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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0:50:57

삼국지 유봉전 : 계한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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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유봉전 : 계한의 부흥
파일:삼국지 유봉전.jpg
장르 대체역사, 회귀
작가 은수랑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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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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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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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2018. 07. 27. ~ 2019. 10. 23.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특징5. 등장인물
5.1. 계한/촉5.2. 위5.3. 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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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삼국지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삼국지 : 조조의 아들을 죽이다》를 집필한 은수랑.

2. 줄거리

상용을 지키던 유비의 양자 유봉.
북형주 공략에 나선 관우가 오나라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자
유비는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죄로 양자 유봉을 처형한다.

'아버지, 부디 대업을 이루십시오.'

유비가 대업을 달성하길 빌며 처형당한 유봉.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유봉은 과거의 자신으로 깨어나게 되고
색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전한과 후한의 뒤를 이은 마지막 한(漢), 계한(季漢).
비극적인 역사를 막고 계한을 지키고자 하는 유봉의 분투기.

상용을 잃고 관우를 구원하지 못한 죄로 사사된 유비의 양자 유봉이, 과거로 회귀하여 자신의 운명과 계한의 비극적인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회귀물, 대체역사물 속성.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18년 7월 27일부터 연재되었다.

조아라, 리디,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2019년 10월 23일 총 362화로 완결됐다.

4. 특징

삼국지 대역물도 세부적으로 나누면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은수랑 작가는 전략과 전술에 치중하는 스타일이다.[1] 즉, 삼국의 주요 인물들이 어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판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 어떻게든 내 판을 지키고 적의 판을 뒤엎기 위해 지략과 임기응변을 짜내 싸우는 장면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다만, 서두가 유비의 입촉이라 삼국의 네임드 인기 캐릭터들이 대부분 살아 있고, 주인공 유봉은 한계가 명확한 인물이라 어쩔 수 없이 치트키를 줬는데, 이게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이다. 치트키를 남발한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통 대역물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시각에는 '대역물을 가장한 무협/무쌍류 게임빙의물' 같게도 느껴져 껄끄러운 느낌이 있는 것. 이 때문에 초반부 진입 장벽이 좀 있으나, 그 부분만 넘어가면 탄탄한 전쟁 소설이다.

5. 등장인물

5.1. 계한/촉[2]

5.2.

5.3.

6. 기타


[1] 정치적인 내용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이는 유봉이 태자가 되기 전까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유비는 내심 유선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하는데 유선이 나이가 어려 공을 세우기 어려운 반면 장성한 유봉이 보여준 능력과 공적은 세력 내 수위를 다투다보니 유봉 본인이 후계자 욕심이 없다고 해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유봉이 태자로 즉위한 이후에는 정치적인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고 삼국 간의 외교와 전쟁에 치중이 된다.[2] 본 세력 소속 사람들은 계한 혹은 한나라로 칭하고 적대 세력 사람들은 촉이라고 칭한다. 일단 본작의 주인공이 유봉이고, 부제도 '계한의 부흥'이므로 계한이라는 명칭을 우선한다.[3] 작가가 설정한 그의 자는 공중(公仲). 공(公)은 자를 지을 때 흔히 들어가는 글자이며 유봉의 세 의붓아우들, 즉 유비의 세 친자들 중에서도 2명이 자에 이 글자를 쓴다(유선 자 공사(公嗣), 유영 자 공수(公壽)). 중(仲)은 백중숙계(伯仲叔季)의 중이다. 즉 이 자는 유봉이 유비의 적장자가 아님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지라(심지어 후계자란 뜻의 사(嗣)가 들어간 유선의 자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회귀 이전의 유봉은 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회귀 이후 후계 구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서부터, 자로 불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느끼지 않게 됐다.[4] 이는 자신이 맹달과 불화하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불만을 표출하는 등 경솔하게 행동한 것이 제때 관우를 구원하지 못한 원인이 됐고, 그로 인한 관우의 죽음은 또 종국에 계한이 멸망에 이르는 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 유봉이 스스로 능력을 갈고 닦고, 공적을 세우고, 인재들을 등용하는 것은 모두 형주 공방전에서 패하여 형주를 잃고 관우가 죽는 본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든 비틀어 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5] 상술하였듯, 유봉의 자 공중(公仲)은 그가 유비의 적장자가 아님을 드러내기 때문에, 회귀 이전의 유봉은 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회귀 이후, 자신이 공중이란 자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관평이 일부러 이름으로 부르자 "공중이라 불러도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후계 구도에 대한 집착을 버렸음을 보여준다.[6] 마충, 왕평, 장억, 정봉, 구부 등을 등용한 것이 그 예시. 이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이들이나, 회귀한 유봉이 그들에게 접촉한 시점에서는 유비의 막하가 아예 아니었거나, 등용은 하였으나 말단직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유봉은 그들을 미리 발굴, 육성하여 그들이 더욱 일찍 능력을 꽃피우고 활약하게 하려는 것이다.[스포일러] 마지막 화에서 밝혀진 정체는 유선의 5남이자, 유선의 항복을 반대하며 자결한 북지왕 유심. 정확하게는 유심 사후의 역사 흐름과 미래 지식을 알게 된 유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줄곧 현대적인 말투, 사단장/여단장 비유, 해외여행 가이드에게서 들었다는 썰 풀기, 삼국지에 관심은 있으되 연의와 정사를 혼동하는 면모 등으로 인해 '현대 한국의 군필자 삼덕 남성'인 듯한 암시를 계속 주었는데 마지막 화에 뜬금없이 사실 유심이었다고 급 드리프트를 시전했기에, 마지막 화에서 조진 설정 취급을 받으며 본작의 유일한 옥의 티, 무리수라고 까인다(...)[8] 전쟁사나 세계사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제약 없이 말할 수 있으나 뭔가를 발명하는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고.[9] 회귀 전 관우를 구원하지 않음과 더불어 본인의 후계자를 위협하는 위치 때문에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회귀 후에는 최소한 관우를 살리고 형주를 보존함으로써 이릉대전이 발발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10] 양번 전쟁에서 관우가 유봉의 능력을 믿고 중요한 역할을 맡기긴 하였으나, 유봉이 유비나 관우의 허락 없이 원군을 이끌고 온 데다 오와 내통을 한 정황이 명백한 미방을 관우의 결정과 무관하게 사면한 것은 유봉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관우 입장에서는 능력과는 별개로 월권을 저지르고서는 되려 관우 자신의 잘못을 논하는 상황이다.[11] 작중에서는 이후 유봉이 이를 수습함은 물론 남만 정벌까지 성공함으로써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나, 군주가 친정을 할 때 후계자가 수도를 지키는 것이 제 역할임을 감안하면 후계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드러나버린 셈이다.[12] 형주 공방전에서 조위와 손오를 각각 분리시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뒤 이미 동맹은 퇴각했는데 너희는 어쩔거냐는 식으로 위압하면서 서로가 연락할 여지를 차단한 뒤 퇴각을 이끌어내어 조위와 손오는 각자의 입장에서 밀약을 맺어놓고 먼저 신의를 깬 모양새를 만들어 분란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이후 유비와 조비가 서로 칭제를 한 상황에서 조비가 손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이에 대해 굳이 사신을 보낼 필요 없이 놔둠으로써 서로가 긴밀하게 손을 잡는 상황을 방지해 손권이 언제라도 동맹을 갈아탈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제갈량의 예상대로 조비는 볼모를 보낼 것을 거절할 손권을 공격함으로써 북벌의 기회가 생긴다.[13] 제갈량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장완마저도 유봉이 도강언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모습을 보고 어째서 제갈량이 혈통만 보고 유선을 지지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정도.[14] 유봉은 남만 원정 도중 법정의 안배를 알아차렸는데, 이를 유비가 알게 된다면 내심 유선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하던 터에 이를 묵과할 리 없다고 생각하여 미리 자수할 생각이었다.[15] 그 동안 파벌이 갈려왔던 건 유봉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유선을 밀어주고 싶어했던 내심을 알아차린 신하들이 이에 영합한 것이었는데, 유비의 마음만 바뀐다면 유선을 지지하는 파벌의 명분이 삭제되어 내분의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16] 유봉이 형주 공방전에서 벌어질 손오의 빈집털이와 미방의 내응을 막아낼 안배를 위해 방통과 마초, 방덕을 형주로 인도했는데, 방통이 형주의 정세를 제갈량에게 서신으로 보내자 제갈량은 자신의 친구가 군사적인 문제가 아닌 정략적인 문제를 서신으로 보낼 정도였던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17] 형주의 관우만 해도 (관우 기준으로는)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게을리하고 군공에 욕심을 드러내왔던 유봉이 전공을 조금 세우더니 다시 교만해져서 자신에게 기어오른다고 오해했다.[18] 법정의 등장 이전까지 유봉을 변호했던 사람들은 모두 유봉과 크건 작건 교류가 있었던 반면, 유봉에게 앙심을 품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데다 제갈량 다음으로 실권과 권위를 지닌 법정이 유봉을 변호한 것은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19] 당연히 법정이 계한에 반심을 품고 획책한 음모는 결코 아니다. 그는 계한이 끝내 천하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봉이 유비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남중 반란에서 유봉과 유선의 행보를 보면 유비도 끝내 후계자를 유봉으로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치밀하게 남중 반란을 계획했다. 혹시나 일이 자신의 계획보다 더 크게 터져서 정말로 성도가 위험해질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20] 원 역사에서 염포에게 재가를 간 동씨 부인과 장로에게 주살된 기록이 남아있는 아들 마추, 그리고 본작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인물인 딸 마영이다.[21] 한수와의 대립에서 가족들이 몰살당한 게 첫 번째, 관서의 제장들과 거병하여 업도로 이전했던 마씨 일족이 몰살당한 게 두 번째, 조조와의 일전에서 패배한 후 강족과 연합하여 한번 더 거병했으나 패배하는 과정에서 기성에 있던 가솔들이 몰살당한 게 세 번째. 유봉의 회귀 전에는 마초의 영입 후 한중에 있던 아들 마추가 살해당하고, 마추의 모친이자 마초 본인의 소실인 동 부인은 염포의 첩이 되면서 또다시 처자식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러한 연이은 비극으로 인한 충격인지, 마초가 유장을 항복시킨 것 외에는 내내 무기력한 모습이었다고 서술되었다.[22] 다른 대체역사물 등에서도 나오지만, 자오곡 대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상용이 조위의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보급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진령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주요 통로인 야곡도는 막혀있고, 다른 통로는 소규모 부대로 급습 정도만이 가능한 상태에서 자오곡 역시 보급과 퇴로가 막힐 위험성이 컸다는 것. 작중에서는 자오곡 진입을 보호해 줄 상용과, 상용을 보호해 줄 양번이 모두 계한의 영역이었고 오와의 양면 전쟁과 성동격서 계책으로 인해 장안에 남은 병력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성이 올라간 것으로 서술되었다.[23] 양의가 작중에서 오나라와 휴전 협상을 하러 오는 제갈량을 따라 출연한 뒤로는, 내정에만 전념하느라 전방에 파견되어 있는 위연과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24] 물론 원 역사의 양의와의 갈등처럼 대놓고 싸우는 수준은 아니고,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태도 정도만 보인다.[25] 아버지와의 재회 당시에는 마초가 희라고 불렀는데, 차후 재등장해서는 마영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나이는 유봉보다 10여 세 정도 아래로, 유봉과의 혼담이 나왔을 때 18살이란 언급이 나오는데 당시 유봉은 20대 후반이었다. 마초가 유비에게 귀순한 시점이 대략 213~214년, 혼인하는 시점이 형주공방전 이후인 220년 무렵임을 감안하면 아명이었다고 간주해도 되기는 한다.[26] 실제 역사에서도 마초의 딸이 유비의 아들과 결혼하기는 했으나, 이 딸은 마초가 유비군에 귀순한 뒤 새장가를 들어서 얻은 자식이고 그와 혼인한 유비의 아들은 막내아들 유리였다.[27] 어머니를 닮아 몸이 약하다는 언급과, 마초가 이를 아쉬워하는 묘사가 있다. 아마 허약 체질 탓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만한 무인으로 성장하지는 못한 듯.[28] 마초의 정실 양씨는 기성에서 죽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마초가 첩을 정실로 올리거나 아예 새장가를 들지 않는 한 그의 정실 자리는 비어 있다. 마침 동 부인이 황자비의 생모가 되는 셈이라 정실로 올려 예우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29] 그나마 장합도 관중에 거점을 마련하려는 유비와 제갈량의 계획을 눈치채고 유봉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학소를 파견하기는 했으나, 위연의 자오곡 계책 때문에 학소도 끝내 진창에서 후퇴해야 했다.[30] 역시 이름이 정봉이나 한자가 다르다. 공교롭게도 동생 정봉의 이름자는 유봉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쓴다.[31] 본래는 감녕의 부곡이었는데, 감녕은 이미 노쇠하고 병들어 명이 다해가고 있었고 그의 아들은 무능하고 용렬하여 진작에 눈 밖에 났다고 한다. 그래서 감녕이 여몽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반장에게 부곡을 넘겨주었다.[32] 원체 성정이 잔인하고 난폭해서 부하들을 혹독하게 다루기도 했거니와, 감녕이 맡긴 부곡은 본래 자신의 부곡이 아니라는 이유로 험한 일에 몰아넣어 화살받이로나 썼고 보상도 별로 해 주지 않았다.[33] 장비는 2차 형주 공방전에서도 정봉을 보았으나, 당시에는 정봉이 무패행진 중이라 자기발전에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34] 거기에 장남 장포는 이미 요절했고, 차남 장소는 무예와는 거리가 멀고, 장포가 죽기 전에 남긴 아들인 장준은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아서 자신의 전진을 이어받을 이가 없다는 점이 컸다.[35] 마속이 가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안 제갈량이 아예 작심하고 둘 모두를 교육한 것으로 보인다.[36] 손건은 아예 등장하지 못했고, 간옹은 입촉 시기에 항복을 권할때 잠깐 등장하고 퇴장하였다.[37] 본래는 미방의 내통과 배신으로 관우가 죽자 이를 몹시 수치스럽게 여겨 스스로 벌을 청했고, 유비는 그를 벌하지 않았으나 미축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화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유봉전에서는 유봉의 시의적절한 개입으로 형주 공방전이 계한의 승리로 끝나고, 관우도 죽지 않고, 유봉이 미방의 일을 덮어주기까지 했으므로 미축도 동생의 일을 송구스럽게 여기긴 했으나 화병으로 죽는 지경까진 가지 않았다.[38] 둘 모두 조인의 생존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우금은 조비가 조롱하고 싶어도 조인 역시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났기 때문에 조롱을 했다가는 조인의 권위가 실추되므로 이는 조인과 가후의 지지로 굳건한 조비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여지가 컸다. 하후상의 경우 애첩을 죽이려는 걸 조인이 만류했기 때문에 패악질을 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39] 조비도 주변의 조언에 조홍을 관서로 부임시키기는 했으나 감정적으로 지방에 보낸 것에 가까웠고 수비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계륵에 가까웠던 관서 지방에 경력이 풍부한 지휘관인 조홍이 고립된 격이 되어 인재 하나하나가 시급해지는 위나라에게는 적잖은 타격이 되었다.[40] 형주 공방전에서 손권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퇴각한 터라 권위가 실추되었는데 오왕 임명을 해주어 권위를 회복시켜주었으니 오와 연계하여 양번을 회복한다는 선택지가 있었고, 정복전쟁 구도가 아니라 현 세력에서 수세로 들어가 세력비를 유지하기만 했어도 점차 국력 차이가 벌어져 계한과 손오가 연합한들 조위에 비해 국력이 뒤쳐질 것이 명약관화했다. 즉, 손권에게 지나치게 족쇄를 채우려다가 실패한 것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단 한번의 행동 때문에 계한에게 영토를 내주고 조위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41] 작중에서 유봉이 워낙에 먼치킨이라 어쩔 수 없는 시각도 있을지 모르나, 조창이 북지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어떻게든 죽였을 거라거나 하후상의 애첩을 죽이려는 걸 조인이 말리느라 고생했다는 묘사 등으로 볼 때, 패배를 거듭하다보니 암군의 면모가 덜 드러났을 뿐이지, 작중에서 위나라가 좀 더 잘 풀렸더라도 조비 때문에 그 상승세가 금방 틀어막혔을 게 뻔하다.[42] 오환 정벌은 사마의가 대신하여 출정하였다.[43] 조비가 항복을 한 우금을 모욕하게 되면 간접적으로나마 포로로 사로잡힌 조인까지 모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44] 조위의 군은 조씨와 하후씨가 최고의 위치에서 각 장수들을 통솔하는 방식이고, 서황 역시 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마명각도에서 대패를 겪어 기존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 양번 전투에서는 승리가 절실했던 것이다.[45] 작중에서 유봉의 목숨이 물리적으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장료와의 일기토 때였다.[46] 유봉이 반장과 주연을 포로로 잡아 두었는데, 아버지의 성품을 본받아 다른 이의 모범이 되며 수명이 긴 주연 대신 성격이 나쁘고 손권을 제외하면 그리 영향력이 크지 않은 반장을 포박시켜 오군 앞에 내보이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미방은 오군과 내통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편에서 이중첩자 노릇을 하며 오군의 정보를 빼내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반장과 주연을 격파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았다. 만일 오군의 주장대로 미방이 정말로 내통자이고 그가 나에게 오군의 정보를 전해준 일이 없다면, 반장과 주연은 자기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도리어 내게 패하고 포로로 사로잡힐 만큼 무능한 자들이라는 뜻인가?" 당연히 오군은 손권이 총애하고 신임하는 두 장군이 그 정도로 무능한 자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으므로(...) 유봉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고, 아군이 보는 앞에서 적장에게 끌려나와 구경거리 취급을 당한 반장은 길길이 날뛰었다.[47] 초반부터 신우가 '이 시대는 후대에 역사와 소설이 섞인 채로 알려졌다'고 발언하기도 하고, 연의와 정사를 혼동하는 발언을 해서 유봉이 실제로는 어떻다고 바로잡는 대목도 여러 차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