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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fff><colbgcolor=#ED1C27> 백무선 白茂線 | Paengmu Line | |
| | |
| 노선 정보 | |
| 분류 | 제1지선철도 |
| 기점 | 백암청년역 |
| 종점 | 무산역 |
| 역 수 | 30개 |
| 개업 | 1934년 9월 1일 |
| 소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
| 운영 | |
| 사용차량 | 불명 |
| 차량기지 | 불명 |
| 노선 제원 | |
| 노선연장 | 191.7 ㎞ |
| 궤간 | 1435 ㎜ (백암청년-대택) 762 ㎜ (대택-무산) |
| 선로구성 | 단선 |
| 사용전류 | 직류 1,500V 가공전차선 (백암청년 - 굴송) 비전철 (굴송 - 무산) |
| 신호방식 | |
| 최고속도 | 불명 |
| 표정속도 | 불명 |
| 통행방향 | 왼쪽 |
| 개통 연혁 | 1934.9.1. 백암 ↔ 산양대 1935.9.1. 산양대 ↔ 연암 1936.10.16. 연암 ↔ 유평동 1939.10.1. 유평동 ↔ 연사 1944.12.1. 연사 ↔ 무산 |
1. 개요
목단눈 오는 밤은 첫 사랑이 그리워
북랑성 흐르는 하늘 턱을 고이고
불러보는 망향가는 눈물의 메디냐
목단눈 오는 밤은 고향집이 그리워
남포불 얼룩진 창에 이마를 대고
까닭모를 옛 사랑은 마음의 곡조냐
시발차 허덕이는 고개넘어 또 고개
백무선 아득한 길에 그 누굴 찾어
가는거냐 우는거냐 실없슨 발길아
- 진방남, 《눈 오는 백무선》
북랑성 흐르는 하늘 턱을 고이고
불러보는 망향가는 눈물의 메디냐
목단눈 오는 밤은 고향집이 그리워
남포불 얼룩진 창에 이마를 대고
까닭모를 옛 사랑은 마음의 곡조냐
시발차 허덕이는 고개넘어 또 고개
백무선 아득한 길에 그 누굴 찾어
가는거냐 우는거냐 실없슨 발길아
- 진방남, 《눈 오는 백무선》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 《그리움》
백두산청년선에서 분기하는 제1지선 협궤 철도.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 《그리움》
일제강점기 시절 자원의 보고인 백무고원의 목재와 무산지역의 철, 석탄 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원래 백암청년역에서 유곡까지 111㎞, 나머지 80.7 ㎞는 무산역까지 이어졌다.
굴송-천수 구간이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공사로 인해 저수지 기존 위치에서 서쪽으로 이설된 후 전철화 구간인 백암청년역에서 굴송역까지의 구간과, 비전철화 구간인 굴송역에서 무산역까지의 구간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백암군과 무산군의 어마어마한 고저차와 당시 상황 때문에 협궤로 건설되었다.
2. 역사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한반도철도망이 대폭확충되는 '철도 12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12개년 계획의 일부는 아니지만, 이 지역의 기온은 한겨울에 영하 48도까지 떨어지는데다가 5월말까지 눈이 녹지 않아 공사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고,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한데다가 연선에 도로가 없어 인력동원 및 물자수송에 애로사항이 많아 1933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전선개통까지 장장 12년이나 걸렸다.특히 마지막 연상역 - 무산역 구간은 1944년 12월 1일 개통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왕국은 이미 패망했고,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패망이 확실시[1] 되는 시점이었다. 바꿔말하면 일본 제국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패망이 확실시되는 시점까지도 백무선을 공사해서 개통시켰을 만큼 매우 중요하게 여긴 노선이다.
광복 이후 북한 정권이 들어섬과 동시에 철도성 산하에 놓였으며 후일에 일부 역의 이름이 바뀌었는데, 백암역이 백암청년역이 되고 함북신장역이 신장역이 되며, 함북문암역이 두암역 (頭岩驛)이 되고, 신양역이 삼유역 (三楡驛)이 되었다.
1980년 8월 최북단에 동서를 횡단하는 간선인 북부내륙선을 건설하라는 김일성의 지시가 떨어지자 철도 기술진들은 건설 자재를 절약하기 위해 기존 노선의 일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만포와 회령을 동서로 연결하는 북부내륙선 건설을 계획한다.
북부선 건설은 3단계로 나눠서 건설할 예정이었다.
- 1단계: 옛 운봉선을 혜산까지 연장하여 1988년에 지금의 북부내륙선 준공
- 2단계: 혜산역을 기점으로 무산선을 연장하여 무산역까지 연결
- 3단계: 함북선의 회령역까지 선로 연장.
여기서 2단계 구간 중 백무선의 흥암 - 무산 구간을 개량해서 표준궤로 개궤할 계획이었다.
1단계 구간인 혜산만포청년선이 준공되었고, 곧이어 2단계 계획이 착공되었으나 1990년대 북한의 경제 위기가 닥쳤고, 1994년 보천군 일대에 대홍수가 닥치면서 보천선 함께 삼지연선 전 구간은 완전히 폐선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재개를 했으나 중단과 재개를 계속 반복했다.
1991년 8월 백암에서 유곡까지 전철화가 완료되었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로 인해 천수 - 굴송 구간이 수몰되면서 이설되었고, 이설 뒤에는 백암 - 굴송 구간만 전철화되었다.
2013년에 백암청년 - 대택 구간이 표준궤로 개궤 되었다.
3. 통일 이후 전망
남북통일 이후 백무선 인근 도로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다면, 백무선은 폐선되고 그 자리를 버스와 승합택시가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2] 버스 및 승합택시 대체 시 산코선 대행버스 처럼 백무선 전 구간을 그대로 운행하는 버스나 백암군 전체 또는 무산군 전체를 커버하는 버스 노선은 아예 없고 4구간[3] 10여개의 노선으로 쪼개서 운행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도로가 좁아 버스 운행이 불가능한 구간[4]은 승합택시가 운행하게 될 것이다, 승합택시는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소까지 운행되며 버스와 접속하는 형태로 운행한다.4. 역 목록 (1945년 기준)
| 기점거리 | 역간거리 | 역명 | 분기선 | 소재지 | |
| 0.0 | 0.0 | 백 암 | 白 岩 | 혜산선 | 길주군 양사면 |
| 6.6 | 6.6 | 대 택[5] | 大 澤 | ||
| 11.9 | 5.3 | 북계수[6] | 北溪水 | 무산군 삼사면 | |
| 17.6 | 5.7 | 상도내 | 上島內 | ||
| 24.2 | 도 내 | 島 內 | |||
| 29.2 | 상황토 | 上黃土 | |||
| 33.8 | 산양대 | 山羊台 | |||
| 40.5 | 6.7 | 서 두 | 西 頭 | ||
| 47.1 | 6.6 | 연 평 | 延 坪 | ||
| 55.9 | 8.8 | 연 암 | 延 岩 | ||
| 58.4 | 2.5 | 굴 송 | 屈 松 | ||
| 63.5 | 5.1 | 상 단[이설] | 上 壇 | ||
| 68.6 | 5.1 | 삼 사[이설] | 三 社 | ||
| 77.4 | 8.8 | 천 수 | 天 水 | ||
| 86.0 | 8.6 | 하황토 | 下黃土 | ||
| 90.1 | 4.1 | 상경평 | 上境坪 | ||
| 96.1 | 6.0 | 하경평 | 下境坪 | ||
| 100.5 | 4.4 | 유평동 | 楡坪洞 | ||
| 111.0 | 10.5 | 유 곡 | 楡 谷 | ||
| 117.4 | 6.4 | 라 적 | 羅 跡 | 무산군 연사면 | |
| 126.9 | 9.5 | 신 양 | 新 陽 | ||
| 129.5 | 2.6 | 소 도 | 小 桃 | ||
| 136.8 | 9.1 | 연 사 | 延 社 | ||
| 143.4 | 6.6 | 함북신장 | 咸北新章 | ||
| 150.1 | 6.7 | 연 수 | 延 水 | ||
| 158.4 | 8.3 | 함북문암 | 咸北文岩 | 무산군 연상면 | |
| 164.8 | 6.4 | 연 상 | 延 上 | ||
| 174.1 | 9.3 | 흥 암 | 興 岩 | 무산군 서하면 | |
| 181.2 | 7.1 | 남 촌 | 南 村 | ||
| 186.0 | 4.8 | 독 소 | 篤 所 | 무산군 무산읍 | |
| 191.7 | 5.7 | 무 산 | 茂 山 | 무산선 | |
5. 특징
참고로 이 노선의 최소 곡선반경은 40R[9]이고 경사는 33퍼밀로 표준궤 열차는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선형이 개판이다. 그와 동시에 일부 구간이 표준궤로 개궤되었음에도 불구하고[10] 한반도에 남아 있는 최장길이 협궤 철도이다.6. 여담
- 북한에서 이 노선을 표준궤로 개궤하려고 했다가 결국 실패했다. 철도만 깔고 끝났던 김일성이 직접 개궤를 지시할 정도로 이 노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2006년때 풍계리 핵실험으로 백두산청년선의 열차 운행도 전면 통제되면서 백암군이나 연사군 등지에서 캐 온 광물 자원을 평양 등지로 수송하기 위해 빙빙 돌아서 운송을 했던 전적이 있고, 해당 노선이 협궤여서 화물 수송 능력의 한계가 있는데다 하필 무산선이 표준궤인 탓에 직접적인 연계가 어렵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북한이 어떻게해서든 백무선을 개궤할려고 했으나 기점인 백암청년역 부터 대택역 까지만 개궤됐다, 백암청년역 해발 1,430m에서 시작해서 해발 1,710m 북계수역찍고 1,300m를 내려가서 해발 400m 무산역까지 1,000m의 높이차 때문인데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돈이 없어서 개궤를 못했으며 이 지역 특유의 극한기후 때문에 물자 보급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 북한지역정보넷 에서는 위 역 목록에 서술되어 있는 역 이외에 신유평역 (新楡坪驛), 언제역 (堰提驛) 이 더 있다고 나와 있지만 역 위치는 불명이다.
[1] 나치 독일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협공을 당해 패망이 유력해졌고, 일본 제국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참패하면서 해군을 모조리 날려먹어 일본 본토만이 남은 상황이었다.[2] 다만 삼지연선이 무산까지 연장된다면 흥암~무산 구간만 삼지연선에 편입된다.[3] 백암~연암, 연암~상경평, 상경평~연사, 연사~무산[4] 특히 상경평~연사 구간[5] 해발고도 1575m로 한반도에서 표준궤로 건설된 노선상의 역 중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역이다.[6] 해발고도 1,750m 한반도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역이다.[이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로 이설.[이설] [9] 90도 급커브로 유명한 종각 드리프트의 곡선반경이 140R이다.[10] 기점부터 한 정거장까지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