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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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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아동기금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UNIC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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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92db,#3c82c9><colcolor=#ffffff,#fafafa> 설립 1946년 12월 11일 ([age(1946-12-11)]주년)
목적 어린이‧청소년 구호
주요활동 긴급구호, 교육‧영양‧보건지원, 어린이 인권보호
가입국 34개국(국가위원회) / 155개국(현지사무소)
본부소재지 미국 뉴욕
홈페이지 유니세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1. 개요2. 활동
2.1.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3. 비판 및 논란4. 한국위원회5. 홍보대사
5.1. 국제친선대사5.2.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친선대사5.3. 한국위원회 친선대사5.4. 특별대표
6. 기타

[clearfix]

1. 개요

"적인 어린이들은 없다.(There are no enemy children.)" [1]
유니세프 초대 전무 이사, Maurice Pate

유니세프, 또는 유엔아동기금은 1946년 12월 11일,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전쟁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의 구호를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처음 명칭은 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이었으며, 이를 줄여서 유니세프(unicef)라고 하였다. 1953년에 현재의 명칭[2]으로 바꿨으나, 'UNICEF'라는 약칭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특이하게도 여러 매체에서는 약칭을 대문자로 표기하지만 유니세프 자체적으로는 항상 소문자로만 표기한다.

196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수상자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유니세프 설립의 공로자인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Henry Richardson Labouisse Jr.)[3]이다.

2. 활동

초창기에는 주로 유럽미국에서 수금 활동을 하였고, 이후 전세계 많은 국가들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주요 역할은 성금 접수, 상품 판매 후 수익금 일부 적립, 자선 콘서트 등등을 통해 기금을 모아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의 빈민 가정 아동들을 위한 구호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한때는 대한민국도 후원을 받았었다.

각국의 조직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개발도상국에는 국가사무소(Country Office)를, 선진국 33개국에는 유니세프 국가위원회(UNICEF National Committee)라는 선진국형 조직을 설치 및 운영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유니세프 국가사무소가 설치된 국가에서 국가위원회가 설치된 국가로 변경된 유일한 국가이다. 이 말은 즉 회원국 중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단체 홍보를 위해서 FC 바르셀로나와 맺은 제휴가 잘 알려져 있다. 2006년경의 일로 향후 5년간 연수익의 0.7%정도인 약 200만 유로를 FC 바르셀로나가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유니폼에 유니세프 로고를 새겨 홍보까지 하는 식.[4] 일반적으로는 돈을 주는 구단 스폰서의 이름을 유니폼에 달고 뛰는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형식이라 하겠다. FC 바르셀로나 외에도 스코틀랜드글래스고 레인저스 FC,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같은 다른 나라의 단체들과도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항공사 중에도 아시아나항공이나 일본항공은 FC 바르셀로나처럼 돈 내고 유니세프 로고를 동체에 그려넣고 있다. 즉, 오히려 유니세프 표식을 사서 쓰는 것.

홍보 차원에서 여러 유명인사들이 유니세프를 홍보해 주는데 김혜수, 신경숙, 안성기, 정명화, 앙드레 김, 박완서 등이 한국 유니세프의 친선대사이다. 국제친선대사로 정명훈김연아[5]가 활동 중. 사실 친선대사 아니더라도 카드팔이로 매우 유명하다. 1948년에 도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어린이들이 보낸 카드에 크게 감동받아서 이듬해부터는 어린이 그림으로 엽서와 카드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고. 카드 디자인은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보다는 한국 카드가 예쁜 듯.

일단 국제단체고 유엔 산하인 만큼, 성금에 대한 사용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만약 자신이 정기 후원자라면 매년 1년치 정산표 + 활동내역 + 대표의 감사편지를 받게 된다. 이 편지는 분기마다 오는 경우도 있다.

큰 후원을 받으면 단체명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최근 김연아 팬클럽이 기부를 하자, 장문으로 팬클럽명을 일일이 감사패에 적어서 팬클럽 회장한테 전달한 게 짤방으로 퍼지기까지 했다.

2019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총기부수입은 약 64억 달러로, 그 중 60%가 각국 정부의 직/간접기부가 차지한다. 특이한 점은 한국의 경우 세계 9위의 기부국가인데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정부의 지원비율보다 민간의 기부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6]

2.1.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유니세프가 주최한 행사. 공식 명칭은 대니 케이 국제어린이(예술)경연대회이다.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했던 미국 배우 대니 케이[7]의 이름을 땄다. 오드리 헵번이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행사 때에도 사회를 직접 봤다. 오드리 헵번이 직접 나서는 행사인 만큼 대회의 권위도 높아서 초대손님으로도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섭외되었다. 대표적으로 1991년과 1992년에 오드리 헵번과 같이 사회를 본 로저 무어. 1992년 대회가 오드리 헵번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 그리고 오드리 헵번이 사망하자 대회 자체가 사라졌다.

참가부문은 무용과 음악(성악, 기악 포함)으로 유니세프가 각 국가에 초청장을 보내고 이 초청에 응한 나라가 자기 나라의 대표를 보내서 경연에 참가하는 형식이었고, 우리나라는 1991년에 처음으로 초대받았다. 시상은 최우수상 1개만 하는데, 대니 케이의 딸이며 역시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하는 디나 케이가 시상자로 나섰다.

참고로 1991년 대니 케이 국제어린이(예술)경연대회소련이 마지막으로 참가한 국제대회이다.[8] 이 때 다른 나라에서는 한 팀만 내보냈는데, 소련만은 여러 팀을 내보냈다. 애초에 공산권에서 초청된 나라가 소련 뿐이었으니. 1992년에는 소련이 해체하고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나라들이 별도로 참가했는데, 이 대회의 최우수상을 라트비아 대표가 받았다.

1991년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우리나라에선 KBS가 주한유니세프[9]와 공동으로 한국예선대회를 주최하여 한국대표를 선발해서 보냈는데, 대회 이름을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라고 하여 마치 창작동요제처럼 운영했고 기악과 무용 분야는 아예 넣지도 않았다. 이 때 '대니 케이 국제어린이(예술)경연대회'의 참가자격이 '8세부터 15세까지'로 되어있어서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도 참가자격을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로 하였다. 1992년 한국예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본선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나중에 가수로 데뷔한 진주[10]였다. 그리고 아역배우인 김다혜초대손님이 아닌 경연자로 마지막으로 참가한 행사이고, 어린이 프로에 자주 출연하던 성악가 이경애가 1992년 한국예선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것이 어린이프로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 비판 및 논란

일부에서 빈곤 포르노를 악용하는 대표적 사례라는 주장이 있다. [11]

또한 어린이에게 원조를 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그 어린이의 인생을 망치는 사례가 발생한다. 스스로 벌어먹을 생각을 안 하고 유니세프의 구호품만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는 몇몇 아동 및 청소년들을 콕 집어 염소를 키우도록 한 마리씩 줘서 나중에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도 있는데, 유니세프는 '공평한 구호'를 가치로 오히려 1:1 구호를 하지 않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또한, 입양 가능한 어린이들을 입양되지 못하게 계속해서 보육시설에 수용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 엘리자베스 발톨렛 교수에 의하면, 유니세프는 어린이들이 모국에 머물 권리를 강조하는 헤이그 협약을 각 국가에 강요함으로써 국제 입양 감소를 유도했고, 이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입양되지 못하고 (나쁘게 말하면 입양수출되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의 고아원에 방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12]

낙태와 관련하여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종교계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유니세프가 후원하는 세계모성보건회의는 낙태 기구 및 약품을 '모성보건물품'에 포함시켰고, 유니세프가 2006년 니카라과, 2009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에 가톨릭 교회 등 종교계에서 상당한 반발을 하였고, 교황청2011년 유니세프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13] 다만, 이에 대해 유니세프는 공식적으로 “유니세프는 피임기구와 낙태를 제공하지 않으며, 낙태를 가족계획 방법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이 유니세프의 불변하는 장기적 정책”이라는 입장 발표를 하였다.[14]

또한 WHO 8대 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태업 논란을 계기로 유니세프 등의 국제기금과 후원금을 대놓고 에티오피아 독재 정권에 횡령시키고 반환 요청마저 무시하였다는 것이 드러나, 과연 유니세프 등의 국제봉사단체들의 후원금이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지역 및 불우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15]

4. 한국위원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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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홍보대사

2015년 11월 기준.

5.1. 국제친선대사

5.2.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친선대사

5.3.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5.4. 특별대표

6. 기타



[1] 비록 적국의 어린이들이라 할지라도, 전 세계 모든 어린이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2]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유엔아동기금[3] 이브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의 둘째사위이다. 이를 두고 이브 퀴리는 '저는 집안의 수치입니다.'라는 농담을 꺼내기도 했다. 부모님, 언니(이렌 졸리오퀴리), 형부(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남편 모두 노벨상을 받았는데 자신만 못 받은게 이유라고.....물론 이브 퀴리도 노벨상 못 받았지 수많은 상훈을 받은 유명 인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자학개그.[4] 사실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은 시민 구단이라는 자존심과 역사 때문에 백 년 넘는 역사 동안 스폰서를 기재하지 않았다.[5] 전세계에서 여성 동계 운동선수로서는 최초다. 유니세프가 동계 운동선수를 국제친선대사로 임명한 전례가 없었다. 게다가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서는 최연소로 임명되었다.[6] 기부순위 1,2,3위인 미국/독일/영국의 경우 민간의 기부보다 정부의 지원이 3배, 많게는 영국의 경우 10배 이상 높지만 한국은 2배가량 민간의 기부비율이 높다. 참고로 10위인 스페인의 경우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민간의 기부라 비율로 따지면 더 압도적이긴하다. 그래도 민간만 따져도 스페인보다 한국의 기부가 더 많다. 상술했듯 피지원국에서 지원국으로 변한 유일한 국가임을 생각할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7] 참고로 이 분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고, 무려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까지 받은 대단한 인물이다.[8] 그것도 발트3국이 탈퇴하기 전 온전한 소련이었다.[9] 유니세프 한국사무소. 유니세프의 후원을 받는 나라에 유니세프가 설치한 사무소이다. 우리나라가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고도 1991년 당시까지 유니세프의 후원을 받는 나라였다는 얘기. 우리나라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출범하여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된 것은 1993년이었다.[10] 본명은 주진주로 이 대회에 참가하기 전부터 주진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소녀가수로 활동했다. 당시에 서울난우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5학년 때에도 1991년 유니세프 국제어린이음악제 한국예선대회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에는 진주라는 예명으로 JYP에서 가수 데뷔. 후에 본명을 주진으로 바꿨다.[11] 이는 유니세프 뿐만아니라 모든 자선단체의 문제점이며, 이들중 유니세프는 그나마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12] 기사[13] 기사[14] 유니세프 입장 원문: “UNICEF does not provide contraceptive supplies. UNICEF has never provided support for abortion and it continues to be the long-standing UNICEF policy not to support abortion as a method of family planning.”[15] '투명성'에 있어서는 돈을 빼앗긴 사실이 드러나고 적어도 그 돈을 반환하라고 요청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직 투명성은 남아있다는 반례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