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비토 가문 アズマビト家 Azumabito Family | |
쇼군 가의 문장[1] | 아즈마비토 가문 구성원 |
아즈마비토 가문 정보 | |
가명 | <colbgcolor=#fff,#1f2023>아즈마비토 가문 |
인구 | 불명[2] |
시조 | 아즈마비토 쇼군 |
중시조 | 아즈마비토 쇼군가의 자식[3], 아즈마비토 키요미의 조상[4] |
집성촌 | 파라디 섬의 시간시나 구 근처 지역, 히즈루국 |
비고 | 히즈루국 아즈마비토 가문의 쇼군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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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진격의 거인》에 등장하는 가문.원작 만화인 본편 98화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미카사의 어머니 쪽 가문인 쇼군 가의 후예인 가문이다.[5] 호주이자 가문을 총지휘하는 수장 및 대표는 아즈마비토 키요미. 마레의 실세이자 빌리 타이버와 사적으로 악수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막강한 권력과 지위를 가진 명문세족으로 파라디 - 에르디아 제국의 유일한 외교적 우군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즈마비토라는 이름은 일본어 "동쪽 사람(東人:あずまびと)"에서 기인한 듯. 일본어에서 "아즈마"는 특히 교토를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관동, 동북지방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2. 문장
세 자루의 일본도가 삼각형처럼 교차하는 문장(紋章)을 가문의 심볼로 삼는다.파라디 섬에 고립된 아즈마비토 일족의 후사들은 방벽 안에 갇히게 되었음에도 오른쪽 손목에 심볼 모양의 표식을 수 놓는 것으로 아즈마비토 가문의 증거를 계승하는 전통이 있었다. 히즈루 인이자 아즈마비토 일가의 직계 후손이었던 미카사의 어머니 아즈마비토 씨는 살아 생전에 미카사의 오른쪽 손목에 표식을 꿰매어 주면서 ''이 표식은 우리 일족이 이어 나가야 해. 언젠가 자식을 두게 되면 그 자식한테도 이 표식을 물려 줘야 한다."며 누구에게도 함부로 보여 줘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6] 미카사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표식을 붕대로 감은 상처처럼 숨겨 왔었지만 키요미가 파라디 섬에 방문한 기념일에는 그 앞으로 보여 주어 아즈마비토 가문의 후손임을 인증 받게 된다.
3. 국적
히즈루국이라는 동방 지역에 위치한 국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4. 역사 및 작중 내역
1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이전부터 에르디아 제국의 프리츠 왕가와 유서 깊은 화친 관계를 맺어 온 강한 우방국이었다. 100년 전에 발발한 거인 대전에 에르디아 제국의 중대한 우군으로서 참전해 싸웠으나 에르디아 측의 패배로 덩달아 히즈루까지 막대한 손상과 타격을 입어 점점 쇠퇴기에 오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의 여파로 아즈마비토 쇼군 일족의 친족들이 모종의 원인으로 프리츠 직계 왕가와 일부의 에르디아 백성들이 고립된 파라디 섬에 갇히게 되었다. 743년쯤에[7] 당대의 국왕이었던 칼 프리츠는 방벽 에르디아 백성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나서 기억 조작 능력이 통하지 않아서 걸림돌이었던 벽 안의 비밀을 간직한 프리츠 왕가의 무신(武臣)들 '아커만 일족'과 한때의 우방국의 장군 일족 '아즈마비토 일족'이 칼 프리츠 왕의 정책에 협력하지 않고 반항하자[8] 두 일족에 한해서 대대적인 차별과 박해를 가했었다. 그리고 약 100년 후에 해당하는 835년에 아커만과 아즈마비토 일족의 마지막 혈통을 동시에 잇는 미카사 아커만이 태어났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851년, 미카사의 정보가 모종의 수단을 통해 지크 예거에게까지 전달되었고 히즈루는 마레의 에르디아 전사대 전사장이자 왕가의 방계 혈족인 지크 예거와 비밀리에 접촉하여 쇼군의 후예인 미카사에 대한 정보와 파라디 섬 지하에 숨겨진 지하 자원과 광물들을 전해 듣는다. 후계자를 찾고 사업을 확장하려는 명분으로 지크와 부하들인 반 마레파 의용병들을 매개해서 파라디 섬(신생 에르디아 제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는다. 에르디아 제국의 낙후된 기술과 문명을 대폭 개선하기 위해 약 50년 동안 파라디의 부족한 인구력·교육·군사력 등을 보완하기로 한다.
그러나 기술이전 조건으로 히스토리아 여왕에게 거인 계승용으로 여러 아이를 낳을 것을 요구하는 등 내사에 개입하고 불평등 조약을 맺게 하는데 이런 태도에 반발하는 엘런 예거와 여왕의 희생을 감수하려는 병단이 결별하게 되고 세계에 의해 보복당한다는 공포로 인해 불안감이 조성되던 벽 내부에 분열을 가져온다.
결국 자신들이 부추긴 긴장구도가 엘런 예거의 땅울림 발동을 자초하여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벽 내부의 거인 군단에 의해 나라가 짓밟히게 된다.
5. 구성원
- 아즈마비토 쇼군의 자식: 아즈마비토 일족의 이전 수장의 자식이었으며, 파라디 섬으로 이주한 아즈마비토 일족의 중시조이다. 엄밀히 말하면 칼 프리츠의 "부전의 조약", 쇄국 정치의 피해자이다. 칼 프리츠가 방벽으로 파라디 섬을 쇄국하면서 아즈마비토 쇼군의 자식은 히즈루국에 있는 아버지 쇼군과 어머니 및 다른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것이니 진격의 거인판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어떻게 보면 아즈마비토 키요미 일행이 대인배인 듯.[9] 그래도 실제 역사를 생각해 추측해 볼 때 보통 자리의 세습은 적장자가 하기 마련이다. 나머지 자식들은 분가를 해서 따로 사는 경우가 많으니 쇼군의 차남, 혹은 서자 정도 되는 사람이 이주 했을 확률이 크다.
또한 혼자만 이주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작중 시점에서 양국 간에 교류가 끊어진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미카사 어머니가 사망 당시에 비교적 젊은 나이였고, 미카사의 현재 나이를 생각해보면 쇼군가의 자식이 파라디에 이주한 세대는 미카사의 고, 증조부모 세대 정도이다. 그리고 과거에 강도들이 미카사의 어머니를 보고 "순수 동양인"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 미카사의 어머니 때까지는 외부 일족과 결혼하지 않고 이주했던 분가 사람들끼리만 결혼하는 근친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근친이나 내혼을 거듭하다가 미카사의 어머니 대에 이르러서는 아즈마비토 일족은 미카사 모녀만 남게 되었다.
- 미카사의 어머니: 과거 시점인 844년까지 살아 있었던 아즈마비토 일족의 후손. 지금은 아래의 어린 딸만 남겨 두고 남편과 함께 강도들에게 살해당해 고인이 되었다. 작중 묘사된 바에 따르면 친척이기도 한 키요미와 비슷한 외모를 가져서 미카사가 처음으로 만난 키요미의 첫 인상에서 어머니를 떠올려 혼란을 겪었다. 자신이 쇼군의 후손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불명인데 미카사에게 자기 일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미카사의 어머니도 자세한 진실까지는 몰랐던 듯 하다.
- 미카사 아커만: 107화에서 드러난 바에 의하면 키요미의 머나먼 친척.[10] 히즈루의 아즈마비토 정이대장군의 후손이자 히스토리아 레이스처럼 사실상 신분이 높은 권력자 가문의 후계자라는 신분을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키요미가 오랫동안 애 써 찾아 다녔던 아즈마비토 일족의 직속 후계자이기 때문에 히즈루가 고대해 온 하나뿐인 희망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파라디섬의 지하자원인 빙폭석 채굴을 위해 친근함을 이용해 접근하려는 전략일 뿐이었다.
6. 기타
- 영문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즈마비토가 올바른 번역이지만, 애니플러스 자막판에서는 아즈마비트로 번역하였다.
[1] 아즈마비토 가문은 쇼군 가의 후예일 뿐이다. 현재 진격의 거인 세계관에서 생존이 확인된 쇼군 가의 혈족은 미카사 아커만 뿐이다.[2] 작중에서 등장한 구성원은 2명이지만 본국인 히즈루국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3] 파라디 섬으로 이주한 분가쪽이다[4] 히즈루국에 남아 있는 분가[5] 아즈마비토 가랑 쇼군 가는 엄연히 다른 가문이다. 아즈마비토 가는 쇼군 가의 후예 가문일 뿐이며 정식 후손이 아니다. 현재 진격의 거인 세계관에서 확인된 쇼군 가 생존자는 미카사 아커만 뿐이다.[6] 하지만 에렌한테는 특별히 표식을 보여 주었다.[7] 정발본에서 도트 픽시스 사령관이 왕정 쿠데타 편에서 "백성들은 107년 전부터 왕의 결정에 아무런 의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으니 쿠데타가 일어난 작중 시점인 850년부터 107년 전인 743년에 기억 조작이 일어났다고 추측할 수 있다.[8] 반항하는 게 당연한 것이, 다른 일족들과는 달리 아즈마비토 일족은 본가가 히즈루국에 멀쩡히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산가족이 되기 싫으면 반항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9] 왜 이주했는지는 불명이다.[10] 그러니까 키요미와 미카사는 모계 친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