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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8 23:14:01

사물존칭

1. 개요2. 용례
2.1. 서비스 존칭
3. 원인4. 해결법5. 해석 논란: 간접존대 VS 사물존칭?
5.1. 서술절을 안은 문장(이중주어문)으로 판별하는 견해5.2. 새로운 문법인 '상황 높임법'으로 보는 견해
6. 풍자7. 관련 문서


1. 개요

사물존칭()은 한국어에서 1990년대부터 등장한 현상으로, 주체 높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물을 존대하는 용법이다. 높임법이 발달한 한국어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높임법이 극대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2. 용례

2.1. 서비스 존칭

고객님, 주문하신 피자 나오셨습니다.
위와 같은 문장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표준어 규범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피자와 같은 '사물'은 한국어 문법상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고객님 주문하신 피자 나왔습니다."로 표현하는 것이 올바르다.

문제는 그저 주체 높임법 선어말어미 '-시'가 붙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문장을 반말로 착각해 무례한 표현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문장에서 쓰인 종결어미 '~습니다'는 하십시오체인데, 이는 엄연한 존댓말, 그것도 가장 격식을 갖춘 한국어 최상위의 존댓말이다. '~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예의가 없다고 언짢아하는 것부터가 애시당초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해가 어렵다고 하면 "피자 나왔어."라는 진짜 반말을 생각해보자. 아니면 '피자께서 나오셨습니다.'로 써 보거나.

따라서 존댓말 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사물존칭을 사용하면 잘못된 청유형인 '~하실게요'만큼이나 오히려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다. 피자를 주문한 사람을 존대해야지, "주문하 피자 나오습니다."라고 하면서 사람과 사물을 동시에 높여버리면 사람이 피자와 같은 격, 즉 사람이 그만큼 낮춰지는 꼴이 되는 것이다.

사물존칭은 아니지만 비슷한 용례로, "~(대개 사람)는/은 ~('완성', '읽기' 따위의 행동 명사)이/가 가능하십니다."(행동 존칭, 비문)와 "~는/은 ~를/을 할 수 있으십니다."(가능 표현 존칭), "~는/은 ~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존칭 중복)가 있다. 이는 '~는/은 ~를/을 하실 수 있습니다.'로 바꾸면 된다('~를/을 하실 수 있습니다.'는 되나, '~를/을 하실 수께서 있으십니다.'는 안 된다.).
고객님께서는 월 3천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십니다. (→ 대출하실 수 있습니다.)
▲ 서비스를 이용할/이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른쪽으로 가시면 되세요.(→ 돼요.)

유독 도시철도 중 대구만 특유의 안내방송 투를 가지고 있는데, 가끔씩 말투가 좀 무례한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안내방송이 명령 방송이냐는 민원이 나온다. 다만 '내리는 문' 같은 명령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말투의 경우에는 '내리실 문'이 '문'을 높여버리는 표현이 될 수 있다는 뒤의 논문(2004년 작)에 따라 쓴 듯 하다. 이 문서의 186쪽~187쪽 그런데 국립국어원은 이전인 1990년대에 서울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의 전 이름) 안내방송 문안을 수정할 때에는 '내리실 문'이라는 표현을 제시했고, '-시-' 높임법을 했다. 얼핏보면 사물존칭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주어가 생략되어 '(고객님이) 내리실 문'이기 때문에 문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생략된 주어인 고객님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원인

사물존칭은 흔히 '백화점 높임법'이라고도 한다. 1990년대부터 한국의 기업들은 고객 만족을 중시하여 관련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사물존칭이 나타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기준으로 고객에게 극도로 친절할 것이 요구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콜센터 등의 직원들에게도 많이 전파되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콜센터 직원들이 사물존칭이 잘못된 표현인 걸 알아도 사물존칭이 잘못되었다고 들어오는 항의보다 안 쓸 때 들어오는 항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영업상 사용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호칭 인플레이션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클레임 비율은 아는 사람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왜 그러는지 뻔히 알 만한데도 항의까지 거는 이는 얼마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주체 높임법과는 다른 '상황 높임법'이라는 새로운 높임법으로 해석하려는 국어학자들도 있으나 아직은 소수다. 장기적으로 표준어가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한편, 중세 한국어에도 유사한 어법이 있었다. 주어가 높임의 대상이 아님에도 '-시-'를 쓰는 것인데, 현대의 사물높임법과 거의 똑같다. 중세 한국어 참조.

ARS에서도 장소나 사물 등 사람이 아닌 것에게 ''이라는 높임의 뜻을 가진 접미사를 붙이곤 하는데, 물론 이는 의도된 사물존칭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기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4. 해결법

사실 이건 아주 간단한 변형으로 해결 가능하다. 하소서체의 사용이 그것. 위의 '피자 나왔습니다'의 용례를 다시 본다면, '피자 나왔사옵나이다'라고 한다면 결국 겸양 어미를 통한 피자 존대가 아닌 고객 존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하소서체를 사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 한국어에서 일상 회화를 할 때 하소서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것.[1] 현재 하소서체는 사극이나 역사소설, 종교 예식 등에서 사용되고 실생활에서는 사용 용도는 거의 0.001% 미만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피자 나오셨사옵니다' 로 변형이 가능하다. 사물존칭의 문제는 "피자 (나왔/나오셨)+(습니다./사옵니다.)" 에서, (나왔/나오셨) 의 문제이지만, 뒤의 (습니다./사옵니다.)를 변형함으로써 문장이 존칭 → 극존칭이 돼서 (나왔/나오셨) 에서의 불필요한 사물존칭을 씹어 먹게 된다.

익숙하지 않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으로는 "고객님, 피자 가져가세요."처럼 사람 주어를 쓰는 방법도 있다.

손님에게 명령이나 제안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자신은 상황을 묘사하고, 의지는 손님에게 넘겨주는 어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고객님, 피자 모셔 가세요."처럼 변형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물존칭에 대한 지적이 많아짐에 따라 규모가 큰 콜센터에서는 교육을 통해 사물존칭을 금지하고 사물존칭을 빈번하게 하는 상담원의 점수를 깎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쉽게 고쳐지지는 않고 있다.

최종적 대안으로 "주문하신 피자가 준비되었습니다." 혹은 "주문하신 피자 드리겠습니다"가 나왔으나 '알바 주제에 내가 내 돈 주고 산 물건을 어디서 건방지게 준다 만다 하냐'는 꼬투리성 항의가 접수되기도 한다.

5. 해석 논란: 간접존대 VS 사물존칭?

사물존칭과 간접존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학계의 견해가 있다. "피자 배달하는 손이 참 예쁘시네요. 매니큐어도 세련되세요. 선택이 탁월하십니다."처럼 주어는 사람이 아니지만 대유법을 사용하면서 높게 불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높게 부르는 화법이 된다. 그런다고 조사까지 높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국립국어원은 "높여야 할 대상의 신체 부분,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 개인적 소유물 등 주체와 관련된 사물 (#1)", 혹은 "상대의 신체, 성품, 심리, 행위, 소지품과 같이, 상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들 (#2)"을 높일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커피를 하루에 최소 한 잔을 못 마시면 생활 리듬이 깨져버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어느 회사원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하루에 한 번씩 주문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고객에겐 이 커피야말로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 "상대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는가? 게다가 이 커피는 조만간 "나의 소유물"이 될 대상이므로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표현을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만약 될 수 없다 치면, 사물존칭이란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공급받는다는 발화 상황에서 발생하게 되는 오류란 말인가? 즉 미래 소유물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직접 구입한 50개들이 믹스커피 한 박스에서 꺼내 만든 커피 한 잔은 존칭받을 대상으로 승격할 수 있는가?

게다가 국립국어원 스스로 서로 충돌 가능한 예시#마저 내놓고 있다. "그분은 살림이 넉넉하시다"의 살림은 상대와 밀접하므로 높일 수 있는 대상이지만 "선생님, 집이 크시네요"의 집은 사물존칭의 대상에 해당되므로 높일 수가 없다고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둘 다 "개인적 소유물"이고 주체에게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되는 사물"인데 전자만 간접존대의 대상이 된다. 한국인들에게 '내 집'의 상징성이 상당히 크고, 오히려 '살림'같이 추상적인 단어보다 주체와 맺는 밀접한 관계를 현격히 드러내는 구체적인 대상이 '집' 아닌가?"라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또 국립국어원 내부에서도 간접존대의 기준을 직원마다 다르게 말한다. 위 신문 기사#에 출연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과장은 "모자가 멋있으십니다"는 간접존대이기에 맞는 표현이고 오히려 "모자가 멋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국립국어원의 다른 담당자는 비슷한 표현인 "과장님, 넥타이가 예쁘십니다"는 사물존칭이기에 틀린 표현이라서 "과장님, 넥타이가 예쁘네요"로 바꾸라고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국립국어원도 "어디까지를 간접 높임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명백하지가 않습니다"#라면서 간접존대 개념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화자의 주관에 따라 실현 여부에 차이가 있다"#는 점까지 양보하고 있다. 이렇듯 국립국어원 스스로 "간접 높임이나 사물 존칭이라는 용어가 명확히 규정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답변이 어렵다"#고 한발 물러서 있을 정도로 불충분한 개념이 바로 간접존대와 사물존칭의 구분이다. 국립국어원이 오락가락 하는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5.1. 서술절을 안은 문장(이중주어문)으로 판별하는 견해

부자연스러운 주체 높임법이면 사물존칭, 어딘지 자연스럽다 싶으면 간접 존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그 어딘지 모를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결국 문법적 특징에서 기인하는 바, 이 점을 판단하면 둘의 경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어에는 서술절이라는 독특한 내포문 형식이 있다.
코끼리는 코가 길다.
위 문장이 서술절을 안은 문장의 예인데, '코가 길다'라는 작은 문장이 절로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서술절을 안은 문장은 따라서 필연적으로 주어가 둘 이상이 나오므로 이중주어문이라고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삼중, 사중으로도 만들 수 있다. '코끼리는 코가 길다'는 그 형식을 밝히면 '코끼리는(S1)', '코가 길다(P1)'로 주어와 서술어(서술절)로 나눠지며, 그 서술어는 다시 '코가(S2)', '길다(P2)'로 쪼개진다. 즉, [S1-P1(S2-P2)]의 형식이다. 이때 S1이 높여야 할 대상이라면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 '-(으)시-'가 갈 곳은 사실상 문장 내의 유일한 용언인 P2로 갈 수밖에 없어진다.

위 문장을 다르게 써 보자.
선생님은 손이 예쁘다.
여기서 '선생님'에 주체 높임법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될 수밖에 없어진다.
선생님께서는 손이 예쁘다.
이것은 사물존칭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 '예쁘시다'의 '-(으)시-'는 S2인 '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S1인 '선생님'을 높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유일한 용언인 P2에 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위 문장의 '예쁘시다'의 선어말어미 '-(으)시-'는 정작 자기가 붙어 있는 용언인 '예쁘-'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범용적으로 보면 한국어 전반에서 꽤 흔하게 나타난다. 한국어는 통사론적인 논리가 문장 전체를 마치 꼬챙이 꿰뚫듯 관통해서 형식만 보고도 무엇이 어떤 기능이고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딱 맞아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한국어는 통사적인 논리보다는 형태소가 나타내는 자질이 형태론적으로 결합해야 할 위치에만 맞게 결합하면 나머지는 개별 형태소가 형태론(단어)의 범주를 넘어서서 통사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언어이다.

위 문장의 '예쁘시다'로 예를 들면, 종전의 문법적 관념대로라면 '-(으)시-'는 형용사 '예쁘다'에 붙어서 이 형용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결과적으로 이 형용사의 직접적인 주어인 '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이 '-(으)시-'는 형태론적으로 마땅히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인 '예쁘-'에 결합했을 뿐, 주체 높임이라는 고유의 기능은 해당 형용사의 직접적인 주어와는 전혀 관계없이 '선생님'을 향한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이처럼 한 단어 내의 형태소가 멀찍이 떨어진, 얼핏 관계없어 보이는 논항으로 뜬금없이 영향을 미치고, 정작 자신이 붙어 있는 단어는 따로 다른 것과 연계되어 기능하는 예가 상당히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 존칭과 관련해 논쟁이 나오는 이유는 그간 우리의 학계가 20세기 서구의 언어학 이론에 함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인 의태어만 보더라도, 의태어들을 형태론적으로 분석한 역사가 극히 짧으며, 그마저도 그나마 조금 깊이 짚어 본 논문이 2016년에야 나왔을 정도이고, 해당 논문에서도 저자가 그간 국어학계의 한계점으로 인해 의태어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의태어와 서술절 내포문(이중주어문)은 한국어의 특수한 현상들의 일부로서, 인도유럽어족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언어학계는 서구의 언어학 이론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고,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비(非)인도유럽어족의 고유한 문법 현상들이 제대로 조명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서 밝힌, 통사적인 논리가 문장 전체를 꿰뚫으면서 형식적으로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인도유럽어족의 특징[2]이지, 한국어 등 비인도유럽어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사물 존칭 및 간접 존대를 비롯한 한국어 문법의 특수성을 제대로 명쾌하게 살피려면 서구 언어 중심으로 통용되는 언어학 이론 자체를 기초부터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5.2. 새로운 문법인 '상황 높임법'으로 보는 견해

소수 학설이지만 한국어의 사물 존칭을 일종의 문법적 과도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위에서도 한차례 지나가듯 언급한 '상황 높임법'이 그것이다. 문법적으로 분석해 보면 주체 높임 선어말어미 '-(으)시-'가 주어와 관계없이 상황 맥락상 동사 및 형용사와 관계된 주체나 객체의 높임을 위해 기능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사물 높임이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보편화하면 정식 한국어 문법이 될 수 있다.

상황 높임 용법은 대부분의 경우에 청자(고객, 손님)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이 경향을 따라간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으)시-'가 주체 높임 형태소가 아닌 상대 높임 형태소로 편입될 것이다.[3] 이후 해요체합쇼체와의 결합이 공고해지면 종래에는 '-아요/어요', '-(스)ㅂ니다'가 각각 '-(으)세요', '-(으)십니다'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4]

6. 풍자

열정페이를 비꼬기 위하여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 직종에서 특히 알바의 시간급보다 자신이 파는 물품값이 더 비싸니까 자신보다 그 물품이 더 높다는 식의 자조 섞인 해석이 나온 것이다.

7. 관련 문서


[1] 이 면에서 사물존칭은 결국 하나의 언어와 밀착된 사회 시스템에서 언어의 한 형태가 사라짐으로써 나타나는 병리 현상이라 볼 수 있다.[2] 이것도 인도유럽어족이 본질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애초에 인도유럽어족을 중심으로 언어학이 발달하였기에 해당 언어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쪽으로 이론이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3] 한편 '께서'는 현대 한국어에서 이미 쓰임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상황 높임법이 정식 문법이 될 쯤이면 사실상 한국어에 주체 높임법은 사라진 문법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객체 높임법 또한 엄밀히 쓰이지 않고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한국어의 높임법은 청자를 높이는 상대 높임법만 남기고 싹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4] 사실 한국어의 높임법은 이런 식으로 발달해 왔다. 고대 한국어까지 높임법이랄 게 분명하게 없었다가 중세 한국어 들어 동사, 명사 등의 일부 내용어가 상황에 따라 본용언과 긴밀하게 쓰이면서 문법화 과정을 거쳐 현대의 높임 어미들이 된 것이다. 현대 한국어의 종결어미 중 하나인 '-(으)십니다'도 본래는 이 자체가 하나의 어미가 아니라 '-(으)시-옵-나이-다'로 여러 형태소의 복잡한 결합이었다. '-나이다', '-옵나이다', '-시나이다', '-나이까', '-옵나이까', '-시나이까' 등의 형태를 고려하면 본래 개별 형태소들이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5] 2016년 기준.[6] 근데 사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3분, 2.5분이라고 가정하고 시급으로 환산하면 아메리카노의 시급은 98,4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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