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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2:35:04

위 워 솔저스

위 워 솔저스 (2002)
We Were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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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전쟁, 역사
감독 랜달 윌러스
각본 랜달 윌러스
제작 스티븐 맥케비티
브루스 대비
랜달 윌러스
출연 멜 깁슨
매들린 스토
그렉 키니어
샘 엘리엇
크리스 클라인
케리 러셀
배리 페퍼
촬영 딘 세믈러
음악 닉 글레니 스미스
편집 윌리엄 호이
배급사 파일:미국 국기.svg 파라마운트 픽처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CJ엔터테인먼트
개봉일 파일:미국 국기.svg 2002년 1월 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년 5월 3일
상영 시간 138분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등장인물5. 평가와 흥행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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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랜들 월리스 연출,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2002년 할리우드 전쟁 영화이다.

베트남 전쟁 초기의 격전 중 하나인 이아드랑 전투를 소재로 하였으며 할 무어가 퇴역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군 기자 조셉 겔러웨이와 함께 쓴 논픽션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원제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를 바탕으로 한다. 흥행과 별개로 작품성으로 당대 전쟁영화 중 수작으로 평가된다.

랜들 월리스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멜 깁슨 연출의 2016년 전쟁 영화 핵소 고지의 각본을 맡았다.

2. 예고편


3. 시놉시스

생사를 넘나드는 72시간의 전투! | 죽어서라도 우리는 함께 돌아갈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 공습 시험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하버드 석사 출신의[1] 전략가 할 무어 중령(멜 깁슨 분)에게 맡긴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아이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그는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

1965년 11월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제7기갑부대 1 대대장을 맡은 무어 중령은 395명의 전투 경험 전무의 어린 부하들을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의 X-RAY 지역에 헬기 고공침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점령한 월맹군이 모두 정예요원으로 아군보다 5배나 많다는 사실은 선발대가 모두 희생당한 뒤 알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배리 페퍼 분)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본부에선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본대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부하들을 남겨두고 홀로 전장을 등질 수 없는 무어 중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공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로는 봉쇄되지만, 무어 중령의 소대도 폭격의 화염에 희생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하고.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 영화

4.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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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와 흥행

미국 참전용사 커뮤니티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재킷처럼 영화적 가치로써는 훌륭한 영화지만 미군을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아 참전용사들에게 비판받는 작품들과는 비교가 된다. 하지만 이아드랑 전투에 참전한 몇몇 참전용사들은 지나 게 할 무어 중령의 시선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흥행은 좋지 못해 7500만 달러 제작비로 미국에서 7800만 달러 수익을 버는데 그쳤고 해외 수익은 5천만 달러도 되지 못했다. 다 합쳐 1억 3천만 달러도 되지 않아 본전치기인 1억 5천만 달러조차 벌지 못해 흥행에는 실패했다.

6. 기타

종군 기자로 현장에 있었던 원작의 공동 저자 조 갤로웨이는 영화의 75% 정도는 맞고 25%는 허구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이 정도면 놀라운 편.

도입부는 적장 응우옌 후 안의 회상씬으로 베트남군의 기습공격에 패배당하는 프랑스 육군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프랑스 국기(삼색기)가 달린 나팔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프랑스군을 사살하라고 명령하는 응우옌 후 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의 베트남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는 전투를 1954년의 디엔비엔푸 전투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전투는 인도차이나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안케 전투다. 위키피디아 문서 영화상에서도 첫 장면에 프랑스군이 들어간 중부고원지대를 미군이 들어갔다고 언급한다.

출동하기 전 무어가 자신이 지휘하는 7기병연대가 과거 인디언 토벌 작전 중 인디언들에게 전멸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7기병대의 전멸은 미군의 끔찍한 흑역사 중 하나로, 인디언 전쟁 당시 리틀 빅혼 전투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끈 미 육군 제7기병연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족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사실상 전멸했다. 나중에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부대가 새로 창설했을 때 이 새로운 헬리콥터 강습부대가 미래의 기병대가 될 것을 희망하며 기병대의 단대호를 붙여주었다. 이번에도 과거와 똑같이 월맹군의 본거지를 치러 들어가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과거의 역사가 오버랩 돼서 과거처럼 방심하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북베트남군 지휘관 응우옌 후 안을 연기한 돈 두옹(Don Duong)은 SBS 창사 특집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베트콩 역으로 출연했고, 이 드라마의 전야제 참석를 위해 한국에 내한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엔 어린 학생이었고 백마부대 소속 한국군에게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링크 응우옌 후 안은 할 무어에 비해 출연 비중은 적지만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무어의 부대를 곤경에 넣는 등 작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허나 베트남에서 한국의 안성기급 국민 배우 지위에 있던 돈 두옹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베트남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현장에 돌아온 응우옌 후 안이 미군이 전장에 꽂아놓고 철수한 성조기를 뽑아 들었다, "전쟁이 계속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무가지에 도로 꽂는데, 성조기를 도로 꽂은 것을 베트남 공안 당국에선 미군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베트남 정부에 의해 배우 활동을 금지당한 채 가택연금을 당했다. # 연금 해제 이후 그는 결국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쉰다섯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투의 거의 마지막에 미군들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그 직후에 UH-1 건쉽이 미니건과 로켓탄으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장면은 픽션이다. 무어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상황에 때맞춰 온 공군의 폭격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 중 너무 뜨거워서 발사할 수 없는 상태인 박격포를 무어와 다른 군인들이 오줌으로 식히는 장면이 유명하다. 원래는 식수까지 포에 뿌려가며 사격을 강행했는데 물도 떨어지자 무어가 "그럼 오줌으로라도 식혀!"라며 직접 허리띠를 풀고 시범을 보여 포반 대원들도 뒤따라서 오줌을 누는 장면이 압권이다.

파일:external/tkxuyen.com/nghuuan_halmoore.jpg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흐른 1994년, 미 육군 중장으로 퇴역한 할 무어와 베트남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복무 중이던 응우옌 후 안이 과거 전투 지역을 찾아, 당시 전투를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전후에 다시 만나면 그러하듯,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 중 응우옌이 저 만남을 가진 이듬해 1995년에 68세로 먼저 사망했고, 플럼리는 2012년 10월 10일에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무어는 2017년 2월 10일에 95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무어는 중장까지 진급하여 주한 미8군 부사령관, 미 육군 7사단장 등을 역임하며 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삽입곡 중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를 타고 투입되는 장면과 착검 돌격 장면에서 나오는 곡은 Sgt. MacKenzie다. 원래는 영화에 삽입할 목적이 아니라 조셉 맥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기리면서 쓴 곡이다. 감독 랜들 월리스가 곡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편곡 후 삽입했다고 밝혔다. 유심히 들어보면 영어인 듯 영어 아닌 가사가 들리는데 스코트어라서 그렇다.

엔딩 크레딧 부근에 삽입된 곡의 제목은 The Mansions of the Lord로 랜들 월리스가 직접 쓴 찬가이다. 영화 삽입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지만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고 미군 관련 합창단에서도 종종 부르는 편이다.

촬영 당시 엑스트라들의 휴식 시간에 지급된 담배와 성냥, 간식, 휴지 등은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나온 물건을 그대로 복각해 만든 물건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그 시대로 돌아간 척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에 정말 가 있어야 영화에 시대상이 배어 나온다는 감독의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

공식 자막이 엉망이다. 각종 오역으로 점철되었으며, 군사 용어 자문을 받지 않아서인지 조명탄을 야광탄이라고 한다든지, '사격 임무'를 '임무 중지'로 번역한다든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1] 하버드 석사학위는 베트남 전냉 파병을 마친 후인 1968년 미래시점에 취득함.[원문] What idiot would keep ordering that in the middle of a goddamn battle?[3] 나중에는 교전 중 포위되었다 오랜 시간의 혈투 속에 간신히 살아돌아와 흙투성이 몰골에 넋을 잃은 얼굴의 새비지에게 이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이런 날이 좋은 날이다."라고 본인 방식의 위로/격려를 해준다.[4]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한국 소설 '하얀전쟁'에서도 한국군 병사들이 M16 소총을 가리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벼운 장난감 총 같아서 믿음이 안 간다는 식의 부정적인 감상을 토로하는 장면이 언급된다.[5] 자막으로 순화된거고, 실제 하는 대사를 들어보면 "Any you some bitches call me grandpa, I'll kill you.", 즉 "여기 있는 몇몇 개년들이 나를 할배라 부르는데, 내가 죽여버린다" 이다.[6] 여담으로 처음 헬기에 탑승할 때는 라이카 M3 카메라였지만 M16을 받을 때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전자식 필름 카메라를 쓴다. 엄밀히 말해 고증 오류.[7] 간파당한 이유는 무어 역시 "내가 적 지휘관이라도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 뛰어난 지휘관인 무어도 인정할 정도로 응우옌이 매우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정도의 명장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간파당한 것이다[8] 당시 미 육군 전투병과는 상병인 Corporal(E4)부터 부사관(NCO)이었지만, 기술행정 병과는 따로 Specialist 계급이 부여되고, 최저 계급은 기술상병(SP4, E4)부터 시작한다. 기술행정 병과는 각 특기에 따라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는 계급이 각각 다르다. 가령 군악 특기는 기술중사(SP7, E7)부터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고, 이 권한은 기술행정 병과 내에서만 통용된다. 같은 소대라도 기술중사는 전투병과의 일등병에게 선임자 대우는 받지만, 지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9] 본인의 말로 "7천에서 3만 5천 피트까지 천피트마다 비행기가 쫙 깔렸습니다! 지원이 올 겁니다!"라며 자신감있게 보고한다.[10] 아군 오폭의 최종 책임은 브로큰 애로우를 발동한 무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11] 당시 그의 키는 6피트 4인치(=약 195cm)였는데, 그때 기준으로 조종사를 하기에는 너무 키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에서도 무어보다 머리 하나 반개 만큼 커서 무어가 올려다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