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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도

므깃도에서 넘어옴
1. 이스라엘의 유적
1.1. 역사
1.1.1. 중세 (랏준 / 레기오)1.1.2. 오스만 제국: 랏준 산작과 투라바이 가문1.1.3. 근현대: 1차 중동전쟁과 파괴
1.2. 여담
2. 가면라이더 세이버의 괴인3. 여신전생 시리즈의 마법4. 더 로그에 등장하는 마법5. 지구로…에 등장하는 전략병기6. 과학전대 다이나맨의 등장인물7. 스플린터 셀: 컨빅션의 흑막8. 글로리아 유니온의 적 전용 카드9. 데이트 어 라이브에 등장하는 정령 이츠카 코토리의 필살기10. 레이브의 등장인물11. Homestuck의 등장 성씨12.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리무루 템페스트의 기술13. SEGA의 리듬게임 CHUNITHM VERSE의 수록곡

1. 이스라엘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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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81년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벽
העיר העתיקה בירושלים וחומותיה
2001년

마사다
מצדה
2001년

고대 도시 아크레
העיר העתיקה בעכו
2003년

텔 아비브 화이트 시티
- 모더니즘 운동

"העיר הלבנה" של תל אביב, בזכות ריכוז של מאות מבנים בסגנון האדריכלות הבינלאומית במרכז העיר
2005년

성서 텔
: 메기도, 하솔, 베르셰바

תלים מקראיים - שהם דוגמה להתיישבות בארץ ישראל מתקופת הברונזה ומתקופת הברזל: תל באר שבע, תל חצור ותל מגידו
2005년

향교 교역로
- 네게브 지역의 사막 도시
דרך הבשמים - הערים הנבטיות: עבדת, ממשית, חלוצה ושבטה ומספר מצודות וחאנים בנגב
2008년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지역의 바하이교 성지
המקומות הבהאים הקדושים בחיפה ובגליל המערבי
2012년

카르멜 산 인류 진화의 유적지:
나할 메아롯 동굴 ・ 와디 엘 무그하라 동굴
אתרי ההתפתחות האנושית על הר הכרמל: מערות נחל מערות
2014년

유대 저지대의
마레샤와 벧구브린 동굴군
- 동굴 세계의 소우주
מערות בית גוברין ומרשה בגבעות יהודה
2015년

베이트 셰아림의 네크로폴리스
: "유대인의 부활"에 관한 기념비
הנקרופוליס בבית שערים: ציון דרך בהתחדשות יהודית
† : 유네스코에는 이스라엘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요르단이 등재 신청을 했고, 유네스코는 별다른 국가 분류 없이 '예루살렘'이라고만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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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Megiddo
아랍어: مجیدو
히브리어: מגידו
그리스어: Μεγιδδώ/Μαγεδδών
라틴어: Mageddo
이집트어: Maketi/Makitu/Makedo

성경에는 '므깃도'[1] 또는 '므기또'[2]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름의 뜻은 '주둔지'. 이스라엘 북부에 있으며, 나사렛 근처 남서쪽에 위치한다. 여호수아 12장에서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지명으로 최초 등장하며 이후 수많은 교전의 무대로 소개된다. 하르마게돈(아마겟돈)의 어원이 된 도시로 추정된다. 접두사 'har'는 히브리어로 '언덕'을 가리키며, 따라서 아마겟돈은 '메기도 언덕'을 뜻하는 말이 된다. 전근대 시기 팔레스타인 해안 평야와 제즈릴 협곡 (마르즈 이븐 아미르)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1.1. 역사

기록된 인류 최초의 전투로 여겨지는 기원전 1459년의 메기도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곳이다. 투트모세 3세이집트 신왕국군이 카데시 왕국과 미탄니 제국 등으로 구성된 가나안-시리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시리아 남부의 패권을 장악했다. 기원전 609년에는 유다 왕국요시야 왕이 이집트 26왕조의 파라오 네코 2세와 교전하다가 전사한 장소이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유다 왕국은 이집트의 속국이 되어 20여 년 후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하게 된다. 요시야 왕이 신명기 율법에 입각한 종교개혁을 이끌어 유대교의 틀을 갖춘 명군임을 고려하면, 이래저래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 하스몬 왕조기에는 크파르 오트나이로 불렸다.

로마 제국기에는 3차 유대 반란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제6 페라타 군단이 텔 메기도 언덕 남쪽에 배치되며 레기오 (Legio)라 불렸고, 3세기에 군단이 철수한 후에는 도시화되었다. 4세기 초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공동 황제인 막시미아누스를 기리며 막시미아노폴리스 (Maximianopolis)라 명명하기도 했으나 주민들은 계속해서 레기오라 칭했다. 7세기 이슬람 정복 후 레기오는 아랍식 발음인 '알 랏준' 혹은 '엘 렛준' (اللجون)이라 불렸고, 634년 이슬람 제국군이 동로마 제국군을 격파한 아이나딘 전투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우마이야 왕조 ~ 압바스 왕조 시기 랏준은 준드 필라스틴 (팔레스타인 주)의 서북단 도시였고, 이브라힘 (아브라함)이 돌을 내리쳐 만들었다 전해지는 샘과 그 옆에 세워진 모스크가 성지로 여겨졌다. 풍부한 수자원 덕에 도시는 작지만 번영했다.

1.1.1. 중세 (랏준 / 레기오)

940년 압바스 왕조의 튀르크인 장군 이븐 라이크가 이흐시드 왕조의 군주 무함마드 이븐 투그즈의 동생 아부 나스르 후사인이 랏준에서 시리아의 패권을 두고 전투를 벌여 후자가 전사했다.[3] 945년에는 알레포함단 왕조를 통치하는 사이프 앗 다울라가 시리아를 침공해 랏준에서 익시드 군대와 맞섰으나 패해 시리아 북부에 만족했다. 10세기의 지리가 알 무캇다시는 랏준이 팔레스타인의 전방 도시로, 준드 알 우르둔 (요르단 주)에 속한다고 기록했다. 10세기 말엽 일대는 파티마 왕조령이 되었다. 그러다 1099년 1차 십자군이 점령한 후 다시 레기오 혹은 리굼 (Ligum), 르 리옹 (le Lyon) 등으로 불렸고, 카이사레아 영주령에 속했다.

예루살렘 왕국 시기 레기오는 1백의 병력을 제공했고, 자체 시장이 있었으며 나사렛 대주교에 세금을 바쳤다. 본래 도시를 통치하던 드 리옹 가문은 1147년에 단절되었고, 1168년부터 하이파의 영주 파엥이 지배했다. 1182년 아이유브 왕조가 도시를 습격한 후 1187년 살라흐 앗 딘 유수프의 장군 후삼 앗 딘 아므르가 정복하여 아랍 지명인 랏준으로 환원되었다. 1231년 술탄 알 카밀은 랏준에 머물며 딸 아슈라를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켰다. 1241년 아슈켈론 협정으로 아이유브 왕조는 랏준을 포함한 갈릴리 동부를 십자군에 넘겼으나 1263년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이바르스가 점령했고, 1년 후 구호기사단템플기사단이 도시를 기습해 3백여 주민들을 사로잡아 아크레로 돌아갔다. 1283년 십자군 측은 술탄 칼라운과의 협정에서 랏준을 맘루크 령으로 인정했다.

맘루크 시기 랏준은 사파드 주에 속한 16개의 아말 (군) 중 하나였고, 예멘계 아랍 부족이 정착했다. 또한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군사 통신 체계인 바리드의 일부였다. 14세기 후반 기준 랏준은 제즈릴 협곡 (마르즈 이븐 아미르)의 중심 도시였고 여행자들을 위한 큰 카라반사라이, 이브라힘 성지, '술탄의 정자'가 있었다. 15세기 들어 랏준은 요새화되었으나 1516년 오스만 제국군의 남하 시에 히자즈 출신의 현지 하리트 부족장 투라바이 이븐 카라자가 셀림 1세의 향도 및 정찰대 역할을 하며 쉽게 점령되었다. 그 대가로 투라바이는 랏준을 중심으로 한 제즈릴 협곡과 하이파 ~ 카이사레아 해안 및 사마리아 고원 북부의 55개 마을을 영지로 받게 되었고, 투라바이 가문은 (다마스쿠스 에얄레트 산하) 랏준 산작의 산작베이 (태수)를 대대로 역임하며 세금만 조정에 보내며 1세기 이상 자치적으로 통치했다.[4]

1.1.2. 오스만 제국: 랏준 산작과 투라바이 가문

파일:랏준 산작.png 파일:랏준 3.jpg
투라바이 가문의 랏준 산작 랏준의 옛 카라반사라이 및 교량 유적
파일:랏준 1.jpg
1900년경의 건물들

랏준은 계속해서 이집트와 시리아 간의 교통 요충지였다. 1583년 투라바이의 차남 아사프는 체포되어 로도스로 유배되었으나 1589년에 석방된 후 조카 타라바이 빈 알리가 태수가 되었다. 한편 아사프를 사칭하던 아사프 알 카다브는 다마스쿠스로 향해 태수로 인정받으려다 처형되었다. 1596년 기준 인구는 226명이었다. 1601년 타라바이 빈 알리의 사후 그의 아들 아흐마드가 계승, 1657년까지 반세기 넘게 안정적으로 통치했다. 아흐마드는 알리 잔불라트의 반란 진압에서 활약했고, 트리폴리 총독 유수프 사이파를 숨겨주었다. 이후 아흐마드는 가자의 리드완 가문, 예루살렘의 파루크 가문과 함께 레바논 산지파크르 앗 딘 2세와 맞서 1623년 알 아우자 전투에서 승리해 그의 몰락에 기여했다.[5] 1657년 아흐마드의 사후 아들 자인이 계승했으나 1660년에 요절한 후 아흐마드의 동생 무함마드가 계승했다.

아편 중독이던 무함마드는 1671년에 사망했고, 자인의 아들 살리흐가 계승했다가 곧 6촌인 유수프로 대체되었다. 그러다 1677년 오스만 당국은 하리트 부족 대부분이 요르단강 동안으로 이주해 투라바이 가문이 약해지자 유수프를 폐하고 중앙 관료를 태수로 봉했다가 17세기 말엽 아라바의 압둘 하디 가문에게 랏준 산작을 맡겼다. 다만 18세기 초엽 랏준은 나블루스 태수가 실질적으로 징세했고, 랏준 산작의 치소도 동남쪽의 제닌으로 옮겨졌다.[6] 18세기 중반 갈릴리 대부분을 장악한 군벌 자히르 알 우마르는 1771-73년 나블루스 원정 시에 랏준을 공격하며 포격했고, 이로써 도시는 더욱 쇠퇴했다. 18세기 말엽 랏준은 아크레와 나블루스의 성장과 함께 중요성을 잃었고, 19세기 들어 랏준 산작 역시 제닌 산작으로 명명되었다. 동시에 산작의 경계에서 요르단강 동안의 아질룬 산지는 분리되었다.

1.1.3. 근현대: 1차 중동전쟁과 파괴

파일:랏준 유적.png
버려진 랏준 유적
파일:유수프 함단 무덤.jpg
유수프 함단의 무덤

19세기 말엽 랏준은 버려진 카라반사라이와 작은 다리를 지닌 (본래 랏준 주민 일부가 이주해 세운) 움 엘 파흠의 외곽 마을이었고, 주민들은 유적을 활용해 주택을 세웠다. 1차 세계대전 이집트의 영국군이 인근 메기도 언덕에서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하고 팔레스타인으로 진격, 예루살렘과 다마스쿠스에 입성했다. 전후 영국령 팔레스타인 시기 랏준에는 3개의 가문 (하물라)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동쪽, 서쪽, 북쪽에 따로 집을 짓고 살았다. 1931년 기준 인구는 162가구의 857명이었고, 26명의 기독교도와 2명의 유대교도를 포함했다. 1930년대 들어 알 랏준 버스 회사가 설립되어 움 엘 파흠, 하이파, 제닌 등지를 잇는 버스 노선이 생겼다.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 시기 영국의 탄압을 받던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몰려들며 인구는 증가했고, 반란 지도자 중 하나인 유수프 함단 역시 랏준에 묻혔다.

1940년까지 인구는 1100명을 돌파했고, 경찰서가 세워졌다. 1943년에는 동쪽 구바이리야 구역과 알 마하미드 구역에 모스크가 세워졌다. 후자는 4년제 초등학교로도 기능했다. 1945년 기준 랏준의 토지 대부분은 현지 아랍인 소유였다. 농장에서는 밀, 옥수수, 가지, 토마토, 오크라, 수박 등이 생산되었다. 마을들 사이에는 시장과 6개의 제분소가 있었다. 또한 주민들은 양, 소, 염소, 낙타, 말, 노새, 당나귀, 돼지, 닭, 비둘기[7] 등의 가축을 키웠다. 당시 주민 수는 1200명 정도였고 대부분 무슬림이었다.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서 랏준은 아랍 국가에 할당되었고, 1948년 1차 중동전쟁 당시 이라크 군이 배치되어 유대 민병대인 하가나와 이슈브에 맞섰다.

개전 직후 수비대는 하가나와 이슈브의 첫 공세를 격퇴했지만 화력에 밀려 4월 17일에 철수했다. 하가나는 27개의 건물을 폭파했고 주민들을 추방했고, 인근에 남아있던 아랍 군대와 계속해서 전투를 벌인 끝에 5월 30일 랏준을 완전히 점령했다. 전후 이스라엘은 1400명의 팔레스타인인 노약자들을 랏준에 모았다가 제닌으로 추방했고 1949년 키부츠 메깃도를 세웠다. 남아있던 기존 시가지는 모두 파괴된 후 나무가 심어져 숲이 되었다. 모스크를 비롯한 손에 꼽는 수의 건물과 묘지만이 보존되었으나 모스크 역시 2007년에 버려졌다. 20세기 말엽부터 언덕 일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이슬람 시기 유적은 종종 방치나 (더 지하에 있는 고대 유적을 위한) 파괴를 당한다.

1.2. 여담

2. 가면라이더 세이버의 괴인

메기도(가면라이더 세이버) 문서 참조.

3. 여신전생 시리즈의 마법

적 전체에게 만능 속성 피해를 준다. 메기도 계열 항목 참조.

4. 더 로그에 등장하는 마법

환염의 미카엘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으로 한 번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이다. 저주 해제와 마법 해제를 동시에 걸어야 파훼가 되나 마법과 신성 마법이 쇠퇴한 레이펜데나 세계에서는 두 마법을 동시에 쓸 사람이 거의 없다.

갈바니의 도발 덕택에 의식 표면에 등장한 미카엘이 사용하였으며 팔마스폰이기에 이 마법 한 방에 죽지 않는 갈바니를 보고 "오래 타는 장작이라서 좋겠군. 영원히 타나 볼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8]

메타트론이 다스리는 제6천의 불, 번개, 폭풍 중 불을 상징하는 마법으로 메타트론의 근원적인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능력을 이어받은 환염의 미카엘이 위천사 중에 최강이라고. 제6천의 불꽃이라고도 불린다. 너무 강력한 위력에 미카엘도 죽을 때까지 사용은 하지만 완전한 제어는 못 했다고 한다.

미카엘 각성 이후 다시 몸을 되찾은 카이레스도 이 마법을 사용하게 된다. 삭풍의 라파엘과의 최후의 대결에서 완전제어를 하기도.

5. 지구로…에 등장하는 전략병기

원래 행성 개발용 기구였지만 행성 파괴 병기로 개량되어서 나스카 등의 행성에 거주하던 를 절멸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마지막에 지구에 등장해 지구를 부수려 하지만 뮤와 인간들의 협동으로 모두 부서진다.

6. 과학전대 다이나맨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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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플린터 셀: 컨빅션의 흑막

스플린터 셀: 컨빅션에서 서드 에셜론의 국장 톰 리드와, 루시어스 갈리아드 등을 이용해 미국 대통령을 갈아 엎으려는 음모를 꾸민 개인 혹은 세력.

샘 피셔가 심문한 루시어스 갈리아드의 말에 따르면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워싱턴 D.C. 등 굵직한 세계 정치의 중심가에 손을 깊게 뻗은 듯하다.

블랙리스트에서 메기도의 끝을 보나 했더니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조직 등장해서 미통보 사건에서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것 외에 없었다. 아무래도 차기작의 떡밥으로 남긴듯 하다 다른 톰 클랜시 월드에서는 이상하게 언급이 없지만, H.A.W.X.2의 최종 스테이지의 보스가 "이 세상에는 국가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이 메기도를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떡밥이 있다.

8. 글로리아 유니온의 적 전용 카드

사용하면 적 전멸이라는 사기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미친 카드인 데다 전용 카드조차 아니다.

Debilish dark night by Permanent desire... Defent it, and the World is annihilated.
영원한 갈망에 의한 마성의 밤... 먹어라, 그리고 세계는 재멸한다!

다른 것도 비슷하긴 하지만 주문이 특히나 중2스럽다.

에이스 타입에 제한도 없고 이동력도 7이라는 애매한 수치지만 나쁜 수준은 아니다. 윌이 높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 다행스러운 카드.

다른 시리즈인 유그드라 유니온의 주인공 유그드라나 블레이즈 유니온에 적으로 나오는 올딘 왕이 사용하는 최강 필살기인 지하드가 같은 효과를 가지면서도 헤드 혼자 남았을 때만 사용 가능한 것과는 달리 사용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말 그대로 사기 스킬이다.

제약이 강한 지하드조차 유그드라 유니온에서는 주인공이 거의 마지막에나 배우는 데다 동료인 밀라노가 워낙 강하기에 거의 쓸 일 없는 스킬이긴 했지만 일단 쓰면 사기였고 블레이즈 유니온에서는 적 올딘 왕이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스킬이였는데 메기도는 제약조차 없어서 적의 스킬 게이지가 차기 전에 끝내거나 실드 배리어를 계속 준비시켜 두어야 한다.

심지어 루키아 황국의 재상인 가리오레드는 이 카드와 함께 전용 카드로 저지먼트 제로라는 실드 배리어 관통 스킬조차 가지고 있어서 실드 배리어를 들고 있어도 이기기가 힘들다. 저지먼트 제로가 사용자의 상태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데다 가끔 자살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다행일 수도 있다.

9. 데이트 어 라이브에 등장하는 정령 이츠카 코토리의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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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버드 형태의 천사 카마엘을 거대한 캐논 형태로 변화시켜, 오른팔에 장착한 뒤, 포구에 화염을 응축시켜 전방에 강력한 포격을 가한다. 화산폭발에 비유될 정도로 막대한 양의 열량이 응축되어 있으며, 초고열의 광선으로 쿠루미의 분신들은 전부 증발하고, 천사마저 가볍게 꿰뚫어 버린다. 또한 광선 주위의 열기로 옥상 바닥과 펜스가 녹아내리고, 광선이 지나간 주변이 붉게 물드는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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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레이브의 등장인물

사천마왕 참고.

11. Homestuck의 등장 성씨

이쪽은 Megido.

12.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리무루 템페스트의 기술

물방울들을 통해 햇빛을 굴절시켜서 모으고 반사시켜서 쏘는 광선공격. 물방울의 운용은 마법을 사용하지만 광선 자체는 그냥 집속된 햇빛이기 때문에 매우 적은 양의 마소를 사용하고 당연히 마법결계도 무시한다. 작중에선 20000명의 파르무스 왕국군의 반 정도를 죽였다. 햇빛을 집속시켜서 광선을 발사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빛을 산란시키면 막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무루도 웬만한 상황 말고는 쓰지 않는다.

이 기술을 응용한 기술로 [신의 눈 아르고스]가 있는데 CCTV처럼 감시의 기능도 있으며 메기도처럼 광선을 발사할 수 있다. 라파엘이 마법식을 수정해서 위력이 몆배는 증가했다고 한다. 리무루가 장난삼아서 고부타의 다리에 쏴봤다. 제국침공편에서 리무루가 제국국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13. SEGA의 리듬게임 CHUNITHM VERSE의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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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역개정 성경[2] 공동번역 성서[3] 후사인의 죽음에 슬퍼한 이븐 라이크는 17세인 아들 아불 파트 무자힘을 무함마드에 보내 보복해도 좋다 했으나 무함마드는 고귀한 행동에 감사를 표하며 많은 선물과 예복을 주고, 자신의 딸 파티마와 결혼시킨 후 돌려보냈다. 이로써 양측은 휴전을 맺었고, 942년 이븐 라이크가 암살당한 후 무함마드는 시리아를 장악한다[4] 1559-71년 알리 빈 투라바이, 1571-83년 아사프 빈 투라바이 (나블루스 산작까지 관할)가 통치[5] 그 대가로 영지가 늘어났다[6] 동시에 산작의 영역도 요르단강 동안의 아질룬 산지까지 포함하게 되었다[7] 돼지는 무려 206마리[8] 미카엘은 신의 화신을 별 어려움 없이 제압하는 괴물이라 갈바니 쯤은 눈감고도 제압가능하지만 일부러 농락한 것이다.