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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30 21:54:58

민족개조론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안창호/사상 및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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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30066> 일생 생애
가족 배우자 이혜련 · 장남 안필립 · 장녀 안수산 · 동서 김창세
사상 민족개조론
성향 사회민주주의
사건사고 수양동우회 사건
관련 단체 신민회 · 대한민국 임시정부 · 흥사단 · 독립협회 · 한국독립당 · 국민대표회의 · 대한인국민회
기타 연통제 · 도산공원 · 대성학교 · 도산안창호급 잠수함(KSS-III Bat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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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안창호의 이념3. 이광수의 이념
3.1. 내용3.2. 안창호의 민족개조론과의 비교

1. 개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주장으로 안창호의 것과 이광수의 것이 있다.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둘은 큰 차이가 있다.

2. 안창호의 이념

독립을 위해선 민족 개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아래의 이광수가 주장한 내용과는 논점이 전혀 다른 주장이다. 안창호의 경우는 민족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까지도 변화해야한다는 사상이었고, 당연히 독립이 목적이었다. 관련 자료

안창호는 자치론을 적극적으로 배격하고 무장 독립을 지지한 독립 운동가였는데 이광수는 안창호 전기를 쓸 때 이 부분은 은폐하였고 이 때문에 안창호의 이미지는 굉장히 왜곡되어서 부당한 인식을 받기도 했다.[1]

다음은 도산 안창호가 1919년 상해 북경로(베이징로) 예배당에서 자아혁신과 민족개조를 연설한 내용이다.
구주(유럽) 대전이 휴전되자 이곳에서 기(期)치 않고 이와 같이 일석(一席)에 상면을 얻게 됨을 무한 기뻐하는 바입니다. 우리 민족의 수는 2천만, 우리 민족의 역사는 4천여 년, 국토는 3천리, 전 세계의 국별(國別)로 비해 본다면 적은 수도 아니요 작은 국토도 아닙니다. 역사로는 동양에서 제2입니다. 이런 오랜 역사에는 찬란한 페이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경술 국치로 금일 이 비참한 이 환경 속에서 신음하게 된 그 원인은 무엇이냐? 우리는 고요한 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우선 이조 5백년 역사는 당파 싸움의 역사입니다. 나라 일을 위하여서 하는 당파 싸움이면 나라가 망할 수 없겠지요마는, 당파만을 위하는 사리사욕뿐이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요, 정권을 탐내는 목적이 적의 당파를 섬멸하고 국가를 당파의 난중물(亂中物)로 만들려고 하는 데 보십시오! 이조 초기에는 불교에 대한 유교의 파쟁이니, 이것은 세종·세조에 격렬하다가 중종·명종에 이르러 유교의 독단으로 끝을 막고, 이 파쟁으로 약해진 국력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유치하였고, 중종 때부터 이른바 사화(士禍)란 것으로 발단한, 같은 유교도끼리의 동서 노소 남북의 추한 투쟁은 이씨 5백년을 끝막아버리고 말았소. 그들은 오직 당쟁에만 눈이 벌개서 교육도 산업도 치산치수도 다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적을 죽이고 저를 보전하기에만 전력하였소.

대신은 이름만 대신이지, 대신 자리에서 나라일은 생각하지 않고 국가와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만 하였으니 "연이(然而)코 불망자미지유야(不亡者米之有也)"가 아니고 무엇이리오.

이조말 갑신(甲申)에는 김옥균 등의 독립당과 민씨족의 사대당이 싸웠고, 또 청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청파, 노일전쟁 당시에는 친일파와 친로파의 당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한 이조 5백년 역사는 공담공론의 역사이었습니다. 입으로는 수신제가하며 치국평천하라는 등 허장성세의 호언장담으로 천하 영웅같이 생각하고 공담공론에 수종되는 부산물은 오직 쟁론과 모해밖에 없었습니다.

실천 없는 이론은 먹을 수 없는 양식과 같습니다. 우리는 5백년래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말만 하고 그 일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마치 소에게 무엇을 먹여야 가장 좋다는 토론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소를 굶겨 죽였습니다. 풀 한짐 베어다 먹이는 것이 백(百)의 이론보다 나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독립 운동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남을 비판하기만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자비(自非)를 식(飾)하고 타인에게는 책(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으니까 책임이 없습니다. 또 제게는 잘못이 있더라도 꾸며 버립니다. 남은 애써 했더라도 왜 더 잘 못하였느냐고, 그렇게 해서 쓰겠느냐고 가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과는 다 무슨 일을 한다는 남들에게 있다고 보고, 저는 권외에서 험담이나 하는 사람으로 압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조 5백년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위대한 유산이 적고, 오직 갑론을박뿐으로 협조를 모르고 음해뿐이요, 찬양을 모르고 훼손뿐이요, 동족상반(同族相反), 골육상쟁, 산비(酸鼻)할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렇다 할 건물이나 토목 공사 하나 크게 자랑할 것이 없지 아니합니까? 그리고 우리 2천만 동포는 거의 책임을 모르고 저의 입장을 망각하는데 큰 두통거리입니다.

여러분! 망국의 책임자가 누구요? 언필칭 우리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을 이완용·이용구라고 하지요. 우리 2천만 대한 국민 속에는 네나 내나 죄다 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완용·이용구로 하여금 나라를 팔게 한 것이 우리 국민이니 나를 뺀 국민이 어디 있소! 그런데 우리는 일본을 원망하고, 이완용을 원망하고, 우리 국민의 무기력함을 원망하고, 심지어 우리 조상을 원망하고, 선배를 원망하였으나, 일찍 한번도 나 자신을 원망한 일은 없었소. 마치 망국의 모든 죄는 다 남에게 있고 나 하나만이 무죄한 피고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책임 전가가 아니고 무엇이오!

​가령 어떤 집이 하나 있고 그 집에 주인도 있고 나그네나 고용인이 있다고 하면, 그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주인은 그 집이 제 집이므로 그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 힘 쓸 것이요, 나그네나 고용인은 그것은 제 집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편안할 것만 생각하지 그 집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묻노니 우리 2천만 민족에는 우리 나라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이가 많은가요? 나그네나 고용인으로 자처하는 이가 많은가요? 제 집을 아끼고 사랑하고 제 집이 잘 되기 위하여 힘드는 줄 모르고 일하듯이 제 나라를 위하여서 정성과 힘을 다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우리 민족 중에는 주인이 극히 많다고 생각하오

이완용은 3천리를 제 집으로 생각하고 그 천만대 후손을 제 식구로 생각하였을까요? 이완용은 제가 한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였을까요? 제가 주인이라고 생각하였던들 이완용은 결코 합병조약에 도장을 아니 찍었을 것이요. 만일 일본인이 이완용의 가대(家垈)와 전토(田土)와 자녀를 일본인에게 바치는 도장을 찍으라 하였다면, 아마 그는 죽어도 아니 찍었을 것이요.

그는 아직 대한 황제의 나라, 또 2천만 민족의 나라를 팔아서 제 집 하나만을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었다고 생각하오. 마치 고용인이 주인 집 가산을 팔아서 제 재산을 만드는 심리와 같은 심리라고 생각하오. 우리 나라에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이 이완용 하나뿐일까요? 나라를 제 것으로 알고 제가 나라의 주인으로 알지 아니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완용 모양으로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이완용이 한번 나라를 팔아먹은 뒤에는 다시는 나라를 파는 사람이 없나요? 또는 아직도 있나요? 나는 적은 규모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은 날마다 수없이 있다고 생각하오. 예를 들면 상해가상(上海街上)에서 중국인 인력거에게 차세(車貰)를 적게 주어 한인(韓人)을 원망케 하는 것도 매국적이라 생각하오. 그는 한인 전체를 미워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나라의 주인은 누구요?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인은 누구요? 대통령, 대통령의 주인은 누구요? 대한민국, 우리 2천만 민족 대한 국민, 우리 2천만 민족은 누구요? 우리들 모두. 우리들 모두란 누구요? "대한민국아 나서라."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예" 하고 나갈 자가 누구요? 나는 "나 안창호." 라고 대답할 것이요. 여러분도 각자 "나외다, 나외다." 할 것이니, 우리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저마다 다 대한 국민이요, 저마다 대한의 주인이요, 대한민국 정부의 주인이요.

대통령은 우리가 뽑아서 우리의 대표로 우리의 지도자로 내세웠고, 우리는 그에게 이러한 법률에 의하여 이러한 일을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는 "그리 하마." 하고 약속하였소.

그 '우리'라는 것은 곧 '나'요. '우리'라는 말이 심히 좋은 말이거니와 이 말을 책임 전가나 책임 회피에 이용하는 것은 비천한 일이요. 책임에 대하여서는 "우리 것이다." 하는 것이 도덕에 맞는 언행이라고 하오. 그러면 대통령은 우리의 법과 우리의 여론에 복종하고, 나는 대통령의 명령과 지도에 복종하오. 우리라 할 적의 '우리'는 대통령보다 높고, 나일 적의 '나'는 대통령보다 낮다고 생각하오. 우리 대통령으로는 우리가 감시하고, 내 대통령으로는 내가 경애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금일 경술 국치에 대하여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러면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요? 그것은 다 나 자신이요.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조아(爪牙)를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매국을 용허하였나.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요.

우리 민족 각자가 한국은 내 것이요. 한국을 망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는 것이 내게 달렸다고 자각하는 때에 비로소 민족의 부흥의 여명이 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국치의 금일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 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마 나 때문이로군 하고, 왜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못하고, 어찌하여 그놈이 죽일 놈이고, 저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현재 전 세계에서 영·미인이 가장 우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거니와, 이 우월한 국민성은 수양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세상만사 우주의 모든 현상은 다 정확한 인과 관계의 지배를 받는 것이므로, 영·미인이 탁월한 지위를 가진 것이나 우리 민족이 비천한 처지에 있는 것이나 다 인과 관계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사는 남과 못사는 우리를 비교하면 우리의 진로가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우리 동포들은 자연계의 인과는 아니 믿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인사(人事)의 인과는 잘 믿지 아니하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요, 가령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고. 또 거름을 준 벼는 아니 준 벼보다 많이 나고, 김을 세벌을 맨 논은 두벌을 맨 데보다 소출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믿으면서도, 남은 잘 사는데 저는 못사는 것 같은 것은 그러한 원인에서 오는 필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운수니 요행이니 하여 남이 잘된 것은 요행, 제가 못된 것은 불운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인과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인과를 아니 믿는 사람의 특색은 첫째로 제가 당하는 일의 책임이 제게 있다고 아니하고 혹은 하늘에 혹은 세상에 원망을 돌리는 것이요, 인과를 믿는 사람의 특색은 제가 받는 것은 다 제가 지은 일의 필연한 값이요 갚음이라고 알기 때문에, 제게 불행이 있을 때에는 제 마음과 제 행실을 반성하고 검토하여서 지금 받는 불행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알아내면서 그것을 고치거나 제외하기를 힘쓸 것입니다.

이에 나는 '자아 혁신, 민족 개조'를 부르짖습니다. 진정한 민족 향상은 우선 지도층의 각원(各員)의 자기 개조가 아니고는 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망국한 민족이 그대로 흥국하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러진 집에 썩은 재목으로 새 집을 세우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역사상으로 보더라도 한번 쇠하기 시작한 민족은 부흥의 고개로 거슬러 오름이 없이 멸망의 구렁으로 굴러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현재 상태로는 비약의 가망이 묘연하니 무엇보다 민족 혁신 운동이 시급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민족은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저 영·미 국민만한 정도에 끌어 올려야 우리 나라가 영·미만한 나라가 될 것이니, 민족의 역량은 요만한 채로 국가의 영광은 저만치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여서라도, 그야말로 무슨 짓을 하여서라도 우리 민족의 품격과 역량의 향상을 도모하여야 하겠고, 또한 급속히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우선 상해에 있는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일류 인사들부터 사정없이 냉혹하고 늠연하게 자기를 양심의 법정에 피고로 내세워서, 반성하고 비판하여 '자아 혁신'의 본보기가 되어 재출발합시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이 성(誠)의 인(人)이 되는 것만으로 벌써 민족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성(至誠)의 인이 되지 아니하고, 다만 구설(口舌)과 교지(狡智)를 농하는 것은 결코 국가 민족을 위하는 소이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제가 의술을 학습하지 아니하고 중생의 병을 고치려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애국자가 적지 아니합니다.

그리하여 최후 결론을 이렇게 외칩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하거든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중생의 질고(疾苦)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도산 안창호, 자아혁신과 민족개조, 1919년

3. 이광수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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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개조론 전문
1922년 5월호 월간 잡지 <개벽>에 이광수가 글을 기고했다. 분량은 잡지 기고글이니만큼 컴퓨터로 인쇄해서 읽어도 A4 35장 내외로 짧다. 잡지 기고글치고는 길긴 하지만. 문체도 쉬운 편이라 읽을 만 하다.

그 글은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제2기 '문화 통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자치론자들에게는 좋은 변명거리가 된 글이었으나, 아마도 일제 강점기 당시 이만큼 가루가 되도록 까인 글 또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한번 쭉 읽었다간 그럴싸한데? 하고 낚이게 되는 글. 이광수의 글발이 워낙 좋아 어물쩍 넘어가는 재주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독립을 부정하고 '일제 치하의 자치'를 주장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딱히 없기 때문이다.[2]

3.1. 내용

나는 조선 내에서 이 사상을 처음 전하게 된 것을 무상한 영광으로 알며, 이 귀한 사상을 선각한 위대한 두뇌와 공명한 여러 선배 동지에게[3] 이 기회에 또 한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중략)
조선 민족의 역사에 참고해 보건대, 인은 조선 민족의 근본 성격인 듯합니다. 국제적으로도 일찍 남을 침략해 본 일이 없고, 또 외국인을 심히 애경하는 성질이 있으며, 민족끼리도 잔인 강폭한 행위는 극히 적습니다. 살인 강도 같은 잔인성의 죄악은 현금에도 심히 적다 합니다.
(중략)
조선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중략)
다음에 조선인은 애인(愛人)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처음 대할 때에는 좀 뚝뚝하고 찬 듯하지마는 속마음에는 극히 인정이 많습니다.
(중략)
이제 그 반면인 결점을 보건대, 관대 박애하므로 현대 국민이 가지는 배타적 애국심을 가지기 어려우니, 그러면서 사천 년래 능히 국가를 유지한 것은 그의 자존심과 무용성이 있음이외다. 그의 성(性)이 염결한지라 이민족의 영토를 침략할 야심이 없을뿐더러, 치부지술(致富之術)이 졸(拙)하여 저 삼국 시대를 보더라도 미술의 발달은 당시 세계에 관(冠)이 될 만하면서도 상공업의 발달은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또 예의를 숭상하는 반면은 진정의 유로(流露)를 저애하여 허위에 흐르기 쉬우며, 자존심이 많음은 지도자의 지도에 순종함을 절대 요건으로 하는 공고한 단체의 조직을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그의 낙천적이요 현실적인 본성은 그로 하여금 피안의 낙원을 구하는 종교나 심오한 철학적 사색이나 과학적 탐구에 대한 노력을 경시하게 하였습니다. 조선 민족을 금일의 쇠퇴에 끌은 원인인 허위와 나타와 비사회성과 및 경제적 쇠약과 과학의 부진은 실로 이 근본적 민족성의 반면(半面)이 가져온 화(禍)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민족성, 그것이 악한 것은 아니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천품이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조할 것은 조선 민족의 근본적 성격이 아니요, 르봉 박사의 이른바 부속적 성격이외다. 그러할진댄 우리의 개조운동은 더욱 가능성이 풍부하다 할 것이외다.
(중략)
조선인이 각 개인으로, 또 일 민족으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 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후에야 비로소 그네의 운명을 그네의 의사대로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생길 것이니, 그때에야 동화를 하거나 자치를 하거나 독립을 하거나, 또 세계적 의의를 가진 대혁명을 하거나, 그네의 의지대로 자처할 것이외다.
(중략)
그러면 이 개조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각 사람으로 하여금,
1.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이 없게
2. 공상과 공론은 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실행하게,
3. 표리부동과 반복(反覆)함이 없이 의리와 허락을 철석같이 지키는 충성된 신의 있는 자가 있게,
4. 고식(姑息), 준순(浚巡) 등의 겁나(怯懦)를 버리고 옳은 일, 작정한 일이어든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나가는 자가 되게,
5.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알게,(이상 덕육 방면)
6. 보통 상식을 가지고 일종 이상의 전문학술이나 기예를 배워 반드시 일종 이상의 직업을 가지게, (이상 지육 방면)
7. 근검 저축을 상(尙)하여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가지게, (이상 경제 방면)
8. 가옥, 의식, 도로 등의 청결 등, 위생의 법칙에 합치하는 생활과 일정한 운동으로 건강한 체격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함이니, 이것을 다시 줄여 말하면 덕, 체, 지의 삼육(三育)과 부의 축적. 사회 봉사심의 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민족 중에 이러한 사람이 많게 하자, 그리하여 마침내는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참되고, 부지런하고, 신의 있고, 용기 있고, 사회적 단결력 있고, 평균하게 부유한 민족이 되게 하자 함이외다.
불행히 현재의 조선인은 이와 반대외다. 허위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타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고 임사(臨事)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 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 이런 의미로 보아 이 개조는 조선 민족의 성격을 현재의 상태에서 정반대 방면으로 변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개조주의자의 유일한 주장은 조선인이 제국주의자가 되든지, 민주주의자가 되든지, 또는 자본주의자가 도든지, 노농주의자가 되든지를 물문(勿問)하고, 오직 그 무슨 ‘.......자’ 될 사람의 인성을 개조해야 한다 함이외다. 다시 말하면 현재 조선인의 성격을 개조한 뒤에야 건전한 제국주의자도 될 수 있고, 민주주의자도 될 수 있고, 노농주의자나 자본주의자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이 개조가 없이는 아무 주의자도 될 수 없이 오직 열패자(劣敗者)가 될 뿐이라 함이외다. 신용할 만한 덕행, 직무를 감당할 만한 학식이나 기능, 자기의 의식주를 얻을 만한 직업의 능력, 이런 것이 없이야 무엇이 되겠습니까.
(중략)
최후에 한 가지 미리 변명할 것은 이 개조 운동은 정치적이나 종교적의 어느 주의와도 상관이 없다 함이니, 곧 자본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민주주의, 또는 독립주의, 자치주의, 동화주의, 어느 것에나 속한 것이 아니외다. 개조의 성질이 오직 민족성과 민족생활에만 한하였고, 또 목적하는 사업이 상술한 바와 같이 덕체지(德體知) 삼육의 교육적 사업의 범위에 한한 것인즉 아무 정치적 색채가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있어서는 안될 것이외다.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1. 조선인의 민족성은 근본적으로 보자면 악하지도 않고 좋은 점들이 많다.
2. 그러나 부속적 성격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3. 이를 개조해야 한다.
4. 개조가 되어야, 제국주의자가 되든 민족주의자가 되든 사회주의자가 되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개인 단위에서의 인격적 각성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중요하다.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독립을 부정하고 '일제 치하의 자치'를 주장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없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했고, 다만 개인 단위에서의 인격적 각성을 주장했을 뿐이다.[4] 그러나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이[5] 독립을 전제하고 있는 반면 이광수는 정치적 색채를 완전히 지워버렸으니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인 '독립' 역시 고려되지 않게 된다.

당연히 당시 이 주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안재홍, 이상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홍명희, 허헌 등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자들이 격노했으며, 이후 설립되는 신간회에서 기회주의자를 일체 배격한다는 강령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글 자체로만 보자면 인격적인 각성을 민중에게 추구하는, 일종의 공익 광고(...)에 가까운 거라서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후 이광수의 행보는 <민족개조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깎아먹게 했다. 그는 이후에 친일파로 변절하는데, 훗날 그의 행보를 참고해서 <민족개조론>을 읽으면 배신을 위한 변명에 가깝다. 특히 조선 귀국 후 총독부 아래에서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던 당시의 이광수를 생각한다면,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도덕적 각성'을 바라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각 개인으로, 또 일 민족으로 문명한 생활을 경영할 만한 실력을 가지게 된 후에야 비로소 그네의 운명을 그네의 의사대로 결정할 자격과 능력이 생길 것이니"라는 부분은 어떻게 봐도 자치론을 위한 떡밥 뿌리기에 가깝다. 특히 얼마 안가 이광수가 진짜 자치론의 논리를 담은 문제작 <민족적 경륜>을 기고한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3.2. 안창호의 민족개조론과의 비교

안창호가 주창한 '민족 개조론'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완전히 상반된다.

안창호는 '총체적 구국 개혁 사상의 방략으로 여러 가지 개조론'으로 주장해왔는데, 특히 '민족 독립 국가 수립'이라는 명백한 목표 하에, 근대적인 한국인 양성을 목표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이광수가 주창한 '민족 개조론'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는 인격적 수양을 말한 것이었다. 글 자체는 자치론을 주장하는 부분이 없지만, 변절자들의(그리고 이광수 자신의) 변명으로 쓰기에는 이만한 글도 드물다.

또한 안창호는 각성과 분발을 통해 자기 향상을 촉구함으로써 민족의 독립과 번영이라는 목표와 신념이 있었으나, 이광수는 불변적 요소와 가변적 요소로 나누어 민족을 해석함으로써 자기 비하와 패배주의적인 주장을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건여기#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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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석홍, 안창호, 역사 공간, 2016년 참고[2] 특히 헬조선 같은 자국 혐오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동조하기 쉽다. 21세기 자국 혐오자들의 주장의 근거와 많이 유사하기 때문.[3] 참조 '위대한 두뇌'는 안창호 선생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광수는 자신이 안창호의 사상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에 자신의 색채를 살짝 첨가한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그 살짝이...[4] <민족개조론>에서 '개조'라는 말은 '개인들의 인격적 각성'을 의미한다.[5] 민족 개조라는 말은 안창호가 먼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