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The Greatest Frenchman | ||||||||
※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2가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이다. | |||||||||
TOP 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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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뤼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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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수녀 | 장 물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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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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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카브롤 | 쥘 페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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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사르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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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타지프 | 에리크 타바를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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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두이예 | 장 자크 골드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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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 레옹 지트론 | 니콜라스 윌로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파트리크 푸아브르 다르보르 | 프랑시스 카브렐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르노 | 베르나르 쿠슈네르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미셸 세로 | 미셸 드러커 | 라이무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레이먼드 풀리도르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질베르 베코 | 조제 보베 | 장 페라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뤽 베송 | 티노 로시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세르지 레기아니 | 프랑수아즈 돌토 |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
<colbgcolor=#000><colcolor=#fff> 브리지트 바르도 Brigitte Bardot | |
본명 | 브리지트 안마리 바르도 Brigitte Anne-Marie Bardot |
출생 | 1934년 9월 28일 ([age(1934-09-28)]세) |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가수, 모델, 동물 보호 운동가[1] |
활동 | 배우: 1952년 ~ 1973년 가수: 1962년 ~ 1973년 동물 보호 운동가: 1973년 ~ 현재 |
신장 | 166cm |
배우자 | 로저 바딤(1952년 ~ 1957년, 이혼) 자크 샤리에(1959년 ~ 1962년, 이혼) 귄터 자크스(1966년 ~ 1969년, 이혼) 베르나르 도르말(1992년 결혼) |
자녀 | 1남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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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배우, 가수, 모델.
활동 당시엔 미국에 MM이 있고 이탈리아에 CC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BB가 있다는 말이 돌아다닐 만큼 유명한 섹시심벌이었으며 본인 입으로 "나는 젊은 시절에 하루라도 남자가 없으면 잠을 못 잤다"고 말했을 만큼 엄청난 남성편력을 자랑했다. 이는 후술할 친부의 아동 학대의 영향인 듯하지만 결국 남자와 잠자리를 해도 아름다움과 명성을 얻어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성기 때 키는 166cm에[2] 쓰리 사이즈는 36(B)-20-35. 10대 시절에는 거의 18인치에 가까운 허리를 지녔으며 그 때문에 염문도 많이 뿌렸는데 그 중에서도 세르쥬 갱스부르와 했던 연애는 꽤 유명하다.
배우로는 장 뤽 고다르의 《경멸》이라든가 《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 같은 걸작 영화에도 출연했다. 공식적으로 처음 비키니를 입은 영화배우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외에 유럽과 미국에서도 미녀로 인지도가 있다. 가수 활동은 주로 세르주 갱스부르의 곡을 받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이자 여신인 이자벨 아자니의 데뷔 초기 수식어가 '제2의 브리지트 바르도'였으니 사실상 말 다 한 셈이다.
청년기에도 이런 이미지(좋게 말하면 당돌함)였다. 한국에선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보인 가장 큰 이유가 제법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없이 자라 어릴 적부터 고집이 셌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는데 이마저도 친부의 근검성실한 가톨릭 정신을 빙자한 아동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불안정한 정신상태 때문에 어릴 적부터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어릴 적 그녀가 꽃병을 실수로 깨뜨렸는데 그녀의 친부가 잘못하지 않은 그녀의 자매까지 연대책임으로 20번이나 채찍질해 거의 절연 수준으로 자신의 자매에게 원망을 산 적이 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반항하면 오븐에 어린아이였던 그녀의 머리를 밀어넣어 화상까지 입히려고 한 적도 있었다. 조부도 정상과 좀 거리가 멀었는데 그녀가 배우가 되려고 했을 때 지지해 줬긴 했지만 '이 애가 창녀가 된다면 배우가 원인은 아니겠지'라는 훈육에 전혀 좋지 않은 이상한 단어를 쓴 적이 있다. 결국 그녀의 친부가 그녀에게 한 번도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않고 1975년에 사망하여 트라우마의 봉합이 어렵게 되었다.
다행히 그녀의 친모는 그녀를 지지했으며 성격적인 문제도 없었지만 이마저도 친부의 가정폭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친부가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1978년에 사망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아무 조건없이 자신에게 다정하던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충격을 받고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던 그녀의 정신머리는 더 악화되었으며 몰상식한 기행을 일삼기 시작했다.[3]
배우 시절에는 사생활 문제 빼면 별 비난거리도 없었으나 은퇴한 뒤부터 사람이 아예 바뀌었다. 이로 인해 영화계와 연락을 일체 끊고 지냈는데 정황상 그녀 쪽에서 먼저 끊거나 영화계가 먼저 그녀를 외면할 만한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노망난 노친네 취급을 받지만 만약 그녀의 친부와 조부가 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어린 시절 학대받지 않았다면 그녀가 아무리 미쳐봤자 이렇게까지 정신나간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 많다.
2. 행보
《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로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이 되자 그녀의 사생활은 언론과 대중에 지나치게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자택에서 출산을 할 때 집 앞으로 전세계에서 기자 200여명이 모여들었고 청소부로 위장해서 자택에 침입을 시도한 기자도 있었으니 그녀가 느꼈을 스트레스가 짐작될 터.
영화계 커리어는 지속됐지만 장 뤽 고다르의 《경멸》과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진실》 정도를 제외하면 극심한 연기력 혹평과 저급한 가십의 중심이 되었고 연기를 즐길 수 없었으며 40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직전엔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고 손목 자해,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유년기에 당한 가정폭력과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서 활동 시절에도 늘 불안정하고 이상한 행보를 보였다.
은퇴 후에는 혼자 살면서 개, 고양이, 말, 염소 등을 돌보았고 이전에는 노르웨이에서 장난감 제작을 위해 자행되는 바다표범 도살 항의 시위에 앞장섰으며 동물 학대 방지법 통과에 기여하는 등 90년대 이전까지는 그녀의 행보를 높게 평가하는 시선이 강했지만 나이가 들고 장 마리 르펜 등 국민전선 소속 극우 인사와 어울리고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동물 애호가 활동과 백인 우월주의적인 발언,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들을 야만적이라고 비난, 이외에도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같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킬만한 수많은 행동으로 현재 이미지는 완전히 망가졌다. 90년대부터 그녀의 대한 대중의 시선은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극우파 성향을 제외한 프랑스 대중이 싫어하는[4] 연예인, 자신의 아들에겐 막장 어머니, 그녀의 망언의 대상이 된 국가와 민족들에겐 젊은 시절에 유명세 좀 떨쳤다던 프랑스 출신의 노망난 빌런으로 인식된다. 그렇다고 늘 욕만 먹는 것은 아니고 60년대 패션과 스타일 아이콘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또한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여배우 치고는 거장 감독의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던 연기력도 재평가받는다.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영상에는 외국인들이 작성한 외모를 칭찬하는 댓글도 많이 볼 수 있다.
3. 비판 및 논란
자세한 내용은 브리지트 바르도/비판 및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4. 황혼기
그래도 잘 나가던 시절 유럽에서는 모르는 젊은이가 보기 드물 정도로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가졌던 여배우이자 슈퍼스타 바르도였다. 말로가 비참할 뿐.이웃나라 영국의 그 유명한 비틀즈 멤버도 바르도의 팬이었다. 특히 존 레논이 굉장히 좋아해서 당시 아내였던 신시아의 머리 색깔을 바르도와 똑같은 색으로 염색시키기도 했다고 한다.[5] 바르도를 위해서 프랑스어까지 노랫말에 집어넣은 노래가 바로 러버 소울의 명곡 '미셸(Michelle)' 이라는 설이 있지만 가짜다. Michelle은 폴 매카트니가 어렸을 적에 리버풀에서 프랑스 풍의 문화가 인기를 끌었는데 그 때 열렸던 파티에서 만들었다가 몇 년 후 존 레논과 합작을 하여 다시 빛을 보게 된 곡이다.
러버 소울 앨범의 발표는 1965년, 비틀즈와 바르도의 만남은 1968년이다. 비틀즈와 바르도는 단 한 번 만났는데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는 그녀와의 만남을 거부했고 폴 매카트니는 스코틀랜드에 있었으며 그나마 만날 수 있었던 존 레논은 약속 시간 몇 시간 전에 LSD를 복용하여 눈도 잘 못 마주치고 1시간 동안 떨면서 영어로 짧게 몇 마디 했다고 한다. 바르도도 조금 있다가 나갔다고.
후일 그녀가 흑화한 것을 두고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나 생전의 조지 해리슨이 그녀를 보고 "어떻게 하면 멀쩡했던[6] 사람이 저렇게 미칠 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탄식했다.[7] 특히 링고 스타는 "하늘에 있는 존을 위해서도 제발 자제를 하기 바란다."고 애원까지 했다.
미투 운동을 여배우들의 위선같은 행동이라고 폄하했었다. "여배우들이 배역을 따내려고 프로듀서를 꼬셔놓고 무고죄를 지었다" 라고 한지라 당연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욕을 먹었었다.[8] 젊은 세대로 갈수록 영미권 페미니스트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어서 세대 갈등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적어도 미투 운동의 의의를 부정하거나 창녀라고 모독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카트린 드뇌브와 이자벨 위페르랑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5. 대중매체에서
밥 딜런의 노래에서도 나온다. 'I shall be free'라는 곡에서 나오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나라가 발전하려면 뭘 해야 할까?"라고 묻자 딜런이 "브리지트 바르도, 아니타 엑베리, 소피아 로렌[9]이 필요하죠"라고 대답한 후 "나라가 참 잘도 굴러가겠군"이라고 덧붙인다.[10]엘튼 존의 1972년 5집 Honky Chateau의 3번 트랙 I Think I'm Going to Kill Myself의 가사에선 삶에 지루함을 느껴 그저 신문에 나고 싶어 자살을 계획하는 한 관심종자가 브리지트 바르도가 나를 밤마다 보러 와야 한다고 묘사되었다. 이 곡을 발매한 시기는 브리지트 바르도가 은퇴하기 1년 전이었다.
마릴린 맨슨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Born Villain의 8번 트랙 'Children of Cain'(카인의 후예)의 가사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해당 가사를 옮기자면 'Christ consciousness Manifest to the Golden Ratio 5 or 500 million years ago We were 15 foot high And to die Was a Bardot Bridge(t) We never thought we'd cross To burn down behind and below'[11]
허니 패밀리 멤버였던 디기리가 본인의 솔로 1집 <리듬의 마법사> 수록곡 'This Is Diss'에서 깐 적이 있다.
개빠스러운 언행 때문에 월야환담 채월야의 작가 홍정훈은 아예 사혁의 입을 빌려서 "노닭 미친년"이라며 까기도 했다. 해당 장면은 사혁 본인의 소설 내 데뷔 장면으로, 흡혈귀가 된 지 얼마 안 된 여자가 흡혈충동에 못이겨 자신이 기르던 애완견의 피를 빨아먹는 걸 보면서 했던 말이었다.
힙합 듀오 다이나믹 듀오도 '해적'이란 곡에서 깠는데 "브리짓 바르도에게 억지로 개고기를 먹여, 후식으론 미국산 쇠고기를 먹여"라는 가사에서 언급되었다. 이 노래에선 김본좌도 언급된다.
그냥노창의 노래 '행'에서도 언급되었다. 달팽이관을 볶아서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주고픈 소리가 들리는...
보물찾기 시리즈 프랑스 편에 '브리지트 파르숑'이라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배우 출신이자 국제동물보호협회 회장이라는 것으로 보아 일부러 노린 듯하다. 사실 브리지트 파르숑은 예명이고 본명은 '잔 드 오를레앙'으로 프랑스 왕가의 후예다. 그냥 보면 딱히 악역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불쌍한 과거사까지 있는 인물로만 보이지만 돈을 주면서 봉팔이에게 피렌체 다이아몬드를 가져와 달라는 의뢰를 주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한 말로 보이기에 사실상 악역이나 다름없다.[12]
Judgement Day: Aftermath of the Red Flood에선 비현실국(촉진주의 프랑스)의 미국 괴뢰정부 중 하나인 초현실주의[13] 피드몬트 숭고국의 지도자로 있다.
[1] 아래에 후술된 행보를 보면 알겠지만 가장 잔혹한 동물학대라고 평가받는 밍크 코트를 입고 다니면서 일부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으니 모든 한국인은 미개하다고 주장하는 모순을 보인다.[2] 21세기에도 여자 키가 이 정도면 작은편이 아닌데 바르도는 1934년생이다. 동유럽 남성 평균신장에 가까웠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168cm이니 굉장한 장신이다. 다만 19세기 말~1930년대생 여배우들 중에는 키가 170cm를 넘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며, 지금으로 치면 180cm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3]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바르도가 친아들 니콜라 사리에를 혐오하는 막장 어머니가 되는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본인이 부모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면 자신의 아이에겐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사실 막장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피해자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과거 자신의 부모와 똑같은 막장부모가 되어 역으로 자기가 자식을 학대하는일이 흔하다.[4] 나라 망신과 강한 정치색을 띄는 등 싫어할 만한 행동은 다 한다.[5] 참고로 브리지트 바르도의 백금발도 자연은 아니고, 염색한 것이다. 브리짓의 어린 시절 사진은 갈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진한 더티블론드 쯤 된다.[6] 사실 옛날에도 멀쩡하진 않았는데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착실히 극복하지 못하고 남성편력에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행위가 당대 연예인으로서는 섹스 심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생활적으로 정상적이라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젊을 땐 신인이었기 때문에 남들에게 큰소리 칠 위치가 아니었다가 경력을 충분히 쌓자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7] 비틀즈의 멤버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따라서 인종차별에도 매우 비판적인 성향이다. 1965년 미국 콘서트 당시 "흑백인종을 분리해 콘서트에 입장시키면 바로 공연을 하지 않고 영국으로 돌아가겠다"며 공식적으로 미국의 흑백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을 정도다.[8] 사실 브리지트 바르도 세대의 프랑스 여배우들 중에서도 미투 운동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배우들이 적지는 않다. 라이시테 참조.[9] 셋 다 당시의 섹시 심벌이다.[10] 섹스 심벌은 비록 당대 젊은 팬들에게 인기는 많았지만 어떤 이미지와 어떤 취급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11] 대충 의역하자면 "그 황금비는 누가 봐도 신의 걸작이었고, "Bardot 다리('브리짓 바르도'의 말장난)"는 정말 끝내줬지, 우리가 그걸 건너고 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지만."[12] 허나 봉팔이가 떠난 뒤 그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본다.[13] 저지먼트 데이에선 미술사조일 뿐만 아니라 정치이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