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김포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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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공항: ■ 육군, ■ 해군, ■ 공군, ■ 주한미군 |
여의도공항 Yeouido Airport 汝矣島空港 | |
공항코드 | |
IATA | SEL |
ICAO | RKSS[1] |
K-Site | K-16[2] |
주소 |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 |
개항 | |
1916년 10월 | |
폐항 | |
1971년 2월 | |
활주로 | |
활주로 | ? |
유도로 | ? |
소유기관 | |
대한민국 공군 | |
운영기관 | |
한국공항공사 | |
지도 | |
[clearfix]
1. 개요
과거 여의도에 있었던 공항.(1916~1958)1971년 폐쇄되었다.
2. 상세
1945년의 여의도비행장과 영등포 일대를 촬영한 미군 항공사진
1916년 3월에 일본 당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당시의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현재의 여의도)[3] 일대에 간이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여의도 일대는 한강에 반도처럼 튀어나와있던 지역이며 현재의 샛가은 건천이었는데, 일제가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영등포쪽으로 하천 길을 내어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확장된 샛강의 모습이 보인다. 이후 9월에 활주로와 격납고를 완공하고 10월에 개장하여 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단순 비행장 정도의 취급을 받았으나 이후 만주-조선-일본을 잇는 항공 수요가 크게 늘자 1929년에 비행장을 확장하여 여의도공항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이 공항을 경성항공사가 이용했다.
이 곳에 처음으로 항공기다운 항공기가 이착륙했던 것은 1920년의 일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4]가 일본과의 우호 친선을 목적으로 비행하게 되었다. 본래대로라면 이들은 신의주 비행장에서만 한 번 착륙할 계획으로, 서울 상공에서는 선회비행만 몇 번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항공기를 하늘에서도 보기 힘든 1920년대라, 서울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결국 여의도 비행장에도 착륙, 항공기 이착륙을 선보였다. 예정에 없던 일종의 서비스 차원의 착륙이었으나 항공기에서 내리는 조종사에게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운집한 시민들이 선물과 꽃다발까지 건네자 조종사는 매우 고마워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인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도 이곳에서 이착륙과 선회비행을 선보였다. "떴다 떴다 안창남"이라는 노래가 널리 유행할 만큼 이 역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가 이착륙한지 불과 2년 뒤인 1922년의 일이었다. 특히 무엇보다 이 이착륙에서, 안창남이 몰고 온 애기(愛機)에는 조선반도가 새겨져 있어 감동을 더했다.
안창남이 이착륙을 선보인 7년 뒤, 여의도 비행장은 정식 비행장으로 개장했다. 한강에서 홍수가 나면 섬이 잠겨버린다는, 비행장으로선 상당한 악조건이었으나 서울에 위치한 비행장이라는 접근성은 크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일본 - 조선 - 만주를 잇는 항공수송의 허브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고질적인 침수 문제 탓에, 김포에 비행장이 건설된 뒤로도 번갈아 이용되었다. 김포비행장이 있음에도 완전히 기능을 김포로 이전하지 않은 것은 압도적인 접근성 때문이었다.[5]
8.15 광복 이후 공군이 창설된 곳도 바로 이 곳이였다.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 234호에 따라 공군이 창군되었을 때,[6] 1천여 명의 장병과 20여 기의 경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최초의 비행단이 존재했다. 과거 공군본부와 공군회관이 대방동 언덕배기에 위치했던 것도 여의도에서 가장 가까운 구릉지가 이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선도 이 시기에 취항했으며 1947년에는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이 미니애폴리스 노선을, 1952년에는 대만의 민항공운공사가 동아시아 최초로 쑹산 국제공항에 각각 취항하였다. 또한 대한국민항공의 코니 4발 비행기와 DC-3 등이 여기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과 제주 정뜨르 비행장 등 국제선, 국내선 노선을 운항하였다.
1953년에는 국제공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의 여의도 공항은 현재의 여의도 부지를 거의 모두 사용하는 공항이었다. 하지만 잦은 한강의 범람으로 공항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결국 1958년 1월에 민간공항기능을 김포국제공항으로 이전하고 공군기지로만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1년 2월에 공군기지 기능을 성남에 있는 현재의 서울공항으로 이관하면서 폐쇄되었다.[7]
앞선 서술처럼 홍수가 나면 대피해야 하는 악조건이 존재했지만, 뛰어난 접근성 덕에 20년 넘게 공군의 최전방 기지로 운용되었다. 2009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공원에 공군 창설 60주년 기념탑이 건립되기도 했다. 이후 군 공항으로서의 기능은 성남시의 서울기지로 이전하였다.
1974년에 촬영된 여의도 광장. 상단의 교량은 서울대교 (현 마포대교)이며, 여의도공항 및 공군 기지의 활주로를 활용한 곳이기에 북단 부근에 B-29 폭격기 같은 군용 비행기를 전시해 놓기도 했다.[8]
이후 여의도 공항 부지를 일부 활용하여 만든 것이 여의도광장과 여의대로다. 특히 여의도광장은 박정희가 한반도에서 유사시 비행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곳이 비행장으로 쓰인 적은 없었고 국군의 날 기념식이나 국풍81 등의 관제행사가 드넓은 여의도 아스팔트 광장에서 열리곤 했다.
3. 기타
- 여담으로 서울시는 여의도공항을 폐쇄한 후인 1960년대 후반 이 자리를 개발하면서 범람을 막기 위해 여의도 둘레에 둑을 쌓은 뒤 그 위에 여의도 일주도로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매년 봄철 벚꽃축제 명소로 알려진 여의도 윤중로(여의동로·여의서로)다. 또 과거 여의도공항의 일부 공간이었던 여의도 버스환승센터에는 박정희 집권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벙커도 있다. 현재는 SeMA 벙커라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 중.#
- 말레이시아에 숭아이 브시 국제공항이라는 비슷한 케이스의 공항이 있다. 여기도 지금은 수방 국제공항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등 신공항들이 밀렸지만, 대신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곳을 공군기지 및 소방/구조 항공기 용 기지로 사용 중이다. 또한, 공군박물관도 무료로 개방 중인데, 무료라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 내서 잠깐 가볼만은 하나 내용물은 크게 기대하지 말것. 사실 차 없으면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다. [9]
[1] IATA 코드는 서울의 코드로, ICAO 코드는 김포국제공항으로 넘어갔다. IATA 코드는 2000년까지 서울공항이 혼용했던 만큼, 민간기능이 이전된 후에도 폐쇄 시까지 병용했을 것이라 추측되나 ICAO 코드는 민간기능 이전 후에도 병용했는지 확실하지 않다.[2] 성남 서울공항으로 이관되었다.[3] 여율리는 여의도와 밤섬(율도)에서 한 글자씩 딴 것으로, 문자 그대로 한강의 하중도 두 곳을 관장하는 행정구역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밤섬은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였기 때문이다.[4] 페라린 대위 외 1명, 붉은 돼지에 나오는 페라린 중위가 이 사람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5] 현재 김포국제공항의 도심 접근성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중교통이 거의 전무했던 당시 경성 외곽에서 사대문 안쪽 도심지로 접근하려면 수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6] 본래 공군은 육군에 예속된 항공부대였다. 당장 미군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육군과 해군에 각각 항공대가 별도로 존재했으며, 독립된 군으로 공군이 존재한 나라는 의외로 적었다. 본격적으로 독립된 공군이 등장한 시기는 2차대전 말엽~이후이다.[7] 1968년 4월 신문기사에 따르면 공군기지는 과천으로 이전할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8] 참고로 사진의 거대한 몸집의 B-29 폭격기는 1970년대에 미 공군에서 오버홀하여 한국에 정태 보존용으로 넘겨 준 기체였다. 이 기체는 현재 경남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 딱 26대 남아 있는 B-29 중 유이하게 미국 밖에 존재하는 기체인데, 다른 하나는 영국에 있다. 이외에도 지금의 서울국제금융센터 자리에 종합안보전시장이 있었으며, 1995년 종합안보전시장 전시품이 경남 사천으로 이전한 뒤에는 그 자리에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으로도 쓰였다. 참고로 저 B-29 옆에 있는 거대한 4발 수송기는 C-124 글로브마스터 II(C-124 Globemaster II)다.[9] 사실 처음에는 부지를 신도시로 재개발하려고 했지만 공군이 계속 사용하다보니 문제가 생겨서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