandmaster Flash의 The Message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메세지적 가사가 파티음악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음악을 넘어 흑인들의 발언권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된다. 이에 Run-D.M.C., 퍼블릭 에너미, 비스티 보이즈LL Cool J 등이 데프 잼 레코딩스 설립자 릭 루빈과 러셀 시몬스가 하는 신디사이저드럼머신으로 구성된 새로운 방식의 프로듀싱을 토대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득세하게 되고 이들을 뉴스쿨 래퍼라고 한다.[4] 즉 이 시기를 기점으로 현재 2020년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듣기에 익숙한 힙합 사운드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5]

한편 같은 시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Marley Marl이라는 프로듀서가 샘플러를 만지다가 우연히 매우 강한 스네어 소리를 만들게 되고 이에 더해 찌그러진 사운드의 Chopped Beat 기법[6]을 발전시킨다. 드럼머신 내장 사운드를 넘어 이를 재창조 해낸 것 이다.[7] 라킴과 빅 대디 케인 등의 MC는 현재 모든 힙합에 통용되는 변칙적인 라임 배치 구조를 선보이며 동부 힙합이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맞아 크게 발전하였고 붐뱁의 기틀이 마련된다.

상술했듯이 Run-D.M.C.Walk This Way가 발매되고 메인스트림에 진입했으며 라킴이 데뷔한 1986년 혹은 서부에서 N.W.AStraight Outta Compton을 성공시키며 서부 힙합으로 지평이 넓어지며 퍼블릭 에너미가 정규 2집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을 성공시키며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힙합이 음악을 넘어 문화 전반으로 목소리가 확산되는 1988년을 통상적으로 골든에라, 즉 힙합 황금기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장르의 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도기를 거쳐 뉴스쿨이 완전한 대세를 확립하고 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다. 참고로 1990년대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장르성이 풍부했던 10년으로 기존의 록 음악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동시에 흑인 장르인 컨템퍼러리 R&B와 힙합이 메인스트림에 안착하던 시기다.

동부가 뉴스쿨 1세대 래퍼 이후 주춤하는 동안 서부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음악으로 메인스트림을 점령해 나갔고 이에 열이 받아 이를 기점으로 동서부간 디스전이 시작되었다. 1994년 투팍 샤커의 총격 사건과 1995년 소스 어워즈에서 닥터 드레의 데스로우와 퍼프 대디의 배드보이 레코즈의 대립으로 인해 격화되었고 이듬해에는 투팍의 정규 4집 앨범 All Eyez on Me가 동부를 마구잡이로 저격하는 내용으로 힙합 역사상 최고의 히트를 치며 갈등이 정점에 이른다. 한편 이 시기 뉴욕에서는 E-mu의 SP-1200 기점으로 미세한 음정 단위로 샘플링이 가능해지며 LA만큼은 아니지만 DJ 프리미어, 피트 록, 큐팁, 라지 프로페서 등의 유능한 프로듀서들이 이름을 날린다. 그리고 어벤져스처럼 이들 프로듀서를 전부 모아서 만든 앨범이 바로 Nas의 정규 1집 Illmatic. 뿐만 아니라 같은 해 말에 나온 다른 앨범이 있으니, 노토리어스 B.I.G.의 정규 1집 Ready to Die다. 이처럼 나스와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우탱클랜 등이 있었으나 서부를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배드보이 레코즈의 비기를 통해 서부와의 경쟁에 불을 지핀다.

동서부의 대립은 투팍과 비기의 죽음으로 끝이 나며 이후에는 지역간 갈등이 봉합되고 퍼프 대디, 릴 킴, 자룰 등의 팝래퍼들이 메인스트림 팝스타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타 기존 오리지널 래퍼들은 침체에 빠진다. 퍼프 대디의 이름을 따 통상 “Jiggy Era”라고 부른다. 제이지마저 데뷔 초창기에는 팝 성향이 강한 음악을 낸 적이 있다. 사실상 이 시기를 기점으로 힙합의 지역성은 매우 옅어지고 대중음악 제1 장르로 떠오른다.[8]

한편 힙합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크게 발전하고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싸이퍼”라는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 유행한다. 모스 데프, MF DOOM, Fat Joe, 탈립 콸리, Supernatural 등의 래퍼가 대표적. 또한 DJ Stretch Armstrong가 진행하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전문 라디오도 상당한 유명세를 탔었다.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여기에 출연하기 위해 애를 썼으며 성공적인 경우 독립 레이블과의 계약도 빈번히 있었다.

2020년대 초중반 동부 힙합 래퍼들 대부분은 물론 힙합씬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퍼프 대디가 일으킨 디디 게이트로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다만 동부 힙합에 속하는 50 센트는 퍼프 대디와 사이가 매우 나쁘기 때문에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마자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며 역시 디디와 얽혀있다는 루머가 불거진 JAY-Z를 공격했다.

3. 주요 아티스트

4. 하위 장르

4.1. 붐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붐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재즈 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재즈 랩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3. 팝 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팝 랩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관련 문서


[1] 오른손을 위 사진의 모양처럼 하면 정면에서 볼 때 'E'의 모양이 된다.[2] 특히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은 드디어 라디오를 타고 뉴욕을 넘어 최초로 미 전역에 히트를 기록한 힙합 음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Apache 등이 유명하다. 이는 기존의 DJ와 MC들이 40년대 이전 재즈 연주자들처럼 음반으로 녹음하기보단 라이브 공연을 선호했고 녹음을 하더라도 테이프를 내는 정도였기에 뉴욕을 넘어 다른 도시로 넘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Rappers’s Delight를 비롯한 그들의 앨범은 상술한 Cold Crush 등의 라임을 짜집기 카피하여 녹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독차지해 미 전역에서 첫번째 래퍼라는 이미지를 얻어갔으며 정작 뉴욕 내 힙합씬에서는 인지도가 없던 그룹이었던지라 정작 뉴욕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들은 이들의 성공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3] 뉴웨이브 밴드 블론디Rapture를 발표하며 힙합 사상 최초의 빌보드 1위곡을 배출해낸다. 상술한 Grandmaster Flash 등 힙합의 발전에 큰 공헌한 뮤지션과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가사에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헌사를 보냈다. 기존 백인 음악계에서 에 대응하고 있던 뉴웨이브가 흑인 음악 내에서 디스코에 대응하고 있던 힙합의 모습과 닮아 둘 다 하위문화로서 동질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Rapture의 성공은 장기 존속 여부가 불확실했던 힙합이 메인스트림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회자된다.[4] 디스코 탈피, 드럼머신, 사회고발적 가사, 다채로운 라임구조, 라디오를 통한 메인스트림 진출 등이 올드스쿨과 구분되는 특징이다.[5] 뿐만 아니라 음악 외적으로는 Run DMC를 통해 기존 무대&방송용 디스코 정장, 롱부츠 패션에서 벗어나 스트리트 패션이 발전하고 패션 시장이 팽창한다.[6] 훗날 휴스턴에서 활동하는 DJ Screw의 Chopped & Screwed 장르가 여기에 영향력 꽤나 받은 듯 하다.[7] 훗날 90년대를 지배하는 RZA, DJ 프리미어, 매들립 등의 프로듀서가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언급한다.[8] 이 시기 빌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으며 이러한 시대상이 리스너들이 긍정적이고 신나는 음악을 선호하도록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계속된 동서부간 대립과 두 별들의 요절로 인하여 기존에 딥하고 다크한 힙합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