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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05:14:10

엘 파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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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실 전투
Battle of El Facil
파일:Screenshot_20180502-003517.png
날짜
우주력 788년, 제국력 479년 표준력 5월 ??일
장소
자유행성동맹령 엘 파실 성계 엘 파실
교전 당사자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자유행성동맹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지휘관 불명 아서 린치
양 웬리[1]
병력 은하제국군
함정 약 3천 척,[2] 장병 불명
자유행성동맹군 엘 파실 성역 주둔부대
함정 약 1천 척, 장병 불명
피해 규모 함정 약 200척, 장병 불명 함정 200척, 장병 5만 명만 엘 파실로 생환.[3]
아서 린치를 비롯한 다수의 장병이 포로가 됨
결과
은하제국군의 엘 파실 성계 한시적 점령. 자유행성동맹 시민 300만 명 탈출 성공
1. 개요2. 발단3. 전개4. 결말5. 그 외6. 타 매체에서
6.1. OVA6.2.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6.3. 후지사키 류 코믹스6.4. DNT
은하영웅전설 외전 <나선미궁>의 에피소드
(시작) 엘 파실 전투 제2차 티아마트 회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사건 자체는 동맹-제국 사이 일어난 수많은 분쟁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훗날 전장에서의 활약으로 벼랑 끝에 몰린 국가를 수없이 구해내고 자유행성동맹군 원수까지 오른 영웅 양 웬리 일대기의 시작이 되었다는 큰 의미를 가진다.[4]

정전 1권에서 양 웬리의 인생을 서술하면서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가며,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는 후일담을 다루고 있다.

2. 발단

엘 파실 성계는 자유행성동맹이제르론 회랑 방면 변방 성계 중 하나로 행성에 약 300만 명 정도의 시민과 이들이 거주하는 대규모 거주 구역, 행성을 방위하는 약 1천 척의 주둔함대와 함대 사령부 및 군 관련 시설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파일:엘파실제국군접근.jpg
파일:DNT린치기함.jpg
접근하는 제국군 함대와 반격에 나선 엘 파실 주둔함대
엘 파실 성계는 지리적으로 은하제국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어 이따금 경비함대가 제국군과 접촉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건이 벌어진 당일에 무려 1천 척에 달하는 제국 함대가 행성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 엘 파실 동맹 주둔함대사령부에 보고되었다. 보고를 받아든 엘 파실 주둔함대 사령관 아서 린치 소장은 즉시 모든 함대를 출격시켜 대응에 나섰다.

양국의 함대는 엘 파실 행성에서 약간 떨어진 성역에서 마주하여 교전을 개시하였다. 전투는 특별한 점 없이 단순하게 진행되어 양측 모두 약 2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돌연 제국군이 함대를 뒤로 물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서 린치 소장은 이번 교전이 규모는 크지만 접경지역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의례적인 일이라 판단하고[5] 제국군의 퇴각에 맞춰 아군 함대도 철수할 것을 지시한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고 동맹군이 본격적으로 엘 파실로 귀환하려는 시점에, 퇴각한 것으로 여겨졌던 제국군이 다시 나타나 동맹 함대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은 전투 대형을 해제하고 철수하려는 동맹군의 후방을 타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겠다는 작전을 세웠고, 자신들이 먼저 퇴각하는 것처럼 동맹군을 기만한 것이었다.

다만 이미 한 차례 전투를 벌인 상황이었고, 양군의 숫자가 비등한 상황이라 동맹군의 피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특히 동맹 함대의 일부 함선들은 사령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방어 태세를 갖추고 반격에 나서고 있었으니, 동맹군 사령관 아서 린치 소장이 빠르게 함대를 재편성하여 반격에 나선다면 오히려 제국군에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이 때, 나름 세밀한 작전을 기획했던 제국군조차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서 린치 사령관이 패닉에 빠져 휘하 함대에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인근 지역에 지원 요청을 보내지고 않은채 자신이 탑승한 기함을 몰아 홀로 전장에서 도주해버렸다.

이렇게되자 사령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함선들은 물론, 알아서 방어 태세로 전환했던 함선들까지 모두 하나씩 전의를 상실하면서 곧 함대 전체가 와해되어버리고 만다. 현장에 남겨진 동맹 함대는 절반 가량은 도주한 사령관을 쫒아 엘 파실 성계로, 나머지 절반은 각자 살 길을 찾아 주변 공역으로 도주하였고 너무 전방에 있어 미처 퇴각하지 못한 소수의 함선 등은 각자 저항하다 격침되거나 제국군에 항복해버리게 된다.

겁쟁이 아서 린치가 엘 파실까지 도망쳤을 때, 사령관을 따라 행성으로 복귀한 병력은 대략 함정 200척에 장병 5만 명 가량. 기존 전력의 80% 정도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적 함대를 괴멸시키는데 성공한 제국군은 즉시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약 2천의 증원함대를 지원받아 반란군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엘 파실 성계를 '해방'할 것을 목표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엘 파실 성계는 경비함대가 괴멸된데다 아서 린치 소장이 부하들을 버리고 도주하면서 상부나 인근 지역에 지원 요청도 보내지 않은 상황. 약 3백만의 시민이 거주하는 행성이 너무나도 손쉽게 적의 손에 넘어갈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3. 전개

은하제국은 동맹과의 전쟁에서 불손한 반란군의 마수로부터 신민들을 해방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전투 중 포로로 붙잡힌 동맹 군인이나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지는 않았지만, 불온한 공화사상에 물든 상태이니 이를 교정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국 변방 지역들에 다수의 교정구를 설치하여 동맹 국적의 포로들을 관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정 교육과 구역의 실태. 교정구는 미개발 행성에 설치되어 사람이 거주할 만한 환경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고, 생존에 필요한 물자는 최소한도로 지급되며 이나마도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포로들을 제대로 대우해주기는 커녕 변경 개척에 필요한 노예 인력으로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

비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양국의 포로 교환식으로 고향에 복귀한 다수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은하제국이 외치는 '해방'의 진실을 잘 알고 있던 엘 파실 성계의 동맹 시민들은 경비함대가 대패했다는 소식과 제국군이 행성으로 쇄도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집단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수십만 단위의 시민들이 패닉 상태에 놓여 탈출을 위해 우주 공항으로 몰려들면서 행성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엘 파실 시민들은 대표단을 꾸려 경비함대 사령부에 탈출계획의 입안과 수행을 요청하였으나, 현재 함대 사령부의 수장은 전장에서 자기 부하들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친 아서 린치 소장. 린치 소장은 행성에 복귀한 이후 소수의 측근들과 수상쩍은 대화를 거듭하기만 할 뿐, 방어 계획 수립, 치안 유지, 시민 대피방안 등의 주요 업무에는 완전히 관심을 끊고 있었다. 대표단의 요구를 보고받은 린치는 시민 대피 계획을 사관학교 졸업 이후 갓 임관한 일개 중위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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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혼란으로 포화상태가 된 우주항
파일:중위 양 웬리.png
시민 대피작전을 맡은 양 웬리 중위

공황 상태에 빠진 3백만 시민 앞에 탈출 계획의 책임자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21세의 양 웬리 중위. 직책도 계급도 낮은데다가 믿음직한 언행은 커녕 아예 군인으로 보이지도 않는 애송이를 본 시민들은 경비 사령부가 시민 안전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냐며 의심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결국 군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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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통제하며 탈출 작전을 준비하는 양 중위

양 웬리 중위는 이런 괄시 속에서도[7] 묵묵히 사용할 수 있는 군함이나 민간선 등을 조달하여 시민 탈출계획을 완성시켰지만 시기를 기다리는 듯 계획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수군댔으나 양은 그들을 다독였다.
파일:엘파실털려버린린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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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실을 탈출하다 제국군과 마주하게된 린치 제독의 함대
파일:엘파실탈출작전.jpg
무사히 대피하는 엘 파실 시민들

얼마 뒤, 린치 소장과 직속 부하들이 군수물자를 빼돌려 엘 파실 본성을 탈출했다. 린치 소장은 전장에서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치더니, 여기에서도 남겨진 부하들을 또 버리고 이젠 민간인들까지도 버리고 또다시 도망친 것이다. 남겨진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다같이 소란에 빠졌으나 양은 차분하게 린치 소장이 도망친 방향과 정반대로 탈출할 것을 지시했다. 알고보니 양 웬리는 린치 소장과 참모들의 소극적 태도에 수상함을 느끼고 탈출작전을 입안할 때, 린치 소장과 직속 부하들이 도주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사령부를 미끼로 삼아 시민들을 무사히 탈출시킬 계획을 세워둔 것이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사령관 각하께서 제국군의 주의를 끌어주실 테니까요. 레이더 투과장치 따위는 켜지 마십시오. 태양풍을 타며 유유히 탈출할 수 있습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 61
느긋해하는 양 웬리 반응에 시민 대표들은 어안이 벙벙하다가 설마 사령관이 튈 줄 알고 되려 미끼로 쓴거냐고 묻지만 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망친 린치 소장은 탈출을 예상한 제국군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항복했다. 그 시각 양이 지휘하는 탈출 선단은 엘 파실 성계를 탈출해 린치가 향한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당연히 이곳에도 제국군 함대가 있었으나, 이들은 탈출 선단이라면 당연히 발각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고 자신들의 감지기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물체는 운석군이 포착된 것이라 여겼다. 양 웬리가 이끄는 3백만의 탈출 행렬은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제국군 포위망을 뚫고 안전지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후 제국군은 의기양양하게 엘 파실 행성에 상륙하였으나 사람 하나 없는 광경에 당황하고 만다. 후일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린 제국군은 다잡은 포로들을 멍청하게 보내주었다며 길길이 날뛰며 분노를 토해냈다고 한다.[8][9]

4. 결말

분명 그것은 한 사람의 젊은 영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위대한 영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었지만….
누구도 신뢰하지 않던 21세의 애송이 장교가 그야말로 기적을 이루어냈다. 3백만 시민들이 적국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참상을 막아세운 양 웬리 중위는 '엘 파실의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무려 2계급 특진 결정이 내려져[10] 임관 1년여 만에 소령 계급장을 달게되었다. 전사자 이외에는 2계급 승진을 인정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양 웬리 중위의 특진은 우주력 788년 9월 19일 10시 25분에 대위 승진, 같은 날 16시 30분에 소령으로 승진시켜 1계급 승진을 2번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1] 양 웬리 '대위'의 재임기간은 6시간 5분(21,900초). 자유행성동맹군의 건군 이래 최단기록이었다.

그리고 양 웬리를 추앙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이네센으로 귀환한 뒤 양 웬리는 기자회견, 인터뷰, 표창식, 회식 등, 과도한 스케줄에 깔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군 공보부와 연줄이 있는 입체 TV 방송국에서는 거액의 출연료와 러닝 개런티를 대가로 린치 부인과의 대담에 출연해달라고 요구했고, 젊은 여성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과 잡지의 취재공세도 이어졌다. 지옥같은 일주일이 지나자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이류 이하 매스컴들이 제안한 터무니없는 기획을 들어야 했다. 그 중에는 죽은 양 타이롱의 전 부인과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는데, 양은 전 부인의 반응이 내심 궁금했으나 만나봤자 폐만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매스컴의 공세가 몰아친 다음에 양 웬리의 친척을 자칭하는 자들이 찾아왔다. 양 웬리보다 20살 많은 친척은 양 웬리의 손을 잡아 흔들며 10년도 전부터 그의 미래를 촉망했다고 말했는데, 양은 그렇게 자신의 장래를 촉망했으면 5년 전에 학비나 지원해주면 좋았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다.[12]

양 웬리 본인은 애초부터 자기 출세나 영달에는 관심을 버린 지 오래였거니와, 언론의 천박한 관심에 혐오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문제는 양 웬리에게 집중된 관심은 민간인을 버리고 홀로 도주하다 포로로 붙잡힌 아서 린치의 추태를 가리기 위해 정부와 군부가 한 뜻이 되어 여론을 부추기고 있던 까닭도 있어 나가고 싶지도 않은 자리에 강제적으로 나가는 일도 비일비재. 온갖 스케줄에 치여 살다 보니 양의 몸은 녹초가 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취재 열기는 양의 불쾌감만을 올려놓았다.[13] 양 웬리가 유일하게 기뻐했던 것은 사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시드니 시톨레 중장이 미소지으면서 딱 한 마디로 "잘해주었네."라고 칭찬했을 때 뿐.

이외에도 2계급 진급으로 급여도 대폭 늘어났고, 더 좋은 관사가 배정되는 좋은 일도 있었다.[14] 더구나 상술한 이유로 진급은 했어도 양 소령은 한동안 새로운 보직을 배정받지 못하고 명령 대기 상태로 관사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걍 특별 포상휴가 받은거다 양이 이런 미사여구에 질색하며 퇴역 생각만 할 때 친한 선배인 알렉스 카젤느 중령이 통신화면으로 연락하면서 양이 겪은 일과 속마음에 대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양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이해해주고 조언도 해줬다. 그 조연의 요지는 퇴역하면 기업에 불려가서 CF 광고를 찍고, 선거에 끌려가서 정계의 쟁탈전에 말려간다는 것. 양이 가장 질색인 광고 모델이니 아니면 솔리비전에 나와 무슨 게스트라며 토크쇼에 나와 주절주절거리던가 저런 정치인이 되던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양이 억지로 된 군인이란 위치가 저런 것에 대하여 지켜주는 셈이 되니 양으로선 꼼짝도 없이 그냥 군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카젤느는 놀려먹는 짓이 아니라 잠깐 대기하라면서 자신이 인사장교이니 내 할 수 있는대로 노력해보겠다고 양을 위해 군부대 배속도 신경써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얼마 뒤에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에서 브루스 애쉬비 원수의 모살설을 주장하는 투서가 날아들어 군 상부에서는 양을 비공식 조사위원으로 선임했고, 카젤느의 이런 선임안 전달을 듣고 발아들여 양은 브루스 애쉬비 원수의 과거를 조사하게 된다. 이후 역사는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사건으로 온 동맹의 스타가 된 양과는 달리, 이전까지 나름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받던 아서 린치 소장은 군인의 책무를 저버린 대가로 크나큰 비난을 받아야 했다. 만약 그가 살아서 동맹으로 돌아왔다면 더욱 큰 처벌을 받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국군에 포로로 잡혀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짊어졌어야 할 불명예와 비난은 관사에 남아있던 죄없는 린치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쏟아졌다. 린치의 아내와 아이들은 관사를 내쫒겨나듯 떠나야했고, 이후에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세간의 관심을 참다 못해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고 말았다. 린치의 가족들이 결혼 이전 아내의 성으로 개명하고 숨어살고 있다는 사실을 교정구에 새로 들어온 동맹군 포로들을 통해 알게 된 린치 소장은 더더욱 절망하다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한때의 실수'로 몰락한 만큼 파커스트드와이트 그린힐처럼 그를 조금이나마 동정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자기 손으로 그 동정론을 깨부수고 동맹의 멸망까지 앞당긴다.

참고로 양 웬리는 훗날 엘 파실 독립정부를 수립하는 의사 프란체스크 롬스키와, 자신의 부관이자 아내가 되는 프레데리카 그린힐을 여기서 만났다.[15] 프레데리카의 양 웬리 역키잡의 시작

다만 이 사건으로 양이 불패의 명장으로 동맹 전체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양 본인의 빈둥대는 기질도 있고 타인의 질시도 있어서 동맹군 내에는 양 웬리에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군인은 소령으로 그칠 인간이 벌써 소령이 되었으니 인생 종쳤다고 말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엘 파실의 기적도 그냥 우연으로 치부당했다. 양 웬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날은 9년 뒤인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부터였다.[16]

5. 그 외

소설상에서 엘 파실의 기적이라고 지칭되며 자주 거론되는 이 사건은, 실은 태평양 전쟁 시기의 일본군 해군 제독 기무라 마사토미 중장의 '키스카의 기적'이란 일화와 매우 흡사하다. 요약하자면 압도적인 적군, 무능한 아군, 기적 같은 탈출, 암초로 적의 레이더를 속인 점 등이 소설의 내용과 똑같다. 이 일화의 주인공인 기무라 마사토미는 '자부심이나 용맹이 결핍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고, 도무지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거나 적당한 시기에 퇴역해서 연금을 받는 생활을 원했다던가, 함교에서 낮잠이나 낚시를 즐기는 등 게으르고 군인답지 않은 군인이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전력을 다했고, 부하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에서 엘 파실의 기적을 일으킨 게으른 마술사 양과 유사하다.

여러모로 큰 차이가 있지만, 기적을 바라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만한 공통점이 있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로는 흥남 철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둘 다 적군에게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민간인을 태워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엘 파실 전투와는 달리 흥남 철수에서는 미군의 동의를 얻는게 성패의 관건이었지 중공군은 별 고려요소가 아니었다.[17] 이후 미라클 작전으로 명명된 탈출작전이 있었는데 이 때도 전원 구출에 성공했다. 흠좀무한건 타국들은 탈출작전에 실패한데다가 불과 하루 후 테러가 발생하여 작전이 하루라도 늦춰졌다면 실패할 뻔했지만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편 제국군에 무방비로 놓인 엘 파실 성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원작에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러나 본편 시간대에서 동맹령 성계로 다시 등장한다. 엘 파실은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었고 제국군도 엘 파실 점령 이후에 추가적인 군사 작전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텅 빈 행성을 점령지화하기보다는 그냥 철군한 것으로 보인다.

6. 타 매체에서

6.1. OVA

6.2.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6.3. 후지사키 류 코믹스

6.4. DNT


[1] 전투 자체에서는 별 일을 하지 않았지만 이 전투가 진정으로 의미를 갖는 탈출작전을 지휘했다.[2] 초기 동원 병력 1천 척 + 증원 병력 2천 척.[3] 엘 파실 전투로 입은 동맹군의 손실과 생환을 계산해보면, 우선 1차 전투에서 양측 2할을 손실했으니 여기서 200척, 도주 과정에서 반은 엘 파실로, 반은 엘 파실을 벗어났고 극소수가 도주에 실패했으니 거의 400척 가까이가 엘 파실로 향했고 남은 400척 정도가 엘 파실을 벗어나려고 했는데 엘 파실로 도주하는데 성공한 함선이 200척 정도다. 그런데 제국군의 주목적은 엘 파실 성계를 점령하는 것이니 엘 파실 밖으로 도주한 함선은 아마도 200척 이상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점으로 보면 동맹군은 약 400척 이상은 생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전비로 보면 전 병력의 60% 가까이 날아간 셈.[4] 먹고 살 길을 찾아 반강제로 입학한 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군인 업무에 무관심하던 양 웬리 중위는 이 사건으로 용병술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 사건은 '용병가' 양 웬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는 뜻이니 상상 이상으로 그 의미가 컸다고 해야 할 것이다.[5] 동맹령과 제국령 경계의 접경지대에서는 수 척에서 수십 척 단위의 교전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였다. 개중에는 서로 지원군을 거듭해서 요청하면서 규모가 불어나 수 백 혹은 수 천 단위의 전투도 이따금씩 벌어졌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적당히 싸움을 벌이다 양측이 서서히 물러나는 식으로 상황이 마무리되곤 했다.[6] 한 둘도 아니고 3백만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군대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당연히 린치 소장이 본인이 나와서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준장이나 대령 계급 정도의 참모를 내보내는 것이 타당한 일. 그런데 능력도 경력도 직급도 뭣도 없는 21살의 어린 청년이 총책임자라고 나타났다.[7] 유일하게 양 웬리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아픈 어머니를 모시는 나이 어린 한 소녀 뿐. 이 소녀는 탈출작전을 준비하는 양 웬리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격려해주기도 하였다.[8] 엘 파실 성계는 변경 지역에 있는 흔하디 흔한 소규모 거주 행성이다. 자원도 없고 군사적 가치도 없어서 제국군도 엘 파실을 점령했다가 곧 행성을 비우고 본거지로 철수했을 정도. 제국군이 얻을 수 있는 것은 3백 만의 동맹 시민들뿐이었는데, 단 1명도 포로로 붙잡지 못했다. 상대의 함대를 단번에 와해시키는 엄청난 군사적 성과를 거두고도 실익은 하나도 거두지 못한 것.[9] 남은 것은 행성에 비축되어 있는 물자들이라도 거두어가는 것인데, 거주지 규모부터가 소규모라서 그렇게 큰 분량이 저장될 리도 없고. 심지어 거주민들의 개인 재산들은 각자 회수해갔을 것이고, 비축물자들은 양 웬리가 탈출하면서 운송이 가능한 것들은 모두 쓸어갔을테니 제국군이 엘 파실 전투에서 얻은 실익은 완전한 0이라고 평가해도 될 수준이다.[10] 양 웬리가 엄청난 공을 세우긴 했지만, 동맹 정부과 군부는 시민과 부하를 내버리고 도망친 아서 린치 소장의 추태를 어떻게든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조치에는 양 웬리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려 여론의 관심을 돌리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있었다.[11] 외전 5권의 설정. 1권에서는 6월 12일 오전 9시에 대위로 진급하고, 같은 날 13시 소령으로 진급했다고 되어있다.[12] 다만 자신이 역사학에 재능이 있다보다는 흥미가 많았던 것 뿐이고, 역사학도의 길을 걸었다면 결국 징집 후 일반 병사로 전장에 투입되어 언제든 개죽음당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사관학교를 들어간 것이 잘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13] 다만 그래도 남을 죽여서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남을 살려서 영웅이 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14] 이건 정말 순수하게 양 웬리가 좋아했던 몇 안되는 일 중 하나였다. 자신을 귀찮거나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고, 임관 1년차 중위가 받던 급여나 관사에서 단번에 영관급 장교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니 체감하는 기쁨은 배로 뛰었다.[15] 양은 롬스키를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프레데리카가 자신의 부관으로 왔을 때 당시 샌드위치와 커피를 줬던 일을 떠올려 기억해냈다.[16] 애초에 엘 파실 전투에서 양이 활약한 부분은 탈출작전 때인지라 그가 지휘관 혹은 참모로서의 능력이 있는지 검증되지 못했다.[17] 흥남 철수 후 중공군이 들이닥치긴 했지만 사실 중공군도 자력만으로 흥남 항구를 공략할 수 없어서 정황상 떠날 수 밖에 없던 미군이 떠나길 기다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