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민성(國民性) 혹은 민족성 (民族性)은 특정한 국민이나 민족의 성질과 특징을 뜻하는 용어로,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다루는 주제이다. 일본에서 '国民性(こくみんせい, 국민성)'이라는 용어를 번역해 한국, 중국으로 유입되어 사용되고 있다.유사한 용어로 시민의식 내지는 민도가 혼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각 문서 참조.
2. 국제관계학에서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다루는 주제이지만, 국제관계학에서도 국민성 개념을 수용한다. 민족주의 국민 국가와 부족 사회는 서로 다른 행동 습성과 단결력을 가질 수밖에 없듯이, 국력 평가에 있어서 국민성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국민성의 존재
국력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질적 성격의 세 가지 인적 요소 가운데서 국민성과 국민의 사기는 합리적 예측이 특히 어려운 것으로 꼽히며, 또한 국제정치적으로 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그리고 가끔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는 국민성의 형성에는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 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떤 국가에서는 다른 국가에서보다 몇 가지 두드러진 지적 · 성격적 특징이 나타나며, 그 국가에서는 이런 특징들이 더 중시된다는 사실 자체다. 그런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면서도 '문화 유형'이라는 인류학적 개념 측면에서 볼 때 특히 (우리에게는) 명백해 보인다.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특한 어떤 정기가 서려 있어 국민 모두가 똑같진 않을지라도 이를 호흡하고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미덕이나 악행에 독특한 색깔과 성격을 줌으로써 똑같은 행동이더라도, 즉 같은 말로 표현되는 행동이라 해도 프랑스인의 감정과 에스파냐인의 감정은 서로 달라진다. 이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역사가 온통 수수께끼가 되어버릴 것이다. 비슷한 주장일 듯한데, 국가라는 존재 그 자체에서 애초 비롯되는 것이든 그 국가의 현재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든 국가 간에 나타나는 차이, 상대적인 위대함과 비천함 등 모든 것과, (크산티푸스 대왕이나 후일 한니발 휘하의 카르타고인들처럼 특정 시점에 위대한 인물의 우연한 영향을 받을 때 뿐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개인이 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며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하게 되는 그 모든 것은 바로 이 정기에서 유래한다.
이런 특징은 각국을 서로 차이 나게 하며 변화에 고도의 원상 회복력을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논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듀이(John Dewey)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칸트와 헤겔은 독일의 철학적 전통의 전형적 사례이며, 데카르트와 볼테르는 프랑스인의 마음을 전형적으로 나타내고, 존 로크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인의 정치 사상을 잘 나타내는 한편, 제임스(William James)와 듀이가 지적 문제에 미국식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철학적 차이는 다만 여러 국가의 모든 사고와 행동에 나타나면서 서로를 명백히 구별해주는 지성적·도덕적 특징을 고도로 추상적·체계적으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이견을 제기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 철학의 기계적 합리성과 체계적 완전성은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와 라신(Jean Racine)의 고전 비극에서도 다시금 나타나고 있으며 자코뱅당의 개혁이 보여준 포악한 합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대체로 특징짓는 학문적 형식주의의 빈약함에서도 또한 이것을 볼 수 있다.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프랑스 정치가들이 탁월하게 활약한 평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도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 프랑스 국민성의 특징을 다시 잘 보여주었다. 반면에 카이사르가 골(Gaul) 사람들을 보고서 그들의 특징으로 지적해낸 지적 호기심은 그 이후에도 프랑스인들의 뚜렷한 특징으로 줄곧 인정되고 있다.
로크의 철학은 마그나 카르타나 합법적 절차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종파심에서처럼 영국인의 개인주의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원칙과 정치적 편의주의 양자를 잘 혼합시킨 에드먼드 버크의 견해에 의하면 영국인들의 정치적 천재성은 19세기의 선거법 개정안과 울시 추기경과 조지 캐닝의 세력 균형 정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타키투스가 말한 것처럼 독일 민족의 정치적·군사적 기질에는 파괴적 성향이 있으며 이는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군대나 빌헬름 2세의 군대, 히틀러의 군대를 보면 쉽게 납득이 가는 애기다. 또한 독일의 외교가 전통적으로 졸렬한 면이 있고 서투르게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점도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부합하는 주장이다. 독일 철학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국가 우위의 사상은 독재정부의 전통, 강한 힘과 의지를 보이는 한 어떤 정권에나 비굴할 정도로 순종하는 국민의 태도, 그에 부수되는 현상으로 국민의 시민적 용기가 부족한 점, 개인적 권리의 부인,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이 성립되지 못한 점 등과 짝이 되어 어울리고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묘사한 미국의 국민성은 1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적절하다. 맹목적이고 독단적인 이상주의와 진리의 척도로서의 성공에 대한 의존 사이에서 미국 실용주의가 우유부단하게 진행되어온 것은 미국의 외교가 한편으로 네 가지 자유와 대서양 헌장, 또 한편으로 '달러 외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온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1권, 339~342p
국력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질적 성격의 세 가지 인적 요소 가운데서 국민성과 국민의 사기는 합리적 예측이 특히 어려운 것으로 꼽히며, 또한 국제정치적으로 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그리고 가끔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는 국민성의 형성에는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 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어떤 국가에서는 다른 국가에서보다 몇 가지 두드러진 지적 · 성격적 특징이 나타나며, 그 국가에서는 이런 특징들이 더 중시된다는 사실 자체다. 그런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면서도 '문화 유형'이라는 인류학적 개념 측면에서 볼 때 특히 (우리에게는) 명백해 보인다.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특한 어떤 정기가 서려 있어 국민 모두가 똑같진 않을지라도 이를 호흡하고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미덕이나 악행에 독특한 색깔과 성격을 줌으로써 똑같은 행동이더라도, 즉 같은 말로 표현되는 행동이라 해도 프랑스인의 감정과 에스파냐인의 감정은 서로 달라진다. 이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역사가 온통 수수께끼가 되어버릴 것이다. 비슷한 주장일 듯한데, 국가라는 존재 그 자체에서 애초 비롯되는 것이든 그 국가의 현재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든 국가 간에 나타나는 차이, 상대적인 위대함과 비천함 등 모든 것과, (크산티푸스 대왕이나 후일 한니발 휘하의 카르타고인들처럼 특정 시점에 위대한 인물의 우연한 영향을 받을 때 뿐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개인이 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며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하게 되는 그 모든 것은 바로 이 정기에서 유래한다.
이런 특징은 각국을 서로 차이 나게 하며 변화에 고도의 원상 회복력을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논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듀이(John Dewey)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칸트와 헤겔은 독일의 철학적 전통의 전형적 사례이며, 데카르트와 볼테르는 프랑스인의 마음을 전형적으로 나타내고, 존 로크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인의 정치 사상을 잘 나타내는 한편, 제임스(William James)와 듀이가 지적 문제에 미국식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철학적 차이는 다만 여러 국가의 모든 사고와 행동에 나타나면서 서로를 명백히 구별해주는 지성적·도덕적 특징을 고도로 추상적·체계적으로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이견을 제기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 철학의 기계적 합리성과 체계적 완전성은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와 라신(Jean Racine)의 고전 비극에서도 다시금 나타나고 있으며 자코뱅당의 개혁이 보여준 포악한 합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대체로 특징짓는 학문적 형식주의의 빈약함에서도 또한 이것을 볼 수 있다.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프랑스 정치가들이 탁월하게 활약한 평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도 논리적으로는 완벽하나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 프랑스 국민성의 특징을 다시 잘 보여주었다. 반면에 카이사르가 골(Gaul) 사람들을 보고서 그들의 특징으로 지적해낸 지적 호기심은 그 이후에도 프랑스인들의 뚜렷한 특징으로 줄곧 인정되고 있다.
로크의 철학은 마그나 카르타나 합법적 절차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종파심에서처럼 영국인의 개인주의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단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원칙과 정치적 편의주의 양자를 잘 혼합시킨 에드먼드 버크의 견해에 의하면 영국인들의 정치적 천재성은 19세기의 선거법 개정안과 울시 추기경과 조지 캐닝의 세력 균형 정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타키투스가 말한 것처럼 독일 민족의 정치적·군사적 기질에는 파괴적 성향이 있으며 이는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군대나 빌헬름 2세의 군대, 히틀러의 군대를 보면 쉽게 납득이 가는 애기다. 또한 독일의 외교가 전통적으로 졸렬한 면이 있고 서투르게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점도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부합하는 주장이다. 독일 철학의 권위주의, 집단주의, 국가 우위의 사상은 독재정부의 전통, 강한 힘과 의지를 보이는 한 어떤 정권에나 비굴할 정도로 순종하는 국민의 태도, 그에 부수되는 현상으로 국민의 시민적 용기가 부족한 점, 개인적 권리의 부인, 정치적 자유주의 전통이 성립되지 못한 점 등과 짝이 되어 어울리고 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묘사한 미국의 국민성은 1세기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적절하다. 맹목적이고 독단적인 이상주의와 진리의 척도로서의 성공에 대한 의존 사이에서 미국 실용주의가 우유부단하게 진행되어온 것은 미국의 외교가 한편으로 네 가지 자유와 대서양 헌장, 또 한편으로 '달러 외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온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1권, 339~342p
3. 근대 동북아에서의 '국민성 담론'의 형성
서구에서 형성된 인민(people)이나 시민(citizen) 개념은 근대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개념은 '국민(國民)'이었다.3.1. 일본에서
민족의 특징에 대한 담론은 근대 서양 열강에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과 동양을 분리하며 최초로 등장하였다. 식민제국의 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인류학 등의 근대적 학문 연구가 이를 뒷받침했다. 사회진화론과 우승열패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국제 사회에서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일본 제국 역시 이러한 담론을 수용하였다.우선 일본은 '네이션(nation)을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국민(國民)' 개념으로 번역하여 들여왔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성이라는 구체적인 단어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근대 독일 민족주의, 그 중에서도 독일 낭만주의와 푈키셔 내셔널리즘(Völkischer Nationalismus) 운동을 통해 등장한 '폴크(Volk)' 개념 및 그 특징을 지칭하는 '폴크스툼(Volkstum)' 개념을[1] 직역해 들여온 것에 가깝다.
일본은 자국민의 바람직한 특징을 정의하기 위해 위해 서구와 일본, 그리고 여타 동양 국가들과 일본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양측 국민적 특질의 공통점 및 차이점과 우열을 추출해냈다. 이 '일본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비롯된 국민성 담론은 1880년대 이래로 욱일승천하던 일본 제국의 기세를 타고 '우수한 특징을 가진 일본인'이라는 자아상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자질을 목록화함과 동시에 텍스트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니토베 이나조가 정립하여 출판한 무사도다. 이는 일본의 정신문화를 서구에 설명하기 위해 기존 사무라이들의 무사도를 선택적으로 재조합한 것이다. 동시에 무사도의 덕목은 일본 내에서도 제국 건설을 위한 군국주의적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 되었다.
서양의 향수 취미는 매우 하등한 것이다. 취미가 깊지 않다. 너무나도 속되다. 그렇지만 일본의 향은 매우 취미가 깊고, 고상하며 속된 것과 거리가 있다. 서양의 향수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원인이 되지만, 일본의 향을 사용하면 인간을 고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 있다. 주로 옷에 나타나는 색으로 그윽하고 고상한 색이 매우 많다. 그 색은 차(茶)의 취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략)일본인이 서양식 옷과 서양요리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서양의 색에 감화되어 일시적으로 일본 특유의 아름다운 색이 쇠퇴하였다.
서양인은 얼굴 전체를 면도하지 않는다. (중략) 일본인이 얼굴 전체를 면도하는 것을 보고 서양인은 종종 야만적이라고 비평하는데 동물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 자가 오히려 야만적이다. 따라서 일본이 면도칼로 면도하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동양에서는 확실히 일본이 가장 청결하다. 가옥은 작아도 청소에 상당히 손이 간다. 좁은 도로가의 작은 가게도 상당한 물을 뿌려가며 먼지를 제거한다. 일반 주택의 경우는 하루에 두세 번 비질을 하고 바람 부는 날에는 걸레질도 두 세 번 한다.
(중략) 그렇다면 서양 제국에 비하여 일본은 과연 청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일본이 더 청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국민성 연구(日本国民性の研究)》 (1926). 이 책은 다이쇼 시대 일본의 여러 지식인들이 공동저술하여 집대성한 서적으로, 일본 국민성 담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 있다. 주로 옷에 나타나는 색으로 그윽하고 고상한 색이 매우 많다. 그 색은 차(茶)의 취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략)일본인이 서양식 옷과 서양요리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서양의 색에 감화되어 일시적으로 일본 특유의 아름다운 색이 쇠퇴하였다.
서양인은 얼굴 전체를 면도하지 않는다. (중략) 일본인이 얼굴 전체를 면도하는 것을 보고 서양인은 종종 야만적이라고 비평하는데 동물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 자가 오히려 야만적이다. 따라서 일본이 면도칼로 면도하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동양에서는 확실히 일본이 가장 청결하다. 가옥은 작아도 청소에 상당히 손이 간다. 좁은 도로가의 작은 가게도 상당한 물을 뿌려가며 먼지를 제거한다. 일반 주택의 경우는 하루에 두세 번 비질을 하고 바람 부는 날에는 걸레질도 두 세 번 한다.
(중략) 그렇다면 서양 제국에 비하여 일본은 과연 청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일본이 더 청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국민성 연구(日本国民性の研究)》 (1926). 이 책은 다이쇼 시대 일본의 여러 지식인들이 공동저술하여 집대성한 서적으로, 일본 국민성 담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여느 근대성이 그러하듯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적인 비교를 통해 타자를 거울 삼아 자신의 상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특정한 집단을 두고 그들의 우수한 특질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와 대비되는 대조군을 설정하고 그들의 열등한 특질이 무엇인지도 필연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그 비교 대상은 그들이 내재화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철저하게 관계를 부정하였던 존재이자, 자체적인 근대화에 실패하였던 이웃 아시아 국가인 한국과 중국이었다. 두 국가의 민족적 특징은 일본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나아가 일본이 국가적 자신감을 갖춘 후에 비교 대상은 서양으로도 확장된다. 상술한 '일본국민성 연구'에서 볼 수 있듯, 서양과 다른 자잘한 특징들을 취사선택하여 일본 국민의 우월성의 증거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본 국민성 신화는 제국 일본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겼으나, 동시에 경제 대공황과 맞물리면서 쇼와 시대 전반기의 전체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폭주로 이어졌다.
한편으로 미국 역시 태평양 전쟁 당시 적이었던 일본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인류학자들을 동원하여 일본인의 민족성을 연구한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다. 국화와 칼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인론(日本人論)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일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2.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 역시 사회진화론과 국민성 담론을 수입했다.가령 중국의 국민성 담론은 주로 량치차오와 루쉰 등의 문인들을 통해 청일전쟁 이후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한 중국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대두되었으며, 문학과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량치차오의 경우 서구와 일본의 '우수한 국민성'을 받아들여 중국인을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3] 그리고 루쉰의 경우 미국 선교사 아더 스미스가 지어 일본이 번역한 《중국인의 특성(Chinese Charcteristics)》을 탐독하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국민성 담론 역시 서구와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중국 내부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4]
국민성 담론은 일본 식민사학계와 신채호의 한국 민족주의 사학계를 통해 한국에도 들어왔다. 우선 일본인들이 낙인찍은 정체성론(停滯性論), 열등한 조선인론이 정책적으로 조장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의 식민권력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 제국의 2등 시민으로서 조선인의 국민성은 일본인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규정되었다.
반대로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민족주의 사학계는 일본 식민권력을 타도하고 한국인 스스로의 정치권력을 되찾기 위한 정신적 동력을 마련해야 했다. 때문에 신채호는 중국에서 량치차오, 일본에서 니토베 이나조가 그러했듯 한국인의 바람직한 국민성으로서 상무정신을 강조했으며, 화랑도를 그 표상으로 제시하였다.
계몽운동에서는 국권상실 원인의 하나로 국민의 우매함이나 민중의 나태, 무사안일, 사대주의 습성 등과 같은 '민족성'을 들기도 하였다. 흔히 일반 인민들이 국권상실의 허물을 정부 당국자에게 돌리는데, 비록 정부가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일반 인민들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한 박은식은 우리나라 국민의 생활 빈곤을 지적하였고, 그 빈곤은 "우리 동포 형제가 안일태타安逸怠惰의 습관으로 근면 노력하지 않은 연고"라고 하였다.
김도형, 『국권과 문명』, 172p
김도형, 『국권과 문명』, 172p
신민회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은 신사상 고취를 통해 국민의 습관을 고치는 사업이었다. 안창호가 강조하던 인격수양론이었다. 안창호는 실력양성을 위한 계몽운동은 개인적인 인격 수양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일환으로 그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였다(1909년 8월). 청년학우회는 신민회의 공개적인 표면 단체였다. 인격 수양을 위해 무실務實(실질에 힘쓰는 것,) 역행力行(힘써 행하는 것), 자강自強, 충실忠實, 근면勤勉, 정제整齊(정돈되고 가지런함), 용감勇敢 등의 7대 덕목을 강조하였다.
김도형, 『국권과 문명』, 114~115p
김도형, 『국권과 문명』, 114~115p
안창호는 이전의 계몽운동과 차원을 달리하는 운동을 구상, 실천하였다. 그 출발은 개인의 인격 수양과 '민족성 개량'이었다. 그가 이런 구상을 더 분명하게 한 것은 망명 초기에 겪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일본의 강제 병합 전후에 여러 인사들이 해외 망명길에 오르면서 앞으로의 여러 방안을 협의하게 되었다. 이른바 '청도 회의'와 '해삼위 회의'였다. 그런데 이 회의는 결렬되었고, 안창호는 그 결렬 원인이 지방 사이의 다툼에 있다고 파악하였다. 그는
이러고 보니 아무리 하여도 근본 문제는 우리 민족성이 잘못된 탓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니까 그 일이 오래 걸려서 다른 일이 늦더라도 우리 민족성 개량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혁명 사업이 우리 아들 대에 못 되면 손자 대에 된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성부터 개량하지 않고 이 민족을 그냥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그러니까 이번에 미국에 건너가면 민족성 개량 운동 단체를 조직해야겠다.
안도산전서, 1963, 118쪽
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민족성 개량을 독립운동의 시작으로 삼게 되었고, 민족의 품질과 민족성을 독립의 최우선 요건으로 삼게 되었다. 민족성 개량을 위한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미국에 가서 바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안창호가 개인의 인격 수양을 기반으로 실력을 양성해 간 방법은 강점 이전부터 실천하던 것이었다. 신민회를 만들고, 그 표면단체인 청년학우회나 대성학교를 통한 활동 방안이었다. 대성학교는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장래 항일투쟁의 투사를 양성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면서, 애국자를 키우고자 "성실을 근본으로 하는 건전한 인격을 가장 힘주어 훈련"하기 위한 학교였다. 또 청년학우회는 "청년 운동은 진실을 숭상하고 언변보다는 실행을 형용보다는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이상과 목적을 책임 있게 실행할 능력과 정신을 기르기 위한 단체로, 무실務實 · 역행力行 · 자강自強 · 충실忠實 · 근면勤勉 · 정제整齊 · 용감勇敢 등의 7대 덕목을 제시하였다.
흥사단과 청년학우회는 사실상 하나의 단체였다. 흥사단의 4대 강령은 청년학우회의 7대 덕목을 줄여서 정리한 것이었다. 곧 무실역행務實力行, 충의용감忠義勇敢이라는 개인의 행동강령이 그러하였다.
(중략)
안창호는 흥사단 뿐 아니라 미주 지역에서 기회 있는 대로 자신의 운동론을 피력하였다. 그는 항상 힘을 기르려면 먼저 윤리적으로 건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대한민족을 참으로 건질 뜻이 있으면, 그 건지는 법을 멀리 구하지 말고, 먼저 우리의 가장 큰 원수가 되는 속임을 버리고 각 개인의 가슴 가운데 진실과 정직을 모셔야 한다"고 하였다. 곧, 자기 개조의 핵심은 '개인의 건전한 인격 양성'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인격 수양과 더불어 안창호는 개인적으로 학력과 지식의 축적, 그리고 단결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애국적 선구자들이 자기 수양에 힘써 역량을 키우고 민중의 모범이 될 것, 둘째, 그러한 동지들이 굳게 단결하여 힘을 더욱 크게 할 것, 셋째, 그 힘으로 교육과 산업 진흥에 전력하여 전민족적 역량을 준비할 것 등이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올 독립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주적인 역량으로 민족 재생의 큰 사업을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이 방안이 안창호가 일찍이 한말 계몽운동에 참여한 이후, '시종일관'하였던 "구국 방안이요 평생 신조"였다.
김도형, 『국권과 문명』, 399-402p
이러고 보니 아무리 하여도 근본 문제는 우리 민족성이 잘못된 탓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니까 그 일이 오래 걸려서 다른 일이 늦더라도 우리 민족성 개량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혁명 사업이 우리 아들 대에 못 되면 손자 대에 된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성부터 개량하지 않고 이 민족을 그냥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그러니까 이번에 미국에 건너가면 민족성 개량 운동 단체를 조직해야겠다.
안도산전서, 1963, 118쪽
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민족성 개량을 독립운동의 시작으로 삼게 되었고, 민족의 품질과 민족성을 독립의 최우선 요건으로 삼게 되었다. 민족성 개량을 위한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미국에 가서 바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안창호가 개인의 인격 수양을 기반으로 실력을 양성해 간 방법은 강점 이전부터 실천하던 것이었다. 신민회를 만들고, 그 표면단체인 청년학우회나 대성학교를 통한 활동 방안이었다. 대성학교는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장래 항일투쟁의 투사를 양성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면서, 애국자를 키우고자 "성실을 근본으로 하는 건전한 인격을 가장 힘주어 훈련"하기 위한 학교였다. 또 청년학우회는 "청년 운동은 진실을 숭상하고 언변보다는 실행을 형용보다는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이상과 목적을 책임 있게 실행할 능력과 정신을 기르기 위한 단체로, 무실務實 · 역행力行 · 자강自強 · 충실忠實 · 근면勤勉 · 정제整齊 · 용감勇敢 등의 7대 덕목을 제시하였다.
흥사단과 청년학우회는 사실상 하나의 단체였다. 흥사단의 4대 강령은 청년학우회의 7대 덕목을 줄여서 정리한 것이었다. 곧 무실역행務實力行, 충의용감忠義勇敢이라는 개인의 행동강령이 그러하였다.
(중략)
안창호는 흥사단 뿐 아니라 미주 지역에서 기회 있는 대로 자신의 운동론을 피력하였다. 그는 항상 힘을 기르려면 먼저 윤리적으로 건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대한민족을 참으로 건질 뜻이 있으면, 그 건지는 법을 멀리 구하지 말고, 먼저 우리의 가장 큰 원수가 되는 속임을 버리고 각 개인의 가슴 가운데 진실과 정직을 모셔야 한다"고 하였다. 곧, 자기 개조의 핵심은 '개인의 건전한 인격 양성'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인격 수양과 더불어 안창호는 개인적으로 학력과 지식의 축적, 그리고 단결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애국적 선구자들이 자기 수양에 힘써 역량을 키우고 민중의 모범이 될 것, 둘째, 그러한 동지들이 굳게 단결하여 힘을 더욱 크게 할 것, 셋째, 그 힘으로 교육과 산업 진흥에 전력하여 전민족적 역량을 준비할 것 등이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올 독립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주적인 역량으로 민족 재생의 큰 사업을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이 방안이 안창호가 일찍이 한말 계몽운동에 참여한 이후, '시종일관'하였던 "구국 방안이요 평생 신조"였다.
김도형, 『국권과 문명』, 399-402p
독립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양상은 식민지 시기와는 또 달랐다. 냉전의 첨병에 선 분단국가로서 공산권에 침략에 맞선 전시동원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집약적인 산업화를 이룩하여야 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일종의 관제학문인 국민윤리학(國民倫理學)을 제정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국민상을 끊임없이 교육하였다.
한중일은 시대적 환경과 수요에 따라 사회진화론의 세례를 받으면서 더불어 민족주의·계몽주의를 수용하게 되었고, 그 영향 속에서 국민성담론, 나아가 국혼론을 전개했다. 이 사유흐름 속에서 이상적 국민성을 모색하며 특히 상무정신을 고취하고자 했고, 이때 그 표상으로서 무사도·화랑도를 수립하고자 했다. 무사도·화랑도는 한중일이 19세기 들어 서구와 충돌하면서 전환 또는 위기의 국면을 맞아,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부터 들여오는 상황에서 이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들의 해답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최형욱,[5] 니토베 이나조·량치차오·신채호의 무사도·화랑도 수립 비교 연구
최형욱,[5] 니토베 이나조·량치차오·신채호의 무사도·화랑도 수립 비교 연구
정리하자면, 근대 한중일의 사상가들은 자국 국민의 소위 '부정적' 속성을 제거하고 긍정적 속성을 강화함으로써 서세동점의 대외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긍정적 속성이라 함은 바로 상무정신이었다. 그들은 무사도와 화랑도를 통해 하향식으로 전 국민에게 상무정신을 계몽시키고, 이것이 강인함과 애국심, 희생정신 등과 결합하여 국혼(國魂)/국민혼(國民魂)으로 발현되기를 바랬다.
다시 말해 근대 한중일 삼국의 국민성 담론은 모두 국가라는 틀에 속하는 사람들을 국민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 그 속성을 정의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는 각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녹아들어 있다. 동시에 일본의 사례와 같이 각국의 국민성을 이항대립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차이점과 우열 관계를 공고화하는 모습 역시 나타났다.
3.3. 비판 담론
첫째, 국민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모호하고, 사회나 문화영역, 또는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국가라는 개념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가정도 원시사회의 연구에서는 들어맞지만, 산업사회의 실제 인구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지역, 장소, 언어, 종교, 산업, 직업의 지위에 따라 많은 변동이 일어나므로 국민성이 뚜렷한 양상을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국가 내의 편차가 국가간의 편차보다 더 클 수 있다.
둘째로, 국민성의 개념이 적용되는 역사상의 시기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특성은 비교적 지속적일지라도 그것이 가령 사회혁명이나 외국에 의한 점령과 같은 특정 상황하에서 급속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국민성에 대한 실제연구는 방법론적 근거를 둘러싸고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그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으로 통제된 상세한 비교연구에서 시작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직관적 통찰과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국민성의 심리학적 차원과 사회학적 차원을 구별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회학사전》(2000)의 '국민성' 설명
둘째로, 국민성의 개념이 적용되는 역사상의 시기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특성은 비교적 지속적일지라도 그것이 가령 사회혁명이나 외국에 의한 점령과 같은 특정 상황하에서 급속하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국민성에 대한 실제연구는 방법론적 근거를 둘러싸고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그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으로 통제된 상세한 비교연구에서 시작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직관적 통찰과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국민성의 심리학적 차원과 사회학적 차원을 구별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회학사전》(2000)의 '국민성' 설명
1920년대 일본국민성 논의의 특징은 일본, 일본인을 이루는 요소를 광범위하게 발견해 내고, 이를 아카데미즘의 권위를 이용하여 ‘연구’ 혹은 ‘해부’하는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문명․문화를 절대화하는 논리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국민성 논의가 내셔널리즘과 더욱 강하게 결탁하는 경향 또한 두드러진다.
1920년대 일본국민성론을 집약하고 있는 일본국민성 연구나 일본국민성 해부는 서양이나 아시아와의 ‘차이’를 부각시켜 ‘일본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강화․확산시키는 역할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아시아와의 대립구도보다는 ‘일본 대 서양’이라는 인식의 틀이 주로 사용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것은 동시기 ‘조선인론’이나 ‘중국인론’에서 보여주었던 ‘서양=일본 대 동양≠일본’이라는 인식의 틀과 대비를 이룬다.
그 이유는 서구와 대등한 일본, 더 나아가 서구를 능가하는 우월한 일본이라는 ‘상상의 정치공동체’를 자명한 실체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일본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확산시켜갈 필요성이 1920년대에 이르러 더욱 요청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서양이나 일본, 아시아 각국의 장단점을 구분하는 일은 이미 ‘근대’라는 절대적 가치에 의해 얼마든지 가치전도될 수 있는 매우 ‘자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노정하는 역설을 낳게 된다.
손지연.[6] (2012). 1920년대 일본국민성 담론의 유형과 전개 양상 - 『일본국민성 연구』・『일본국민성 해부』를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 57, 291-314.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우수한 국민성과 열등한 민족성을 구분하여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국민성 담론이 이용되었기에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으며, 포스트 모더니즘 관점에서는 아예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상된 공동체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기도 한다.1920년대 일본국민성론을 집약하고 있는 일본국민성 연구나 일본국민성 해부는 서양이나 아시아와의 ‘차이’를 부각시켜 ‘일본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강화․확산시키는 역할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아시아와의 대립구도보다는 ‘일본 대 서양’이라는 인식의 틀이 주로 사용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것은 동시기 ‘조선인론’이나 ‘중국인론’에서 보여주었던 ‘서양=일본 대 동양≠일본’이라는 인식의 틀과 대비를 이룬다.
그 이유는 서구와 대등한 일본, 더 나아가 서구를 능가하는 우월한 일본이라는 ‘상상의 정치공동체’를 자명한 실체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일본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확산시켜갈 필요성이 1920년대에 이르러 더욱 요청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서양이나 일본, 아시아 각국의 장단점을 구분하는 일은 이미 ‘근대’라는 절대적 가치에 의해 얼마든지 가치전도될 수 있는 매우 ‘자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노정하는 역설을 낳게 된다.
손지연.[6] (2012). 1920년대 일본국민성 담론의 유형과 전개 양상 - 『일본국민성 연구』・『일본국민성 해부』를 중심으로 -. 일본어문학, 57, 291-314.
국민의 특징이나 수준이라는 의미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풍속적인 특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단어는 근대적 국민국가(nation state) 수립의 전제조건으로써 그 국민이 갖추어야 할 정치의식을 지칭한다. 이는 국민이라는 단어의 특징에 기인한다. 인민이나 민족, 시민은 국가에 선행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국민'은 다르다. 국민은 어떤 영토 위에 조직화된 주민을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다. 때문에 충북대의 한승연 교수는 국민은 국가에 선행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동아시아의 국민 담론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계 스위스인 정치학자 요한 카스파르 블룬트슐리(Johann Kaspar Bluntschli)가 정의한 개념으로 돌아가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블룬트슐리는 저서 '일반국법학'에서 국가(Staat)를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국민성(Völkerschaft)을 갖춘 집단으로 규정한다. 일정한 국토를 갖고 국민이 일치단결하고, 통치자와 피치자 또는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 있다. 블룬트슐리는 마지막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신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과 같은 유기적 본질(ein organisches Wesen)을 가진다고 설명한다.[7]
다시 말해 국가라는 하나의 유기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 가진 성질이 국민성이라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관점에서 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며, 수많은 다양성들을 획일화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전체주의의 위험성이 수많은 피를 대가로 증명되고 탈식민주의가 대두되자 국민성 개념 역시 학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폐기되었다.
그러나 우수한 민족과 열등한 민족을 평가하는 제국주의 관점을 떠나서, 다른 민족과 국가간의 문화적 차이가 실제로 존재하고, 이것이 사회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확인할 수도 있기에, 민족과 국가 간에 문화적 차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도 역시 문제가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관점의 지나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다른 민족과 국민을 존중하기는 커녕, 오히려 다른 민족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화적 차이를 무시해버리고 서구적 가치관만을 일괄적으로 강요하면서, 획일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끼워 맞춘다는 비판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족성과 국민성을 해체하면서 사회의 공동체를 허물어 버리고 개인을 원자화, 파편화하여 단절시키고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국민성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 있고, 서로 다른 국민성의 차이를 인식하되 그것을 우열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 관점도 있다.
3.4. 현황
그러나 국민성 담론은 한중일 삼국의 일반사회에서는 여전히 널리 통용되고 있다. 가령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인론이 아직도 활발히 논의되며, 여전히 '국민성'을 시민의식의 의미로 사용한다. 가령 일본 정부기관인 문부과학성은 국체 회복 직후인 1953년부터[8] 5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일본의 국민성 수준을 조사하고 있다. 그 조사 내용에는 일본인의 성격에 대한 정의와 서양과의 국민성 우열 비교 등이[9] 여전히 포함된다. 이러한 담론의 기저에는 일본인의 특수한 국민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뿌리박고 있다.'세 나라의 국민성을 비교해 달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국민성이란 자칫 위험한 개념으로 편견이나 일방적 몰아붙이기로 연결되기 쉽다. 일반적인 이미지와 실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일본과 중국은 크게 다르며, 한국은 그 중간 정도'라는 견해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일한중 세 나라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의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예스'로 생각했더니 틀렸다. '노'이면, 그렇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인이 "나는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초면인 사람한테 딱 부러지게 '노'라고 말하는 결례를 피하느라 중국은 '연구하겠다'고 한다"는 설명이었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尚史), 칼럼 《일본 외교관이 본 한국과 중국》에서.
물론 위 미치가미 원장의 칼럼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지식인들 중에서는 일본 사회의 국민과 국민성 담론 광풍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 역시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일본 정치학자 히라노 겐이치로는 국민성을 두고 '근거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일한중 세 나라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의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예스'로 생각했더니 틀렸다. '노'이면, 그렇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인이 "나는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초면인 사람한테 딱 부러지게 '노'라고 말하는 결례를 피하느라 중국은 '연구하겠다'고 한다"는 설명이었다.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尚史), 칼럼 《일본 외교관이 본 한국과 중국》에서.
한국에서는 정부 차원의 국민성 조사는 하고 있지 않다. 독재정권이 제정한 전체주의적인 국민윤리학은 민주화 이래 많은 비판을 받고 폐지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대신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의식을 의미하는 시민의식 개념이 들어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10] 하지만 한국 사회 역시 국민성 담론의 잔영이 전반적으로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며, 특히 선진국과 후진국을 이항대립적으로 비교하는 담론에 엮여 언급되는 경우가 잦다. 이는 근대 시기 문명국과 야만국을 나누고 그 국민성의 우열을 비교하던 풍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국민성 관련 주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된 화두로 떠오른다. 넷상의 유머 인기글 중 일부와 유튜브의 사이버 렉카들은 '유머' 내지는 '팩트'라는 미명 하에 자의적인 잣대를 설정하고 개별 사례를 선택적으로 재조합하여 특정 국가 국민의 국민성과 시민의식이 이러저러하다는 신화를 창출한다. 이러한 국민성의 정의 방식은 상기 문단에서 인용한 사회학사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저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써 그들은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한다.
이렇게 생산된 객관적인 척하는 정보들은 다시 이를 퍼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전파된다. 또한 댓글을 통해서 편견에 부합하는 개인적인 경험들이 공유되면서 근거를 부여,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통제된 교류의 과정을 통해, 이 담론은 점차 실체를 얻는다. 이렇게 규정된 특징은 일견 특정 국민과 민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처럼 보이나, 표준화될 수 없는 것을 표준화시킴으로써 그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은 배제한다는 점에서 몰이해로 이어진다.
검색 사이트에서 ‘국민성’(nationality 혹은 national character)을 치면 ‘한 국가의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이라는 그럴 듯한 정의가 튀어나온다. 무엇이든 검색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서글픈 세상이지만,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 개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본격적인 이민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이나 일본처럼 비교적 동질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에도 지금은 서로 다른 인종, 언어, 생활 습관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같은 땅에서 북적이고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다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제자들은 일본인이고, 지구 반대편의 동료와 함께 연구하기도 한다. 나라가 같다고 행동 양식도 같다고 전제하는 사고 방식은 이런 다양하고 ‘잡종적’인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차별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사실 국민성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중반 인류학에서 탄생하고 성립했다. 이후에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허점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많은 인류학자들이 자기 반성적으로 이 논의에 참여했다. 이런 성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인류학에서는 국민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의식이 존재한다. 국민성 개념을 여과없이 채용한 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인류학 저널에 게재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2021년 3월 17일 한국일보 취재기사 '한국인은 이렇고, 일본인은 저렇다?... 당신은 ‘국민성’을 얼마나 믿는가' 에서.
정리하자면, 국민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국가라는 틀 속에서 수많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의 개성과 특징을 국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획일화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국민성을 정립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행위이며, 각국의 국민성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이항대립에 기반한 일종의 선악 구분이다. 이는 국가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공식적으로 규정짓던,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습득한 경험 및 지식을 바탕으로 규정짓건 마찬가지다.사실 국민성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중반 인류학에서 탄생하고 성립했다. 이후에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허점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많은 인류학자들이 자기 반성적으로 이 논의에 참여했다. 이런 성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인류학에서는 국민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의식이 존재한다. 국민성 개념을 여과없이 채용한 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인류학 저널에 게재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2021년 3월 17일 한국일보 취재기사 '한국인은 이렇고, 일본인은 저렇다?... 당신은 ‘국민성’을 얼마나 믿는가' 에서.
20세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민성이라는 신화는 편견을 양산할 수 있으며 국민이라는 간단한 정의만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이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4. 관련 문서
[1] 또는 푈커샤프트(Völkerschaft)[2] 특히 그는 일본 유학 경험을 계기로 중국인들의 국민성에 상무정신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체력단련과 담력 배양을 통해 상무정신을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崔亨旭. (2016). 량치차오의 尙武精神論 탐구. 중국어문학논집, (96), 257-285.)[4] 차태근. (2008). 량치차오(梁啓超)와 중국 국민성 담론 ― 국민성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중국현대문학, 45(0), 1-34.[5]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6]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7] 한승연. (2011). 일제시대 근대 '국민' 개념 형성과정 연구. 정부학연구, 17(1), 57-107.[8] 정확히는 그 산하의 통계수리연구소 소속 국민성조사위원회가 담당한다.[9] 전후복구기인 1960년대 이래로 일본인들은 자국민들이 서양보다 우수한 국민성을 가졌다고 믿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이이범. (2004). 전후 일본인들의 가치관 변화에 관한 고찰-일본인의 국민성연구결과를 중심으로-. 日本學硏究, 15, 37-66.)[10] 통계청에 따르면 시민의식의 8개 덕목은 다음과 같다: ① 선거 시 반드시 투표에 참여한다 ②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한다 ③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 ④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⑤ 사회 또는 정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⑥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한다 ⑦ 조금 비싸더라도 윤리적이거나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상품을 구매한다 ⑧ 국가위기시 기꺼이 군복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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