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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로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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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323232><colcolor=#20272c,#d3dade> 모기업 관련 정보 파일:롯데(일본) 로고.svg 롯데홀딩스 ·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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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 1974 · 2005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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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타카시/선수 경력
핵심 인물 구단주 신동빈 · 구단주 대행 다마즈카 겐이치 · 감독 요시이 마사토 · 2군 감독 사부로
선수회장 나카무라 쇼고 · 주장 나카무라 쇼고
경기장 1군 ZOZO 마린 스타디움 · 2군 롯데 우라와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닛테레뉴스24 로고.jpg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집시 롯데 · 10.19 · 칠석의 비극 · 도시락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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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이전3. 프로 경력4. 국가대표 경력
4.1. 일본 U-18 야구 국가대표팀4.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2.1. 3월 11일: 체코전 () [선발 등판] [승리]4.2.2. 3월 20일: 멕시코전 () [선발 등판]4.2.3. 대회 결과 및 총평
5. 연도별 성적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투수, 사사키 로키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프로 이전

파일:사사키 로키 고교.jpg
오후나토 고교 시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갔으며, 초등학교 3학년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사사키의 고향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와 그 주변 지역들은 하필 도호쿠 지방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사사키의 아버지[1]와 조부모는 사망하였고, 집 또한 대형 쓰나미에 쓸려가버렸다.

결국 고향과 가족을 잃어버린 사사키와 어머니는 이와테현 남부에 있는 오후나토시로 이사했고, 아버지와 본인의 꿈인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이나가와 초등학교로 전학해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중학교에서는 야구부 에이스가 되어 2학년까지 선발투수로 활약했지만, 혹사로 인해 3학년이 되기 직전 허리에 피로골절이 발생해 반년 동안 재활에 매진하게 된다. 이후 3학년 가을 도호쿠 지역 토너먼트에서 본격적으로 사사키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재활로 인해 몸상태가 좋아진 탓인지 교내 에이스로 도호쿠 지역 대회를 평정하며 학교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전국대회 출전권을 따내는 데 성공한다. 이후 ​전국대회에서 중학교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최고구속 141km/h를 뿌려대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아 전국 각지의 야구 명문 고등학교에서 제의가 들어온다. 그러나 지역 내의 고교를 고시엔으로 보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부 마다하고 이와테현에 있는 오후나토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고교에서도 1학년 여름 현 대회부터 주전으로 출전해 147km/h를 찍으며 활약은 여전했는데, 이듬해 2학년이 되자 갑자기 구속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고 구속 무려 157km/h를 찍어 버리며 초고교급 유망주의 탄생을 알렸다. 2019년 4월 6일 고교 국가대표팀 캠프에서는 각 팀의 스카우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니치 드래곤즈 스카우터의 스피드건에 무려 163km/h이 찍히며 비공식 일본 고교 야구 최고 구속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의 오타니 쇼헤이가 기록한 160km/h를 3km/h 웃도는 구속이었다.

이때부터 패스트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사사키는 제 2의 오타니라는 별명 이외에도 그해 초고교급 유망주인 오쿠가와 야스노부, 니시 준야, 오요카와 마사키와 함께 전국 고등학교 BIG4로 불렸고, 그 중에서도 가장 평가가 높았던 사사키는 헤이세이의 괴물로 불렸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에 뒤이은 레이와의 괴물(令和の怪物)이라는 호칭이 붙었다.[2]

2019년 여름 고시엔 이와테 예선에 출전, 4라운드에서는 12이닝 194구를 던졌고, 4강전에선 9이닝 130구를 던지며 완봉승, 팀을 드디어 결승에 올려놓으며 고시엔 진출권 1장을 걸고 데스매치가 열리게 되었다. 상대는 1984년 이후 35년만에 고시엔 진출을 노리던 기쿠치 유세이오타니 쇼헤이의 모교인 하나마키히가시고교. 고시엔 본선은 아니지만 사사키의 존재 하나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아사히 TV에서도 이례적으로 50개의 방송 카메라를 동원해 생중계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승전 당일 고쿠보 요헤이 감독[3]은 9일동안 4경기에 등판해 435개의 공을 던진 사사키의 몸상태를 고려해 마운드와 타선에 사사키를 올리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중계되는 경기에서 주인공 사사키는 등장하지 않고 오후나토 고등학교는 2대12로 패배하며 고시엔 진출이 좌절되었다. 당연히 이 결정에 대해서 일본 현지와 심지어 한국에서도 여러가지 말이 나왔는데 "그래도 평생의 꿈인 고시엔 진출을 위해서라면 등판했어야 했다"[4] vs "선수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혹사시키지 않는것이 옳았다" 라는 의견이 양립해 네티즌과 여러 전문가, 지도자들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대표적으로 원로 야구인 장훈은 고쿠보 감독의 결정을 극딜했으나, 고시엔에서 엄청난 혹사를 당한 장본인인 다르빗슈 유는 고쿠보 감독의 선택을 옹호하였다. 이때의 판단은 훗날 사사키가 역대 16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게 되며 '영단'으로 재평가 된다.기사[5]

아무튼 사사키는 꿈의 고시엔 진출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혹사로 인해 향후 프로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위험을 줄이는 호재로 작용하며 드래프트에서 사사키의 몸값을 더욱 높이게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이후 2019년 8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일본 대표팀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아래 국가대표 경력 항목 참조.

3. 프로 경력

3.1. 치바 롯데 마린즈

모두의 예상대로 2019년 10월 1일 사사키는 드래프트 신청서를 냈고, 고교 시절 엄청난 활약과 잠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투구수 관리를 받았다는 이점으로 인해 센트럴 리그 5개팀, 퍼시픽 리그 4개팀 총 9개팀 달려들어 관심을 표했다. 하지만 너무 경쟁력이 치열했던 탓에 막판에 센트럴 리그 팀들은 지명을 포기했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롯데 마린즈,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지명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드래프트 당일 지난해에도 후지와라 쿄타를 두고 벌어진 뽑기 싸움에서 승리한 이구치 타다히토 감독이 이번에도 승리하며 사사키를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파일:사사키 지명.gif

당시 사사키가 치바 롯데로 지명된 직후 지었던 나라잃은 표정이 일본에서도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6] 사실 치바 롯데는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단 한 해를 빼고 가을야구에 실패했을 정도로 전통의 약팀이었고, 인기 또한 12개 구단 중 최하위권이었기 때문에[7] 전통적으로 선수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구단이 아니었다. 이는 아래의 여러 번의 선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거기다 사사키 로키의 학창시절과 롤모델을 고려했을때 본인이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지명 받길 원했을 가능성은 있다.

* 다나카 마사히로와 동갑내기 우완투수였던 오미네 유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지명을 원했으나 롯데의 지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학교 수업 시간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듣자 패닉에 빠진듯한 표정이 방송을 타고 말았다. 선배 선수들과 심지어 바비 발렌타인 감독까지 오키나와로 찾아와서 스프링 캠프를 고향 이시가키시로 옮겨주겠다는 말까지 한 끝에 입단했지만[8] 2015년 딱 해만 활약하고 그 후 계속 부진하여 급기야 2020년에는 수술 때문이라지만 육성선수로 전환됐다. 이후 2021년 방출되어 주니치로 이적하였으나 1군 기록 없이 2022년에 또 방출되고 은퇴했다.

* 아세아대학의 에이스 투수인 코이케 히데오(小池秀郎)는 8개 구단의 경합 끝에 롯데가 교섭권을 차지하자, 입단하지 않고 사회인야구팀인 마쓰시타 전기에 입단했다. 그 후 사회인야구에서 부상을 입고 기대치가 많이 떨어진 채 긴테츠 버팔로즈에 단독지명되고, 1999년 파리그 다승왕을 한 것을 제외하면 특기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2005년 은퇴한다.

* 니시오카 츠요시도 자기를 1순위로 지명하겠다는 롯데 스카우트를 계속 무시했지만 마음을 돌려 입단했다.

* 초노 히사요시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지명을 받자 드래프트 재수를 선언했고, 재수 때 롯데의 지명을 받자 삼수까지 도전한 끝에 꿈에 그리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초노는 요미우리 팬이라 요미우리 아니면 절대 프로에 안 가겠다고 미리 선언한 케이스인 걸 고려해야 한다.

물론 키무라 유타처럼 롯데가 아니면 프로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실제로 요코하마의 지명을 거부하고 2년 후에 롯데의 유니폼을 입은 반대 사례도 있다.[9]

다만 롯데의 투수진 상황이 처참하기 때문에 본인의 우려와는 별개로 팀에서 애지중지 키울 가능성이 높아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또한 최근에 롯데의 투수 키우는 능력 또한 꽤나 고평가 받고 있기도 하다.[10]

이후 밝혀진 계약조건은 계약금 1억 엔[11](10억 7,700만 원), 연봉 1,600만 엔(1억 7,000만 원)과 나머지 알려지지 않은 기타 옵션이다.

3.1.1. 2020 시즌

지명 이후 치바 롯데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사사키가 처음으로 불펜 투구 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구단 유튜브 역사상 최단기간 100만 조회수 달성을 기록했다. 롯데 팬들이 사사키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구치 감독은 1월 신인 합동 트레이닝 때는 공을 던지지 않게 할 것이며, 스프링캠프는 1군 스프링캠프에 데려가지만, 개막전은 2군에서 맞이하게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데뷔 시즌 때는 1군에서 최대 50이닝까지만 던지게 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2020년 5월 26일 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홍백전에서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보여주었다.

롯데 투수진이 좋지 않지만 무리하게 1군에 올리기 보단 2군에서 최대한 경험을 쌓게 하며 제구를 잡은 뒤 본격적으로 선발 자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개막 이후 1군 콜업이 없는건 이해한다 쳐도 2군 경기 등판마저 없어서 현지에서도 다소 논란이 되었다. 2군 경기를 뛰지 않고 1군과 동행하며 개인 훈련과 몸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특별대우가 아니냐며 말이 좀 나오고 있다.

결국 사사키는 데뷔 첫 해 2020시즌을 1, 2군 통틀어 단 1경기의 등판도 없이 보냈다. 입단 후 팀 코치진은 "F1 머신 수준의 엔진 출력을 갖고 있으나 차체가 버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며 사사키를 투구폼과 릴리즈 포인트가 일정하지 않은 원석 그 자체로 여겼기 때문에 1군에서 제대로 써먹으려면 장기간의 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이구치 감독 역시 동의해 대외적으로 사사키는 아직 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전면에서 실드 쳐주었다.[12] 이 때문에 사사키로 수익을 올려야 하는 구단 수뇌부와 이를 거부하는 감독코치 현장간의 충돌까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구치 감독은 구단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1, 2군 통틀어 전혀 등판시키지 않고 교정에만 집중하는 뚝심을 보였다.

결국 고교 시절의 잠재력이 프로에서 어느 정도까지 나타날지는 치바 롯데 2군 투수 코치진들이 어떻게 사사키를 교정하는지에 달린 셈이다. 그래도 치바 롯데 2군 투수 코치진이 유능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기대해 볼 만하다는 평을 받았다.[13]

3.1.2. 2021 시즌

2021년 2월 3일 이시가키시에서 진행된 스프링 캠프에서 총 33개의 불펜투구를 했지만 투구 초반에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15개의 공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2021년 3월 12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연습경기에서 1이닝을 투구해 깔끔한 삼자범퇴이닝을 만들었다. 이 경기에서의 최고구속은 153km/h를 기록했다.

2021년 3월 21일 DeNA와의 시범경기 최종전에 선발 등판하기로 되었는데 우천 취소되어 등판이 무산될 뻔했으나 시범경기 취소가 유독 많았던 DeNA의 상황을 고려해 이틀뒤인 23일에 연습경기 일정을 편성하면서 선발 등판이 결정되었다.

예정대로 3월 23일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등판 직후 5타자 연속 범타 처리를 하며 깔끔한 투구를 이어갔으나 2회 2아웃 이후 연속 안타를 맞더니 곧이어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밀어내기로 1점을 내주고 말았다. 거기다 포수의 패스트볼까지 나오면서 1점을 더 내주며 2실점. 2점을 준 이후 아웃을 잡아내며 첫 선발 등판을 마쳤다. 이날 기록은 2이닝 2피안타 2볼넷 2실점. 총 40구를 던졌으며 최고 구속은 154km/h 까지 측정되었다.'163km 괴물' 두 번째 실전서 154km 찍었다…2km 상승

4월 2일 2군 이스턴 리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선발로 공식전 첫 경기에 데뷔했다. 2이닝 무실점 2탈삼진 1피안타를 기록했고 최고 구속은 153km/h까지 나왔다. 4월 9일 2군 이스턴리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선발로 출전해 3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2군에서 현재 20이닝을 던지는 동안 실점은 단 1점이며 볼삼비 또한 19삼진 5사사구를 기록. 결국 이구치 감독이 호언장담했던 대로 2군에서 제구도 잡는도 어느정도 성공했고 당장 1군에서 데뷔할만한 몸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제 1군 활약만 앞두고 있는 상황. 그리고 5월 11일, 세이부전에서 1군 데뷔가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15일 내지 16일에 등판할 전망이며 14일부터 1군에 합류시킬 예정.

예고된 대로 5월 16일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드디어 1군 데뷔전을 치렀다. 5이닝을 던져 6피안타 5탈삼진 2볼넷 4실점(2자책점)을 기록했으며 투구수는 107개에 최고 구속은 154km였다. 경기가 6:6 무승부로 종료되는 바람에 승패없이 노디시전으로 기록되었다.[14]

기록만 봤을 땐 고졸 신인의 첫 데뷔전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호투한 편이지만 워낙 기대치가 차원이 달랐던 신인이었기에 다소 아쉽다는 평. 기대를 모은 최고구속이 154km에 그친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슬라이드 스텝에 약점을 드러내며 무려 5개의 도루를 허용하는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을 노출했다.[15]

5월 27일 교류전 한신과의 2차전에서 선발로 나와서 5이닝 3실점 호투, 팀은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로 점수를 내고 불펜도 잘 막아서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10일 야쿠르트전에서 등판해서 6이닝 1실점 기록. 그러나 노디시전. 6월 24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선발로 등판, 1회에 야나기타 유키에게 홈런을 맞은 후 잘 던지다가 6회에 2실점을 하면서 아즈마 유스케로 교체되었다. 팀은 타선의 부진으로 패배하였고, 본인도 패전투수행이 되었다.

전반기는 고교 시절 기대치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다소 기복있는 피칭을 이어갔지만, 후반기 들어서 각성하면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22를 기록하며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최종 성적은 11경기 63 1/3이닝 3승 2패 68삼진 ERA 2.27 WHIP 1.06 을 기록하였다. 초반에 아쉬웠지만 점점 1군에 적응해가며 고교 시절 포텐을 입증함과 동시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11월 6일 라쿠텐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다. 참고로 등판 시점에서 사사키의 나이가 20세 0개월 3일로, 이는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최연소 선발투수 신기록이다. 본경기에서도 후반기 안정감을 그대로 이어가며 최고 159km/h 패스트볼과 145km/h 포크볼을 앞세워 6이닝 1실점 0자책 10K 의 신인투수 답지 않은 놀라운 투구를 보여줬다. 타선도 3득점을 지원해주며 포스트시즌 최연소 승리투수 타이틀을 가져가나 했지만 이후 불펜진이 불을 지르며 날라가버렸다. 다행히 팀은 사토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결국 조급하게 1군에 올리지 않고 우선은 2군에서 다듬어야 한다는 롯데 스탭의 생각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2년차 2021시즌에 어느 정도 교정이 완료된 시점부터 1군 등판을 개시해 등판할 때마다 점점 장점이 부각되고 약점이 보완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포스트시즌에서도 상당한 호투를 펼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3.1.3.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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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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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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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1. 포스팅
2024년 11월 9일, 치바 롯데 마린스 공식 X를 통해 사사키 로키의 MLB 포스팅을 발표했다. # 구단 측은 사사키가 팀에 입단했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으며, 결국 그의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난 해 MLB 진출 여부를 두고 구단과의 마찰이 있었으나, 결국 이번 2024 시즌 종료 후 사사키는 마침내 본인이 꿈꿔왔던 메이저 리그 입성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사사키 로키가 2년만 더 일본에서 뛰고 포스팅을 선언했다면 야마모토 요시노부처럼 2억달러이상의 계약금과 연봉을 거머쥐고 진출할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포스팅을 진출하게되면 25세이하 아마추어룰에따라 6년의 서비스타임을 채워야 하며, 최저연봉으로 마이너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니 쇼헤이처럼 돈보다는 야구 선수로서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이전부터 자신의 고향 도호쿠의 대지진을 겪었던 고향사람들을 위해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뜻에 따라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다만 포스팅이 공식화되자, 사사키의 MLB 진출에 대한 일본 현지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 # 사사키는 프로 데뷔 후 단 한 시즌도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했고, 앞서 MLB에 진출했던 선배들처럼 일본시리즈 제패에 기여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지난 5년 간 팀 공헌도가 기대치에 비해 확실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빅리그로의 조기 진출을 강하게 원하여 구단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현재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다수의 일본 선수들은 과거 일본프로야구 시절 소속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 MVP 수상 등 괄목할만한 활약과 공적, 금전적인 이득을 팀에 안겨주고 떠났는데, 사사키의 경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치바 롯데의 이번 포스팅을 두고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NPB 팬들의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

현재 사사키는 25세 미만으로 선배 오타니 쇼헤이가 빅리그에 입성했을 때처럼, 국제 아마추어 계약만 맺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첫 계약도 메이저 리그가 아닌 마이너 리그 계약으로 해야 한다. 한편 사사키의 포스팅이 허용되면서 다수의 메이저 리그 구단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현지 언론들은 선배 오타니 쇼헤이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뛰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행을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사사키가 현지 언론들의 예측대로 다저스로 향할 경우, 다저스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1선발, 3선발, 4선발 투수를 모두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17] #

4. 국가대표 경력

4.1. 일본 U-18 야구 국가대표팀

2019 WBSC U-18
파일:사사키 로키 청대.jpg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경기 선발 이닝 ERA WHIP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사구 삼진 상세
1 1 1 0.00 1.00 0 0 0 0 0 0 0 0 1 1 ##

2019년 8월에는 부산 기장군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일본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원투펀치를 이룰 오쿠가와 야스노부(세이료고)와 함께 일본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대회 직전에 손가락 물집이 잡히면서 예선 라운드에는 불펜 피칭만 하고 경기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이후 오쿠가와가 슈퍼 라운드 첫 경기인 캐나다전에 등판을 했고, 사사키는 6일 열리는 한국전에 등판했다. 그러나 던진 공에 피가 묻어있는 걸 발견한 포수가 벤치에 사인을 보냈고# 결국 1이닝만 채운 뒤 교체되었다.

4.2.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23 W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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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ERA WHIP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사구 삼진 상세
2 2 7.2 3.52 1.17 1 0 0 0 7 1 4 3 2 11 -

2023년 3월 8일부터 열리는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4.2.1. 3월 11일: 체코전 () [선발 등판] [승리]

3월 11일 체코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은 사사키 로키의 아버지와 조부모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기일이다 보니 더욱 더 뜻깊은 등판이라고 할 수 있다.

1회 2루타와 함께 유격수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이후로는 실점 없이 3.2이닝 2피안타 8K 1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며 65구 투구수 제한에 따라 마운드를 내려왔다. 점수를 내준 게 옥의 티지만, 자책이 아니라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었던데다 일본이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앞세워 낙승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날 사사키의 등판은 승패보다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겨냥한 국제무대 데뷔의 의미가 컸고, 이 점에서 나쁘지만은 않다. 한편 이 경기에서 에스칼라에게 162km/h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왼쪽 무릎에 맞혔는데, 경기가 끝난 후 사과의 의미로 에스칼라에게 과자를 선물했고, 둘은 기념사진도 찍어 공개해 여론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사사키 로키의 체코전 투구모음

4.2.2. 3월 20일: 멕시코전 () [선발 등판]

3월 20일 멕시코와의 준결승전에서는 그 전까지는 압도적인 구속을 자랑하는 속구와 포크볼을 섞어가며 호투하였으나 4회초 행운의 안타 두 개를 연달아 허용한 후인 2사 1,2루에서 루이스 우리아스를 상대로 쓰리런을 맞으며 다소 아쉽게 이날 투구를 마무리지었다.[18]그래도 팀은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 2루타로 멕시코를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다.

4.2.3. 대회 결과 및 총평

결승전에 일본은 완벽한 투수 로테이션을 바탕으로 미국을 3-2로 제압하며 WBC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번 2023 WBC를 통해 사사키는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성공적인 쇼케이스를 마쳤고, 전세계 모든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이전부터 NPB에서 기록한 퍼펙트 게임의 영향으로 이미 수많은 매체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실질적으로 전세계 팬들 앞에서 활약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큰 충격을 선사했다.

비록 홈런을 허용하는 등 완벽투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긴 기럭지와 훌륭한 투구 메카니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속도를 자랑하는 최고 102마일[19] 포심 패스트볼과 91마일[20] 포크볼의 구위는 메이저리그의 어느 투수와 견주어도 손색없었다. 게다가 사사키는 고작 2001년생으로 나이도 기량에 비해선 극도로 젊은 축에 들기에 앞으로 NPB에서 부상을 예방하고, 몸을 더욱 만들어서 완벽한 투수로 거듭난다면 MLB에 입성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5. 연도별 성적

파일:NPB 로고.svg 사사키 로키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191919> 연도 소속 경기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WAR
2020 롯데 1군 기록 없음
2021 11 3 2 0 0 63.1 2.27 51 5 16 0 68 1.06 111 2.6
2022 20 9 4 0 0 129.1 2.02 80 7 23 2 173 0.80 161 6.1
2023 15 7 4 0 0 91 1.78 51 1 17 5 135 0.75 185 5.3
2024 18 10 5 0 0 111 2.35 83 2 32 8 129 1.04 3.5
NPB 통산
(4시즌)
64 29 15 0 0 394.2 2.10 265 15 88 20 505 0.89 17.5


[1] 2011년 3월 사망 당시 37세였다고 하니 1973~4년생으로 추정할 수 있다. 참고로 사사키 본인의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은 전 해 겨울에 디즈니랜드에 놀러갔던 경험이라고 한다.[2] 참고로 마쓰자카는 고시엔에서 심각한 혹사 및 대활약으로 인해 괴물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근데 사사키는 구속 및 순수 기량만으로 이런 호칭이 붙었으니 그가 얼마나 괴물같았는지 알 수 있다.[3] 미국 독립 리그에 진출해 선수로 뛴 경험이 있다.[4] 이때 고시엔 진출이 좌절된 동료들도 사사키에게 왜 나가지 않았냐고 말은 못했지만 그때도 더 던질 수 있었던 것 아니었냐며 다소 원망하는 듯한 마음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 당시 팀 멤버들은 아무도 프로진출이나 특대 진학을 이루지 못했다.[5] 그러나 이때의 판단에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는 시각도 존재한다. 16, 18, 21일날 열린 2-3-4회전에 연속 출장하고 22일 8강에 결장, 24일 4강전에서 완봉 후 휴식하게된 것이었는데 4회전에서는 194구를 던지게하고 24일날도 완봉을 시킨것을 보면 딱히 투구수 제한을 한 것도 아니고 선수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또한 25일 결승전에서는 22일 8강에서 던진 2-3 선발이 아닌 4선발을 올렸다는 것도 그냥 경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3회전과 8강에 선발로 내보내는게 이상적이지 않았냐는 것.[6] 바다 건너 자매구단 롯데 자이언츠 역시 신인지명 선수가 우울한 표정을 지어서 화제가 된 바 있다.[7] 근거지인 치바 지역 이외엔 인기가 전무하다. 이전 근거지인 도쿄는 말할 것도 없고 가와사키시가 위치한 카나가와현도 DeNA의 근거지인데다가 가와사키 연고 시절 인기가 처참해서 롯데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편. 연고지 경력이 있는 센다이도 롯데 오리온즈의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구단이 벌인 추태 때문에(미야기 구장, 집시 롯데 문서 참고) 오히려 롯데에 대한 시선이 매우 나쁘며, 센다이의 주인인 라쿠텐의 팬덤 또한 롯데에 적대적이다.[8] 오미네는 오키나와 본섬이 아니라 오키나와 본섬보다 타이완섬에 더 가까운 야에야마 제도 이시가키시 출신.[9] 요코하마 말고 세이부에서는 뒷돈을 줬다가 걸렸고, 히로시마는 고교 시절 드래프트 직전에 1라운드 지명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본인이 거절해서 타 팀으로 선회한 일화가 있다.[10] 이후 실제로도 롯데는 2년 가까이 사사키를 애지중지하면서 육성하는데 공을 들였고, 사사키의 구속은 고작 나이 20대 초반에 무려 102마일을 찍기에 이른다.[11] 최고 계약금.[12] 고교 시절 라이벌인 오쿠가와 야스노부가 구위과 구속은 사사키보다 떨어질지언정 안정적인 투구폼을 가졌기 때문에 당장 프로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케이스이다.[13]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롯데의 2군 투수코치들은 상당히 유능하기로 유명하다. 물론 투수 코치가 여러 명이어서 그중 누가 유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카와고에 히데타카, 오노 신고 코치가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코치가 특히 유능한 듯.(그리고 예전 사람이지만 2018년 요미우리에서 크리스토퍼 메르세데스를 발굴해낸 코타니 타다카츠 코치도 2010년대 중반에 롯데에서 일했는데 이 코치도 유능하기로 유명했다. 육성 선수 출신의 니시노 유지가 스타 마무리로 도약하고, 후타키 코타가 한국 나이 23살에 에이스를 꿰찬 것도, 후루야 타쿠야가 선수 말년에 선발로 1년 반 동안 최후의 불꽃을 피운 것도 이 사람 공이라고.)[14] 승리투수 요건은 채웠는데 이태까지 단 1실점만 했던 카라카와 유키가 갑자기 컨디션 난조로 1이닝 2실점 블론을 해버렸다. 참고로 저 경기가 올 시즌 카라카와의 첫 블론이었다.[15] 여담으로 이 날 이구치 감독은 두 번째 중간계투로 원래 선발이었으나 로테이션이 한 번 꼬여서 강제 휴식을 취한 스즈키 쇼타를 내보냈다. 즉 2019년 1라운더와 2020년 1라운더가 연속으로 등판했다는 것. 스즈키는 무난히 1이닝 무실점 호투를 하고 홀드를 챙겼다.[16] 2022년 4월 10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홈 경기. 1994 시즌 마키하라 히로미 이후 28년 만의 퍼펙트 게임.[17]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이 가용할 수 있는 최정상급 로스터를 갖추고 나왔던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선발 로테이션 기준으로, 당시 2선발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 다르빗슈 유였다.[18] 4회를 마치고 더그아웃에서 침울해하던 모습이 공개됐다.#[19] 시속 164km[20] 시속 14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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