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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23:09:14

삼국지톡/등장인물/미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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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목록 | 등장인물 (기타 세력 · 미분류) | 평가 | 비판 (조조/비판 · 피해자) | 오류 (시즌 1 · 시즌 2)


1. 개요2. 시즌 1 ~ 시즌 33. 시즌 4 ~ 시즌 54. 시즌 65. 시즌 7 ~ 시즌 96. 완결편

1. 개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삼국지톡에서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고 단역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정리한 문서이다.

이름 옆에 (#) 표시는 원본 인물의 하위 단락에 적히지 않고 단독 문서로 분리된 경우이다.

2. 시즌 1 ~ 시즌 3

3. 시즌 4 ~ 시즌 5

4. 시즌 6

그러다가 이릉대전에서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다. 그것도 목이 잘린 관우의 원혼을 마주하면서. 이내 차가 식는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형의 복수를 해달라고 한탄하는 관우에게 너가 해온 행적들이 너와 의형제가 바라는 것이냐고 일갈하여 관우에게 깨달음을 주고, 결국 관우를 성불하게 해준다.

5. 시즌 7 ~ 시즌 9

6. 완결편

팔왕의 난 후 파괴된 서진의 비석을 바라보며 등장한다. 우리 선조들 고생하신 얘기라며 어부라의 이야기를 꺼낸다.


[1] 유비 자신도 "내가 생각해도 진상이다" 하며 씁쓸해했지만 정말로 돈은 없고 상황은 급해서 안면몰수하고 한 부탁이었다.[2] 이름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몇 글자 가져다가 지었다.[3] 출신 대학교 덕에, 화타의 등장 이후 독자들은 심평이 화타와 관계 있는 사람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4] 첨부 사진에서 여포가 초선에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여보 바꿔 봐'라는 초선의 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때 여포의 폰을 가지고 초선과 연락하는 사람이 여포 본인이 아닌 장료이기 때문이다.[5] 같은 상황에서 순욱은 자신이 조조를 도로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기반을 준 건 진궁이지만 조조에게 수많은 인재들을 소개해 줘서 날개를 달아준 건 본인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진궁은 순욱의 말을 두고 '당신이 뭘 알고 순진한 소리를 하냐, 저게 조조의 본성이다'라며 역정을 낸다. 둘의 선택이 갈라진 건 진궁은 여백사 사건을 함께 겪었고 순욱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으로, 실제로 진궁은 역정을 냈다가 곧바로 '순욱은 그 사건을 모르니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6] 물론 첫인상이 나빴던지라 '연주의 꼰대 호족들이 자기들 안위를 챙기느라 건수를 잡아서 조조를 몰아내려 한다'고 고까워한 독자들도 있으나, 어느 베댓은 그러한 의견에 대해 '무슨 본인 안위만 챙기는 위선자들이 대량학살하고 피에 절어 돌아온 살인마 면전에다 욕을 하느냐. 맨몸으로 살인마 면전에서 네놈 한 짓이 썩을 짓이라 호통치는 위선이면 존경할 만한 위선이다'라고 반박하였다.[7] 게다가 연주 호족들이 조조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인데, 당시의 '지역 사회'란 현대보다도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기반, 정체성의 기반, 힘의 기반, 그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연주 호족들 입장에서 보면 가진 것도 변변찮고 믿을 만한 구석도 없는 생면부지의 외지인이 나타나서 "내가 잘 다스려 볼 테니 당신들 고향을 내게 맡기시오" 하는 형국이라,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8] 중문판 표기 각 诸葛英, 诸葛彩 (정자체 諸葛英, 諸葛彩)[9] 이때 장인 황승언의 연락처도 함께 확인됐고, 더 나중에는 본인의 결혼식에 채륵이 신부 측 하객으로 참석했다(실제로 채부인은 황부인의 이모이다)는 언급도 하여, 제갈량 또한 이미 유부남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내와 함께 살지 않고 동생과 둘이서 살고 있다고 하니 별거(?) 중인 이유는 현재로선 불명.[10] 제갈량의 친모 장씨는 일찍 사망했고, 이후 부친 제갈규는 송씨와 재혼했다. 제갈균은 장씨 소생으로 제갈량의 친동생이란 설과 송씨 소생으로 이복동생이란 설이 공존하며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톡에서는 송부인 소생 설을 채택하였다.[11] 189년생이란 설이 있는데, 그게 맞다면 1차 서주대학살 시점인 193년에 5세(만 4세).[12] 위의 이미지. 삼고초려 시점에서 19살이므로 제갈량과 8살 차이가 난다. 189년생 설을 채택한 모양. 그렇다면 큰형 제갈근과는 15살 차이로, 거의 조카뻘에 가까운 막둥이이다.[13] 시즌 5에 아주 잠깐 얼굴을 비췄을 때는 녹안이었다.[14] 실제로 제갈균이 제갈량의 이복동생이라는 설이 있다. 제갈량의 친모 장씨 부인이 일찍 죽어서 송씨 부인이 계모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며, 제갈균은 장씨 소생으로 제갈량의 친동생이란 설과 송씨 소생으로 이복동생이란 설이 공존하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톡에선 이복동생 설, 즉 송부인 소생이란 설을 채택하였다.[15] 하지만 제갈근은 제갈량이 너무나 영특하여 오히려 이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후 제갈량은 영재학교인 사립 수경스쿨에 진학했음에도 서주대학살의 주범인 조조가 벌을 받기는 커녕 더 승상장구하고 있단 사실에 환멸을 느껴 염세적인 성격으로 돌변해 공부에 손을 놓다시피 해버렸다.[16] 제갈근은 손권에게 출사, 제갈영과 제갈채는 결혼했고, 제갈량과 제갈균은 둘이서 형주의 작은 집에 남아 살고 있다. (제갈량도 이미 결혼한 것이 언급은 되나 지금은 아내와 함께 살지 않고 동생과 단둘이 사는 걸로 보인다)[17] 중문판 표기 蔡阙 (정자체 蔡闕)[18] 진궁: 여, 여보. 애기는.... 귀엽게 응애응애 우는 거 아니었어?
채궐: 몰라.... 병원에서 사자랑 바뀌었나 봐(...)
[19] 진숙이 훌쩍 커서도 계속 그 때 일을 들먹이며 놀려 대서 진숙은 "아빠는 같은 얘기를 15년을 한다"며 지겨워했다.[20] 말은 협박조지만 그 저의는 "가족에게 죄인 유족이란 낙인이 찍히는 게 싫으면 지금 내게 빌어라,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살려주겠다"는 의미였다.[21] 이 때 동료 기자들도 안 좋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평소에도 비슷한 일들로 신문사의 평판을 크게 깎아먹었던 듯.[22] 변영은 이리 될 줄을 예측했는지 길예기가 기사 내리기를 거부하자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네 말마따나 내가 딴따라 출신인데 그깟 악플 몇 개가 무서워 이러는 것 같으냐, 너랑 네 자식 살리려고 이런다. 가정도 있는 놈이 어쩌자고 조조를 건드렸느냐?'[23] 나관중의 의도는 "백성이 아내를 살해해서라도 유비를 대접할 정도로 그를 엄청나게 존경했다! 유비는 그만큼 대단하고 백성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연출하는 것이었으나, 21세기 윤리관으로는 살인 및 식인이라는 소재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비윤리적인 탓에 되려 역효과만 낳았다. 고우영 삼국지에선 원래 유안의 엉덩이 살을 뜯어내려 했으나 아내가 손이 떨려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아내의 엉덩이 살만 떼내고 나중에 다 회복했다는 서신을 보내는 장면으로 각색했었다.[24] 수경은 사마휘의 호이고, 자는 덕조(德操)이다.[25] 파일:어린 보정(삼국지톡).jpg
당시에는 꽤나 깐족거리고 심술궂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어린 시절 자비없음으로 한 성격한 걸로 나올까.
[26] 촛불이 꺼져 방 안이 어둠에 휩싸이는 순간 창호문에 수많은 군사들의 그림자가 비치는 장면이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