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15:42:28

데 라 소울

De La Soul에서 넘어옴
데 라 소울
De La Soul
[1]
파일:external/www.mtv.com/De%20La%20Soul%20GI%20from%20FB.jpg
▲왼쪽부터 포스누오스, 트루고이, 메이서
<colbgcolor=#fff><colcolor=#000> 결성 미국 뉴욕시
활동 시기 1988년~현재
멤버 포스누오스(Posdnuos)
트루고이(Trugoy) †[2]
메이서(Maseo)
장르 얼터너티브 힙합
레이블 Tommy Boy

1. 개요2. 상세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Clearfix]

1. 개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힙합 그룹.

2. 상세

포스누오스(Posdnuos, 그의 닉네임인 Sound Shop을 거꾸로 한 것), 트루고이 더 도브(Trugoy The Dove, 요구르트를 거꾸로 한 것), P.A. 페이스마스터 메이스(P.A. Pasemaster Mase)로 구성되어 있다. 멤버 세 명 모두 일반적인 힙합 그룹과 달리 중산층 자식들이였고, 음악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곧 데 라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 본 프로듀서 프린스 폴이 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뷔작 3 Feet High and Rising은 그야말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기존 힙합의 단순한 비트와 샘플링을 넘어서 풍요로운 음악적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D.A.I.S.Y.라고 불릴만한 히피적이고 낭만적인 감수성과 당대 힙합의 날카로운 시선을 겸비한 이 앨범은 샘플링의 예술적 경지라는 평가를 받으며 상업적인 성공과 힙합 씬을 넘어선 평단의 지지를 받게 된다. 이들은 힙합을 순수히 음악적인 방향으로만 접근했던 탓에, 힙합의 메시지를 중시하는 당대의 다른 힙합 뮤지션 및 애호가들에게 '이들은 제대로 된 힙합이 아니다'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쌓아올린 힙합의 음악적 발전이 훗날 칸예 웨스트와 같은 래퍼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힙합의 역사에서 이들이 남긴 공적은 작지 않다.

하지만 그 샘플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Transmitting Live from Mars"에 실린 터틀즈의 곡을 무단 샘플링했다는 이유로 소송이 걸리게 된 것이다.[3] 하지만 소송 이후 발매된 그룹의 2집 De La Soul Is Dead는 전작 못지않은 힙합 클래식으로 평가받게 되며, 데 라 소울은 계속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3집 Buhloone Mindstate, 4집 Stakes is High 또한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5집인 Art Official Intelligence가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수작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이후 2장의 앨범도 모두 호평을 받으며 데 라 소울은 힙합계에서 최고의 디스코그래피 중 하나를 쌓게 되었다. 이후 나이키와의 콜라보 믹스테잎 등의 활동을 하였지만 마세오가 참여하지 않은 Plug 1,2를 제외하면 그룹 앨범은 발매하지 않다가, 2016년에 8집(혹은 9집) and the anonymous nobody…를 통해 복귀하였다. 해당 앨범은 대체로 좋은 평을 받았다.

비교적 최근에는 고릴라즈Feel Good Inc.에 피처링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밀도 높은 샘플링이 대표적인 뛰어난 프로덕션 감각, 유쾌하면서도 예리한 지성미 [4]가 넘치는 래핑으로 황금기 힙합의 풍요로움을 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때문에 힙합 장르 바깥에서도 상당히 존경받으며 팬층이 많은 그룹이다.

2023년 2월 13일, 멤버 트루고이가 사망했다. 마침 데 라 소울 음원 저작권 분쟁 해결로 3월부터 스트리밍이 시작되고 LP도 재발매를 앞두고 있던 차라서 팬들에게는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3. 디스코그래피

3.1. 앨범



[1] 드 라 소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만 발음을 들어보면 '데'에 가깝다.[2] 2023년 2월 13일 사망.[3] 이 소송은 힙합 역사에서도 큰 분기점이 되는데, 샘플링의 저작권에 대한 법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에 올라온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송 이후로 한동안 무수한 샘플을 동원하는 스타일은 위축되고, 음반 회사들은 본격적으로 샘플 클리어링에 대한 규칙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이 공백을 틈타 직접 연주의 비중을 높여 흥행한 장르가 G-Funk.[4] Millie Pulled a Pistol on Santa 같은 곡에서는 위선자 아버지에게 성폭력으로 고통받던 소녀가 결국 아버지를 죽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bitch와 핌프로 난무하던 (지금도 난무하긴 하지만) 당시 힙합 씬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